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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404 vote 0 2011.01.28 (17:52:01)

 

 

 

현대의 조직전

기동전, 돌파전, 조직전, 등 모든 전투형태가 고대부터 다 존재하고 있었지만 현대의 조직전이야말로 사회사적인 의미가 있는 진정한 조직전이라 하겠다. 고대나 중세의 조직전은 구조적인 취약점이 있어서 돌파전에 의해 번번히 무너지곤 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조직전은 현대전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구스타프 아돌프 2세에 의해 창안되었다.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 2세가 그야말로 약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군대의 가능성을 제시했던 것이다.


현대전의 탄생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구스타프 아돌프가 인쇄술의 혁신에 힘입어 처음으로 참모제를 도입하고 서류사무를 늘리는 등 현대의 행정병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조직전은 국가의 자원을 있는대로 최대한 동원하는 것으로 이는 봉건시대의 주먹구구식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조직전은 여러 사람이 고도의 역할분담을 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전리품이나 챙기러 온 어중이 떠중이는 도움이 안 된다. 우리 국군이 강군인 것은 대학 이상의 고학력자 비율이 세계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대전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맹함은 필요없고 그저 침착하게 시킨대로 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상당한 교육을 받아야 가능하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보급으로 성경이 독일어로 번역되어 처음 신교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17세기 전반에 독일에서 30년 전쟁이 일어났으며, 구스타프 아돌프가 30년 전쟁을 종결시킨 인물이라는 점을 봐도 이는 역사의 필연이었던 것이다. 조직전의 탄생과 더불어 바야흐로 현대는 촉발된 것이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30년 전쟁에서 인구 150만에 불과한 소국 스웨덴에서 2만~4만 안밖의 적은 군대로 신성로마제국의 압도적인 병력을 물리치고 전쟁을 신교의 승리로 이끌었다. 한 때는 폴란드, 덴마크, 러시아 3개국과 동시에 전쟁을 벌여 모두 승리하기도 했다. 이는 제갈량과 같은 지략만으로는 안 된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교전 중에 전사했지만 그의 전사소식이 알려지자 스웨덴군은 크게 분기하여 적을 물리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스웨덴군의 전술을 다른 나라도 따라 하는 바람에 몇 차례의 패전도 있었지만 끝내 스웨덴이 프랑스와 함께 베스트팔렌 조약을 주도하며 북방의 강국 노릇을 한 것을 보면, 현대전은 지도자의 지휘능력에 구애받지 않는 고도의 시스템화 된 전쟁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이 부시와 같은 바보가 통치해도 나라가 돌아가듯이 구스타프 아돌프는 누가 지휘해도 상관없이 잘 돌아가는 이상적인 군대를 만들어놓고 떠난 것이다.


조직전은 현대전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현대’라고 하면 누구나 포드 시스템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조직전은 말하자면 전쟁에 있어서의 포드시스템이라 하겠다.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며 제품이 만들어지듯이 구스타프 아돌프는 포병과 기병, 보병, 보급병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승리를 대량으로 찍어냈던 것이다.


현대의 전쟁은 먼저 정찰기가 출격하여 사전 공중정찰을 하고, 다음 전투기의 호위아래 폭격기가 출격하여 주요 거점에 대규모 공중폭격을 실시한 다음, 포병이 원거리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여 적의 진지를 완전히 초토화 시키고, 그 다음 공병이 돕는 가운데 보병이 전차의 호위를 받으며 차근차근 전진하여 잔적을 소탕한다. 각 파트가 역할을 분담한 가운데 라인이 한번 쓱 지나가면 전쟁이 완성된다. 반대로 구식전쟁은 역할분담 없이 되는대로 얼렁뚱땅 했던 것이다.


무작정 돌격하여 용맹을 과시하며 ‘이기나 지나 한번 결판을 내보자’는 식이 아니라, 마치 노련한 수리공이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듯이 부품을 다 뜯어놓고 하나하나 순서대로 맞춰나가는 전쟁이다. 일단 싸워서 승부를 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가 집을 짓듯이 처음부터 설계를 제대로 해놓고 차근차근 구조를 맞춰가는 것이다. 이제 관우, 장비와 같은 용맹한 장수는 필요없게 되었다.


이차대전의 일본군처럼 ‘텐노히까 반자이’를 외치며 무작정 총검돌격을 하는 바보같은 전쟁은 구스타프 아돌프에 의해 비로소 종식된 것이다. 조직전에서는 용맹성도 필요없고, 충천한 사기도 필요없고, 뛰어난 지휘관도 필요없고, 단지 우수한 기술이 필요할 뿐이다. 진짜 전쟁기술자가 나타나서 프로의 솜씨로 아마추어를 우습게 관광시켜버린 것이다. 이건 뭐 게임이 안 되는 거다. 그냥 학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전인 구식전쟁은 한때 용맹을 떨쳤던 폴란드 창기병처럼 20세기까지 살아남아 일본군의 묻지마 만세돌격으로 이어졌으니 2차대전때의 일본군이 얼마나 멍청한지 알 수 있다. 폴란드 창기병 울란은 2차대전때도 현대화된 독일군을 상대로 여러차례 돌격전을 펼쳤다고 하는데 독일 탱크를 뾰족한 창날로 마구 찔렀다는 헛소문이 이탈리아의 한 신문에 보도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구스타프 아돌프는 금속활자의 보급과 신교운동으로 탄생한 깨어있는 시민을 자원으로 삼아 철저한 시스템 개혁을 했다. 첫째는 징병제를 도입한 것이다. 징병제 도입은 시민이 국가를 책임진다는 근대적 인식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15세기 말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일어난 근대 계몽주의 사상의 철학적 토대 위에 비로소 현대전의 지평이 열린 것이다.


