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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71 vote 0 2023.07.28 (19:41:46)

    김부식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연대를 비슷하게 맞추려는 생각은 있었을 것이다. 주몽 이전에 구려가 있었고, 신라 이전에 사로가 있었고, 백제 이전에 목지국 있었다. 고구려는 사실상 태조왕이 건국했지만 정통성을 주장하려면 주몽이 건국한 것으로 기록해야 한다. 


    원래 그렇게 한다. 태조왕이 선대의 역사를 날려버렸다면 그게 더 잘못된 것이다. 물론 실제로 고구려 역사를 집필한 것은 후대의 일이지만 말이다. 태조왕이 118살을 살았다는데 이런 것을 믿으면 안 된다. 고구려사도 편집되었는데 신라사가 편집되지 않을 리가 없다. 


    주몽과 박혁거세는 실존인물이지만 건국자는 아니다. 한자도 없는데 누가 기록했을까? 구전된 것이다. 창업군주는 기억하지만 그 이후는 까먹는다. 박혁거세와 주몽의 창업연대는 비교적 정확하지만 그 이후로는 상당히 망실된 것이다. 고구려는 2세기에 건국했다. 


    신라는 3세기부터 존재감을 드러낸다. 외교를 해야 국가다. 박혁거세가 왕이라고 선언했지만 외부에 선언한게 아니고 동네 형님들에게 선언한 것이다. 박혁거세는 국가의 왕이 된 적이 없다. 당시는 족장을 왕이라 불렀으므로 왕이라고 해도 족장의 의미로 봐야 한다. 


    3세기 이전은 허위로 날조한게 아니고 있는 것을 까먹은 것이다. 외교도 하지 않는데 기록할 이유가 있겠는가? 기록할 필요가 없는데 뭘 기록해? 수백 년 후에 선대의 일을 기록하자니 연대가 맞지 않는다. 억지로 맞추니 왕의 나이가 많아진다. 이상한건 당연한 일이다.


    역사서는 개인이 쓰는게 아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감독했을 뿐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절충하여 무난한 그림을 선택한다. 신라는 국가라고 하기 어려운 부족시대의 구전을 역사로 인정했고 고구려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고구려에 불리한 거다. 


    그래서 북한은 고구려사를 기원전 2세기로 소급한다. 신라는 김씨로부터 시작하는게 합리적이지만 그렇다고 기록이 버젓이 있는데 날려버릴 수도 없다. 부실한 기록이라도 인정하는게 맞다. 중요한 것은 고구려와 백제는 건국세력이 다른 곳에서 이주해 왔다는 거다. 


    건국연대를 특정할 수 있으므로 주몽 이전의 구려사를 날려버리는데 부담이 없다. 신라는 애매하다. 박석김이 돌아가면서 왕을 하는 것도 이상하고, 차차웅은 무당인데 왕이라는 것도 애매하다. 통째로 날리는 것도 부담이 된다. 신라인은 태조 성한왕을 시조로 한다. 


    김부식이 임의로 성한왕 이전의 신라사를 날려버릴 수는 없다. 신라인들이 이미 날조해 놓았을 수도 있다. 김부식이 참고한 해동고기에 날조된 기록이 있다면 어쩔 수 없다. 신라사는 김부식이 쓴 것이 아니라 통일신라의 어떤 사람이 쓴 것이다. 국가의 자연발생은 없다. 


    그렇다고 기록이 있는데 날려버리면 안 된다. 기록자들이 절충했다는 말이다. 편집은 신라시대에 일어났다. 역사는 구전되다가 어느 시점에 기록된다. 기록할 가치가 있어야 기록한다. 기록할 가치는 왕이 봉건 제후들을 제압할 때다. 법과 제도와 정권이 바뀌었을 때다. 


    주몽이나 온조나 박혁거세 시절에 봉건제후를 제압할 실력이 있었을까? 없다. 기록되지 않고 구전된 것이다. 삼국사기 기록이 날조되었다고 보는 것은 이상하고 망실되었다고 보는게 정상이다. 날조된 부분이 있어도 이전에 날조된 기록을 삼국사기가 편집한 것이다.


    1. 역사는 구전되다가 어느 시점에 기록된다.


   2. 신라는 건국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 건국시점은 기록자 마음이다. 최초 기록자는 신라인이다.


    3.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인이 이주해 왔으므로 이주시기를 건국시점으로 특정할 수 있다.


   4. 육부촌장이 왕을 선출했다는건 말이 안 되지만 족장이라면 말이 된다. 당시에는 족장을 왕으로 불렀다. 애매한 부분이다.


   5. 초기 신라사를 신뢰할 이유는 없지만 날조한게 아니라 망실된 것이다. 날조했다면 신라시대에 날조한 것이다. 


   6. 초기에 낙랑이나 말갈과 충돌했다는 기록은 낙랑의 동맹세력, 말갈의 추종세력과의 마찰로 봐야 한다. 잘 모르는 외부인은 다 오랑캐로 기록한다. 유럽인은 무조건 타타르인이라고 기록한다. 타타르족 사라진지 언젠데.


   7. 최초 창업자는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으므로 구전되지만 그 이후는 기억할 가치가 없으므로 잊어먹는다. 3세기 이전의 기록은 연대가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8. 신라에 유리하게 기록된 것은 신라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이지 김부식 때문은 아니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미추왕 때부터 신라다. 


   일본은 금관국, 안라국, 반파국을 모두 임나로 기록한다. 이는 역사왜곡이 아니라 몰라서 그렇게 쓴 것이다. 신라인도 북쪽에서 오면 다 말갈이라 하고 서쪽에서 오면 다 낙랑이라 한다. 구전된 역사를 그대로 믿을 이유는 없지만 날조나 소급은 아니고 부실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1919년에 건국되었다. 중국과 에스토니아가 임시정부를 승인했다. 중국 인구가 세계 인구의 1/4이므로 세계인구의 1/4이 인정했으면 거의 다 인정된 것이다. 주몽이나 온조, 박혁거세의 건국은 임시정부와 같다. 그대로 믿어도 안 되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어색한 부분은 날조된 것이 아니라 망실된 것이다. 구전이니까 당연히 망실되지. 부족시대에 가뭄이 들고 메뚜기떼가 날아든 연대를 누가 기억해? 참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다. 무조건 날조로 몰아가는 것은 음모론의 플러스적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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