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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854 vote 0 2014.09.19 (14:12:05)

 

    글은 이백처럼 써라


    옛날 사람들은 시를 쉽게 썼다. 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한시라고 하면 이백과 두보다. 정답은 두보다. 두보는 간단히 대칭, 라임, 토대의 공유라는 3박자로 되어 있다. 이건 정해진 공식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


    江碧 강벽 두보
    江碧鳥逾白 강 맑으니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燃 산 푸르니 꽃 불타는 듯
    今春看又過 이제 봄은 또 가는데
    何日是歸年 언제 돌아갈 날 오려나.


    정과 동, 강과 산, 새와 꽃. 흰색과 붉은 색을 정밀하게 대칭시켜 가로세로 비단을 짜듯이 조직하였다. 이 분은 아마 건축과 출신인 게다. 이상의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다.


    먼저 자연을 돌아보고 마지막에 인간을 생각한다. 흘러가는 봄은 자연이고 돌아갈 마음은 인간이다. 자연과 인간의 대칭으로 완성한다. 한시작법은 복잡해서 한 글자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 정靜 - 강은 맑다. 산은 푸르다.
    ◎ 동動 - 새는 희다. 꽃은 불탄다.


    동양사상의 주요 테마인 정과 동을 기본으로 놓고 마음껏 컬러를 칠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토대의 공유를 드러낸다. ‘이제 봄은 또 지나가는데’. 무엇인가? 지나가면서 확 밀어버리는 거다.


    강과 산, 흰 새와 붉은 꽃의 마주보는 대칭을 봄이라는 화살로 관통시킨다. 솜씨좋은 삯바느질 할머니가 구멍난 옷을 꿰매듯이 실 하나로 천조각의 대칭을 관통시켜 버선이든 양말이든 꿰매버린다.


    통짜덩어리 성공이다. 그리고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온다. 정과 동의 대칭에서 봄과 인간이라는 대칭으로 전환한다. 정확히 대칭≫라임≫토대의 공유라는 3박자다. 라임은 반복이다. 연결하여 꼬맨다.


    공간의 대칭은 벌리고 시간의 라임은 꼬매고 마지막 인간은 막는다. 여기에 대칭≫비대칭≫동적균형으로 가는 구조의 원리가 숨어 있다. 자연의 정과 동을 취함으로써 인간은 한 단계 성숙하는 것이다.


    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느낌이 비슷하다. 역시 산이라는 정과 새라는 동을 대칭시킨다. 그리고 라임을 두어 반복한다. 그리고 꽃이 졌다는 마지막 연은 자연에서 인간으로 되돌리는 장치다. 왜정때 인간 세계는 늘 꽃이 지고 있었다.


    벌리고 합치고 말아버린다. 이는 김밥 말기와 비슷하다. 먼저 김을 펼치고 밥을 올려서 대칭시킨다. 다음 단무지와 시금치와 계란말이의 반복으로 적당히 짭쪼름한 라임을 준다. 그리고 왕창 말아버리기다.


    시는 완성된다. 그런데 이런 교과서적인 시는 사실이지 따분한 거다. 좋은 시이기는 하나 옛날 시다. 인상주의는 이백에서부터 시작된다. 두보는 가늘게 촘촘하게 짠 베다. 이백은 바리캉으로 확 밀어버린다.


    시를 두보처럼 쫌생이로 쓰면 안 된다. 물론 처음 시를 공부하는 중딩이라면 두보를 먼저 배워야 한다. 두보는 정형시다. 이백이 자유시에 가깝다. 정형시도 모르면서 자유시는 곤란하다. 형을 먼저 익혀야 한다.


    山中問答 산중문답 이백
    問余何事栖碧山 묻노니 그대 왜 산에 사는가?
    笑而不答心自閑 웃으며 답하지 않으니 마음은 편안해
    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 꽃 물따라 아득히 떠내려가는데
    別有天地非人間 별천지 있어 인간세상은 아니라네.


    물음과 대답의 대칭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대칭≫라임≫토대의 공유라는 3박자를 일치시키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 별유천지비인간은 사실 그 대답이다. 웃으며 대답을 안한대놓고 대답하고 있다.


    이는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백과 두보가 다른 점은 두보가 지식인의 입장에서 정답을 찍어주는데 반해 이백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거다. 독자를 의식하고 게임을 벌인다는 점에서 현대시에 가깝다.


    이백이라 하면 혼자 유유자적 하며 술이나 마시며 인생을 즐기다가 간 허풍선이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어떻게든 한줄이라도 독자의 개드립을 끌어낼 요량으로 온갖 패러디를 던져 관심을 유발시킨다.