그 이전의 구식전쟁이라면 대개 돈을 주고 스위스 용병을 사서 하는 전쟁이었는데 이들은 커다란 도끼를 들고 중무장한 채 쩔그럭거리는 쇳소리를 내며 겉으로만 요란하게 싸우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그들은 적군과 아군이 모두 스위스의 이웃 마을에서 왔으므로 다 아는 처지에 차마 상대의 목숨을 뺏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어떤 독일 농부가 밭둑에 앉아 도시락 까먹으며 지켜보았는데 어느 전투에서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싸웠지만 단 한명의 부상자만 있었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 부상자도 혼자 논두렁에서 까불다가 제풀에 자빠져서 생긴 부상이었다고. 그들은 화려한 갑주로 무장하고 큰 도끼를 휘두르며 대략 싸우는 시늉만 하고 봉건영주들에게 돈을 받아간 것이다.


봉건영주들도 농노들에게 세금을 받으려면 뭔가 납득이 되는 이유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용병을 사서 해마다 한 번씩 엉터리 전쟁을 해야 했던 것이다. 나쁜 이웃나라 영주가 쳐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방어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을 받아간다는 식이다. 서구에서 중세의 구식전쟁은 이처럼 무의미하게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이 가을걷이만 끝나면 관습적으로 한판 붙는다. 어쨌든 세금 내는 농노들에게 강한 인상을 줘야 했으니, 농노들이 겁을 집어먹도록 번쩍거리는 갑주를 걸치고 괴성을 지르며 거대한 쇠도끼를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구식전쟁을 종결시킨 사람이 구스타프 아돌프였다.


돈 주고 사서 쓰는 용병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총을 쥐고 전쟁에 나선다면 그만한 권리가 생긴다. 전쟁에 나가 사격술을 배운 시민이 손에서 총을 놓지 않으려고 하면 혁명이 일어나고 국가체제가 바뀐다. 프랑스 혁명은 사실상 구스타프 아돌프의 징병제에 의해 그 도화선에 불이 붙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징병제는 사실상 귀족제를 해체하고 시민의 신분을 상승시킨 결과로 되었다. 여기에 중대한 사회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두번째 개혁은 갑주를 벗고 무장을 가볍게 한 것이다. 구시대의 기사는 70키로그램의 무거운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를 들었으나 스웨덴군은 흉갑만 걸쳤을 뿐 현대의 군인들처럼 경무장을 했다. 그는 또 기동력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가볍게 했는데 먼저 기병총의 길이를 줄이고 사격속도를 빠르게 했다. 구식 보병총은 나무로 만든 사람 키만한 총가 위에 걸쳐놓고 쏘게 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카메라 삼각대 같은 것이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총가를 없애버렸다. 화승총도 라이터와 같은 톱니바퀴식로 바꾸어서 그때부터 병사들은 일일이 화승에다 대고 부싯돌을 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대포도 무거운 중포를 가벼운 경포로 바꾸었다. 커다란 곡사포로 돌대포알을 쏘아서 성곽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대포로 포도탄과 산탄을 보병의 머리 위에 직사로 마구 쏘아댔다.


이제 전쟁의 멋과 낭만은 모두 없어지고 잔인한 살육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용맹한 기사가 공주님을 구하던 돈키호테의 시대는 끝나고 말았다. 당시에는 평판이 나빠서 구스타프 아돌프는 지옥에서 온 악마가 아닌가 하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세상에! 포도탄을 사람 머리 위에 마구 쏘다니 인간이 어찌 이런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느냐는 식이었다.


