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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669 vote 1 2013.10.29 (00:31:49)


    완전성


    인류의 지혜를 집약한 한 권의 책을 엮는다면 그 책의 첫 페이지에 무엇이 와야 하는가? 모든 과학의 출발점, 모든 지혜의 출발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잘 꿰어야 할 첫단추는 무엇인가?


    그것은 마땅히 세상의 시작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시작은 무엇으로 시작하는가? 성경의 창세기를 떠올려도 좋다. 세상의 시작은 천지창조다. 무릇 천지는 어떤 원리에 의해 창조되었는가?


    컴퓨터를 다루려면 자판을 익혀야 한다. 한글을 배우려면 자모를 익혀야 한다. 영어를 배우려면 알파벳부터 떼고 와야 한다. 그런데 한자는 알파벳이 없다.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격이다.


    설계도 없이도 집은 지을 수 있다. 베테랑의 경험과 선배의 조언에 의지하면 집을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주먹구구다. 수학이 아니라 산수다. 지혜가 아니라 잔꾀다.


    20세기를 규정하는 것은 새롭게 등장한 네 가지 학문이다. 다윈의 진화론과, 마르크스의 사회학과,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 프로이드의 심리학이 그것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알파벳이 없다.


    진화의 알파벳은? 유전자다. 그런데 다윈의 진화론에는 유전자 개념이 없다. 마르크스의 사회학도,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도, 프로이드의 심리학도 알파벳이 없다. 뭔가 핵심 하나가 빠졌다.


    선배의 조언과 베테랑이 경험으로 겨우 버티고는 있으나 대개 허둥대는 편이다. 조직적이지 않고, 체계가 없고, 두서가 없다. 이들은 옳은 방향을 제시했으나 단지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다.


    마음은 깨달음의 영역이다. 결정적으로 프로이드는 깨닫지 못했다. 자본은 생물처럼 스스로 증식하며 한편으로 진화한다. 마르크스와 아담 스미스는 그러한 자본의 진화를 깨닫지 못했다.


    다윈은 진화를 주장했을 뿐 진화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의 착각은 엉뚱한 인종주의로 비화했다. 다윈이 종의 진화를 설명하지 못했으므로 마르크스가 자본의 진화를 깨닫지 못한건 당연하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우연한 발견에 의지하고 있다. 영화 ‘부시맨’의 우연히 주운 콜라병과 같다.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었으나 결정적으로 그것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보지는 못했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학문의 고유한 속성이다. 그런데 프로이드와 다윈과 마르크스가 하나를 알았는데도 열을 알지 못했다면 하나 역시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증거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이미 시작했는데도 반을 오지 못했다면 애초에 시작이 잘못된 것이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무엇이 필요한가? 알파벳이 필요하다. 학문의 알파벳 말이다.


    처음 발전기를 만들었을 때의 일이다. 발전기 여러대를 전시회에 출품했는데 그 중의 발전기 한 대는 꺼두었다. 전기공이 실수로 작동하고 있는 발전기의 전원을 꺼둔 발전기에 연결했다.


    그러자 발전기가 스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발전기는 증기기관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작동한다. 그것이 모터다. 모터는 그렇게 저절로 발명된 것이다. 발전기와 모터는 쌍이다.


    발전기를 발명했을 때 모터는 이미 발명되어 있다. 마찬가지다. 진화론을 발견했다면 자본론도 발견되어 있다. 경제학이 발견되어 있다면 사회학도 발견되어 있다. 이렇듯 전부 연결되어 있다.


    사회든 개인이든 동기부여에 의해 작동한다.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의사결정이다. 의사결정원리를 발견했다면 마르크스의 집단적 의사결정과 프로이드의 내면적 의사결정은 동시에 발견된다.


    모터와 발전기는 동시에 발명된다. 밤과 낮은 동시에 성립한다. 음과 양은 동시에 결정된다. 다윈과 마르크스와 프로이드와 아담 스미스는 하나의 발견에 의해 동시에 확립되어야 한다.


    진화를 낳는 것은 유전자다. 유전자가 알파벳이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져 글자를 이룬다. 영어는 알파벳이 모여서 단어를 이룬다. 그런데 한자는 단어 하나가 곧 글자 한 자다.


    한자가 물체라면, 영어는 물질이고, 한글은 원자다. 물체를 쪼개서 물질을 얻고 물질을 쪼개서 원자를 얻는다. 다윈은 개체를 쪼개지 않았고, 세포를 쪼개지 않았고, 유전자를 쪼개지 않았다.


