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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010 vote 0 2015.10.06 (16:25:04)

       

    근대인의 사유


    봉건인과 근대인은 사유의 형태가 다르다. 그래서 깨달음이다. 어떻게 다른가? 근본적인 방향성의 차이가 있다. 마이너스가 정답이고 플러스는 틀렸다. ↘가 정답이고 ↗는 틀렸다. ‘전체≫부분’의 순서가 정답이고 부분≫전체로 가면 틀렸다. 문법 속에 메커니즘이 있다. 언어가 자연스러우면 맞고 어색하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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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진화를 설명하는 과거 교과서의 유명한 그림이다. 지금도 교과서에 실려있는지 모르겠다. 원인에서 현인으로 갈수록 굽은 등이 조금씩 펴진다. 기린의 목이 점차 길어진다는 라마르크설과 같다. 정치판의 개혁이냐 혁명이냐 논쟁과 같다. 라마르크가 점진적 개량을 추구하는 온건개혁파라면 다윈은 혁명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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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잘난 과학자들이 두 그림의 모순을 깨닫지 못한다는데 있다. 처음부터 목이 긴 기린과 목이 짧은 기린이 공존하다가 목이 짧은 기린이 도태되었다면 인간의 조상 역시 처음부터 직립했다고 봐야 한다. 반직립인은 적자선택의 원리에 따라 자연도태되었다고 봐야 한다. 근간에 보고된 화석증거와 일치하고 있다.


    인류는 300만년 전부터 일찌감치 직립했다는 증거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500만년 전까지 연대가 소급될 수도 있다. 나무에서 살 것이냐 들판에서 살 것이냐를 선택하는 혁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경이다. 나무환경과 들판환경 사이는 없다. 이것 아니면 저거다. 과학자라면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등이 굽은 반직립 인간 그림은 과학적 사유가 훈련되지 않은 대중의 편견에 맞게 애매하게 얼버무린 것이며 이는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우선 진화evolution라는 단어 자체가 라마르크설에 가깝다. 어원으로 보면 evolution는 나선계단처럼 돌면서 올라간다는 뜻이다. revolver 권총의 회전탄창을 떠올릴 수 있다.


    진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잘못된 영향을 미쳤다. 그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대중의 편견과 싸워야 한다. 그 고정관념의 기저에는 근본적인 사유의 형태가 잠복해 있다. 봉건인과 근대인의 사고방식 차이다. 봉건인은 플러스 관점을 취한다. 구조론은 마이너스 관점을 취한다. 다윈의 자연도태는 마이너스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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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론은 라마르크보다 다윈과 친하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학이 강물 속에서 한 쪽 다리로 서 있는 이유는? 초등학교때 방학공부책에서 본 그림으로 기억한다. 학이 체온을 절약하기 위하여 한쪽 다리로 선다고 씌어져 있었다. 과연 그럴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닭이나 오리나 비둘기도 심심하면 한쪽다리로 선다.


    이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다. 한국어를 배운 사람이라면 어색하다고 느껴야 한다. 위하여가 들어가면 어색하다. 박정희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고 떠벌이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듣는 내가 다 무안하다. 5만원 현찰을 주웠는데 뒤집어보니 광고전단이었을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 경험 다들 했을거다.


    위하고자 한다면 다른 방법도 많을텐데 왜 하필 그 방법이냐 말이다. 두 다리로 서면 뇌가 체중분배하기에 불편하므로 한쪽다리로 서는 것이다. 불량배가 짝다리 짚고 서 있는 것과 같다. 뇌 입장에서 한 다리가 더 편하다. 필자가 과학을 의심하게 된 계기다. 과학자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물론 초등학생의 판단이다.


    체온을 절약하려는 목적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찾는 플러스다. 의하여냐 위하여냐다. 위하여는 일단 가짜다. 의하여가 맞다. 의하여는 마이너스다. 세상은 마이너스에 의해 통제된다. 라마르크설이 맞는지 다윈설이 맞는지는 1초만에 판단된다. 라마르크설은 위하여의 플러스에 해당하므로 틀렸다. 언어감각으로 판단한다.


    과학은 과학다워야 한다. 근대인의 사유가 적용되어야 한다. 근대인의 언어를 얻으면 직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일체의 의도와 목적이 앞서는 ‘위하여’는 가짜다. 혁명이 왜 일어났을까? 부르주아들에게 혁명할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간답게 사는 좋은 세상을 위하여’라고 하면 보나마나 가짜다. 웃기는 짜장이 아닌가?


    동기와 목적을 앞세우는 정신주의는 봉건사상이다. 메커니즘을 앞세워야 근대사상이다. 에너지를 갑으로 놓아야 한다. 총이 있으면 그냥 쏘는 것이다. 침략을 하는 이유는 야망 때문이 아니라 단지 총 때문이다. 위하여는 위로 올라가는 ↗ 방향이다. 의하여는 아래로 내려오는 ↘방향이다. 방향만 보고 판단해야 한다.