세번째 개혁은 편제를 바꾼 것이다. 중세의 전쟁을 규정하는 스페인의 테르시오는 창병을 중심으로 수천명 단위의 방진을 치고 좌우에 머스킷병을 날개로 붙였는데 이는 고대 페르시아군의 방진과 마찬가지로 매우 바보같은 편제였다. 유럽에서는 평원이 많아서인지 알렉산더 이후 사라졌던 중갑병 밀집대형의 방진을 치고 넓은 평원에서 회전을 벌이는 구식전투가 무쇠왕 샤를마뉴 이후 다시 부활하여 르네상스시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중세 유럽의 전술은 동양에 비해 전반적으로 낙후되어 있었다. 유럽의 멍청한 부대는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에 의해 형편없이 박살이 났지만 그들은 전혀 바꾸려들지 않았던 것이다. 바투의 독일-폴란드-러시아군 격파는 전쟁이라고 할 것도 없는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한 쪽은 전혀 죽지않고 반대쪽만 일방적으로 죽어가는 원통한 전쟁! 그만큼 동양과 서양의 전술적 수준차이는 컸다. 뭐 엇비슷하게 기량을 겨뤄볼 틈새도 없이 순식간에 모두 학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변하지 않았다. 혁신은 구스타프 아돌프에 의해 이루어졌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편제를 바꾸고, 소대의 역할을 강조하여 부대의 중간허리를 두텁게 했으며, 제식훈련을 강화하여 직진만 하는 테르시오와 달리 전후좌우 어느 방향으로도 즉각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네번째 개혁은 엄격한 군율을 적용한 것이다. 모든 부대에 부대기를 제공하고 패배한 부대는 말똥치우기나 화장실 청소, 시체운반 등을 시켜 모욕을 주었다. 병사들이 자기 부대의 이름과 깃발을 알고, 부대에 소속감을 가지고 상승부대의 자긍심을 가지게 한 것이다. 그냥 소속부대 없이 아무 줄에나 끼어들어가서 싸우는 구식전쟁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당시 스웨덴군의 군율에는 무려 40가지나 되는 사형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민간인에 대한 약탈은 금지되었고 일체의 개인행동, 보초병의 직무유기는 용납되지 않았다. 병사들은 엄격한 군율을 모두 학습해야만 되었다. 아마추어에서 진정한 프로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병사노릇도 글줄이나 읽어서 똑똑해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뭐 보급은 약탈로 대신하는 판이라 명령서에 사인하고 결재받는 서류사무가 필요없었던 것이다.


전쟁이 약탈한 후 전리품을 나눠주는 봉건적 전쟁에서 급료를 받고 싸우는 직업군인으로 전환되었다. 구식전쟁에는 방진의 대형유지가 중요했으므로 신참이나 고참이나 그다지 차이가 없었지만 구스타프 아돌프의 현대전에서는 경험많은 베테랑의 역할이 중요하게 되었다. 급하게 모은 오합지졸을 방진의 가운데 채워넣고 머리 숫자로 승부보는 바보전쟁은 종식되었다. 꾸준히 실력을 연마한 백전노장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들은 전투를 할수록 강해져서 마침내 상승부대가 되었고, 급기야는 상대방이 수천명 죽을때 이쪽은 고작 서너명이 죽는 기적의 승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결코 지지 않는 이상적인 군대에 근접한 것이다.


다섯째 개혁은 인정사정없는 철저한 응징으로 전쟁의 목표를 바꾼 것이었다. 본래 전쟁은 군주의 위엄을 과시하여 봉건적 서열을 정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한번 전투가 끝나면 마을을 약탈하여 전리품을 챙기고 잔치를 열어 병사를 위로한 후 화려하게 개선하는 것이 상식인데, 구스타프 아돌프는 후퇴하는 적이 재정비할 틈도 없이 끝까지 쫓아가서 철저하게 응징하였다. 이기면 된 건데 이기고도 부족해서 적의 전쟁수행 능력 자체를 완전히 해체해 버린 것이다.


이런 식의 집요한 전쟁을 처음 한 사람은 알렉산더였고 그 다음은 징기스칸이었다. 알렉산더는 도망치는 다리우스 황제를 우즈베키스탄의 박트리아까지 몇 년간이나 쫓아감으로써 다리우스 황제를 기다리던 신하들이 마음을 바꾸게 만들었고 이는 징기스칸이 늘 쓰는 방식이었다. 이기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자근자근 밟아놓는 것이었다. 이통에 죽어난 것은 끝없는 행군을 계속해야 하는 병사들이었다. 하루에 몇 개의 성과 요새를 점령하고도 곧바로 전진을 계속하는 판이니 병사들은 가볍게 무장하고 구스타프 아돌프를 따라 미친듯이 뛰어다녀야 했다. 군에서 천리행군을 하게 된 원조가 구스타프 아돌프였던 것이다.


전투의 승리에 도취되어 신나게 약탈을 저지른 다음 고향에서 기다리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병사들을 재촉하여 끝없는 행군을 계속하게 만들려면 그 대신 병사들이 납득할만한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생존의 보장이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병사가 죽지 않는 전쟁을 구상했다. 그 대책은 끝없는 행군과 반복되는 참호건설이었다. 행군과 참호가 병사들의 생존률을 높였기 때문에 병사들은 묵묵히 따랐던 것이다.


바보는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이어서, 구스타프 아돌프가 병사의 희생을 줄이는 현대전의 개념을 바로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책없이 병사를 소모시키는 구식전쟁의 바보짓은 2차대전에도 어김없이 일어났다. 2차대전 최고의 격전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치루어졌다. 쌍방간에 200만명의 사상자가 나왔는데 스탈린의 이름을 딴 이 도시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의 어리석은 자존심 싸움이 벌어졌다. 전쟁 초반에는 스탈린이 무의미하게 시가지에 병력을 축차투입하여 많은 병사를 죽게 만들었고, 막바지에는 히틀러가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 스탈린의 도시를 점령했다는 상징성에 대한 집착 때문에 독일군이 역포위 포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후퇴를 허락하지 않았다.


