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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281 vote 0 2016.04.06 (00:10:10)

       

    행복이나 불행은 바보같은 소리다. 그것은 소인배의 언어다. 군자가 입에 담을 어휘는 아니다. 인생에는 오로지 존엄과 비참이 있을 뿐이다. 진리를 모르고 죽는 것이 비참이다. 만날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비참이다.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것이 비참이다. 신과의 일대일이어야 한다.


    진리를 향해 똑바로 걸어간 사람은 탈레스, 니체, 공자 정도다. 탈레스는 단서를 제시했고, 니체는 의문을 품었으며, 공자가 답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 인류의 진짜 스승은 공자 한 사람 뿐이다. 석가와 헤겔과 플라톤이 한 마다씩 거들었으나 대개 소설이다. 노자도 나름 매력있으나 그 뿐이다.


    아이디어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 뭔가를 알아냈다는건 얼빠진 소리다. 인류의 임무는 일이다. 그 일을 해야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해야 한다. 그것은 진리를 만나고, 사람과 맞서고, 의사결정하는 것이다. 공자는 그것을 했다. 석가는 사람과 맞서지 않았다. 노자 역시 맞서지 않았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듯이, 스승과 제자가 만나서 커다란 세력을 이루는 것이며, 세상을 바꾸는 큰 일을 벌이는 것이며 그것은 체제와 맞서는 것이다. 인류 전체와 맞서야 한다. 잘 살려고 하면 안 된다.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보상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인정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답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소년은 탈레스여야 하고, 청년은 니체여야 하고, 장년은 공자여야 한다. 탈레스는 어떤 숨은 전제도 없이 순수하게 다가갔다. 탈레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지만 해맑은 소년처럼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하는거 말이다.


    니체는 ‘숨은 전제’를 들추었다. 우리가 짐짓 눙치고, 입맞추고, 배맞추고, 눈치보는 온갖 추태들 말이다. 낱낱이 들추어 별수없는 인간의 한계를 폭로했다. 맞서서 대항한 것이다. 신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전전긍긍하는 인간군상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니체 역시 숨은 전제가 있다.


    신에 대한 어리광이다. 신을 강자로 놓고 자신을 약자로 놓는다. 냉엄한 진리를, 무심한 역사를, 비정한 현실을, 몽매한 인류를 위에서 군림하는 강자로 놓고 자신을 약자로 포지셔닝한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풍자하고 야유하고 까발리고 조소한다. 그 안에 비애가 있다. 별 수 없다는 말이다.


    공자는 그러한 처세를 구사하지 않았다. 소년처럼 해맑게 정면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깨졌다. 깨질때마다 더 큰 세계로 나아갔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약자의 포지션에 자리잡고 뒤집기만 하면 단조롭다. 공자는 강자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왕과 맞장뜨려고 했다. 인상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오자나 한비자에게도 그런 풍모가 있다. 권력자에게 깨져도 당당하게 강자의 길을 간다. 뒷사람이 그 길을 따를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자는 대담하게 의사결정을 잘하는 사람을 길러냈다. 인의가 어떻고 하는건 곁가지다. 용맹하게 의사결정을 잘하는게 진짜다. 자로는 그러다 죽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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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절대원리는 의사결정이 쉬운 쪽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지구가 둥근 이유는? 둥근 형태가 더 의사결정이 쉽기 때문이다. 중력장 안에서 둥근 것이 더 외력에 대응하기 쉽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이유도 중력장에 잡혀서 태양 주변의 타원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학이 한쪽 다리로 서는 이유는? 한쪽 다리로 서는게 뇌의 입장에서 의사결정이 쉽기 때문이다. 중력 때문에 두 다리로 서는게 쉬워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면 뇌 때문에 한쪽 다리로 서는게 더 쉽다. 사람이 배신하는 이유는? 그 상황에서 배신이 더 쉽기 때문이다. 배신하지 않는다면?


    배신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간 거다. 그래서 구조다. 깊이 들어가면 무엇이 있는가? 다음 단계가 있다. 다음 단계와 연동시켜 결정된다. 소도 누울 자리를 바라보고 다리를 뻗는다 했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언제라도 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연동시켜 의사결정한다.


    그것이 결따라 가는 것이다. 군중이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은 조급하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경향 때문이다. 군중은 장기전을 못한다.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인디언은 가족을 잃어버릴까봐 장기전을 할 수 없다. 얼른 전투를 끝내고 가족이 있는 티피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에 백인에게 진다.


