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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861 vote 2 2019.04.12 (19:49:58)

      
   A는 비A가 아니다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부는 그것'이 바람이다. 여기서 '부는 그것'은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메커니즘의 작동이 사건의 원인이다. 이 말은 중간에 옆으로 개입한 것은 사건의 원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바람이 불기 전에 '부는 그것'이 먼저 와 있었다. 바람보다 먼저 와 있었다. 부는 그것이 불어서 비로소 바람이 된 것이다. 


    이명박이 음모를 꾸며서 나쁜 짓을 했다. 여기서 중간에 개입한 것은 이명박의 음모다. 음모에 주목하게 된다. 비뚤어진 음모론에 빠지게 된다. 괴력난신을 추구하게 된다. 내 아들이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서 나쁜 길로 빠졌다. 여기서 중간에 옆으로 개입한 원인은 친구의 꼬드김이다. 틀렸다. 나쁜 그것이 먼저 있었다.


    나쁜 그것이 움직여서 내 아들에게로 나타난 것이다. 내 아들을 장악해버린 나쁜 그것의 시스템에 주목하게 된다. 근본을 봐야 한다. 축구시합에 졌다고 치자. 근본적인 원인은 실력이 없는 것이고 중간에 개입한 원인은 골키퍼가 슛을 막지 못한 것이다. 대개 중간원인을 근본원인으로 착각하고 더 이상 탐구하지 않는다. 


    중간원인은 부수적인 것이다. 구조론에 따르면 하나의 사건에 다섯 가지 원인이 있다. 그 다섯 중의 부수적인 하나에 뒤집어씌우고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그 부수적인 원인은 드러난 결과의 시점과 장소와 양상을 결정할 뿐이다. 그 중간원인은 대개 누군가 중간에 옆으로 개입해서 작위하여 농간을 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모론으로 치닫게 되어 있다. 꼼수 좋아하고 협잡 좋아하고 손자병법 좋아한다. 바둑을 두어도 꼼수바둑으로 이기려 한다. 씨름을 해도 꾀씨름에 집착한다. 야구를 해도 작전야구에 매몰된다. 후진국 특징이다. 궁중사극에는 늘 음모와 계략이 나오지만 그런 나라는 후진 나라다. 특히 중드는 음모백화점이다.


    청나라 황실 배경의 중국 드라마를 보자면 역시 중국은 형편없는 후진국이로구나 하고 탄식하게 된다. 김용의 녹정기에 나오는 위소보가 쓰는 유치한 잔꾀가 먹힌다면 말이다. 조정대신이나 왕이 그런 시시한 음모에 넘어갈 정도로 바보들이 아니다. 장희빈 어쩌구 하는 야사의 일화는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A는 A 아닌 것이 아니다. '부는 그것'이 바람이다. 사건의 매커니즘이다. A는 가리켜 지목되는 것이다. 사건의 바운더리를 그어야 한다. 마이너스로 접근해야 바르다. 아닌 것을 배제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A와 비A 사이에 대칭이 있다. 먼저 존재가 사건임을 깨달을 일이다. 아닌 것을 배제하면 바운더리가 드러난다.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나다워야 한다고 배운다. 남자답게 부모답게 자식답게 학생답게 여자답게 엄마답게 하는 식의 '답게'가 인간을 질식시킨다. 협소해진다. 활동범위를 위축시킨다. 행동반경을 좁히고 확률을 떨어뜨린다. 나다움을 찾지 말고 나답지 않은 것을 배제해야 한다. 나는 입자가 아닌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선은 악이 아닌 것이다. 악행을 하지 않으면 선이다. 특별히 선행을 해서 천국갈 야심을 버리고 악행을 방지하며 계속 가다 보면 선에 이르게 된다. 시스템은 계속 가는 것이며 계속 가다 보면 점차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줄이다보면 사업은 좋아진다. 시스템은 에너지를 태운 동적상태의 계이기 때문이다.


    이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나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보통은 나는 너에 의해 지목되는 것이다. 네가 가리키는 것이 내다. 이때 네가 내를 제한한다. 내가 100이고 네가 70이라 치자. 네가 나를 지목한다. 네가 70으로 들이대면 내가 70으로 막는다. 여기서 30이 이탈한다. 어린이와 상대하다 보면 어린이가 되는 것이다. 