왜 이런 바보짓을 했을까? ‘너죽고 나죽고 끝까지 해보자’는 오기 싸움을 한 것이다. 서로간에 ‘우리는 전 국민이 다 죽어도 항복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가 항복하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자국민의 죽음을 신경쓰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구식전쟁이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정반대였다. 그는 병사의 죽음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여긴 나머지 병사가 죽지 않는 전쟁을 생각해냈고, 그때문에 로마시대 이후 사라졌던 참호가 다시 등장하였다. 국군이 봄가을로 진지공사 한다며 허벌나게 삽질하는 전통은 구스타프 아돌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중요한 점은 구스타프 아돌프에 의해 전쟁의 개념은 완전히 바뀌어졌다는데 있다. 전쟁이란 본시 양군이 넓은 들판에 모여 밀고 당기고 한 바탕 세를 과시함으로써 도무지 누가 형님이고 누가 아우인지 서열을 정하고, 상하간에 질서를 바로잡아 평화가 오게 하는 멋지고 숭고한 의식인데 구스타프 아돌프라는 살인기술자가 나타나서 전쟁의 의미를 깨부수고, 무도하게도 오로지 이기기 위한 전쟁을 해버린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되나? 당시 사람들의 멍청한 생각이 그러했다. 하긴 인구 150만의 소국 스웨덴이 유럽의 강자로 올라서다니 당시 유럽사람들의 정의감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소가 대를 꺾어서 천하에 위아래가 없어졌으니 이건 개판이 아닌가 하는 보수꼴통들 생각 말이다.


근래에 와서 정가의 화두는 늘 개혁이다. 너도 나도 개혁을 말하지만 개혁의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구스타프 아돌프가 철저하게 바꾼 시스템 안에 작금의 정치판에서 주장하는 개혁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합리화 하는 것이다. 합리화는 군 전체와 사병 개인 양쪽에서 이루어졌다. 군은 더 많은 서류사무와 더 복잡한 짜임새와 더 많은 병과로 세분되었다. 군이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병사는 더 많은 군장과, 더 많은 행군과, 더 많은 삽질과 더 많은 임무를 맡아야 했다. 무엇인가? 이는 모든 면에서 상대성을 절대성으로 바꾼다. 상대적인 전쟁인가 절대적인 전쟁인가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절대전쟁의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방보다 많으면 된다. 병사가 많든, 돈이 많든, 무기가 많든, 동맹국이 많든, 뭐라도 많으면 이기는 것이다. 51 대 49로 결판난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단 2다. 그러므로 뭐든 2만큼 늘려 아군을 51로 만들면 된다. 이는 어리석은 소모전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진정한 전쟁은 절대성의 전쟁이며 그것은 상대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보다 덜 죽고, 많이 죽이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병사가 죽지 않는 전쟁을 해야 진정으로 승리한 전쟁이 된 것이다. 월남전에서 미군은 화력에서 월맹군을 압도했지만 죽지 않는 전쟁이 아니라 죽는 전쟁이 되었기 때문에 패퇴한 것이다. 구스타프 아돌프처럼 자국 병사의 인명을 희생시키지 않는 전쟁을 해야 진짜다.


무엇인가? 눈앞에 있는 적을 의식하고 어떻게든 적을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상대로 혁신의 전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신성로마 제국을 이긴 것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상대로 싸워 이겼다. 진정한 전쟁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적과 싸워서 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아군이 죽지 않는 전쟁을 연출해 보임으로써 적의 전쟁행위를 허무하게 만들어야 한다.


반면 히틀러와 스탈린은 철저하게 상대전쟁을 했다. 상대보다 2만큼 우위에 서면 된다는 식이다. 실제로는 양쪽 다 패배했다. 2차대전의 일본군도 마찬가지다. 태평양 일대에서 총검돌격으로 영국군을 혼냈지만 ‘우리가 영국인이나 미국인보다 더 희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마음자세를 강조하여 겁주는 식이다. 상대가 “쟤네들은 인간이 아니야. 상종하지 말아야겠어.‘하고 넌더리를 내고 떠나기를 바란 것이다. 이건 철저하게 봉건적 마인드다. 상대보다 비교우위에 서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국군을 한 사람도 희생시키지 않는 전쟁을 해야 한다.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배경도 거기에 있다. 징기스칸은 몽고병사의 인명을 희생시키지 않는 방식의 전쟁을 했기 때문에 적이 대항하다가 허무해져서 포기해버린 것이다. 몽고군의 전쟁의지를 꺾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웨덴군이나 몽고군이나 숫자가 많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징기스칸이 자무카와 토오릴 칸과 대적했을 때는 겨우 3천명이 있었을 뿐이고, 몽골 고원을 통일했을 때 10만의 병사를 손에 넣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기편 병사가 죽으면 안 되는 것이다.


