글읽기
어제 했던 춘추필법(春秋筆法) 이야기를 조금 더 하지요.
 
정명(正名)이어야 한다
정명론(正名論)을 통하여 공자가 주장한 대의명분(大義名分)이란 것이 무엇인가? 곧 학문을, 혹은 역사를, 혹은 가치를, 지구촌 인류의 공동작업으로 크게 보는 관점입니다.
 
빈 터가 하나 있습니다. 먼저 온 공자가 거기에 커다란 기둥을 하나 세우면, 후학들이 거기에다 가지를 치는 식입니다. 공자는 죽었지만 1500년 후에 온 주자가 거기에 성리학의 가지를 쳤고, 다시 500년 후에 온 율곡이 이기일원론의 가지를 치는 식입니다.
 
그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나무를 이루는 거지요.
 
그것이 곧 ‘대의(大義)’입니다. 대의는 커다란 기둥과 같습니다. 그것이 백두대간의 대간(大幹)이 되고, 한강의 주류가 되는 것이며, 그 대간에서 작은 정맥들이 또 그 주류에서 작은 지류들이 차차로 가지를 쳐나가는 것입니다.
 
그 대의(大義)의 큰 주류에서 작은 지류로 갈라지는 곡절이 되는 것이 곧 명분(名分)입니다. 명분은 전체에 기여하는 ‘부분’의 고유한 역할을 말합니다. 인체에 오장육부가 있다면 그 오장과 육부가 가진 각각의 역할이 곧 명분입니다.
 
명분이 없다면 곧 전체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명분은 이름붙여지는 것이며, 이름 붙여지기 위해서는 독립되어야 합니다. 주류에서 지류로 갈라져 독립하려면 역할을 하나씩 맡아야만 합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만 결과적으로 전체에 기여한다.’
 
서프도 이렇게 가야 합니다. 종속되어서 명목을 획득하지 못합니다. 독립해야지만 비로소 이름이 주어집니다. 독립하는 방법으로 역할을 나눠가져야만 명분이 획득됩니다.
 
그렇다면 세계사에 기여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명분은? 인류사에 기여하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명목은?
 
한국이 설사 경제를 제법 발전시켜 나름대로 먹고살게 되었다 해도 이는 성공이 되지 못합니다. 즉 지구촌 인류의 공동작업이라는 큰 기둥줄기에서 뻗어난 가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만의 고유한 역할이 특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먼저 그 큰 기둥줄기에 일본식 성장모델이라는 가지를 쳤는데, 한국이 일본을 따라배우기나 한다면 한국의 명분은 소멸하고 맙니다. 한국은 일본의 아류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얻지 못합니다. 이름이 없으니 명분이 없습니다.
 
세계사 차원에서 볼 때 한국이라는 작은 가지는 일본이라는 큰 가지에 가려서 햇볕을 받지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2500년 전에 공자가 정명(正名)이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먼저 이름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밑줄 쫙입니다. 서프라이즈는 독립적(名分)으로 움직이지만 전체(大義)에 기여한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명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계사라는 커다란 기둥에 대한민국이라는 가지가 첫 번째 혹은 두번째 가지로 돋보이게 되어야 합니다. 한국이 인류문명에 기여하는 고유한 하나의 역할을 나눠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형 성공모델을 만들므로써 가능합니다.
 
어떻게? 다른 나라들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오직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합니다. 한국의 장점을 살리는 방법으로 가능합니다. 백범 김구는 우리 한국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 끝에 ‘문화국가의 비전’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정리하면
1) 정사(正邪)는 대의명분으로 판단된다.
2) 대의(大義)는 인류문명에 기여함을 의미한다.
3) 명분(名分)은 인류사에 기여할 수 있는 우리만의 독립적인 역할을 얻음이다.
4) 한국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을 떠맡아 그것을 완성시켜야 한다.
5) 그 내적인 완성에 이르지 못하는 파편화된 부스러기 선(善)은 대접받을 수 없다.
 
인류문명의 큰 기둥줄거리를 정통으로 놓습니다. 그 큰 줄기에 가지로 깃들지 못하는 부스러기들을 이단(邪)이라 합니다. 삿된 것이지요.
 