    개체를 쪼개지 않은 다윈은 수술을 거부하는 의사와 같다. 인체를 쪼개지 않으면 병을 치료할 수 없다. 쪼개야 하며 최소단위까지 쪼개야 한다. 최종단위에서 의사결정원리를 발견한다.


    한글 자모는 스물넷이다. 더 쪼개면 ㄱ, ㅁ, ㅅ, ㅇ, ㅏ의 다섯 그룹으로 나눠진다. 자음은 혓소리, 잇소리, 입술소리, 목구멍소리로 나눠진다. 모음은 성대소리다. 여기서 더 쪼갤 수는 없다.


    ㄱ,ㄴ,ㄷ,ㄹ,ㅋ,ㅌ은 혓소리다. ㅁ, ㅂ, ㅍ은 입술소리다. ㅅ,ㅈ,ㅊ은 잇소리다. ㅇ, ㅎ은 목구멍소리다. 모든 모음은 성대소리다. 한글이 과학적인 글자인 이유는 원자 단위까지 쪼갰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제할 수 있는가다. 한자는 5만 자나 되어 다 익힐 수 없다. 알파벳은 스물여섯자이나 부족하다. element에 반복되는 세 개의 e 발음이 모두 다르다. 발음기호는 e, ɪ, ə가 된다.


    영어는 엉터리인데 적당히 쓴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영어 단어 암기에 애를 먹는다. 최소단위까지 쪼개야 완전하다. 세종대왕은 스물여덟을 만들었으나 편의일 뿐 실제로는 다섯이다.


    존재의 최소단위는 무엇인가?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 했다. 왜 불이나 돌이나 흙은 아니고 하필 물인가? 물의 어떤 속성에 빗대어 말한 것일 뿐이다. 물은 흐른다. 흘러 움직인다.


    존재의 근본은 움직이는 것이다. 노자는 유가 강을 이긴다고 했다. 불교에서는 공을 색에 앞세운다. 유교는 왕도를 패도 위에 놓는다. 역시 같은 맥락이다. 움직이는 것이 만물의 근본이다.


    그러나 보통은 입자를 근본으로 친다. 입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고 가정된다. 자연수는 1이 가장 작고 거기서 더 쪼개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리수나 실수로 가면 1도 쪼개지고 만다.


    쪼개지지 않는다는 가정은 편의다. 실제로는 인과율에 억지로 맞추려 한 것이다. 인과율은 결과에서 원인을 본다. 원인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된다. 변하면 또다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원인의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의 원인의 원인이 있다는 식으로 계속 가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종착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희망일 뿐 존재의 사실은 아니다.


    설탕물이 단 원인은 설탕이 때문이다. 소금물이 단 원인은 소금 때문이다. 소금과 설탕은 더 쪼개지 못한다. 단 것은 달고 짠 것은 짜고 매운 것은 맵고 떫은 것은 떫고 쓴 것은 쓰다.


    이는 최종적인 원인이며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매운 멋은 없다. 매운 맛은 통증을 맛으로 착각한 것이다. 매운 음식을 먹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은 착각이다.


    떫은 맛도 없다. 떫은 것은 수분을 흡수하여 혀에 달라붙으므로 떫은 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린다. 혀에 달라붙을 때의 불쾌감을 맛으로 착각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단맛도 없다.


    단맛은 혀끝에서 혀를 안쪽으로 밀어넣게 한다. 음식을 삼키게 하는 것이다. 짠 것은 혀 가장자리에서 음식을 안으로 모은다. 고루 섞이게 하는 것이다. 쓴 맛은 혀 안쪽에서 밖으로 밀어낸다.


    혀 안쪽에서 음식을 밖으로 밀어내면 목구멍이 막혀 호흡이 곤란하므로 불쾌해져서 쓴 맛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쓴맛을 느껴도 호흡에 무리가 없다. 쓴 커피만 잘 먹는다.


    맛이란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착각이다. 사물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다. 설탕은 달지 않고 감은 떫지 않고 커피는 쓰지 않고 소금은 짜지 않다. 단지 혀의 반응을 뇌가 임의로 규정한 것이다.


    최종적인 것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것이라는 관념은 인간의 경험에서 유추된 것으로 소금이 원래 짜고 설탕이 원래 달다는 것과 같아서 인간의 뇌가 지어낸 허상일 뿐 자연에는 없다.


