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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714 vote 0 2014.09.04 (15:09:52)

 


    1인칭 주체적 관점


    세상은 너와 나로 이루어져 있다. 너와 나를 떼놓고 보면 틀리게 된다. 밑바닥을 관통하는 에너지의 흐름 때문이다. 통짜덩어리로 보는 시선을 얻어야 한다. 너를 빼고 나만 보면 주관적 1인칭 관점이다. 나를 빼고 너만 보면 객관적 3인칭 관점이다. 너와 나를 합쳐서 하나의 에너지 흐름으로 보면 깨달아야 할 주체적 1인칭 관점이다. 정답은 밑바닥을 관통하는 에너지의 흐름으로 보는 1인칭 주체적 관점이다. 물物 자체의 결을 따라가야 한다.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사건의 흐름에서 기의 앞선 단계에 개입해야 한다. 에너지의 입력측에 서야 한다. 게임의 주도권으로 보아야 한다. 팀플레이로 보고 진보로 보아야 한다. 살아있는 생명성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대상을 자신의 신체 일부로 보아야 한다. 약자 포지션을 버리고 강자 포지션에서 보아야 한다. 대상화 하고 타자화 하려는 심리를 극복해야 한다. 상대주의를 극복하고 절대주의로 갈아타야 한다. 생존경쟁 개념을 극복해야 한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고 기세좋게 치고나가야 한다. 통짜덩어리로 보는 시선을 획득해야 한다.


    동적균형


    먼저 자동차를 고치고 다음 운전을 하는 법이다. 의사결정은 구조론이라는 자동차의 운전과 같다. 세상이라는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먼저 상황을 장악하고 통제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가 설계하지 않은 무대에 갑작스레 초대받았다. 내가 처음 이 별에 왔을 때 세상은 무리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얼떨결에 움직이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버린 것이다. 정靜으로 장악하고 동動으로 운용해야 하는데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운전석에 앉아버렸으니 사태는 고약하게 되었다. 시동을 꺼트리지 않고 살살 운전하면서 수리해야 한다. 이에 동적균형의 고급기술이 필요하다. 어렵지 않다. 토대를 공유하여 밑바닥 에너지를 관통시킨 다음 50 대 50의 균형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항우와 같은 장사를 당장 제거하지 말고 일단 살려두어 먼저 떨거지들을 소탕하는데 쓰고 결정적인 시기에 제압하는 방법을 쓰면 된다. 이창호의 바둑처럼 끝까지 아슬아슬한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요령이다. 밑바닥 판 구조를 약간의 혼란과 무질서가 용인되는 상태, 판이 관리되면서도 운신이 자유로운 동動의 상태로 두는 것이다. 동動 속의 정靜을 끌어내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선제대응


    1인칭 주체적 관점으로 전장을 설계하고, 동적균형으로 포진을 마치면 실전에 들어간다. 이때 전초전으로 포지셔닝 게임이 일어난다. 팽팽한 대치상태에서의 선수잡기 샅바싸움이다. 선수를 잡으면 이기고 후수를 잡으면 진다. 나와 상대방이 토대를 공유할 때 대칭원리가 작동을 시작하며 이때 실제로 결정하는 것은 밑바닥의 에너지다. 에너지의 입구쪽을 장악해야 한다. 적이 선공을 하도록 유도하더라도 그러한 공작은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조건 먼저 계획하고, 먼저 판을 짜고, 먼저 응수타진을 하고, 먼저 들이대는 쪽이 이긴다. 적이 먼저 도발하였다가 패배하는 경우도 실은 아군이 먼저 중립지대의 관객을 우리편으로 만들어 놓았을 때 먹힌다. 어떤 경우든 먼저 움직이는 쪽이 판을 장악하고 게임을 지배한다. 적의 움직임을 보고 작전을 짜겠다는 식이면 늦다. 아군이 미리 짜놓은 판에 적을 끌어들여 제압해야 한다. 선제대응의 원칙은 사회에서 절대주의, 긍정주의, 낙관주의, 비전과 이념의 제시로 나타난다. 그러나 미리 판을 설계해놓은 고수의 선제대응과 적이 함정을 파놓은 줄 모르고 무모하게 덤비는 하수의 선제대응은 다르다. 긍정주의로 가되 개인의 긍정주의가 아닌 팀의 긍정주의여야 한다.


    팀플레이


    구조론은 간단히 너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관절이 하나 더 숨어 있다는 거다. 관절이 하나 더 있으므로 방향이 꺾여서 의도와 반대로 된다. 영천 할매돌은 그냥 돌인데 딱 달라붙어서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팔힘으로 드는게 아니라 무의식 중에 지렛대의 원리를 써서 상체의 체중으로 드는데 그걸 모르기 때문이다. 신체 밸런스라는 보이지 않는 관절이 하나 더 있다. 개인과 팀의 관계에도 항상 보이지 않는 관절 하나가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텃세라든가 신고식이라든가 이지메라든가 하는게 나타난다. 부분과 전체는 항상 반대로 움직이므로 오판을 피할 수 없다. 나와 대상 사이에서 에너지를 관통시켜 토대를 공유하는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 관절을 제거하고 서로간에 긴밀해질 때 팀플레이는 가능하다. 그러나 보통은 남북관계처럼 의도와 반대의 결과가 초래된다. 우리가 북을 돕는 것이 실은 북에 이롭지 않다. 미국이 이라크를 돕는 것이 이라크 정권에 이롭지 않다. 상대측 권력의 체면을 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팀플레이는 본동작 전에 예비동작이 필요하다. 왼쪽을 먼저 조치하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는 것이 팀플레이다. 수순대로 해야 한다.


    집단의지


    철학의 답은 자유의지다.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자유의지는 위험한 표현이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입장에서 억압이 된다. 상대어가 아닌 절대어를 써야 한다. 존엄이 절대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가 서로간에 긴밀한 상태에 있는 것이 존엄이다. 한 명이라도 삑사리를 내면 안 된다. 개인의 존엄을 도출하는 것은 인류의 집단의지다. 그 오케스트라를 조직하는 것이 집단의지다. 인간의 의사결정은 집단 단위로 일어난다. 문제는 집단의 존재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개인은 집단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는 부족민의 퇴행행동이며 모든 의사결정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합리적 의사결정의 부족주의와 같은 중간단위를 배제하고 개인과 인류를 직결시킬 때 가능하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는 중간자를 배제하고 지휘자와 눈을 맞추어야 한다. 모든 인류가 인류의 의사결정 중심과 다이렉트로 연결될 때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가능하다. 개인이 인류의 대표자 마음을 얻어 강한 개인으로 우뚝 설 때 그것은 가능하다. 권력이나 금전이나 명성은 인류의 중심과 연결하는 수단일 뿐이고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인류단위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먼저 인류라는 존재단위가 확고하게 결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집단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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