보통의 유럽식 전쟁이라면 넓은 벌판에서 회전하되 군악대의 행진곡에 발맞추어 소총을 가지런히 하고 전진하는데 200미터 거리에서 10프로가 죽고 50미터까지 근접했을 때 30프로가 살아난다. 병사는 그 생존확률을 믿고 묵묵히 전진한다. 장군은 계산기를 두들겨보고 아군의 생존확률이 더 높다면 거기에 도박을 건다. 병사들은 소모품으로 희생되는 것이다. 이것이 봉건적 전쟁이다. 미국의 남북전쟁도 이런 식의 무의미한 소모전으로 치러졌다. 구스타프 아돌프가 후퇴하는 적을 끝까지 쫓아가는 이유도 시스템에서의 우위를 보여주어 적이 더 이상 싸우는 것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알렉산더가 기동전으로 고대의 동원전을 깨뜨리는 패턴이 구스타프 아돌프에 의해 똑같이 재현되었음을 알아챌 필요가 있다. 알렉산더의 기동전은 군대의 중간허리를 강화함에 따라 가능해졌다. 장교의 역할이 부각된 것이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현대전 역시 소대장의 역할이 강조되고 장교급 중간허리의 비중이 높아졌다. 여기서 장교들이 군대에서 비중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지위가 어중간한 장교는 어떻게든 출세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비 잘 만난 탓에 능력도 없이 공짜로 출세하는 귀족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무능한 귀족을 제치고 하극상을 일으킬 태세가 되어 있었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현대전에 의해 군대에서 장교의 역할이 커지자 더 이상 유럽에서 귀족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기어이 봉건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전쟁은 고도의 조직적인 전쟁이었다. 먼저 성곽에나 곡사포로 쏘던 대포를 산탄과 포도탄으로 바꾸어 적의 머리 위에 직사로 사정없이 쏘아댔다. 적이 가까이 다가오면 머스킷병이 일제사격을 한 다음, 기병을 돌격시켜 적의 대형을 해체하고, 창병을 전진시켜 마무리했다. 머스킷병은 과거와 달리 그냥 개인별로 대강 쏘는게 아니라 소대장의 구령에 맞추어 일제사격을 가하기 때문에 적군은 여지없이 격파되었다. 이런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전쟁은 사각형의 굳건한 방진을 치고 느리게 걸으며 강철대오만 유지하면 된다고 믿었던 중세의 전쟁을 간단히 제압했다. 포병과 머스킷병과 기병과 창병이 유기적으로 호흡을 맞추어 아마추어를 꺾는 프로처럼 ‘진정한 전쟁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후 이런 엄격한 군대의 전통은 프러시아군에 의해 계승되어 이후 게르만족의 콧대를 떠받치게 되었다. 독일사람들은 요즘도 합리주의 철학을 신봉하며 법질서를 존중하여 사소한 것도 일일이 시에서 간섭하는 등 국가를 복잡한 설계도에 맞추어 고도의 시스템화된 사회를 추구하는데 이 전통은 구스타프 아돌프에서 부터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컨대 자전거를 타려 해도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든가, 자전거 면허증을 따기 위한 연습도 시에서 정해주는 장소에서 해야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동체를 중시하는 게르만 특유의 종사제도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답답해서 어떻게 사는가 싶지만 대신 사생활은 건드리지 않기로 하는 모양이다. 미국이라면 클린턴의 외도를 따지는 등 사생활까지 엄격한 기독교 윤리를 요구하지만 독일이나 프랑스 쪽은 공동체 윤리를 엄격히 하는 대신 미테랑이 숨겨둔 딸을 어쨌건 간에 사생활은 대개 건드리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간 것이다.


조직전은 사실 고대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백만대군을 거느리면 모험을 지양하고 안전하고 완벽한 승리를 꾀하게 된다. 이 때문에 덩치 큰 나라들이 주로 조직전을 구사했다. 대국의 힘을 이용하여 패배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상적인 전쟁을 구상한 것이다. 그러나 고대나 중세의 조직전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특히 고대나 중세의 전쟁에서 방어전에는 조직전이 꽤 먹혔는데 공격전에는 그 반대로 된 경우가 많았다. 조직전은 방어에서 공격으로 신속하게 전환할 수 있는 대형이며 먼저 방어에서 큰 효과를 낸다.


당태종은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조직전을 구사하여 고구려를 치려고 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치밀한 방어전술에 막혀 번번이 무너지고 말았다. 당태종은 일단 해군과 육군으로 나누어 양동작전을 펴는 한편, 신라를 동원하여 배후를 치게 하고, 공성기를 동원하여 성곽을 부수며, 안시성을 공격할 때는 저항하면 모두 살육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심리전을 펴는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고도의 조직적인 전쟁을 구사했다. 그러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


조직전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제외한 중국과 주변 소수민족을 모두 제압한 것을 보면 그에게는 탁월한 군사적 재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돌파전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구조원리에 따라 조직전을 전개할 때는 반드시 돌파와 기동을 병행해야 한다. 당태종은 안시성과 요동성을 연결하는 고구려 천리장성에 발목이 잡혀서 더 이상 나아갈 생각을 못했다. 반면 당고종은 배후가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장성일대의 고구려성을 그대로 놓아둔 채 무장을 가볍게 하고 신속하게 돌파하여 평양성까지 치달았다. 전쟁을 너무 원리원칙대로 하면 안 된다. 때로는 조직을 버리고 신속한 공격으로 돌파를 해야 한다. 백 퍼센트 안전한 전쟁은 없으며 때로는 모험을 해야하고 그 때는 잘 훈련된 정예를 가동해야 한다. 이쪽에서 먼저 헛점을 보임으로써 적의 헛점을 끌어내고 적의 헛점을 빠른 기동으로 찌르고 들어가야 한다. 이쪽의 헛점 역시 빠른 기동으로 메꾸어야 한다. 속도만 빠르다면 일부러 헛점을 보이는 아슬아슬한 전쟁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돌파전이다.


