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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459 vote 0 2014.01.08 (15:05:48)

     운명과 자유의지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과 자유의지가 있다는 말은 완전히 같다. 자유의지가 없는 이유는 인간이 환경과 운명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가 있는 이유는 환경과 운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없다’와 ‘있다’는 대칭이다. 없으면 있고 있으면 없다. 틀렸다. 있음이 먼저다. 있는 것은 없어질 수 있으나, 없는 것은 있어질 수 없다. 이는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방향성을 아는게 아는 것이다.


    운명은 만남으로 바꿀 수 있다. 그 만남은 능동적인 만남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안에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느냐는 물음은 에너지가 있느냐는 물음과 같다.


    환경은 이탈로 바꿀 수 있다. 환경은 에너지의 레벨이다. 부자와 빈자는 에너지의 레벨이 다르다. 부자는 에너지를 버리는 방법으로 레벨을 바꿀 수 있다. 부자는 손쉽게 환경을 바꿀 수 있다.


    빈자는 에너지를 저축하여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이는 장기전의 방법이다. 빈자는 단기적으로 환경을 바꿀 수 없다. 빈자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자유의지가 없다. 지는 시합을 이길 수는 없다.


    ◎ 에너지가 있으면 만남을 통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 에너지를 저축하는 장기전으로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다. 운명을 바꾸는 방법은 상부구조에서 하부구조로 넘어갈 때 주어지는 만남의 현장에서 능동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에너지가 있어야 그것은 가능하다.


    많은 돈이 있다면, 학벌이 좋다면, 미모가 출중하다면, 실력이 있다면, 힘이 있다면 운명적인 만남의 현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만남의 상대를 선택함으로써 가능하다.


    반대로 힘이 없고 돈이 없다면, 실력이 없고, 재능도 없다면 자신이 상대를 선택하기 전에 상대에게 선택 당한다. 운명의 지배를 피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전략적 편들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진보의 편에 서고, 역사의 편에 서고, 흐름을 타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안 된다면 역사의 힘, 진리의 힘, 세력의 힘을 업는 것이다. 이 경우는 장기전을 해야 한다. 그리고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환경의 변화는 현장이탈로 가능하다. 물리적 이탈은 이사를 가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선진국으로 이민을 가면 된다. 심리적 이탈은 눈앞의 현실을 무시하고 상대해주지 않는 것이다.


    힘이 없으면 환경이 먼저 말을 건다. 환경의 말걸기에 반응하지 않으면 된다. 반응하면 말려든다. 말려들면 억압된다. 현실은 비참하더라도 귀족의 마음, 제왕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http://me2.do/59VmpjlD


    MBC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 방영된 이야기다. 운명을 바꾼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이 등장한다. 로라와 설리반의 만남, 설리반과 의사의 만남 그리고 설리반 선생님과 헬렌 켈러의 만남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정되는 이유는 구조의 세팅 때문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연쇄고리에 들면 중간에서 임의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 그 길을 끝까지 가야만 한다.


    어느 운전초보 연예인이 직진만 계속하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소속사로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다. 설리반 선생님만 해도 헬렌 켈러 때문에 팔자가 꼬였다.


    설리반 선생님과 헬렌 켈러는 무려 48년이나 함께 생활했으니 어떻게 보면 인생 전체가 구속된 셈이다. 거꾸로 보면 단 한번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후 48년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것이다.


    아주 작은 결정이 굉장히 많은 것을 바꾼다. 영화 변호인에서 변호사 송우석이 진우를 만나자 인생이 바뀌었듯이. 매우 쉽게 아주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으므로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운명을 바꾸는 방아쇠의 위치다. 그것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사이에 있다. 운명의 방아쇠는 상부구조에서 만남의 형태로만 기능한다. 만남을 거치지 않고 저절로 격발되는 일은 없다.


    만남 이후 하부구조로 내려가서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정해진 궤도로 들어선 다음에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 질은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그 다음은 계속 간다. 직진신호 밖에 없다.


