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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049 vote 0 2016.05.05 (23:27:19)

     

    세상에 사람이 많으나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니 아주 없다시피하다. 사실 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인류에게 바른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숫자가 없으면 셈할 수 없다. 마찬가지다. 언어가 없으면 사유할 수 없다.


    아라비아 숫자만으로는 충분한 수학이 되지 않는다. 도형도 있어야 하고 그래프도 있어야 한다. 현대수학은 여러가지로 풍성해졌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는 언어로는 충분한 사유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언어를 혁명해야 한다. 언어는 더 풍성해져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과학이다. 과학의 언어는 수학이다. 그 수학의 개념 및 정의는 변하고 있다.


    “수학(數學)은 양, 구조, 공간, 변화 등 개념을 다루는 학문이다. 현대 수학은 형식 논리를 이용해서 공리로 구성된 추상적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위키백과]


    “물건을 헤아리거나 측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수(數)·양(量)에 관한 학문이다.”[두산백과]


    시대가 변하니 개념도 변한다. 수학의 개념은 두산백과의 ‘헤아리는 것’에서 위키백과의 ‘추상적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 마땅히 언어에 대한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언어는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나타내고 전달하는 수단으로 정의되고 있다. 나타내고 전달하려면 최소 2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혼자 있으면 언어가 필요없을까? 언어는 타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사물을 관측하고 생각해내는 원리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 낡은 개념 – 언어는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 바른 개념 – 언어는 사유를 복제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도구는 인간을 보조한다. 그런데 알파고는 인간을 능가한다. 도구가 발전하면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컴퓨터는 오랫동안 ‘계산기’로 생각되었다. 지금은 컴퓨터를 계산기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컴퓨터가 계산만 하지는 않듯이 언어가 전달만 하지는 않는다.


    폴리네시아 부족민들은 앞바다의 작은 카누를 잘 발견하면서도 먼 바다의 큰 범선을 보지는 못한다고 한다. 범선이 섬 앞을 지나가는데도 모른다. 물어보면 범선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수평선의 뭉게구름에 주목하지 않듯이, 부족민들은 범선에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지 못한다.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범선을 나타내는 언어가 없으면 눈으로 뻔히 보고도 존재를 포착하지 못한다.


    소실점은 눈으로 보면 보이는데 동양인 중에는 지난 5천년 동안 그것을 보는데 성공한 사람이 없다. 개념이 있어야 인식이 된다. 사랑이라는 말이 없으면 사랑을 모르고, 자유라는 말이 없으면 자유를 모른다.


    단어가 있어도 개념이 대칭적이지 않으면 주목하지 않는다. 사랑과 미움, 자유와 억압, 경찰과 도둑, 선과 악으로 짝지어줘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목한다. 비로소 가슴이 뛰고 머리에 피가 모인다.


    언어 이전에 관점이 있다. 숫자 이전에 집합이 있다. 계산 이전에 프로그래밍이 있다. 알파고는 스스로 프로그래밍한다. 결과 이전에 원인이 있다. 어떤 것이 있기 이전에 그것의 자궁이 있다. 어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또다른 그것이 어떤 그것보다 먼저 있었다. 반드시 자궁이 있다.


    물질 이전에 에너지가 있다. 모든 것의 이전에 ‘일’이 있다. 무엇인가? 연역이다. 모든 것은 귀납이며 그 이전에 연역이 있다. 수학은 연역이다. 수학의 수학이 있다. 연역의 연역이다.


    모든 것의 근원에 ‘의사결정’이 있다. 일은 의사결정의 연결로 이루어진다. 일이 하는 일은 복제다. 하나의 복제는 다섯차례 의사결정에 의해 성립한다. 이에 완전성 개념이 도입된다. 되다만 것이 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어로 말하는 이유는 그 말을 배웠기 때문이다. 언제 배웠지? 진실을 말하자. 배우지 않았다. 저절로 터득한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말하기를 배우지 않았다. 초등학교는 글자를 가르친다. 그렇다면 말하기는 누구에게 배웠나? 타고난 뇌기능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새 저절로 배워진 것이다.


