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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969 vote 0 2017.05.10 (19:58:53)

    

    18. 연주되고 있지 않은 악기


    서른셋 여자. 몸이 아주 없었으면 좋겠다. 몸을 유지하는데 드는 손해와 고통이 몸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기쁨이나 즐거움보다 크다. 벌어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돌아오면 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다. 남동생은 자폐증 지적 장애 1급이고 어머니는 허리를 다쳐서 돈을 벌 수 없는 상태. 이에 대한 강신주 답변은 ‘나쁜 년이 되라.’는 거다.


    연락처 남기지 말고 쿨하게 떠나라. 본인이 능력도 없으면서 억지로 가족을 부양하려는 것은 똥고집이다. 우선 내가 살고봐야 한다. 나머지는 그 다음에 선택할 문제다. 몸이라는 악기를 잘 연주해야 하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가 아닌가. 이런 건데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이건 뭐 막말 수준이다. 내담자의 고민은 사실 사회에다 항의해야 할 문제다.


    이 문제를 굳이 철학자에게 상담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강신주는 그 부분을 살피지 않고 폭언을 했다. 몸은 뇌다. 몸이 힘든게 아니라 뇌가 힘든 것이다. 내담자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그 안에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반드시 지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정부분이라도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안에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앓아 누운 배우자를 돌보는 것은 상대방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는 약자다. 약자를 통제할 수 있으므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반드시 효자이거나 열녀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한다. 그 일 안에 결이 있고 결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하다보면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예측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다.


    결이 어긋난 것이다. 그럴 때 좌절하게 된다. 좌절해서 포기할 수도 있다. 자기만의 대담한 계획이 있다면 내버려두고 떠날 수도 있다. 빈곤문제는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내담자가 철학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본질은 권력이며 통제가능성이다. 결어긋남 상태이다. 어긋난 결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을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버리고 떠난다고?


    그럴 사람이면 벌써 떠났다. 강신주 답변은 엉뚱하고 무책임하다. 더욱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 내담자는 열심히 일하지만 합당한 보상을 못 받고 있다. 더욱 희망이 없어 좌절해 있다. 상황이 통제되지 않으니 결이 어긋나 있다. 비틀어져 있다. 이를 복원하려면 상부구조로 올라가야 한다. 하부구조에는 답이 없다. 기껏해야 편하고 좋은 직장을 잡는 정도다.


    상부구조는 사회다. 사회에다 항의해야 한다. 봉건사회라면 이웃에다 호소하여 자신의 평판을 높일 수 있다. 현대사회라면 복지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상부구조는 또 신이다. 신이 잘못했으므로 신을 비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힘든 상황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상황이 누구의 잘못이고 누구의 책임인지가 중요하다.


    그런 것이 애매하기 때문에 뇌가 화를 내는 것이다. 결이 맞아서 목표가 분명하고 주변환경이 호응해줄 때는 힘이 난다. 봉건사회라면 이웃의 칭찬이 자자해져서 힘을 낼 수 있다. 현대사회는 국가의 일을 개인에게 떠넘겨서 애매해졌다. 내담자는 분명히 판단해야 한다. 자신은 권력을 행사하여 상황을 적절히 통제하고 있으며 그것은 자신의 선택임을.


    그게 안 되면 사회의 잘못이고 신의 잘못이며 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할 일은 내게 주어진 상황을 적절히 통제하여 다음 단계로 이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철학자는 여기까지 말해줄 수 있다. 그 이상은 사회에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 팽개치고 도망가라는 식의 말은 곤란하다. 인생은 게임의 장 안에서 도전과 응전이다. 도전을 겁내지 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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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11]슈에

2017.05.10 (22:48:02)

법륜의 즉문즉설에도 자주 나오는 상담주제네요. 법륜도 비슷한 대답을 내놓죠ㅡ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삼천배를 하면서 참회하라고. 강신주나 법륜이나 이런 것을 개인의 문제로 보고 소승적인 대답을 내놓는 수준에서 똑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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