    의미있는 만남의 확률을 높여야 한다. 만남은 네거리에서 일어난다. 되도록 네거리 근처에서 얼쩡거려야 한다. 삶의 네거리는 진보에 있고 보수에는 없다. 진보 주변에서 얼쩡대야 한다.


    진보는 새롭고, 새로우면 엮이고, 엮임은 에너지를 가지며, 그 에너지에 빨대를 꽂는 방법으로 운명적인 만남의 찬스를 엮을 수 있다. 불행은 그 만남의 가능성을 닫아놓기 때문에 일어난다.


    땅을 사도 네거리에서 사야 한다. 무인도를 샀다가는 되팔 수 없다. 사람을 만나도 진보에서 만나야 한다. 보수에서 만나면 에너지를 약탈당한다. 진보는 젊고 젊은 사람들이 만만한 거다.


    예컨대 이런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성범죄가 일어났다면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가해자에게 있다. 그러므로 가해자가 고통을 느껴야 한다. 범죄는 가해자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피해자가 고통을 느끼는 거지? 이런 이야기는 오해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누가 실패했는가이다. 합리적인 선택에 실패한 사람은 이명박을 찍은 사람이다.


    전직 대통령 지지율 1.4퍼센트라고 한다. 영도다리 밑에서 손가락 찾아야 할 사람은 새누리당 찍은 실패자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거지? 인생은 확률이고 확률은 보험이다.


    액땜이라고 한다. 불행을 당했다면 내 인생의 총불행 100에서 불행이 그만큼 빠져나간 거다. 지금 내게 일어난 불행이 아니라 내 인생의 총불행에서 나도 모르게 잔고가 빠져나간 것이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인생 총 불행통장의 잔고 100 중에서 1이 빠져나간 것이고 그것은 통장 안에서의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험에 들어놓았느냐다.


    보험에 들어놓으면 총잔고 100에서 빠져나가지만 보험에 들어놓지 않으면 불행이 불행을 부르는 연쇄고리가 작동한다. 스마트폰을 잃었다고 화를 내고, 화를 내다가 공연히 싸움이 난다.


    보험에 든다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을 계속함으로써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불행이 또다른 불행을 부르듯이 선행이 또다른 선을 부른다. 불행도 행운도 적절히 분산해야 한다.


    그러려면 큰 줄거리를 알아야 한다. 상부구조를 잘 조직해야 한다. 회사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험담을 한다고 치자. 잘못한 사람은 험담을 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틀린 이야기를 한 것이다.


    실패는 그 사람의 실패다. 그런데 왜 내가 고통을 느끼지? 이건 뭔가 이상하다. 결과가 어떻든 내가 투표를 똑바로 했으면 된 것이다. 이것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험을 들어놓는 자세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가해자는 두 발 뻗고 자고 피해자가 고통을 느낀다. 왜? 엮임 때문이다. 불행이 또다른 불행을 부르는 이유는 역시 엮임 때문이다. 엮임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두 명의 여성이 성범죄의 피해를 입었다. 한 명은 백억원을 가진 부자이고 다른 한 명은 수중에 백만원 밖에 없다. 누가 더 고통을 느낄까? 물론 돈 없는 사람이다. 이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백억 가진 여자가 성범죄를 당했다면 호스트바에 가서 젊은 남자 궁둥이 몇 대 때려주고 화풀이하는 걸로 끝낼 수있다. 왜? 자신이 강자니까.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므로 고통이 가중된다.


    호랑이에 물렸다고 치자. 왜 고통스러울까? 호랑이에게 물렸기 때문이 아니다. 호랑이가 문앞에 지키고 있어서 외출을 못하기 때문이다. 성범죄 때문에 피해자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이유는 성범죄자가 문앞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엮였기 때문이다. 이 때의 방법은 격리다. 현장의 이탈이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 엮임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


    부자는 비싼 집에 경비원을 두고 산다. 커다란 차를 몰고 다니며 거리의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문제삼는게 문제다. 왜 문제를 문제삼는 오류를 저지를까?


    내 안에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전략이 없고, 설계가 없고, 세력이 없고, 돈이 없고, 힘이 없고, 현장을 이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갇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운명에 지배되는 것이다.


