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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430 vote 0 2014.06.22 (23:16:50)

 

    신은 의사결정이다


    추상개념을 말 그대로 추상으로 이해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국가는 존재한다.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보아야한다. 국가라는 의사결정단위가 있으면 국가는 있다. 법인은 사람이 아니다.


    ‘법인이라고? 그 양반 낯짝 좀 보자.’ 이러면 곤란하다. 국가는 볼 수 없지만 있고, 법인은 만질 수 없지만 의사결정단위가 있으므로 있다. 있는 것을 있다고 알아들어야 비로소 대화가 된다.


    추상적 사고에 약해서 대화가 안 되면 할 수 없다. 소나 돼지와는 대화하지 않는다. 왜? 말이 안 통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대표적인 추상어다. 사랑이 없다고 믿는 사이코패스와는 말 안 한다.


    귀신은 없다. ‘귀신은 뭐하냐 문창극이 안 물어가고.’ <- 이런 말에서 귀신은 전염병이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규명되었고 귀신의 자리를 바이러스가 빼앗아 갔으므로 귀신은 없다.


    기氣도 없다. 에너지가 그 자리를 빼앗아 갔다. 자리를 뺏기면 없고 자리를 지키면 있다. 유령도 없고, 천사도 없고,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으며, 내세도 없고, 종말도, 심판도, 원죄도 없다.


    첫째 추상을 이해해야 하고, 둘째 의사결정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포지션이 있으면 있고, 기능이 있으면 있다. 다른 것과 포지션이 겹치면 없으며,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종교인들은 의사결정을 교주나 경전에 위임해 놓았다. 본인이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으므로, 진지한 대화에서는 종교인을 배제해야 한다. 종교인은 이 글을 읽지 마시라.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면 소나 말과 차이가 없다. 그냥 물체다. 건희다. 우리가 물체에 불과한 건희를 존중하는 척 연기하는 것은 재용이를 배려해서다. 이방인의 까뮈가 막판에 깨달은 바다.


    불교는 모호하다. 스님은 불교를 믿지 않는다. 깨달음은 믿음을 대체하니까. 신도들은 불교를 믿고 스님은 믿음을 부정한다. 까뮈가 울고갈 기묘한 연극이다. 사찰의 산신각처럼 어색한 동거다.


    서로 건들지 않기로 한 무언의 약속. 신기하게도 그 약속이 지켜진다. 성철이 때려부쉈지만 다시 살아났다. 예수가 때려부순 것을 기독교가 복구했듯이. 이상의 날개에서 기묘한 33번지처럼.


    무신론자는 인간의 의사결정권을 부정한다. 진화과정에서 얻은 유전자의 명령이거나, 생존본능이거나, 호르몬의 작용이거나, 그냥 우연의 산물이다. 이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다.


    사랑을 모르는 로봇과 사랑에 대해 토론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말이나 소나 개와 토론할 필요가 없듯이. 물론 종교인들 중에도, 무신론자들 중에도 제한적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은 있을 거다.


    따지자면 물질은 없다. 물질 역시 기묘한 약속 중의 하나다. 불교의 색즉시공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양자 단위까지 파고 들어가면 물질은 홀연히 사라진다. 유물론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


    물질은 의사결정의 궁극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은 의사결정의 대상으로서의 물질인 것이다. 의사결정구조가 물질에 선행한다.


    의사결정의 경계면을 파악해야 한다. 양주는 내 몸의 터럭하나를 뽑아서 천하에 이득이 된다해도 그 터럭을 끝내 뽑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내 몸의 터럭에 해당하는가?


    내 발톱은 자라도 내것이니 깎지 말아야 하는가? 내 똥은 내 몸에 속하니 화장실에도 가지 말고 버텨야 하나? 오줌 참다 죽는다. 이가 빠지면 새 이가 나고 터럭이 빠지면 새 터럭 난다.


    나와 타자의 경계지점은? 대칭이 작동하는 지점이 경계다. 의사결정을 만드는 것은 대칭구조다. 대칭≫비대칭을 통과하지 않는 의사결정은 없다. 의사결정을 유발하는 대칭이 성립하면 타자다.


    내 안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나면 나도 남일 수 있다. 수술로 장기를 잘라내면 그 잘라진 장기는 남이다. 화장실의 배설물은 나에 속하지 않는다. 바로 그곳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나므로 국가는 존재한다. 사랑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나므로 사랑은 존재한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기준선은 의사결정을 유발하는 대칭이 성립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대칭은 어디서 일어나는가? 상부구조에서 일어난다. 그 상부구조의 상부구조를 계속 추적해 들어가면? 의사결정의 궁극적인 근거가 있다. 기승전결로 전개되는 사건의 궁극적인 기 포지션이다.