    잔다르크는 이 원리를 역이용했다. 갑자기 모여든 군중의 조급한 마음을 부추겨 신속한 공격으로 승리를 얻어냈다. 결따라 간 거다. 군중의 결을 따르면 장기전을 못한다. 이 문제에 대응하려면 중간허리를 키워야 한다. 백인장을 키우고 중대장을 키워야한다. 간부를 키우고 장교를 키워야 한다.


    ◎ 세상의 절대원리는 의사결정원리다.
    ◎ 자연은 의사결정하기 쉬운 쪽으로 의사결정한다.
    ◎ 다음 단계와 연동시키면 결이 생겨서 의사결정이 쉬워진다.


    잔 다르크의 방법은 장교를 키우지 못하므로 한계가 있다. 장기전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일의 높은 단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공자는 인仁으로 시작했고 잔다르크는 신神으로 시작했다. 공자는 의義로 나아가 중간허리를 키웠고, 잔 다르크는 프랑스의 비전을 제시하여 징검다리를 놓았다.


    잔 다르크의 비전은 잔 다르크가 죽은 이후에 빛났다. 프랑스는 강해졌고 나폴레옹은 잔 다르크를 십분 이용했다. 프랑스 혁명도 잔 다르크에 기댔음은 물론이다. 장기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중간허리를 키워야 한다. 중간은 의다. 의를 담는 그릇은 인이다. 잔 다르크에게는 그 그릇이 없었다.


    일은 다음 단계로 진도를 나가야 한다. 공자는 예禮를 제시했다. 인으로 시작하여 판을 벌이고 의로 전개하여 중간허리를 키우고 최종적으로 예를 모두에게 되돌려준다. 예는 다분히 정치적이므로 더 중간허리에 가깝다. 더 최종적이고 직접적인 것은 악樂이다. 공자의 최종결론은 예악이다.


    새집을 만들어주면 새가 들어와 알을 낳는다. 소초를 만들어주면 벌이 꿀을 모은다. 지도자가 방향을 제시하면 대중이 따른다. 소인배는 단기적 성과를 다음 단계로 제시한다. 보수꼴통이 쓰는 방법이다. 그들은 중간허리를 키우지 않는다. 지식을 키우지 않는다. 당장의 성과를 바라서 조급해한다.


    일의 결을 따라가야 한다. 다음 단계를 제시해야 한다. 의사결정이 쉽게 만들어주면 된다. 높은 단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2단계, 3단계, 4단계, 5단계가 계속 나와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의사결정이 쉬운가? 척력을 인력으로 바꾸어 계를 설정해주면 된다. 그것이 공자의 인仁이다.


    공간적인 대칭을 성립시켜 특이점을 형성하면 된다. 그것이 공자의 의義다. 시간적인 호응을 만들어주면 된다. 그것이 공자의 예禮다. 다음 단계가 제시되므로 인간이든 자연이든 움직인다. 인간이 통제된다. 엔트로피 때문에 이렇게 된다. 대부분 잘못된 결정은 연동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지식인의 판단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결정이지만 일의 다음 단계와 연동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떳떳한 명분만 있고 실무를 맡을 중간허리가 없기 때문이다. 혹은 잘못을 저지르는 이유는 다음 단계와 연동되지만 그것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는 명분도 없고 중간허리도 없다.


    ◎ 명분있는 바른 결정인데 먹히지 않는 경우 –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이 없어서 일의 다음 단계와 연결되지 않는다. 허무하다. 지식인의 실패공식이다.


    ◎ 한사코 그릇된 결정으로 달려가는 경우 –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격으로 어떻게든 다음 단계의 대응을 찔러주면 무조건 행동으로 옮긴다. 보수꼴통의 현장에서 먹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이다.


    인간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늑대무리에 쫓겨 절벽으로 내달리는 사슴떼처럼 의사결정을 방해하면 인간은 보이지 않는 그물에 갇혀버린다. 군중은 패닉에 빠져 일제히 한 방향으로 질주한다.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히틀러와 트럼프가 쓰는 방법이다. 그들은 사냥꾼처럼 군중을 몰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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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MJEJ

2016.04.07 (00:36:56)

 행복이나 불행은 바보같은 소리다. 그것은 소인배의 언어다. 군자가 입에 담을 어휘는 아니다. 인생에는 오로지 존엄과 비참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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