    이백은 자기 만화에 달린 독자의 리플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그 내용을 다음 화에 반영하고야 마는 조석이다. 이말년도 비슷하다. 현대인의 글쓰기는 이백과 가깝다. 이야기를 버리고 캐릭터를 취하는 거다.


    月下獨酌 월하독작 이백
    花間一壺酒 꽃밭에서 술 한 동이
    獨酌無相親 친구 없이 혼자 마셔.
    擧杯邀明月 잔을 들어 명월 맞고
    對影成三人 그림자까지 셋이 되네
    月旣不解飮 달은 술을 못 마시니
    影徒隨我身 그림자만 나 따르네
    暫伴月將影 잠시 달과 그림자 벗하니
    行樂須及春 이 봄에 마음껏 즐기리
    我歌月徘徊 내 노래하면 달이 추임새
    我舞影零亂 내 춤추면 그림자도 춤 추네
    醒時同交歡 깨어서는 함께 기뻐하고
    醉后各分散 취한 뒤에 각자 흩어지네.
    永結無情游 딴뜻없는 사귐을 영원히
    相期邈雲漢 먼 은하에서 만나기로 하네.


    이 시는 혼자 읊조리는 듯 하지만 필시 달이나 그림자나 누구라도 추임새를 넣어야 한다. 이는 독자에게 말을 거는 시다. 그래서 끝이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속편이 있다. 이것도 긴데 2편 3편 4편까지 계속 간다.


    답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본인이 화답해 버린다. 그게 시가 된다. 두보가 교과서적인 시인데 반해 이백은 깨달음의 시다. 자기 내면에 들어찬 에너지를 그대로 발산한다. 그러려면 이백처럼 기개가 있어야 한다.


    이 시는 술기운에 그냥 휘리릭 갈겨버린 듯 하지만 깨달음은 마찬가지로 에너지로 밀어붙인다. 술기운이든 깨달음이든 에너지든 내 안에 흘러넘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고유한 자기 스타일이 있으면 그게 된다.


    江村 강촌 두보
    淸江一曲抱村流 맑은 강 구비 마을 안고 흐르고
    長夏江村事事幽 긴 여름 강촌 일마다 한가롭네.
    自去自來堂上燕 가거니 오거니 들보 위에 제비.
    相親相近水中鷗 서로 친해 다가가는 물에 갈매기.
    老妻畵紙爲碁局 노처는 종이에 그어 바둑판 만들고
    稚子敲針作釣鉤 어린이 침 두드려 낚시바늘 만드네.
    多病所須唯藥物 병이나 많아서 약이나 바랄 뿐
    徵軀此外更何求 하찮은 이 몸에 무엇 더 구하리


    청강과 장하의 대칭, 자거와 자래의 대칭, 상친과 상근의 대칭으로 계속 들보를 벌려 건물을 짓는다. 강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집으로, 결국 사람으로 좁혀진다. 대칭으로 크게 벌린 건물을 한 칸씩 채워간다.


    두보는 자체적으로 완결되어 있다. 바탕은 음양의 조화다. 그러나 이백은 계속 간다. 멈출 수가 없다. 즉 두보는 닫혀 있고 이백은 열려 있다. 두보는 완벽해서 손댈 수 없고, 이백은 누가 댓구라도 쳐주어야 한다.


    두보는 짝수고 이백은 홀수다. 두보는 에너지를 얻고 이백은 에너지를 쓴다. 두보는 교과서고 이백은 실전이다. 두보로 배우고 이백으로 행할 일이다.


    將進酒 장진주 이백
    君不見 그대 보지 않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하늘에서 내린 황하의 물이
    奔流到海不復廻 바다에 들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君不見 그대 보지 않는가?
    高堂明鏡悲白髮 고당의 거울에 비친 서글픈 백발
    朝如靑絲暮成雪 아침엔 청사가 저녁엔 백설이네
    人生得意須盡歡 인생이 순조로울 때 기쁨을 누리고
    莫使金樽空對月 달빛아래 금술단지 헛되이 마라.
    天生我材必有用 하늘은 쓸 재주 있어 우릴 낳으니
    天今散盡還復來 돈이야 써 버려도 다시 오는 것.
    熟羔宰牛且爲樂 양 삶고 소 잡아 한바탕 즐기세
    會須一飮三百杯 마신다면 모름지기 삼백 잔이지. (하략)


    현대인의 글쓰기는 하드보일드라야 한다. 하드보일드는 사건이 없다. 캐릭터가 전부다. 인물소개하고 바로 끝낸다. 만화도 현대의 만화는 캐릭터가 전부고 뚜렷한 사건이 없다. 그리고 무한복제한다.