    당신이 한국의 국가대표라면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의사결정은 당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은 그것을 집행할 뿐이다.


    그러므로 진리와 역사와 문명과 진보와 자연의 영역에서 의사결정은 당신이 하는게 아니고 그 진리와 비진리, 역사와 반역사, 문명과 야만, 진보와 보수, 자연과 인공의 경계면에서 그가 한다.


    그는 누구인가? ‘의사결정의 궁극적인 근거’라고 하면 글자가 열한자나 되어 너무 길기 때문에 간단히 신이라고 한다. 그것은 존재하여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체가 아닌 부분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는 착각이다. 문창극은 이렇게 변명할 수 있다. ‘나는 친일발언을 한 적이 없다. 그 발언은 사실 내가 한 게 아니고 요 입이 한 것이다.’


    문창극은 친일파가 아니고 입이 친일파인가? 입한테 따져야 하나? 이등박문을 죽인 것은 안중근이고 조선이 아닌가? 왜적을 물리친 것은 다 병사들이 했고 이순신은 암것도 한 것이 없나?


    경제발전은 한국이 한게 아니고 박정희가 다 한 것인가? 배탈이 나면 내가 아픈게 아니고 배가 아픈 건가? 나 대신 배를 입원시킬가? 이 문제 분간 못하는 사람과 진지한 대화는 할 수 없다.


    모든 의사결정은 상부구조에서 일어난다. 그 상부구조를 지칭할 용어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모든 결정은 그 상부구조로 올라가서 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판단하든 진리의 판단이다.


    진리의 판단, 역사의 판단, 문명의 판단, 자연의 판단, 진보의 판단을 내가 집행하는 것이다. 내가 시 공간의 작은 한 지점에 서 있어도 우주 전체 단위로, 우주 전체를 대리하여 판단한다.


    의사결정을 하지 않기로 한 사람, 추상적 사고가 안 되는 사람. 정신적 유아기에 머무르는 사람은 개나 소와 같고 물체와 같으므로 빠져주기 바란다. 어른들의 진지한 대화에 낄 자격이 없다.    


[레벨:11]큰바위

2014.06.23 (00:41:37)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스스로 결정권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은 신을 논할 자격이 없다. 


개인의 의사결정이 최소단위이고, 

그게 좀 더 확장되면 공동체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은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 똑 같은 결정이 나온다면 공동체의 결정이 쉬워진다. 

그러나 거기에도 기준은 있다. 

전제는 있다. 


가치Value라는 전제. 

그 가치 안에 존엄, 생명, 진, 선, 미, 거시기 뭐시기가 다 들어 있다. 

[레벨:10]다원이

2014.06.23 (01:57:07)

잘 읽었습니다.... 의사결정 이게 핵심이네요..

[레벨:5]msc

2014.06.23 (09:16:15)

젊은시절은 시키는 일 만 잘해도 승진,,,지금 돌이켜 보면 맘 편했죠,,,,나이먹구,,이제는 매 순간이 결제 ,,,,결제싸인 하나 하나가 목줄을 쥐어짜고 있습니다,  ,,,의사결정은 회장님이 싸인 하는 걸로 정리,,,이사진들은 말만 잘들으면 되는 딸랑이들,,,후,,,,우,,,

[레벨:3]낙오자

2014.06.23 (12:30:25)

 

신에게 질문하지 말고 신의 질문에 응답하라.

신에게 질문하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히틀러 튀어 나온다.

신의 질문에 응답하려면 신의 질문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신을 바라보지 말고 신과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보아야 한다.

질문을 알면 답을 정할 수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4]꼬치가리

2014.06.23 (15:13:24)

문득,

아니 요즘 들어 뜬금없이 더욱,

신의 존재에 대한 추상을 열심히 해댔다.

 

어느 책에서도,  어느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아니 답해 줄 것 같지 않은,

허나 언젠가 들려준 것 같기도 하고,

반드시 들려줄 것으로 믿었던 그에 대한 이야기가 드디어 들렸다.

 

언젠가 형상이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이제는 의사결정의 최상부구조로 되새김이 되는 것 같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한다더니,

구조론연구소 출석 수년에 반풍수 축에는 드는가 싶다. ^.^

 

기분 억수로 좋은 날.

 

김선생님,

고맙고 감사허요.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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