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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203 vote 0 2016.02.22 (10: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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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仁이다. 사람을 아는 것이 지知다. 바른 사람을 나쁜 사람 위에 두면 나쁜 사람도 바르게 된다”


    일의 복제와 조합, 연출을 말한다. 복제는 서로 연결되어 같아지는 것이다. 같아지면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다. 조합은 다양한 환경에 놓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진보한다. 그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환경이 인간을 흔들어댄다. 환경의 침범에 의해 약한 사람이 상처입고 흔들리면 인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구한다. 내가 흔들려도 인에 의해 반드시 구해진다는 믿음이 있으면 사람은 착해진다. 인으로 연결하여 흔들리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지知다. 타자와의 공존은 축과 밸런스로 이루어진 대칭에 의해 가능하다. 인이 토대가 되어 축을 이룬다. 사람과 환경은 저울의 두 날개가 된다. 저울이 흔들리면 축이 움직여서 바로잡는다. 그렇게 사람은 강해진다. 인仁이 지知를 이끌어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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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공이 친구를 묻자 공자 가로되
    “충고하여 선으로 이끌되 따르지 않으면 즉시 끊어서 자신을 지켜라.”


    충고하는 사이라면 군자의 사귐이 아니다. 친구가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미리 충고하여 막을 것이며, 이미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충고하여 바로잡을 것이 아니라 즉시 관계를 끊어야 한다. 군자의 사귐은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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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3편 자로子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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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나라 임금이 정사를 맡기면 어떻게 할 것인지 자로가 묻자 공자 가로되
    "먼저 명분을 세우겠다. 명분이 서지 못하면 언어가 바르지 못하고, 언어가 바르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예악이 흥하지 못하고, 예악이 흥하지 못하면 형벌이 무너져서 백성들이 손발 둘 곳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명분을 세우면 반드시 언어가 통하며, 언어가 통하면 실행할 수 있다. 군자는 언어를 세움에 있어 조금의 구차함도 없어야 한다."


    ‘명분≫언어≫일≫예악≫형벌’의 순서가 구조론의 ‘질≫입자≫힘≫운동≫량’의 순서와 같음을 알 수 있다. 명분은 이념이다. 이념이 서지 않으면 선을 악이라고 하고 악을 선이라고 해서 의사소통이 망하게 된다. 눈치를 살피며 ‘가라’고 하면 ‘가지말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가지말라’고 하면 ‘가라’는 뜻으로 알아듣는다. 배후에 숨긴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통치이념을 바로 세우면 국민이 위정자의 의도를 알아채므로 선이 선으로 받아들여저서 명령이 바로 전달된다. 이에 실무를 볼 수 있다. 공무원의 일은 예악禮樂을 바로잡는 일이다. 예禮는 문文이니 매너와 에티켓과 교양이다. 악樂은 예술이니 현대사회라면 유행과 패션과 디자인이다. 문화예술은 개인주의다. 문화예술은 사회적 평판의 형태로 개개인이 낱낱이 평가된다. 각자가 좋은 평판을 받도록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범죄가 사라진다. 가혹한 형벌이 필요없게 되어 이상정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언어가 바르냐 그렇지 않느냐가 공자와 노자의 가장 큰 차이다. 전제를 숨기는 언어는 바르지 않다. 비겁자의 언어다. 당당하지 못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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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지가 농사일을 묻자 공자 가로되
    “윗사람이 예禮를 좋아하면 백성이 받들고, 윗사람이 의義를 좋아하면 백성이 따르고, 윗사람이 믿음信을 좋아하면 백성이 사랑한다. 이렇게 하면 사방의 백성들이 제 발로 모여들 것인데 곡식 심는 법을 배워 무엇하겠는가?“


    국가는 그 자체로 커다란 하나의 ‘일’이다. 정치가의 소임은 ‘일’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이다. 그냥 각자 알아서 일하라고 하면 안 된다. 일거리를 만들어 던져줘야 한다. 일은 일과 연결된다. 임금이 앞일을 하면 백성은 뒷일로 받는다. 윗사람이 ‘예’를 하면 아랫사람도 ‘예’를 한다. 윗사람이 ‘의’를 하면 아랫사람도 ‘의’를 한다. 윗사람이 ‘신’을 하면 아랫사람도 ‘신’을 한다. 농사일은 그 과정에 묻어가는 것이다. 정치가의 일은 경운기에 발동을 걸어주는 일이지 직접 경운기를 몰아서 논밭을 갈아엎는 것이 아니다. ‘예’와 ‘의’와 ‘신’으로 그 경운기에 발동을 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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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 3백 편을 외어도 실무를 처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보내져도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못한다면 시를 많이 외어서 무슨 소용인가?”


