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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857 vote 1 2013.10.29 (18:37:28)

 


    시작은 준비로 시작한다. 구약성경은 유태인이 주장하는 인류의 역사다. 역사가 시작되려면 역사의 무대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천지창조는 인류의 역사를 준비하는 무대의 설치가 된다.


    시계의 바늘이 돌아가려면 태엽이 감겨있어야 한다. 태엽이 감기는 방향과 바늘이 도는 방향은 반대다. 문제는 준비작업과 실행작업은 방향이 반대라는 거다. 여기서 모든 오류가 일어난다.


    건물을 위로 쌓으려면 땅을 아래로 다져야 한다. 뛰려면 움츠려야 한다. 열려면 닫아야 한다. 올리려면 내려야 한다. 시작하려면 완전해야 한다. 시작은 불완전이며 준비는 완전해야 한다.


    집을 짓는데 준비가 불완전하다면? 형광등의 스위치를 켰는데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곤란하다. 일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되지만 준비는 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은 불완전하게 시작하지만 완전한 어른이 되어있어야 한다. 사격은 불완전하게 쏘아지지만 총알은 완전하게 장전되어야 한다. 불완전하게 쏘아도 쏘다보면 맞는다. 그런데 총알이 없다면?


    이건 다른 거다. 학문은 어차피 불완전하다. 과학은 어차피 불완전하다. 그러나 진리는 완전하다. 과학은 실행이고 진리는 준비이기 때문이다. 운전은 불완전해도 되나 차는 완전해야 한다.


    인류의 지혜를 집약한 한 권의 책을 쓰기로 하자. 책은 불완전한 인간의 생각을 담아낸다. 생각은 불완전해도 언어는 완전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언어는 완전한가? 원초적 질문이 던져진다.


    인간의 언어는 단어를 모아서 만든다. 그 언어를 준비하는 알파벳은 단어를 쪼개서 결정된다. 모으기와 쪼개기는 진행방향이 반대다. 언어는 불완전해도 알파벳은 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출발점이 중요하다. 컴퓨터를 다루려면 자판을 익혀야 한다. 한글을 배우려면 자모를 익혀야 한다. 영어를 배우려면 알파벳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한자는 알파벳이 없다. 이상하다.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격이다. 설계도 없이도 집은 지을 수 있다. 베테랑의 경험과 선배의 조언에 의지하면 시행착오를 거쳐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주먹구구다.


    주먹구구가 가능한 이유는 상대가 반응하기 때문이다. 반응하면 상호작용한다. 상호작용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거쳐 답을 찾는다. 산에 가면 법을 잡고 물에 가면 물고기를 잡는다.


    그런데 그렇게 반응해주는 상대가 없다면?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면? 도와줄 선배와 이끌어줄 스승이 없다면? 물리학은 그 상대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상대가 보이면 상대성의 세계다.


    상대가 없는 절대성의 세계가 있다. 상대가 있는 문명은 여기까지다. 20세기는 상대가 있었기에 엎어지고 자빠지면서도 재도전할 수 있었다. 21세기는 상대가 없는 절대성의 세계로 진입한다.


    정리하자. 처음에 시작이 있고, 시작하기 전에 준비가 있다. 준비와 실행은 방향이 반대다. 그 때문에 온갖 착오와 혼선이 일어난다. 준비는 절대 완전해야 하고 실행은 불완전해도 괜찮다.


    우리는 설계도 없이 집을 지어왔다. 준비없이 실행해 왔다. 상대가 있을 때는 상대의 반응을 보고 판단하므로 준비가 없어도 거듭 도전하다 보면 답을 찾게 되지만 상대가 없으면 곤란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id: 배태현배태현

2013.10.29 (19:38:13)

20세기 상대성의 시대와 21세기 절대성의 시대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선생님?

[레벨:9]길옆

2013.10.29 (19:55:14)

저도 하고 싶었던 질문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10.29 (22:13:44)

문명은 식, 의, 주, 차 그리고 여가로 발전합니다.
식의주는 생존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있습니다.

인간이 가만 있어도 상대가 인간을 건드립니다.
인간은 방어모드지요.

식의주가 더 이상 인간을 건드리지 않을때까지
진도를 나가주면 됩니다.

정답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차부터는 인간이 공격포지션입니다.

없어도 되는 분야입니다.
그러므로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어디까지 도달하면 끝이라는게 없어요.
정보화 IT는 무한의 세계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10.29 (22:23:25)

인간이 신대륙으로 진출한다면 어디까지 가야한다는게 없습니다.
안가도 되는데를 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식의주가 충족되면 더이상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초가집에 살면 찬바람이 인간을 팹니다.
인간은 비싼집으로 회피기동을 하는 거죠.

그러나 문학, 예술, 게임, 인터넷, 스마트폰이 인간을 때립니까?
그건 아니죠.

이제부터는 자연이 인간을 몰아가는게 아니라 인간이 자초한 세계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0]id: 배태현배태현

2013.10.30 (04:45:04)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삼백

2013.10.30 (02:48:53)

21세기 절대성의 시대는 개인 스스로 삶의양식 행동양식을 창조해나가는 미학의 시대라고도

할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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