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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090 vote 0 2014.09.12 (13:31:24)

 

    세상에 ‘가다’는 있어도 ‘오다’는 없다. come는 오는게 아니고 모이는 거다. 이건 초딩도 아는건데 왜 이런 기본에 대해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는지가 참으로 의문이다. 이거 딱 봐도 중요하잖아. 감이 딱 와야 한다.


    중요한 판단은 느낌으로 하는 거다. 그 순간에 뇌가 흥분하느냐가 중요하다. 혈류량이 증가하고 호흡이 가빠져야 한다. 지능은 상당부분 물리현상이다.


    얼마전 침판지와 아기의 지능을 비교하는 실험이 있었다. 침판지는 바로 먹이를 찾아내는데 아기는 실험자의 무의미한 행동을 따라한다. 왜냐하면 침판지는 인간을 적이라고 여기고 게임에 이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 침판지 생각 – 인간과의 대결에서 내가 질까보냐? 얼마든지 감추어봐라. 내가 찾아내고 말테다. 인간들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지.


    ◎ 아기 생각 – 우리편인 선생님이 하는대로 따라해서 칭찬을 받아야지. (과자에는 관심없음.)


    인간과 침판지의 능력 차이는 동료를 신뢰하고 이용하는 정도의 차이다. 사람도 어릴 때 매를 맞으면 환경을 적으로 여기므로 지능이 떨어진다. 어린이를 때리면 안 되는 이유다. 반대로 종놈의 자식은 죽도록 패서 지능을 떨어뜨려 놔야 말을 잘 듣는다. 세상을 적으로 여기는 순간 바보가 되는 거다.


    ◎ 인간 – 1인칭 주체적 관점, 세상과 나는 한 편이다.
    ◎ 침팬지 – 2인칭 역설적 관점, 세상과 나는 적이다.


    좋은 교육은 따로 없고 세상과 한 편으로 여기는 훈련만 하면 된다. 지능이 올라간다. 엄마에게 거짓말 하는 아이가 있다. ‘너 거짓말쟁이냐?’ 하고 혼내면 그 순간부터 엄마를 적으로 여겨서 지능이 떨어진다.


    ‘근데 사실은 내가 다 알고 있거든. 약오르지. 하하하’ 하고 웃어넘겨야 부모와 자식간에 적대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를 우리편에서 나쁜편으로 포지션을 바꾸게 하면 안 된다. 그냥 거짓말에 실패한 거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구조론을 열역학과 연계시켜 보았을 때 세 번째 법칙은 갈 수는 있어도 올 수는 없다는 거다. 왜인가? ‘오다’라는 것은 원래 우주 안에 없다. 학교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게 아니고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거다. 그럼 왜 우리는 오다라는 단어를 쓰는가? 편하니까. 편의로 왜곡해놓고 이를 사실로 착각하는 거다. 구조론은 이런 식의 기본에 철저한 태도이다.


    총에서 빠져나간 총알은 다시 총으로 돌아올 수 없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온다면 아직 총을 발사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총을 쐈다는 말에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가 전제되는 거다.


    어릴 때 나는 햇볕을 쪼이면 까무러치는 병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애가 걸핏하면 혼자 놀다가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죽어버리곤 해서’ 라고 표현한다. 죽은게 아닌데 말이다. 죽었다면 되살아날 수 없는 것이며 만약 되살아나면 그건 죽은게 아니다. 죽었다는 말에는 되살아날 수 없다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면 하나의 수사적 표현이지만 옛날 사람들은 의학지식이 없었으므로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한다고 믿은 거다.


    아기는 자궁 속으로 도로 들어갈 수 없다. 만약 되돌아가면 태어난게 아니다. 시간은 흐르므로 절대 원위치될 수 없다. 되돌아가려면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가야 한다. 가다는 에너지 손실 곧 계의 해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계는 해체되어도 해체된 채 그대로 있다는게 열역학 1법칟이다. 갈 수는 있어도 올 수는 없는 이유는 가는 순간 계가 해체되어 사건은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면 그건 다시 발동 걸어야 한다. 다른 사건이다.


    눈덩이 지구이론이 있다. 적도까지 빙하가 확장되어 태평양 바다가 100미터 두께로 얼어붙은 적이 두 번은 있다고 한다. 지구가 온난화 되어도 J스틱이론처럼 가속화 되지는 않는다.


    빙하의 무한확장은 이산화탄소의 급감에 의한 거다. 20퍼센트나 되는 이산화탄소가 지금은 0.03퍼센트로 거의 바닥이다. 식물들이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그게 지금은 석탄이 되어 있다.