숫적 우세를 차지한 군대는 대개 관도전투에서 원소가 조조를 공격할때 사용한 방법처럼 여러 부대로 나누어 각 부대가 유기적으로 협력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숫자가 적은 상대는 어떻게든 적의 한 지점만 때리려고 한다. ‘난 한 넘만 패’ 하는 식이다. 돌파하여 적장만 사로잡으면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조직전이 이겨야 하지만 고대의 전투에서는 번번이 조직전이 패배하곤 했다. 조직전은 공간과 시간 양 측면에서 우위를 이루어야 하는데, 고대의 조직전은 주로 공간상의 우위만 추구하다가 기동력있는 적에게 기습을 당해 패퇴하곤 했던 것이다. 발상만 조직전일 뿐 기동을 중시하는 구스타프 아돌프와 같은 제대로 된 조직전이 아니었던 것이다.


원소는 많은 숫자를 믿고 조직전을 구사하다가 조조의 정예 5천명에 돌파당해 오소의 식량창고가 불태워져서 패배했다. 돌파전에 능한 조조도 여포에게는 조직전을 구사하다가 번번이 돌파를 당해서 졌다. 적벽대전에서도 조조는 형주의 수군을 동원하여 조직플레이를 꾀하다가 망신을 당했다. 고조 유방도 여러 제후를 동원하여 사방에서 압박하는 조직전을 시도하다가 패왕 항우에게 여지없이 돌파당해 무수히 깨지곤 했다. 패배한 전쟁의 공통점은 지휘관이 일선의 사정을 잘 모르는 채 안전한 후방의 막사에서 결재도장만 찍고 있다가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졌다는 거다. 구스타프 아돌프 역시 많은 서류사무를 만들어 무수히 결재도장을 찍었지만 안전한 후방에 숨어 있지는 않았다.


대군은 숫자가 많으므로 누가 대신 싸워주길 바란다. 내가 안 해도 대신할 사람이 있다. 반면 소수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소수가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의 분명한 임무파악은 속도가 빠를 때 잘 드러난다. 속도가 빨라지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아지지만 속도가 느려지면 손발이 안 맞게 된다. 왜냐하면 상대 수비가 방해하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비행기가 공중급유를 할 수 있는 것은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만약 공중에 뜬 채로 제자리에 가만이 머물러 있다면 공중급유는 오히려 어려워진다. 바람만 살짝 불어도 거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공중에서의 정확한 도킹은 우주왕복선의 도킹처럼 어려워진다. 반면 물고기떼나 새떼는 쉽게 뭉치고 흩어진다. 공중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움직이기 때문이다. 움직이면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움직이지 않으면 도무지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알 수가 없어서 오히려 질서를 잃어버린다.


흔히 보수꼴통들이 사회의 질서를 강조하는데 우리 사회가 진보하여 나아가면 질서는 저절로 얻어진다. 원심분리기 효과가 성립하여 누가 똑똑하고 누가 바보인지 명확하게 가려지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새로운 도구들이 나타날때 천재와 바보는 가려진다. 반면 사회가 진보하지 않으면 입으로만 질서를 떠들 뿐 참된 질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이 원리를 알아야 한다.


조직전은 기본적으로 수비에 강점이 있고 승부처에서는 돌파전과 기동전으로 갈아타야 한다. 조광래 감독의 패스축구도 조직전 하다가 아리송해진 면이 있다. 중원에서는 조직전을 하더라도 문전에서는 긴 패스 한번으로 단번에 돌파하는 과단성을 보여야 한다. 조광래 감독은 중원의 패스는 정착이 됐고 이제 문전패스만 터득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넌센스다. 막판에는 절대로 적의 시간을 뺏어야 한다. 변칙플레이로 혼란을 조성하여 이쪽에서 먼저 헛점을 보여야 적의 헛점을 끌어낼 수 있다. 양쪽 다 헛점이 있을 때는 무조건 빠른 쪽이 이기고 과단성있게 선제대응하는 쪽이 이기기 때문이다.


경험있는 고참을 활용하여 현장에서 혼란 가운데의 임기응변을 끌어내야 한다. 감독의 작전지시라는 것은 후방의 히틀러가 일선의 롬멜에게 작전지시하는 격이 되기 쉽다. 결정적인 순간에 0.1초의 속도가 느려져서 패퇴하고 만다. 이 경우 감독은 느린 선수탓을 하지만 실제로는 선수가 감독의 의도에 신경쓰느라 0.1초 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0.1초를 앞당겨야 골이 골대를 맞추지 않고 골문 안쪽을 정확히 향한다. 조직전은 월등하게 기량이 앞선 팀이 수비를 강화하면서 서서히 압박하는 것이며 기본적으로 수비에 강점이 있다.