    아베가 무슨 짓을 해도 한국인은 고통을 느낄 필요가 없다.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문명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외부로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니 내부를 쥐어짜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아베가 삽질해서 중국과 일본이 싸우면 한국은 도시락 싸들고 가서 구경하면 된다. 문제는 일본에 있는 아베가 아니라 한국에 있는 박근혜다. 박근혜와 새누리는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기에 문제다.


    새누리 호랑이가 대문간을 지키고 있어서 나의 외출이 방해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격리가 필요하다. 격리는 물리적인 격리도 있지만 심리적인 격리도 있다.


    우리는 선비그룹에 속하고 저들은 양아치그룹에 속한다. 지성인과 비지성인은 서식하는 공간이 다르다. 조류는 공중에 살고 길짐승은 땅위에 산다. 서로 만나지 않으면 부딪힐 일도 없다.


    심리적인 층위를 두면 된다. 심리적으로 같은 층위에 살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 인생에서 자기 패스만 잘 전달하면 된다. 이것이 큰 틀거리다. 신과 일대일 구조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은 신과의 만남이며 그 외에는 없다. 필요한 것은 해적정신이다. 자신을 가해자로 설정해야 한다.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내 안의 에너지로 만남을 선택하여 운명을 바꾸어야 한다.


    에너지가 없으면 역사를 추동하는 진보의 에너지에 편승해야 한다. 문명을 일으키는 창의력의 에너지에 올라타야 한다. 인터넷으로 올라타고, 스마트로 올라타고 개방으로 빨대를 꽂아야 한다.


    밖으로 창을 열어야 한다.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족민은 정글을 탈출할 수 없다. 장애인은 외출이 방해된다. 여성이나 약자는 그러한 정도가 심하다. 그러므로 고통이 가중된다.


    중요한 것은 큰 틀거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큰 그림을 그리면 작은 것은 따라 온다. 인생전체를 전략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확률의 보험에 들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 잘못된건 가해자의 실패다.
    ◎ 불행은 인생전체의 불행잔고 안에서 숫자놀음이다.
    ◎ 진보라는 네거리에서 얼쩡대면 행운의 확률이 올라간다.
    ◎ 행운의 확률을 모으는 큰 주머니를 가져야 한다.
    ◎ 인생전체를 총괄하는 원본모형이 필요하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법륜스님은 어떤 해답을 주는가? 엉덩이가 장판에 눌어붙도록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해서 그만 잊어버리라고 한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이니까. 그게 되는가? 안 된다.


    고통을 극복한 사람은 명상을 해서 극복한 것이 아니고 법정을 만나서 극복한 것이다. 위대한 만남만이 피해를 극복하게 한다. 답은 절대로 에너지에 있으며 자신이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


    그 에너지는 돈과 같은 물적 에너지일 수도 있고, 세력과 같은 사회의 에너지일 수도 있고, 전략과 같은 내면의 에너지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진정한 답은 에너지의 절대우위에 있다.


    끊을 것을 끊어서 불행의 전염을 차단하고, 이을 것을 이어서 행운의 복제를 일으켜야 한다. 그것은 인생전체를 통째로 디자인하는 눈높이에서 가능하다. 신과의 일대일 만남으로 가능하다.


   핀란드 교육이 우수한 것은 시험을 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에 시험을 딱 한 번만 친다면 누구나 만점을 받는다. 인생 전체를 하나의 통짜덩어리로 만들면 된다. 평가는 인생에 한 번 뿐이다. 


    평가의 횟수만큼 불행은 증가한다. 그러한 마음을 갖는 것이 확률의 보험에 드는 것이며, 신과의 일대일 승부다. 설사 그대의 삶의 모험이 전부 실패로 끝나더라도 인류 전체의 확률주머니 안에서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삶의 많은 장면장면들을 개별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기승전결의 결에 가서 점수가 나오는 것이다. 중간의 실패는 최후의 승리를 빛나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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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9 (13:23:27)

감사합니다. 늘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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