    공자의 가르침은 교과서적 지식이 아니라 직관적인 깨달음이다. 시詩는 예술이다. 예술에는 미학이 있다. 미학은 스타일로 나타난다. 그것을 행동에 반영하면 예禮다. 예禮는 매너다. 외교관의 매너를 익히면 국제무대에서 독자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배움의 목적이다. 현대사회의 학교공부와는 개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깨달음은 미학이다. 미학을 배워야 진짜다. 고흐의 그림을 보고 거기서 진짜를 알아채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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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지고, 몸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


    여기서 몸가짐을 그저 단정한 자세 정도로 여긴다면 곤란하다. 흐트러진 자세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으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만만하게 보고 개긴다는 정도의 좁은 해석이라면 좋지 않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업무관계는 긴밀해야 한다. 일은 연속된다. 기승전결로 이어간다. 기 단계에 선 사람은 승 단계에 선 사람에게 일을 직접 연결시켜야 한다. 일을 이어받을 타이밍이 명확해야 한다. 언제 보고서를 넘겨줄지 몰라 하루종일 대기해야 한다면 아랫사람도 결재를 신청하지 않고 보고서를 서랍에 묵혀둘 것이 뻔하다. 서로 시간낭비 하지 않게 타이밍을 맞춰주면 일이 스스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일이 일을 넘기며, 일이 일을 연결하고, 일이 일을 진행시킨다. 일이 스스로 재미들려서 신나게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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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사람이 백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 잔악한 사람을 물리치고 사형을 없앨 수 있다 했다. 옳은 말이다.”


    공자는 2500년 전에 이미 사형제도의 폐지를 생각했을 정도로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공자의 이런 점은 선전되지 않고 ‘술이부작’과 같이 권력자에 의해 자의적으로 왜곡된 말만 알려진 것은 불행이다.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권력에 대항할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권력에 대항하는 이유는 권력이 먼저 사람에 대항하여 국가와 국민 사이에 상대성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국가의 덕은 보편복지와 같이 일방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는 무조건적인 복지여야 한다. 국가가 국민에 대해 확고한 도덕적 우위에 서지 않으면 소인배가 어떻게든 범죄를 정당화 하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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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진 임금이 있어도 반드시 한 세대가 지나야 인이 세상에 이른다.”


    사람은 어린 시절에 삶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어른의 행동은 어린시절에 부여된 동기를 따른다. 625때 태어난 사람이 대한민국에 복수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이명박근혜 현실이다. 어진 임금의 세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서 어진 세상을 연출하는 것이다. 노무현 세대가 전면에 등장하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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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디 말로 나라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할 수 있다면 그 한 마디 말이 무엇이냐는 정공의 물음에 공자 대답하여 가로되
    “임금 노릇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는 말과 임금 노릇처럼 즐거운 것이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일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전개된다. ‘질’이 가장 어렵다. 그러나 질은 한 번 세팅해놓고 나면 두 번 다시 손을 댈 이유가 없으므로, 일정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질을 담당하는 것이 가장 쉽다. 회사라면 CEO의 창업이 가장 어렵다. 창업이 질의 세팅이기 때문이다. 창업한 다음에는 CEO가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망한다. 창업하여 회사를 일정한 궤도 위에 올려놓은 다음에도 외부환경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가 변화가 있으면 즉각 대응해야 한다. 사업이 잘 된다고 해서 골프나 치러다니면 망한다. 임금도 마찬가지다. 건국이 가장 어렵다. 그 다음에는 할 일이 없다. 그러다가 망한다. 외부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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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두르지 말며 작은 이익을 챙기지 말라. 서두르면 도달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신경쓰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


    구조론과 같은 맥락이다. 장기전이 앞서고 단기전이 따른다. 세력전략이 앞서고 생존전략이 따른다. 합리주의가 앞서고 실용주의가 따른다. 진보주의가 앞서고 보수주의가 따른다. 완전성이 앞서고 융통성이 따른다. 오자병법이 앞서고 손자병법이 따른다. 큰 일을 먼저 하고 작은 것을 나중 한다. 이념이 앞서고 예술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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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섭공이 이르되
    “우리 고을에 바른 사람이 있으니, 아비가 양을 훔치자 자식이 증언하였다.”
    공자 가로되
    “우리 고을의 바른 사람은 이와 다르니 아비는 자식을 위하여 숨겨주고 자식은 아비를 위하여 숨겨주니 곧음이 그 가운데 있다.”