물론 다양성 차원에서 그 부스러기들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먼저 큰 줄기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고, 거기서 큰 가지가 뻗어나오고 난 다음에, 그 큰 나무에 뭇 새들과 버러지들과 굼벵이들이 깃들어 사는 것이지, 그 큰 나무의 존재를 부정하고서야 그 새들도 버러지들도 깃들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진중권의 재치와 전여옥의 푼수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한나라당도 있어야 하고 민주노동당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대정신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은 대간이 아니고 주류가 아닙니다.
 
인류문명의 진보라는 큰 나무에 깃들어 사는 한마리의 작은 새가 되고 버러지가 되어 나름대로 기여를 할 수는 있으나 결코 정통은 될 수 없고 주류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엔 명분이 없는 거지요.
 
왜 이러한 정사(正邪)의 판단이 중요한가? 선의로 한 일이 악의 결과를 낳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강준만의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습니다만 그는 결국 후단협들에 이용당하고 만 것입니다.
 
진중권도 조선일보를 위해 무모한 발언을 일삼은 것은 아닐 것이나, 그는 시대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하므로써 결과적으로 적에게 이용당하고 만 것이며, 이런 부스러기 실패사례들은 원래 안쳐주는 것입니다.
 
왜 온달이어야 했던가?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쓰면서 열전을 두어 온달전을 별도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아마 고구려에는 온달보다 더 뛰어난 장수가 수십명은 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미학적으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성공사례가 아닙니다.
 
온달의 삶에는 기승전결의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습니다. 온달은 출세한 민중을 대표합니다. 즉 그는 한 계급의 대표자로서의 ‘명분’을 득(得)한 것입니다. 명분이 없으면, 곧 대표성이 없으면, 곧 이름이 없으면, 곧 큰 나무의 한 가지로 독립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나도 대접해주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춘추필법입니다.
 
김부식은 춘추필법을 배운 유학자로서 온달이라는 인물의 독립성(명분, 계급적 대표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왜 일관성이 중요한가? 왜 미학적으로 완성되어야만 하는가? 파편화된 부스러기 선(善)이란 그 큰 나무의 가지가 될 수 없는 자질구레 한 것들을 말합니다. 성공사례가 못되므로 대표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인제는 아니고 노무현인가?
 
이인제는 계급적 대표성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즉 명분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즉 성공사례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설사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정치를 잘했다 해도 후대의 사가들이 '인제열전'을 쓸만한 깜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이 온달인지도 모릅니다. 온달이 만능의 천재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대표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직접민주정치시대를 열어제친 사람이라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든 '무현열전'은 씌어집니다. 온달이 비록 수나라 침략 이전의 고구려땅을 되찾기에 실패했지만 온달전으로 대접되듯이 말입니다.

 
종속해서 안되고 독립해야 합니다. 우왕좌왕 해서 안되고 일관되어야 합니다. 더우기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주류의 큰 흐름을 타야 합니다. 선의(善意)만으로 부족하고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마이가 하면 로맨스 조선이 하면 불륜
어제 글에도 썼지만 ‘오마이가 하면 로맨스이고 조선이 하면 불륜’입니다. 공자가 정명론을 통하여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곧 대의명분이라는 거죠. 잼있는 것은 이런 이야기가 500년 전에도 나왔다는 점입니다. 그때도 이 문제로 장안이 시끌시끌 했습니다.
 
사극 여인천하 보셨죠.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군자당과 정난공신들을 주축으로 한 소인당의 대결.. 훈구대신들은 항변하지요. 조광조 니들 사림들은 멋대로 붕당을 지어 패거리짓을 일삼으면서도 ‘군자당’이라 하여 정당화 되고, 우리 공신들은 모여서 밥만 먹어도 시비를 걸고.. 그러기 있냐.. ‘사림들이 하면 로맨스고 공신들이 하면 불륜이냐’.
 
조광조는 말했죠.
 
“네! 그러기 있습니다. 대의명분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정사(正邪)는 분명히 가려집니다.
 
억울해? 그러면 조선 니들도 대의명분을 세우면 되잖어? 인류문명의 위대한 진보에 기여하고 인류의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만들어봐. 문제는 그게 ‘더불어살자’는 거고 진보의 이념이라는 거쥐. 그렇게 하기 위해선 먼저 포지션을 바꿔야 한다는 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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