일본 전국시대에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2만 5천의 정병을 이끌고 불과 5천명의 병력밖에 없었던 오다 노부나가를 공격했지만 어이없이 기습을 당해 패퇴하고 말았다. 당시 오다 노부나가는 농성전을 펼칠것처럼 연막을 쳐놓고 1천명의 정예를 거느리고 기습하여 요시모토의 주력 5천명을 단번에 참살해 버렸다. 요시모토의 나머지 부대들은 조직전을 구사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나누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싸워보지도 못하고 자기네 땅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 하나로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통일의 기틀을 닦았다.


일본 역사소설에 나오는 장면이지만 당시 오다 노부나가는 싸울 의사라곤 없는듯이 부하들에게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꼼짝않고 있었다고 한다. 전투 전날에는 날이 더우니 갑주를 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라는 어이없는 명령을 하나 내렸을 뿐이다. 이미 이마가와군의 공격을 받은 일선의 보루에서는 위급을 알리며 끊임없이 전령을 보내왔지만 오다는 ‘싸우다 죽어라’는 듯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적도 아군도 오다 노부나가의 속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적은 숫자로 큰 부대를 이기려면 허허실실의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5천명 밖에 안 되는 적은 숫자를 모으지도 않고 도리어 흩어놓았다. 이쪽이 먼저 헛점을 보이니 적도 헛점을 보였고 적이 미세한 헛점을 보였을 때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들이쳐서 단번에 승부를 결정했다.


적의 숫자가 많고 이쪽이 숫자가 적다면 공간에서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공평한 것은 시간 밖에 없다. 적도 하루는 24시간이고 아군도 하루는 24시간이다. 어차피 공간에서 졌다면 시간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오다의 승리비결은 하나다. 결전의 시간에 이마가와의 군대는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오다의 군대는 기습하여 돌격했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군대가 멈추어 있는 군대를 격파한 것이며 이는 시간에서의 우위다. 움직임은 시간을 늘리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하루 24시간을 가지지만 동작이 빠른 사람은 약간 더 많은 시간을 가진다. 시간공격을 하기 위해서 오다 노부나가는 일부러 군대를 모으지 않고 병사를 쉬게 한 것이다. 적이 꾸준히 정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적을 속이기 위해 아군도 속인 것이다.


바둑에서는 이쪽이 한 수를 두면 상대도 한 수를 둔다. 시간공격은 초반에 애매한 행보를 해서 상대가 시간을 많이 소모하게 만든 다음 막판에는 사정없이 휘몰아쳐서 상대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대응한다’는 규칙 자체를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상대전쟁을 하지 말고 절대전쟁을 해야 한다. ‘상대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나는 절대로 이렇게 한다’는 그 무엇이 있어야 시간공격을 할 수 있다.


미군이 월남전에서 고전한 이유는 주둔지에서 연대 단위의 대규모 편성으로 쓸데없이 역할을 분담해 놓았기 때문이다. 미군은 조직전을 구사하려 했으므로 항공정찰, 공중폭격, 야포사격, 전차돌격, 보병투입의 시나리오가 정해져 있다. 이게 베트콩들에게 먹힐 리 없다. 낮은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이 지배했으나 밤은 베트콩들의 무대가 되었다. 반면 국군은 달랐다. 중대 단위의 소규모 편제로 정글에 넓게 흩어놓고 야간에는 꾸준히 매복을 했다. 베트콩들이 야간에 기동하는 동선은 국군의 매복에 걸려버렸고 국군은 베트콩의 기습에 의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유럽군대는 야간기동이나 우회침투와 같은 개념이 없다. 그들은 넓은 평원에서 주로 싸웠기 때문에 적을 하나하나 제거하여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평원에서 압도적인 화력쇼를 보여주면 여론이 기울어서 이쪽에 가담하게 되어 이기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유럽은 나라도 많고 임금도 많아서 전쟁이란 적을 죽이는게 아니라, 중도에서 관망하는 여러 왕들의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넓은 평원에 방진을 치고 보무도 당당하게 군악대의 연주에 발맞추어 나아가면 그 멋진 퍼레이드에 감동한 나머지 ‘그래 니가 형님 먹어라’ 하고 굴복하는 것이다. 미군은 베트콩을 낱낱이 죽여서 이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압도적인 화력으로 세과시만 하면 항복할 줄 알았던 것이며, 이는 전형적으로 서구의 바보전쟁 개념이다. 동양식 전쟁은 철저하게 적을 죽여서 전쟁수행 능력을 해체하는 것이며 기습이나 속임수, 심리전, 우회기동, 매복은 일상적인 것이다.


조직전의 진정한 의미는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데 있다. 고대 전투에서 조직전으로 수비에 성공한 예는 매우 많다. 수비에서는 임기응변을 하면 안 된다. 무조건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한다. 전선을 교착시키고 전쟁을 장기화시켜 적을 지치게 만들어야 한다. 육해공 3면에서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야 한다. 이때 조직전은 탁월한 효과가 있다. 제갈량을 물리친 사마의의 전술이 그러하다. 제갈량도 사실은 수비형 지휘관이었다.