    망아지는 태어난지 몇 시간 만에 걷는다. 누구도 걷기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새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난다. 어미새는 절벽에 둥지를 튼다. 첫 번째 비행에 실패하면 죽음 뿐이다. 연습은 없다. 처음부터 날거나 아니면 영원히 날지 못하거나다. 마찬가지다. 인간의 언어능력은 타고 나는 것이다. 그 언어는 완전할까? 천만에!


    인간의 언어가 불완전하나 그럭저럭 쓸만해진 것은 많은 사람의 지혜가 합쳐졌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정도는 할 수 있으나 70억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은 위태롭다. 지구인의 언어수준으로는 가당치 않다.


    마르크스도 실패했고, 나폴레옹도 실패했고, 히틀러도 실패했고, 스탈린도 실패했고, 모택동도 실패했고, 진시황도 실패했다. 야심만만하게 시작했지만 보기좋게 추락하고 말았다. 그거 원래 안 되는 거다. 인간의 언어수준이라는 장벽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그럴 듯 했다. 진시황의 군현제나, 나폴레옹의 법전이나, 마르크스의 혁명이나 다 기세를 올릴만한 그림이었다. 잘 나가다가 언어에 막혔다.


    구구셈이나 하는 정도로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없고, 인류언어의 수준으로는 70억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요리는 접시에 담아야 완성된다. 좋은 이상은 완전한 언어라는 좋은 그릇에 담겨야 한다. 언어가 문제다.


    인간은 여전히 생각할줄 모른다. 어쩌다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나타내고 전달하는 정도다. 뇌 안에서 그 생각이 떠오르는 과정은? 모른다. 사실은 뇌가 패턴분석을 해서 비슷한 것을 복제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자신도 모른다. 타고난 능력을 써서 무의식적으로는 하는데 의식적으로는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적인 머리로도 못한다. 아인슈타인은 그다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수학은 복잡한 것을 단순화 시킨다. 수학으로 구조의 핵심을 추출한다. 그 추출된 핵심이 아인슈타인 머리 속에 저장된 어떤 패턴과 일치했을 때 격렬하게 반응한 것이다. 격발이 일어난다. 그것이 아이디어다.


    무엇인가? 뇌를 굴려서 답을 찾아낸게 아니라 이미 머리 속에 있는 것과 일치되자 뇌가 반응한 것이다. 그러한 일치는 극도로 단순화 시켜야 가능하다. 그 단순화에 이르는 수학적 과정은 물론 천재적인 지능에서 나온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격발 자체는 원래부터 있던 것을 사용한 것이다. 천재 할배라도 벗어나지 못한다.


    구조는 단순하다. 에너지의 확산을 수렴으로 바꾸어 계를 유도하고, 계의 균일성에서 핵을 유도하고, 핵을 움직여 공간의 좌우대칭으로 얻고, 공간의 대칭을 시간의 호응으로 바꾸면 에너지가 처리된다. 에너지의 모순상태가 해소되는 것이다.


    이것이 완전한 것이다. 처리하려는 대상을 추상화시켜 얻은 수학적 구조를 여기에 대입하여 패턴을 일치시키면 된다. 그럴 때 뇌가 반응한다.


    뇌 안에서 이런 과정이 진행된다. 그런데 자신도 모른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이 골똘히 생각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모형을 추출하는 수학적 과정은 수학자가 하는 것이고 아인슈타인이 하는 것은 그렇게 얻은 모형을 대입하는 것이다. 이건 너무나 쉽다. 단 배짱이 있어야 한다. 맞을때까지 맞춰보면 된다.


    알파고가 이세돌보다 머리가 좋은 것일까? 아니다. 배짱이 좋은 것이다. 컴퓨터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연산능력은 컴퓨터가 낫지만 이건 알파고가 실제로는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한 것이다.