    탈레스는 물을 말했고, 노자는 유를 말했고, 공자는 왕도를 말했고, 석가는 공을 말했다. 이는 모두 딱딱한 알갱이 입자를 부정한 것이다. 원인과 결과로 설명하는 인과율의 오류를 지적하였다.


    원인은 원인이 아니다. 인과율로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모든 존재의 최종적인 원인은 알파벳이다. 알파벳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자음과 모음이 결합해야 의미를 성립시킨다.


    물체 밑에 물질 있고 물질 밑에 원자 있다. 한자는 물체, 영어는 물질, 한글은 원자다. 한글 스물네자는 최종적이지 않고 ‘ㄱ, ㅁ, ㅅ, ㅇ, ㅏ’ 다섯 그룹이 최종적인 존재의 알파벳이다.


    구조론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알파벳이다. 다섯 가지 의사결정 단위다. 이들이 조직하여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된다. 이들이 조직하여 설탕을 달게 하고 소금을 짜게 하고 감을 떫게 한다.


    원자를 쪼개면 소립자가 나오고, 소립자를 쪼개면 힉스메커니즘이 나온다. 최종적인 것은 의사결정원리다. 그것이 구조다.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 1에서 9까지가 최종적이며 0이 추가된다.


    그러나 이는 십진법일 뿐 숫자가 10진법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수학의 최종적인 알파벳은 무엇인가? ‘+, -, ×, /, =.’다. ‘÷’는 잘못 만들어진 기호이고 비례를 나타내는 ‘/’가 맞다.


    최종적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쪼개지고 결합하는 것이다. 한자는 의미가 완성되어 있어서 무엇과 결합할 이유가 없다. 알파벳 역시 굳이 결합할 이유가 없다. 한 글자로도 단어가 된다.


    a만 써놔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글은 결합하지 않을 수 없다. 자음과 모음만으로는 글자가 되지 않는다.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 ㄱ이나 ㅏ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모터와 발전기는 쌍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쌍이다. 그 중 하나가 생략되었다 하더라도 숨어 있는 것이다. 입자니 원자니 하는 개념은 틀렸다. 의사결정단위가 최종적이다. 세상은 다섯 의사결정단위의 집합이다.


    최초에 무엇이 있었는가? 완전성이 있었다. 무엇이 완전한가? 의사결정 단위가 집적하여 하나의 독립적인 사건을 성립시키는게 완전하다. 남녀가 결합하여 하나의 아기를 낳으면 완전하다.


    완전성에 에너지를 태우면 전개하여 다섯 개의 의사결정 단위를 만들고 이들이 작동하여 하나의 독립적인 사건을 완성하고 사건이 종결되면 거기서 원인과 결과를 판단하는 것이다.


    인간은 결과에서 원인을 본다. 원인에 또다른 원인이 있다. 그 원인에 또다른 원인이 있다. 이 쯤에서 포기하고 만다. 환자가 아픈 이유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병에 걸린 이유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환자가 아픈 이유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에서 만족하고 끝내려 한다. 병에 걸린 이유는 전염 때문이다. 전염이 된 이유는 병균 때문이다. 계속 가야 한다.


    구조론의 다섯 단위는 최종단계까지 쳐들어간 것이다. 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거나 혹은 전염 때문이라거나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원자에서 멈추지 않고 소립자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간다.


    최후에는 완전성에 도달한다. 완전하면 낳는다. 그냥 낳지 않고 반드시 자음과 모음의 결합을 거친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거친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그것이 의사결정이다.


    북소리는 북채와 북가죽이 만나야 한다. 종소리는 범종과 당목이 만나야 한다. 만나는 것이 의사결정이다. 존재는 다섯가지 만남, 다섯 단위의 의사결정이 하나의 사건을 이루어 완전하다.


    설계도 없이도 집을 지을 수는 있다. 설사 이론을 몰라도 베테랑의 경험과 선배의 조언에 힘입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떻게든 해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반드시 상대가 있다.


    상대가 적절히 반응해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산에 가면 법을 잡고 물에 가면 물고기를 잡는다. 그런데 그 반응해주는 상대가 없다면? 처음 하는 일이라면? 도와줄 선배가 없다면?


    물리학은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상대가 보이는 세계는 상대성의 세계다. 상대가 없는 세계는 절대성의 세계다. 상대가 있는 문명은 여기까지다. 21세기는 상대가 없는 세계로 진입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11.04 (12:16:49)

서른번째 문단에서...

매운 멋은 없다 ->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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