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127 vote 0 2018.03.14 (16:12:06)

 

    인생의 의미


    갑자기 축구시합에 투입되어 누가 우리편인지도 모르는 채 차라는 데로 차다가 문득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하고 자문하게 된다. 처음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 쉽게 적응하지만 어느 순간 무대 위에 혼자 남겨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유도 모르는 채 그동안 계속 공을 차왔길래 습관적으로 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허탈해한다. 인생의 의미가 뭐지?


    보통은 보상에서 답을 찾는다. 시합이 끝나면 치맥이 기다리고 있다. 신난다. 보상이 의미다. 그러나 그렇게 보상을 쫓다가 남의 뒤에서 시다바리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도 된다. 이건 아니다 싶다. 이건 내 게임이 아냐. 보상은 가짜다. 에너지가 필요하다. 엄마 품에 있을 때는 시키는대로 하므로 보상을 찾지만 독립하면 시키는 사람도 없고 보상도 필요 없다.


    남의 밑에 고용되어 일할 때는 노동력을 준 만큼 대가를 받아야 한다. 받지 않으면 줄 수도 없다. 그 주고받기의 균형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독립적인 예술가와 같이 자기 일을 한다면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 주지 않으니 받을 것도 없다. 순수한 아마추어와 같다. 자신이 좋아서 일하므로 보상은 필요 없다. 그런데 과연 이 일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가?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분위기 안 깨려고 좋아하는 척 했을 뿐이다. 돈이다 명예다 섹스다 쾌락이다 하지만 그게 다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들이다. 남들 앞에서 우쭐대려고 하는 소리다. 주변에서 부추기니까 하는 일이다. 남들이 하니까 공연히 따라한다. 그것은 상대적이다. 인간은 결국 혼자다. 둘이 있으면 상대성에 지배되나 혼자 있을 때는 절대성에 지배된다.


    둘이 있을 때는 남과 비교한다. 남을 이기려고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은 쾌락, 남들보다 더 많은 돈, 남들보다 더 높은 명성을 찾지만 혼자 있을 때는 굶어죽지만 않으면 된다. 많이 먹어봤자 장보기 귀찮고, 설거지 귀찮고, 분리수거 귀찮다. 섹스는 안 해도 된다. 명성은 오히려 부담이다. 명성을 얻을수록 남들이 내 인생에 참견하는 것이다. 에너지만이 진실하다.


    에너지는 일의 뒷 단계가 앞단계를 밀어올리는 것이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이. 흐름에 올라타고 간다. 관성의 법칙이다. 거기서 이탈하지 못한다. 일은 점점 커진다. 문득 자기가 어떤 사건 안에 들어와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미투운동도 같다. 일이 점점 커진다. 그래서 하는 것이다. 이전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가는 중간고리로 내가 있다는게 의미다.


    앞단계와 뒷단계 사이에 치여 관성을 탈출하지 못하는게 진짜다. 에너지는 그곳에 있다. 일이 있어야 한다. 이전단계가 있어야 한다. 연결되어 가는 족보가 있어야 한다. 선배와 후배다. 신병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군생활에 희망을 갖듯이. 에너지는 그 흐름에서의 대표성이다. 누구라도 이전단계와 다음 단계의 중간고리에 선다면 전태일처럼 용감해진다.


    노무현처럼 뒤로 물러서지 못한다. 계속 가야 하는 것이다. 일에 휘말려버리는 것이다. 일이 일을 끌고 가는 것이다.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지 못하므로 계속 가는 것이다. 천하의 일에 말려버린다. 풍덩 빠져버리니 결코 빠져나오지 못한다. 자신이 좋아서 취미로 하는 일이다. 다음 단계의 계획이 있으므로 지금 멈추지 못한다. 앞단계와 현단계를 지금 대표한다.


    나는 하나의 바이얼린을 연주할 뿐이지만 오케스트라 전체를 대표한다. 전체와 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필 일이다. 그것이 기도이다. 전체의 힘이 나를 인도해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기적이다. 내가 나를 넘어서니 큰 기운을 얻는다. 에너지다. 부분이 전체를 대표할 때 기운을 얻는다. 내가 쏜 한 방이 천하에 파란을 일으킬 때 에너지는 증폭된다.


    사람들은 모두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 채 이 순간을 즐기자고 말한다. 현재 상태에 집중하자고 한다. 거창한 계획 버리고 작은 행복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그러다가 망한 사람이 고은이다. 이 순간의 작은 행복을 찾아 손가락이 옆으로 살짝 나갔을 뿐인데 미투다. 연극무대를 지휘하며 팽팽한 긴장을 풀어보려고 이 순간 어깨를 좀 만져달라고 했다는 이윤택이다.


    지금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자는게 실은 죽음의 유혹이다. 오케스트라는 연주되고 있다. 이 순간에 집중하면 안 된다. 곡 전체를 꿰고 있어야 한다. 결따라 간다. 뒷단계가 앞단계를 계속 밀어낸다. 거기서 족보다. 족보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에너지는 족보에서 나온다. 인류는 20만 년간 줄기차게 진화해왔다. 생명은 40억 년간 전진해왔다. 앞단계를 밀어왔다.


    그 멈추지 못하는 기세에서 에너지가 얻어지는 것이다. 앞으로도 20만 년 전진해야 하기에. 앞으로도 40억 년 더 가봐야 하기에. 꾸준히 밀어내야 하기에. 모든 것은 중심에서 온다. 우주의 근원에서 온다. 문명의 근원에서 온다. 신에게서 온다. 모두 연결되어 하나로 있다. 부분은 전체를 대표할 때만 의미를 얻는다. 나와 타자 사이에 구분하는 금을 그을 수는 없다.
   

0.jpg


[레벨:7]아바미스

2018.03.14 (20:22:57)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슈에

2018.03.16 (17:29:09)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는 서점을 뒤지면 백만권 이상 나올 거 같습니다. ㅎㅎ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6432 펌 만화, 효순아 미선아 황인채 2002-12-03 16168
6431 - 이번 선거 반드시 이겨야 한다. - 김동렬 2002-12-03 15970
6430 타임지 전망 (노하우 홈에서) 김동렬 2002-12-03 15600
6429 한순간도 안심하면 안됩니다. 영호 2002-12-03 16036
6428 TV토론 총평 - 권영길 도우미 좋았고 노무현 무난히 잘했다. 김동렬 2002-12-04 15592
6427 여론흐름 펌 깜씨 2002-12-04 15869
6426 글쎄... 영호 2002-12-04 15755
6425 한나라당의 고백 김동렬 2002-12-04 15997
6424 아 누가 이리될줄.... 마귀 2002-12-04 17426
6423 Re..권영길때매 걱정이 태산이 됨 손&발 2002-12-04 17500
6422 권영길 후보의 역할분담.. ^6 시민K 2002-12-04 16243
6421 너무 낙관적. 학교에서 2002-12-04 16079
6420 Re.. 게시족들은 상황을 불안하게 만들어야 김동렬 2002-12-04 16031
6419 하나로당원과 아줌마 @..@ 2002-12-04 15964
6418 노무현이 명심해야할 토론 10계명 김동렬 2002-12-04 16349
6417 곤충채집 겨울방학 숙제 유비송신 2002-12-04 18341
6416 <도올 김용옥기자의 현장속으로>감흥없는 `허무개그` 김동렬 2002-12-04 15915
6415 살빼실분 이회창 후보 찍으세요 황인채 2002-12-04 16729
6414 한나라당의 자충수? image 김동렬 2002-12-04 16276
6413 배짱이가 30마리도 안된단 말이오? 파브르 2002-12-04 15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