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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622 vote 0 2016.04.05 (21:51:25)

     

    중국과 프랑스의 유사성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군이 영국군에 고전한 이유는 유목민 특유의 역할분담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중국과 비슷하다. 중국은 멀리서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황제의 권위에 눌려서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이 없었고, 프랑스는 교황의 권위에 눌려서 왕권이 약화되어 있었다.


    크레시 전투, 푸아티에 전투,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는 똑같은 패턴으로 계속 진다. 아무리 바보라도 100년간 계속 지면 뭔가 교훈을 받는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거 없다. 이쯤 되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의사결정을 못하게 되어 있는 구조다. 그 시점에 고착화된 신분제도 때문이다.


    의사결정은 다음 단계를 보고 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장군이 전쟁에 이기면 다음 단계는 황제가 되는 거다. 그러므로 전투에 이긴 악비는 당연히 죽어야 한다. 이기면 공을 황제에게 돌리고 병을 핑계로 물러나야 한다. 절대 이길 수 없는 구조다. 귀족연합군인 프랑스도 비슷하다.


    교황이 실권을 가졌는데다 교황도 분열되어 있었다. 왕권이 약해서 귀족들이 왕의 말을 듣지 않았다. 왕이 군대를 장악한 영국군과 다르다. 프랑스군은 전투의 주력인 기사들이 신분이 낮은 보병과 용병출신 노궁수를 동료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후퇴한다는 이유로 자기편을 학살했다.


    그러다가 농부라고 무시하던 웨일즈 장궁병에게 당한다. 유목민과 농경민의 차이다. 프랑스는 원래 유목민이지만 그 시점에 농경민화 된 거다. 원래 중앙지역은 의사결정을 잘 못한다. 정치판에서 중도파가 좌파와 우파에게 밀리는 것과 같다. 중국과 프랑스 역시 지리적으로 중앙이다. 


    무엇인가? 변방은 다음 단계가 있다. 중앙을 쳐서 나눠먹는 거다. 중앙은? 다음 단계가 없다. 섬나라인 영국으로 쳐들어갈 일도 없다. 좀 이길만 하면 반드시 배신자가 나타난다. 프랑스 귀족들은 다수가 영국편에 붙었다. 그걸로 왕과 흥정을 했다. 프랑스 버전의 중국식 배신시리즈다.


    귀족들은 프랑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가문의 영광을 위해 싸웠다. 동탁을 치러온 16로 제후와 같다. 바로 배신한다. 당시만 해도 영국과 프랑스의 구분은 없었다. 영국왕과 귀족들도 프랑스어를 썼다. 왜 싸우는지를 모르고 싸운다. 아무나 이겨서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유목민은 돌아다니므로 스스로를 변방으로 여기지만, 농경민은 이동하지 않으므로 스스로를 중앙으로 여긴다. 당연히 배타주의적인 고립주의자가 된다. 외부인이 와서 좋을게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백년동안 계속 깨지다가 농부출신 잔다르크가 등장하여 비로소 전술을 바꾸었다. 


    잔 다르크의 출신지인 동레미 마을은 프랑스도 아닌 변방이었다. 독일땅이다가 프랑스땅이 된 알자스 로렌 지역이다. 잔다르크는 속공, 우회기동, 측면공격 등 기사도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싸웠다. 간단한 건데 왜 프랑스는 그동안 이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프랑스인이 신사라서?


    아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모여든 다양한 신분이라 통제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통제되지 않는 군대를 통제하는 방법은 무조건 닥돌하는 것이다. 평지에서 회전을 하면 좁은 공간에 몰려서 압사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빠진다. 허둥대다가 결국 좁은 공간에 몰려서 압사한다. 


    압사의 공포를 이겨서 곧 죽어도 자기 위치를 지켜야 압사를 안 당하는데 압사가 겁나서 한 명이 도주를 시작하면 대오가 무너져서 백퍼센트 압사당한다. 이 패턴이 백년동안 반복되었다. 하늘도 돕지 않았는지 크게 싸울때마다 비가 오거나 혹은 진흙탕이 되어서 결국 압사당했다.


    기병의 기동력으로 승부하려다가 영국군의 목책에 막힌데다, 비가 와서 진창에 빠지는 바람에 기동력이 떨어져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것이다. 한 번 지는건 병가지상사이나 계속 지는건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이다. 잔다르크는 확실히 천재적인 지휘관이었다. 


    글자도 모르는 16세 소녀가 왕을 설득해냈다. 마녀로 의심한 왕의 지시를 받은 사제들이 성수를 뿌리며 위협했는데도 침착한 태도로 이겨낸다. 영국군에 잡혀 이단재판을 받았을 때 70명의 사제와 논쟁하여 승리한 것을 보면 천재임은 틀림없다. 잔다르크 천재설은 최근의 경향이다.