    양아치와 상대하면 양아치가 된다. 내가 상대하는 대상에 의해 내가 규정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소해진다. 나는 점점 작아진다. 남이 나를 규정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나는 내가 아닌 것이 아니다. 가능성을 열어젖히기다.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거다 하고 답을 쫓아가는 자는 신기루를 좇고 허상을 좇는다. 


    행복을 좇고, 사랑을 좇고, 평등을 좇고, 선을 좇고, 무언가 답을 정해놓고 좇는 자는 자신의 기회를 박탈하고 가능성을 상실하고 확률을 낮춘다.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 하고 벽에 써 붙이면 안 된다. 무엇이 되겠다고 선언하면 안 된다. 민주주의는 최악을 방지하는 시스템이고 공산주의는 최선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그 차이다. 무언가 플러스 요소를 추구하다가 팔다리를 하나씩 잃고 왜소해진다. 평등을 추구하므로 말을 많이 하며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고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회의를 오래 끄는 자가 다 먹는다. 성질 급한 자가 떨어져 나간다. 올바름을 추구하면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엘리트만 남고 민중은 다 떨어져 나간다. 


    옳음은 단기적인 옳음이기 십상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면 측정해야 한다. 측정하려면 개입해야 한다. 개입하려면 멈추어야 한다. 달리는 말을 멈추어 측정하려고 하는 즉 관성력을 잃는다. 기세를 잃고 방향성을 잃는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도마에 올려놓고 칼질을 하면 시스템은 망가진다. 


    반면 통제가능성을 추구하면 달리는 말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도마에 올리지 않는 것이다. 확률을 믿고 방향성을 따라가는 것이다. 어린이가 말다툼을 하면 학부모가 개입하여 옳고 그름을 가린다며 누가 원인제공자인지를 추구하다가 부모 사이에 감정 상하고 관계는 틀어지고 서로 상처 입어 영원히 복구되지 않는다.


    비가역적인 손상을 입는다. 이미 많은 것이 깨져 있다. 그사이에 잃은 게 너무 많아서 열 배로 보복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백 배로 보복한다. 그러다 망가지는 것이다. 동을 정으로 재단할 수 없다. 움직이는 생명의 호흡을 죽어있는 저울에 올려놓고 판단할 수 없다. 에너지를 주는 관계의 링크는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생각하자. 진실은 동적인 것이며 장기전이며 방향성이며 통제가능성이며 에너지이며 연결된 것이며 링크가 있으며 다음 단계가 있는 것이다. 규정하려 하고 계측하려 하고 지목하려 할 때, 나다움을 추구할 때, 목표를 세우고 정해놓은 답을 찍으려 할 때, 그때마다 리스크는 쌓이고 가능성을 잃고 가속도를 손해본다.


    기세를 잃어버리고 연결이 끊어져 버린다.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쭉정이만 남는다. 그 쭉정이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진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존재는 시스템이며 시스템은 계에 에너지가 걸려 있으며 동적사건을 두고 중간에 개입해서 판정하려고 멈춰 세울 때 에너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양반이다. 나는 남자다. 나는 이대 나온 여자야. 나는 강남에 산다구. 하는 식으로 나를 규정할 때 나는 거의 망실된다. 나는 거의 사라져 버린다. 나는 희미해진다. 나는 나에게서 떠난다. 링크가 떠나고 에너지가 떠나고 기세가 떠나고 가속도가 떠나고 방향성이 떠난다. 거죽이 있을 뿐 거기에 나는 남아있지 않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4.13 (04:16:57)

"진실은 동적인 것이며 장기전이며 방향성이며 통제가능성이며 에너지이며 연결된 것이며 링크가 있으며 다음 단계가 있는 것이다. "

http://gujoron.com/xe/1080062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2019.04.13 (21:39:28)

어린이와 상대하니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씀에 무릎이 탁입니다. 어린아이와 싸우고서 교육한다는 어른들이 참 많습니다.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는 뭔가를 준비하지 않고, 근본적인 환경을 바꾸지 않고 아이와 말싸움 하고서 아이 기질을 탓하고, 부모는 교사 탓하고, 교사는 부모와 아이탓합니다. 근본적인 원인탐색 없이 다음 단계가 마련되지 않은 훈육은 그냥 동네 사람들 말싸움과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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