제갈량의 천재적인 지략은 조직전에 적격이지만 공격을 할 때는 맹장 위연의 말을 따랐어야 했다. 위연은 ‘전쟁의 기본은 신속한 기동에 의한 정면돌파’임을 역설하고, 정예 5천으로 진령을 넘어 단숨에 장안을 습격하는 자오곡 계책을 건의했지만 제갈량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완벽한 전쟁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제갈량의 계획은 완벽했으나 사마의는 이를 간파했다. 완벽한 전쟁이란 원래 없다. 혼란을 조성해놓고 임기응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동물적인 찬스본능을 가진 맹장이 필요하다. 위연이 적격이었으나, 제갈량은 위연에게 군권을 내주기 싫었다. 선비타입 지식인의 한계가 노출된 것이다. 제갈량은 모든 국면을 자신이 체크하기를 원했다. 사전에 불안요소를 제거하기를 원했다. 이런 식으로는 작은 군대가 큰 군대를 이길 수 없다.


작은 군대가 큰 군대를 이기는 방법은 전체적인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승부처가 되는 한 부분에서의 우세를 달성한 다음 이를 전면화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빠른 속도가 생명이고 그 속도를 얻으려면 공간을 넓게 벌려야 한다. 넓은 공간에서 가속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위연의 자오곡 계책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촉은 두 가지 카드를 쓰는 셈이며 위의 수비부담은 두 배로 늘어난다. 혼란이 조성되는 것이며 그 틈에 찬스가 얻어지는 법이다. 제갈량은 수비형 전략가였기 때문에 사마의를 깨지 못한 것이다. 사마의 역시 수비형 장수였다. 수비와 수비가 대결하면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긴다. 촉과 위의 전쟁은 허무하게 되었다.


조직전은 기본적으로 수비형 포진이며 공격을 하더라도 정면공격이 아니라 꾸준히 긴장을 조성하여 참다못한 적이 도발을 해오면 이를 응징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이런 전쟁은 카이사르부터 로마군의 일상적인 전투방식이 되었다. 스키피오가 한니발을 무찌를 때부터 일단 전선을 교착시켜 지연시키고 시간을 번 다음 조직적으로 대응하여 성미급한 적을 지치게 만드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게르만족은 직업군인이 아니라서 여자와 아이와 양떼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좁은 전장에서 오래 견디지 못한다. 로마군의 꾸준한 저강도 전쟁을 참다 못해 마침내 울화통이 터져서 도발을 감행하면 미리 조성해 둔 유리한 지형으로 끌어들여 섬멸하는 것이다.


로마군은 원래 노가다 체질이어서 참호를 파고 보루를 건설하기를 좋아했는데 게르만족은 이를 티껍게 여겨 참호를 메우고 보루를 파괴하려 했다. 그때 장기전으로 끌고가서 적절하게 응징하는 것이 카이사르 방식이다. 적을 아군의 유리한 지형으로 끌고와서 싸우므로 무조건 로마군이 이기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로마군 역시 아군의 인명을 희생시키지 않는 전쟁을 추구했다. 로마군은 하루를 쓰더라도 숙영지 하나는 튼튼하게 건설했는데 그때문에 로마군은 군인이 아니라 거의 공사판 건설노동자가 되었던 것이다.


로마군은 선제공격이 아니라 공격유도 후 포위섬멸 전술을 썼다. 게르만족은 조직화 되지 않은 군대였으므로 감정적이 되어 이와 같은 방법이 먹혔다. 일부러 헛점을 노출하여 상대방의 기습적인 선제도발을 유도하고 이를 응징하는 로마군 방식은 미국이 요즘도 쓰고 있다. 태평양전쟁때의 진주만 기습도 루즈벨트의 낚시에 일본이 걸렸다는 설이 있다. 당시 석유수출 봉쇄를 비롯한 고강도 압박으로 일본을 자극한 것이다. 이명박의 북한 자극과 비슷한 수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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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구조가 새로 나왔습니다. 인간은 공동체적 동물이며, 마음은 언제라도 그대를 공동체의 중심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공동체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존엄이 있습니다. 존엄을 얻을 때 마음은 진정으로 다스려 집니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1.28 (19:12:42)

신 손자병법...

손자병법에 버금가는 , 혹은 새로운 전력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나오겠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미친거북이

2011.01.29 (22:11:49)

혼자 논둑에서 까불다가 제풀에 자빠져셔 생긴 부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의 한장면처럼 상상해보니 더 웃겨요.

만약 내가 감독이라면 저 장면은 무심한듯 신경안쓴듯 디테일로 살짝 집어넣겠습니다.

영화 괴물에서 변희봉 영감쟁이께서 논두렁에서 쓸데없이 자빠져 굴러내려오는 장면처럼요. 근데 진짜 욱겼거든요.

 

이런 류의 글을 단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술술술 읽히다니,

재밌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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