    계몽주의시대 지식인들이 카톨릭을 제압하기 위해 잔다르크는 싸우지 않고 뒤따라 갔는데 운으로 이겼다는 설을 퍼뜨렸지만, 최근 학계의 분석에 의하면 잔다르크의 대규모 우회기동은 천재 전략가만 생각해낼 수 있다는 거다. 장수들이 평범한 소녀를 따를 리가 없는 판에 말이다.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신분이 높은 기사들이 그저 잔 다르크의 명령을 듣기만 하면 된다. 말 안 듣는게 인간이다. 말 들으면 된다. 그런데 안 듣는다. 바른 말 하면 더 안 듣는게 인간이다. 잔 다르크가 말 안 듣는 귀족들을 말 듣게 만든 방법은 물론 신의 이름을 빌리는 것이었다.


    평범한 농부소녀의 도움으로 왕이 된 것이 창피했던 샤를 7세는 적군의 손을 빌려 잔 다르크를 처리한다. 중국 역대황제가 써먹은 수법과 정확히 같다. 이유가 있다. 잔 다르크는 중세와 근세의 분기점에 서 있다. 귀족이 이끄는 중세에서, 평민이 이끄는 근세로 넘어가주기 어렵다.


    중국 역시 비슷하다. 중국이 민주화를 못하는 것은 거대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영국군은 귀족과 평민이 같이 밥먹는다는데 프랑스도 그렇게 하면? 세상이 바뀐다. 프랑스 귀족들은 그게 두려웠던 것이다. 중국 역시 그게 두려워 민주화를 못하고 있다. 15억 인구의 압박이다.

    

    인간들이 말을 안 들어서 진다. 말 듣게 하면 이긴다. 말 듣게 하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일의 다음 단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변방에 있고 중앙에 없다. 잔다르크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잔 다르크는 프랑스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때까지 프랑스는 없었다.


    교황청은 쪼개져 있었고, 샤를 7세는 왕위에 오르지도 못하고 귀족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귀족들은 안철수처럼 얍삽하게 약점을 잡고 양쪽으로 흥정을 시도했다. 배신자 세계의 모범인 부르고뉴는 결국 프랑스의 동맹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후 처참하게 몰락해 갔다. 


    변방에서 온 잔다르크가 쉽게 해결했다. ‘모르겠어? 너희는 프랑스고 쟤네들은 영국이라고.’ 그제서야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이 변방임을 알아챈 것이다. 대칭구조를 만들어주자 뇌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송나라의 주희가 쓴 방법과 비슷하다. ‘우리는 중화고 쟤들은 오랑캐라고.’ 


    수나라, 당나라, 요나라, 금나라는 중국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요나라 편에 붙는게 뭐 어때서? 요나라도 중국이고 송나라도 중국인데 뭐 어때?' ‘아냐 한족은 문명인이고 쟤들은 야만인이야. 피가 다르다고. 알겠어?’ 이 방법 먹힌다. 대칭구도를 만들어주면 자동적으로 변방이 된다.


    변방이면 중앙으로 쳐들어가는 다음 단계가 나와준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편가르기를 즐긴다. 의사결정을 쉽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 거다. 영국은 왜 강했을까? 바이킹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군은 기사와 보병과 궁수가 유기적인 팀플레이를 했다. 왕이 군대를 지휘했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퇴행행동도 비겁한 프랑스인의 뇌구조와 비슷하다. 자기네는 지식인이므로 중앙이라고 여긴다. 좌에는 종북이 있고 우에는 노빠가 있으니 자기들이 중앙에서 균형을 잡고 조율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게 망하는 공식이다. 노무현은 다르다. 세계를 바라본다. 


    한국은 변방이며 세계로 쳐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프랑스의 귀족들은 말 안 듣는 농민출신 보병이나 스위스 용병출신 노궁수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긴다. 천한 농민들과 수평적으로 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식인도 같다. ‘노빠들은 원래 고집불통이라 말 안 듣지.' 


    '노동자들은 무식해서 말 안들어.’ 말을 안듣는다고 생각하므로 경직된 전술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오로지 기사 중심으로 묻지마 돌격을 해야 대오가 유지된다고 여긴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측면을 치고, 뒤로 우회하여 배후를 치고 이런 복잡한 명령을 내리면 도주할 것으로 여긴다. 


    '농부들은 겁쟁이니까 당연히 도주한다구. 걔네들이 우리와 같은 기사도가 있나 뭐가 있나?' 그런 마음을 들키므로 실제로 도주한다. 눈빛에 다 드러나는 거다. 잔다르크가 복잡한 우회기동을 명령하면 오히려 신이 나서 더 잘 하는데 말이다. 자기네를 믿어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aDSC01523.JPG


    아무 것도 모르는 16세 소녀가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 구조를 알면 어렵지 않습니다. 말 안 듣는 인간을 말 듣게 만들면 됩니다. 단 말로 해서는 안 되고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다음 단계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알자스 로렌이 프랑스땅이 된 것도 프랑스인이 잔 다르크의 고향을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잔 다르크는 독일인인뎅?' 이렇게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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