    이세돌은 하나씩 생각하지만 컴퓨터는 한꺼번에 수백만가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질만을 본다면 알파고의 우월함은 배짱 밖에 없다. 알파고가 소심하게 두는 일은 절대로 없다. 확률을 계산하니까.


    수학자나 철학자는 고급개념을 써서 사유의 수준을 끌어올리지만 여전히 형편없다. 모형을 추출할줄 모른다. 패턴분석을 사용하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을 말할 뿐 의도하여 생각하지 못한다. 구조론을 써야 진짜 생각을 할 수 있다.


    추리소설 작가의 패턴은 뻔하다. 소설 쓰기 전에 패턴을 만들어놓고 시작한다. 기가 막힌 반전이 있지만 그것도 사실 뻔한 거다. 시간을 바꾸거나 공간을 뒤트는 거다. 작가는 웃는다. ‘야! 이런 어설픈 수법에 독자들이 낚인다는게 신기하잖냐? 이번 항차도 풍어일세.’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이렇게 떠들거다.


    역사이래 다양한 철학사상이 있다. 그러나 패턴으로 보면 같다. 모형이 같다. 이렇게 다양한 주의주장이 있다는 것은, 철학자들이 모형을 추출해내는 수학적 추상화에 실패했다는 거다.


    즉 언어학이 뒤떨어졌다는 거다. 숫자가 없어서 셈을 못하는 것과 같다. 동양수학자가 도형이 없어서 기하를 못하는 것과 같다. 낡은 언어로는 번듯한 말을 할 수 없다. 언어를 갈아야 한다.


    ◎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 합리주의와 실용주의
    ◎ 마르크스와 실존주의
    ◎ 공자사상과 노자사상
    ◎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 오자병법과 손자병법
    ◎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 일원론과 이원론


    무엇이든 원인측을 보면 하나고 결과측을 보면 둘이다. 시합을 보면 하나가 승자와 패자로 보면 둘이다. 시합중에는 승자와 패자로 나눠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원론인 것이다. 시합이 끝나면 둘로 나눠진다. 에너지로 보면 일원론이고 물질로 보면 이원론이다. 그 중에서 정답은 일원론이다.


    왜냐하면 계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완전성의 문제다. 일은 끝나봐야 아는 거고 복제하면 완전하다. 오자병법은 전략과 전술로 이기지만 손자병법은 전술로만 이긴다. 전략은 없다. 위에 열거한 대칭개념들 중에서 오른쪽은 일정한 조건에서만 먹힌다. 불완전하다는 말이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문제에 답이 여럿일 수 있지만 출제자의 의도를 헤아려서 하나의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 출제의도와 어긋나는 엉뚱한 논리를 편다면 곤란하다. 공자가 위고 노자가 아래다. 진보가 위고 보수는 아래다. 뇌도 있어야 하고 몸통도 있어야 하지만 뇌가 위다. 의사결정으로 보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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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작가의 추리소설을 읽고 금방 그 작가의 수법을 복제하여 표절작을 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되는 사람은 추리소설 백번 읽어도 패턴을 추출하지 못합니다. 뻔한 수법이 있다는건 아는데 막상  패턴을 추출하려고 하면 그게 또 잘 안 됩니다. 반면 한 번 읽고 패턴을 추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야의 그림문자를 한 번 보고 해독한 아홉살 꼬마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그렇습니다. 발굴단에 참여한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어깨너머로 보고 단번에 알아냈습니다. "아빠! 재규어 왕이 뱀 왕에게 선물을 보냈대." 특히 어린이들이 패턴을 잘 추출합니다. 영어로 된 게임의 조작방법을 키 몇 번 쳐보고 금방 알아냅니다. 아인슈타인은 그러한 어린이의 뇌를 가진 순수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아인슈타인보다 머리 좋아도 안 되는건 안 되는 겁니다. 패턴이 뇌에 입력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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