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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773 vote 1 2016.04.11 (22:51:04)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구조론을 모르는 사람에게 구조론을 소개할 때는 이 이야기부터 해줘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정관념 깨줘야 한다. 그래야 대화하기 쉽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대칭을 만들어줘야만 뇌를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식과 내용이면 대칭시키기 쉽다.


    내용이 형식보다 중요하다. 사실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형식을 위조하기 때문이다. 형식은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에는 속임수가 없다. 구조론이 탐구하는 대상은 인간사회의 비리가 아니라 자연의 진리다. 자연은 형식이 우선한다. 인간사회도 외교관계처럼 형식이 중요한 분야는 많다.


    왜 외교는 형식이 중요할까?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말이 안 통하는 세계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을 때 말로 타일러서 잡아먹는게 아니다. 힘으로 잡아먹는다. 무엇인가? 인간의 언어가 속인다. 인간은 언어로 소통하는데 자연은 무엇으로 소통하는가? 에너지다.


    인간의 언어는 내용이 중요하지만, 자연의 에너지는 형식이 중요하다. 인간 역시 중요한 일은 형식이 강조된다. 무언가 처음 시작하는 것은 모두 형식이 우선이다. 만남이라면 첫인상이 중요하다. 예술이라면 양식이 중요하다. 새롭게 창의하는 것은 형식이 중요하다. 잡스의 장점도 형식이다.


    스마트폰은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지만 잡스는 손가락으로 다루는 특별한 형식을 만들었다. PC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잡스는 가전제품처럼 바로 쓸 수 있는 형식의 애플컴퓨터를 만들었다. 내용이 중요해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복제품이 범람하면서 내용이 강조된다.


    작품은 스타일이 중요하다. 곧 형식이다. 춘향전이 처음 나올 때는 형식이 중요하다. 그러나 비슷한 작품이 쏟아지면 내용이 중요해진다. 서태지가 처음 등장할 때도 형식으로 재미를 본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교실이데아 어쩌구 하면서 무게잡고 내용을 강조한다. 즉 내용이 강조되면 가짜다.


    삼성이 갤럭시폰은 뭐가 좋네 어쩌구 하며 내용을 강조하면 모방작이다. 내용이 강조된다는 것은 우리가 거짓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증거다. 왜 형식이 중요한가? 에너지는 뼈를 타고 온다. 형식은 에너지의 전달루트를 반영한다. 왜 형식이 중요한가? 형식은 어떤 둘의 관계를 새로 정한다.


    내용은 이미 정해진 관계에 살을 채운다. 부부든, 연인이든, 남자친구든, 아는 오빠든 그것은 형식이다. 같은 부부 중에는 내용이 중요하다. 같은 친구 중에는 내용이 중요하다. 내용이 중요한 단계로 왔다면 이미 망한 거다. 인간사회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미 망해 있다.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은 아니다. 진리의 세계로 넘어오라는 말이다. 내용이 중요한 세계는 2등이하 중위권들끼리 박터지게 싸우는 세계다. 1등은 형식이 중요하다. 명품은 형식이 중요하다. 맛집은 형식이다. 맛없는 집은 내용이 중요하다. 미슐랭 별 셋은 일단 가게 인테리어부터 본다.


    “만화나 드라마는 암행어사처럼 갑자기 미슐랭 가이드의 조사원이 출두해서 가난한 주인공에게 별 3개를 주거나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1] 미슐랭 가이드는 단순히 맛만 평가하는 것이 아닌 가게의 인테리어나 분위기 주변경관, 서비스 등도 같이 보기에 단순히 요리가 맛있는 것으로는 잘해봐야 별 1개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나무위키]”


    많은 경우 내용이 중요하다. 그렇다. 내용이 중요한 우리는 이미 망해있는 것이다. 내용이 중요하면 미슐랭 가이드 별 한 개다. 즉 별 볼 일 없는 자들에게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해줘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이 맞으니까. 그러나 진리를 논하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 형식이 중요하다.


    멋 부리고 폼 잡으라는 말은 아니다. 알고 떠들라는 말이다. 형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진짜는 멋 부리지 않고 폼 잡지 않는다. 보이지 않게 스며드는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내용으로 엉기는 부류는 3등이고, 인위적으로 멋 부리고 폼 잡으면 2등이다. 1등은 그 너머에 별도로 있는 거다.


    새로운 형식을 창안하면 별 셋이다. 있는 형식을 슬쩍 비틀면 별 둘이다. 형식은 가져다 쓰되 내용을 잘 채우면 별 하나다. 그림을 그려도 그러하고, 시를 써도 그러하고, 영화를 찍어도 그러하다. 영화가 재미있다면 별 하나다. 영화를 재미로 본다는 사람은 어른들의 대화에 낄 수 없다.


   aDSC01523.JPG


    미슐랭 가이드 별 셋은 0.3퍼센트라고 합니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대부분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0.3퍼센트에 속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진리는 0.00001퍼센트의 세계입니다. 밤하늘의 별이 아무리 많아도 방위를 알 수 있는 별은 북반구에 북극성 하나밖에 없고, 남반구에 남십자성 밖에 없습니다. 껍데기는 내용이 중요하고 진짜는 형식이 중요합니다. 제가 숭산이나 도올이나 혜민이나 법륜이나 강신주를 까는 것은 그 분들이 뭐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미슐랭 가이드 별 셋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북극성 하나 외에는 모두 까이는 것이 진리의 세계입니다. 소인배가 얼쩡거리면 일단 오백방 맞고 시작합니다. 


[레벨:10]다원이

2016.04.11 (23:25:56)

요즘 양시론과 양비론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잉간들에게 이걸 뛰어넘을 수 있는 뭔가 딱 맞는 사례가 없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글에서 답을 찾았네요. 공감 백 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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