    진격의 거인이라면 세 겹의 성이 있는데 거인이 쳐들어온다. 끝. 이야기는 있어도 사실 구질구질한 거다. 억지라는게 다 보인다. 이야기보다는 만화 안에서만 통용되는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지면을 할애한다.


    앞에서 말한 발자크의 인간희극이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아멜리 노통브만 해도 사건을 일으켜 이야기를 전개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임의로 설정한 독특한 세계관을 계속 전개시켜 나가는데 주력한다.


    고르고 13이라면 의뢰받은 사건의 해결이 중요한게 아니라, 듀크 토고라면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게 과연 듀크 토고 다운 행동인지가 중요하다. 일관된 논리로 납득시켜야 한다.


    이백은 황궁에서 내시에게 ‘고자 주제에 까불지 마.’ 하고 놀려먹다가 짤린 사람이다. 황제 옆에서 궁녀와 놀던 이백이라면 300잔 정도는 마셔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거다. 이백은 자기 캐릭터에 심취한 것이다.


    무엇인가? 두보는 건축가다. 거미줄처럼 정밀하게 조직한다. 그리하여 에너지를 얻는다. 이백은 산 꼭대기에서 바위를 굴린다. 우당탕퉁탕 굴러간다. 개골창에 쳐박히기도 하고 소나무를 부러뜨리기도 한다.


    대칭을 조직하여 에너지를 얻고 비대칭으로 파격하여 그 에너지를 풀어낸다. 그런데 현대인이라면 이백이어야 한다. 이백은 원래부터 에너지가 있다. 그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두보의 깨달음에서 나온다.


    그러나 작가는 이백이어야 한다. 이백은 마음껏 취한다. 황제와 친구 먹고 궁녀와 세세세 하고 내시를 혼내준다. 그런 호연지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이백에게는 300잔의 술이 있었다. 그대에게는?


    애초에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교한 캐릭터 작업에 의해 획득된다. 아멜리 노통브라면 소설의 99퍼센트를 어떤 인물의 캐릭터 구축에 투자한다. 나머지 1 퍼센트로 그는 죽었다고 선언하고 끝낸다.


    ‘黃河之水天上來 하늘에서 내린 황하의 물’ 애초에 이 정도의 스케일로 가주어야 한다. 지하철 시에서 볼 수 있는 쫌생이 같은 마음으로는 시를 쓸 수 없다. 내시 김기춘을 때려주고 와야 시를 쓸 자격이 생긴다.


    두보와 이백은 한 몸이다. 두보는 형을 이루고 이백은 깨뜨린다. 그런데 형이 있어야 형을 깨뜨릴 수 있다. 현대문학에서 형은 캐릭터다. 캐릭터는 인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진격의 거인처럼 세계 자체가 캐릭터다.


    캐릭터를 얻었으면 시를 쓸 자격을 얻은 것이다. 어디든 변방에서 자기만의 성을 쌓아올려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風骨

2014.09.19 (17:04:3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백과 두보는 같은 시대 사람으로 이백이 10세 더 많습니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당나라 현종 때 였습니다. 이 때의 중국은 강성한 국력을 바탕으로 이민족과 활발히 교류했으며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동아병부 어쩌고 하는 찌질함이나 공산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에서만 비판을 하는 소심함 따윈 전혀없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당당함과 개방성이 곧 이백과 두보를 낳은 토대가 되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風骨

2014.09.19 (17:21:17)

첨언을 하자면 이백은 당나라 현종 통치시기

국력이 극강하던 시절의 분위기를

두보는 안사의 난 시기 이후 기존 질서의 파괴에

대한 슬픔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백이 더 연배가 많은데도

더 자유분방한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무득

2014.09.19 (19:23:17)

詩風도 당시 시대 구조(상황)와 연관이 있는가 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SimplyRed

2014.09.19 (20:14:48)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배트맨 비긴즈'와 '인셉션'뿐이 안봤지만, 아마 미래로 건너와 동렬님의 글을 본 건 아닐까 합니다.

예전 '설국열차'에 관한 글을 쓰실 때 영화의 분류에 대해 말하신 것처럼 '배트맨 비긴즈'는 아무래도 조커가 돋보일 수 밖에 없는 한계는 있었지만, 감독의 대담한 질문, 게임 제의는 마치 눈 앞에서 질문하는 듯 피부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진짜의 공식은 인간에게 남아 있네요.
[레벨:3]파워구조

2014.09.21 (09:17:25)

"채운 잔, 그 다음엔 기울이기.
채워야 기울일 수 있고, 기울여야 술꾼이 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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