    라마르크설은 ↗방향이고 다윈설은 ↘방향이다. 위하여가 틀린 이유는 중간단계가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절벽에서 떠밀어버리면 떨어진다. 설명이 간단하다. 떨어진 이유는 떠밀었기 때문이다. ↘는 추가로 설명할 것이 없다. 답 나왔다. 그러나 절벽 위로 올라갔다면 이유는? 누가 사다리를 가져다 줬기 때문이다.


    근데 누가 사다리를 가져다 줬지? 왜 그 사다리를 받아들였지? 계속 추가질문이 따라온다. 이건 제대로 설명된게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위하여는 추가설명이 있어야 한다. 아직 답이 나온게 아니다. 피곤하다. 딱 한 방에 정리가 되는 방향으로 진도를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언어감각만으로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사지선다형 시험에서 오답을 제거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이것이 마이너스 관점이다. 플러스 관점은 주관식 문제의 답안과 같아서 설명이 길다. 맞는 답인지 확신할 수 없다. 똑부러지게 결론이 나와주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절망적이다. 개운하지가 않다. 화장실에서 휴지를 쓰지 않은 느낌이다.


    사실은 다윈도 틀렸다. 기린은 목만 길어진 것이 아니다. 다리도 함께 길어졌다. 밸런스의 방향성 때문이다. 세상은 오직 마이너스로만 작동한다. 오른팔이 길다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른팔을 잘라야 할까? 아니면 왼팔의 길이를 늘려야 할까? 당겨서 길이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왼팔의 성장을 막는 차단장치를 해제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왼팔이 길어진다. 이를 맞추려면 다시 오른팔의 성장을 막는 차단기능을 해제한다. 이렇게 뭔가를 제거하는 마이너스를 반복하다보면 두 팔이 다 길어진다. 네덜란드인의 키가 점점 커지는게 다 이유가 있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유전자 속에 숨어 있는 밸런스의 원리가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말의 몸집이 커진 이유와 같고 코끼리의 귀가 커진 이유와 같다. 코끼리의 코는 생존과 관련이 있지만 코끼리의 귀는 생존과 관련이 없다. 상아도 마찬가지다. 상아가 없는 코끼리도 잘만 살아간다. 이 모든 문제가 밸런스의 원리 한 방으로 싹 정리가 된다. 부분이냐 전체냐다. 전체가 먼저다. 기린의 목은 부분이다.


    직립보행하는 원인의 등은 부분이다. 뭐든 전체에서 부분으로 간다. 이는 언어감각이다. 전체는 주어고 부분은 술어다. 주어가 앞에 와야 한다. 전체는 동動이고 부분은 정靜이다. 동이 앞에 와야 한다. 밸런스는 전체이고 동이다. 기린의 긴 목이나 원인의 굽은 등은 부분이고 정이다. 전체가 결정한다. 곧 ‘의하여’다.


    부분이 결정하면 ‘위하여’다.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부분에서 전체로 가는 역주행 논리다. 자연법칙과 맞지 않다. 가짜다. 반면 팀플레이를 하면서 동료와의 호흡에 의하여 보조를 맞춘다고 하면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는 정주행 논리다. 정답이다. 이런 식으로 언어 속의 방향감각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문법만 알면 이는 자연스레 체득된다. 언어가 어색하면 틀렸고 언어가 자연스러우면 맞다. 문제는 어색한 대목에서 어색함을 느낄 수 있느냐다. 민감한 사람이 느낀다. 다윈설이 옳다면서 라마르크설에 맞게 그려놓은 인류의 진화그림을 보고 1초만에 어색함을 느껴야 한다. 뭔가 호흡이 맞지 않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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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감각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구분합니다. 학이 물속에서 한쪽다리를 드는 것은 체온을 아낄 목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은 특수성입니다. 반드시 그러한 것은 보편성입니다. 이는 누가 말안해줘도 감각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보편성이 정답입니다. 자본가들이 착취하므로 나쁘다는 말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50퍼센트나 되는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잡스는 나쁘고 10퍼센트도 간당간당한 건희는 착한가요? 보편성이 성립하지 않는 말에는 작위적인 의도가 들어가 있고 그 의도를 간파할 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어린이 위인전는 어린이를 계몽하려는 의도를 들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죠. 얼굴이 화끈거리면 오답입니다. 쿨하게 가면 정답입니다. 마이너스는 쿨합니다. 


    이순신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구국의 일념'으로 싸운게 아닙니다. 다만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싸운 것입니다. ‘구국의 일념’ <- 이런 왜놈들의 군국주의 단어는 독자의 가슴을 건드리려는 교묘한 장치입니다. 의도가 숨겨져 있지요. 덫처럼 숨겨진 이런 교활한 장치가 거슬리지 않는가요? 거슬리면 오답입니다. 전혀 거슬리지 않고 너무 좋다고요? <- 초딩입니다. '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문장은 딱 간단하게 이렇게 써야 한다는게 무려 2천년 전에 나온 가르침입니다. 감동 주려고 조미료 팍팍 뿌린 문장, 독자 꼬시려고 설탕 친 슈거보이 문장, 덧칠한 그림과 같이 뻑뻑한 문장을 선호한다면 2천년 전으로 퇴행한 겁니다.


[레벨:11]비랑가

2015.10.06 (20:18:10)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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