    친親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의義다. 부자유친이 된다. 정의正義는 사회관계에서 성립하는 사법의 의義다. 일은 복제 다음에 조합된다. 가족의 친親이 사회의 의義로 복제된 것이니, 친親은 근본 인간의 생존본능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의正義는 본래 인간의 생존본능에서 유래하여 2차적으로 조합된 것이니 사회라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도출된 것이다. 1차의 친親이 곧아야 2차의 정의義가 곧게 된다. 인류가 곧아야 사회가 곧게 된다. 인간의 존엄이 먼저다. 신이 일으킨 인류단위의 큰 일 다음에 인간이 일으킨 사회단위의 작은 일이 있다. 존엄 다음에 정의가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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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공이 묻기를
    “선비는 어떤 사람인가?
    공자 가로되.
    “염치를 알고 행하되,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임금을 명예롭게 하면 선비다.”
    자공이 그 다음 등급을 묻자
    “가족이 효자라고 하고 동료가 형제라고 하는 사람이다.”
    자공이 그 다음을 묻자
    “언어가 믿을 수 있고, 업무에 성과가 있는 사람이다.”
    자공이 정치인들 중에 괜찮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월급이나 챙기는 자들은 논하지 말자.”


    멋진 문답은 거의 자공의 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시시한 질문이나 던질 뿐이었다. 자공이 기분좋게 진도를 따라오는 제자다. 안회는 스스로 알아채기 때문에 가르칠 것도 없다. 자로는 좋은 질문을 많이 했지만 대부분 꾸지람으로 끝난다. 자로의 질문에 답하면서 공자는 선비의 좋은 점을 말하고 자로의 질문에 답하면서 공자는 선비의 경계할 바를 말한다.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임금을 명예롭게 하는 사람’이 선비라는 대목은 참 좋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신과의 일대일이요 인류의 대표자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곧 인류를 대표하여 의사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신은 임금을 대리하므로 임금의 인격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군자다. 이곳에서 대충 귀에 달달한 말을 듣고자 한다면 곤란하다. 70억 인류를 대표할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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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용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면, 차라리 과격한 사람이나 고집스런 사람과 함께 할 일이다. 과격한 사람은 진보적이고, 고집스런 사람은 원칙을 지킨다.”


    중용의 중中이 반드시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中은 중복되어 겹친다는 의미가 있고, 무겁다는 뜻도 있다. 밸런스의 원리에 따른 균형감각을 의미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 가장 좋지만 정의당과 같은 과격한 진보주의자나 표창원과 같은 보수적 원칙가도 나쁘지 않다. 눈치를 보며 그때그때 입장을 바꾸는 자가 가장 나쁘다. 

    중용中庸의 반대는 ‘쓸모’다. 보통은 모퉁이를 쓴다. 송곳이나 칼이나 망치나 돌출된 귀퉁이를 쓴다. 구석기 시대라면 돌을 깨뜨려서 날카로운 모퉁이를 ‘쓸 모’로 삼는다. 중용은 반대다. 바퀴의 축처럼 혹은 됫박처럼 돌출된 모퉁이가 아니라 움푹한 가운데를 쓴다. 구조론으로 치면 상부구조는 중용을 쓰고 하부구조는 모퉁이를 쓴다. 선중용 후쓸모라 하겠다. CEO는 중용을 쓰고 실무자는 쓸모를 쓴다. 합리주의는 중용을 쓰고 실용주의는 쓸모를 쓴다. 진보는 외교라는 중용을 쓰고 보수는 전쟁이라는 쓸모를 쓴다. 자기 자식에게는 사랑이라는 중용을 쓰고 남의 자식에게는 폭력이라는 쓸모를 쓴다. 의사결정을 쓰는 것이 중용이고 그 결정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것이 쓸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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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는 '쓸모없는 것'이야말로 '쓸모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의 말장난은 언어가 비루한 것입니다. 바보들에 의해 나쁜 쪽으로 악용됩니다. 당당하지 못한 언어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릅니다. 군자는 손잡이를 쓰고 소인은 칼날을 쓰는 것입니다. 군자는 원재료의 맛을 쓰고 소인은 조미료를 씁니다. 군자는 금의 신용을 쓰고 소인은 금의 때깔을 씁니다. 군자는 글로 적을 죽이고 소인은 주먹으로 적을 죽입니다. 일의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될 뿐입니다. 선합리 후실용이며 중용을 쓸 것인가 쓸모를 쓸 것인가는 일의 진행정도에 따라 정해지는 것입니다. 월드컵이 2년 남았을때는 중용을 쓰고, 이미 시합이 벌어졌을 때는 쓸모를 씁니다. 중용으로 팀을 꾸리고 쓸모로 골을 얻습니다. 바둑이라도 포석은 중용으로 하고 끝내기는 쓸모로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6.02.22 (23:49:10)

비록 주자학이라는 도그마 때문이었다고는 하나

조선의 선비들이 노자를 멀리한 것이 다행이다 싶습니다.


자로, 안회, 자공이야기는 읽으며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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