    여기서 중핵은 뭔가 제거하면 마이너스 방향이므로 구조론과 맞아떨어져서 J스틱을 따라간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플러스 방향으로 추가하면 혼란이 일어난다. 즉 뭔가 증가하면 오뚝이처럼 되돌아온다는 말이다.


    야당에 안철수를 추가하자 원위치 되었다. 그러나 후단협이 빠져나가자 급상승 했다. 즉 뭔가 방해자가 제거되면 급변이 일어나고 반대로 뭔가 플러스 되면 변화는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는 말이다.


    인간이 지구를 오염시키는 것은 플러스에 해당하므로 지구온난화가 급격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지금 야당이 이상돈을 영입한다는데 플러스로는 크게 재미를 못 본다. 방해자의 제거가 정답이다.


    이건 뭐 5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다. 일상적으로 경험하잖아. 발목을 잡으면 꽈당 하고 자빠지지만 부담중량을 늘리면 약간 가라앉을 뿐이다. 배에 구멍이 나면 침몰한다. 그러나 짐을 1톤 더 실어도 잘 안자빠진다.


    세월호는 그거 믿고 안자빠지겠지 하고 계속 짐을 싣다가 망한 예다. 결국 세월호의 침몰도 커부구간에 하중이 집중되어 컨테이너를 묶는 끈이 끊어지는 등의 마이너스로 침몰한 것이다. 플러스는 오뚝이라 원위치된다. 같은 효과를 기대할 때 마이너스로 100을 얻는다면 플러스는 10을 얻는다.


    악재는 하한가 직행이고 호재는 별 영향이 없다. 물론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마이너스가 큰 효과를 본다. 플러스는 상부구조의 개입을 부르기 때문이다. 마이너스는 그 상부구조를 치기 때문이다.


    두 다리가 있는데 하나 제거되면 자빠진다. 다리를 하나 추가해서 세 다리로 달리면 더 빠르게 달릴까? 아니다. 더 느리다. 그러나 다시 하나를 추가하면 말처럼 네 다리가 되어 제법 잘 달린다. 거기서 다시 하나를 추가하면? 다섯다리면 더 빠를까? 아니다. 헷갈려서 못 달린다.


    마이너스는 즉효를 본다. 암수술을 해서 종양을 제거하면 효과를 본다. 그러나 십전대보탕을 먹으면 효과는 느리게 나타난다. 플러스는 언제나 생각보다 효과가 낮다. 그럼 왜 플러스는 느릴까? 가다는 있어도 오다는 없기 때문이다.


    가다는 마이너스다. 가면 없다. 오면 플러스다. 가면 가는거지만 오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생긴다. 갑자기 손님이 오면 방도 부족하고 말이다. 자연에 가다는 있어도 오다는 없기 때문에 마이너스는 즉효가 나고 플러스는 골치아픈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다는 가다의 2회 반복이며 그 중간에 판단기준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이건 복잡한 거다.


    이런건 설명 안해줘도 직관적으로 알아야 한다. 즉 가다는 있어도 오다는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사실 가다를 모르는 거다. 초딩지식이 없는 거다. 구조론은 이런 기본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5]id: 땡건땡건

2014.09.12 (15:07:37)

I'm coming = 저 지금 가고 있어요.

 

그리고 보면 '오다' 라는 단어 자체가 1인칭 시점이 아닌 무엇을 기다림..즉 주체적인 관점으로 생각하지

못했을 때 표현되는 단어 일듯 하네요.

 

[레벨:8]상동

2014.09.12 (22:49:10)

대승은 나는 간다 말하고 

소승은 니가 와라 말한다.


대승의 나는 대칭상대가 없고

소승의 나는 대칭상대가 있다

[레벨:3]파워구조

2014.09.21 (14:05:18)

대칭은 구조론의 기본 전제조건이지 않나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4.09.13 (08:36:36)

"인간과 침판지의 능력 차이는 동료를 신뢰하고 이용하는 정도의 차이다. 사람도 어릴 때 매를 맞으면 환경을 적으로 여기므로 지능이 떨어진다"


지능이 떨어지는 이유는  상호작용이 멈추기 때문인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9.13 (08:45:21)

원시인들은 생각을 별로 안 합니다.

언어도 없고.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를 자기편으로 여길 때 가능한 거.

단지 상호작용이 줄어드는게 아니라 생존본능의 발동으로 

다른 쪽으로 자신을 특화하는 거지요. 

뇌에 산소를 많이 보내는건 생존 관점에서 매우 비효율적이죠.

백퍼센트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을 때 한가롭게 뇌를 쓰는 거죠. 

원시인이 뇌를 써봤자 좋을 일 없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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