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88 vote 0 2019.04.19 (13:46:09)

      
    의미는 천하에 있다


    작용했는데 반작용이 없고, 불렀는데 응답이 없고, 일했는데 보수가 없고, 프로포즈 했는데 수락이 없고, 노래를 했는데 앵콜이 없고, 만남을 했는데 애프터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거다. 의미가 없으면 허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어야 하고, 자극을 했으면 반응이 있어야 하고, 시작이 있으면 종결이 있어야 한다.


    척력은 인력으로 바뀌어야 한다. 에너지의 방향은 확산에서 수렴으로 바뀌어야 한다. 계가 지정되면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우리는 억지 의미부여하기 좋아한다. '오늘부터 1일' 하고 카운트를 하는가 하면 백일기념 이벤트를 뛰기도 하고 남사친이니 여사친이니 하며 복잡한 분류를 제시하기도 한다. 잼있나?


    구조론을 허무주의로 오해할 수 있다. 빛은 태양에 있다. 태양 하나로 지구 전체를 충분히 커버한다. 70억 인류를 감당해낸다. 달은 그다지 하는 게 없다. 달이 해 옆에서 거들며 조수 노릇이라도 하는 것은 아니다. 밤을 비추는 달빛도 태양빛이 달을 거쳐온 것이다. 의미는 태양에 있다. 근본에 있다. 빛은 비추는 거다.


    백일기념을 하고 생일기념을 하고 입학식과 졸업식을 하고 명절차례를 지내고 온갖 행사를 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개별적으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의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달이 스스로 빛을 내는 게 아니듯이 우리가 기념하는 자잘한 이벤트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우주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굳이 의미 없다고 묵살하여 면박줄 이유는 없다. 사람은 만나기 좋아하고 모이기 좋아한다. 핑계가 필요해서 기념일을 정한 것이며 정치인들은 그런 행사장에서 마이크 잡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다수가 원하면 한다. 모든 사람이 필자처럼 비뚤어진 성격이라면 행사와 이벤트는 사라지고 인류의 문명은 삭막해질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잘한 이벤트에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우주가 온통 의미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의미는 만남이며 연결이다. 회로를 구성하며 거기에 에너지가 흐른다. 우주가 온통 의미로 곧 구조로 되어 있다. 구조론은 의미론이다. 구조는 얽힘이며 인간은 만나서 얽힌다. 부름과 응답으로 만난다.


    노래와 앵콜로 만나고, 프로포즈와 수락으로 만나고, 노동과 보수로 만난다. 우리는 초대받은 존재이며 만남의 존재이며 의미의 존재다. 의미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전구 하나하나에 있는 게 아니라 배터리에 있다는 말이다. 근원에 있다. 하나의 근원에 회로를 연결하여 의미를 빼내니 그것은 신의 완전성이다.


    구조론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의미주의다. 의미는 개별적으로 있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의 연결로 있다. 그러므로 백 살까지 산 사람이 오십 살까지 산 사람보다 더 의미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다이아몬드는 반짝이므로 의미있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 선 프리마돈나의 목에 걸려 많은 청중의 시선을 모으는 데 의미가 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는 의미 없다. 각자 자기 위치를 찾아가는 데 의미가 있다. 세상의 주인은 사건이다. 우리는 부분을 보지만 사건은 통짜로 있다. 전체로 있다. 모든 부분은 전체와 회로가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한다면 인류 전체의 생각이 당신의 마음에 비친 것이며 당신은 거기에 칼라를 더할 뿐이다.


    우리는 자질구레한 것에서 의미를 찾지만 태양을 한 번 바라보느니만 못하다. 우주 전체가 의미라는 게 더 좋은 소식이 아닐까? 백 살까지 살아봤자 의미없고, 행복을 누려봤자 의미없고, 잘 먹고 잘살아봤자 의미없고, 출세하고 성공해봤자 의미없고, 미인을 만나봤자 의미가 없다.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진리의 부름에 응답하고,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고, 신의 부름에 응답하기다. 의미는 기념행사에 있는 게 아니라 부름과 응답에 있다. 손뼉이 마주치면 의미가 있다. 대칭이 호응하면 의미가 있다. 물질이라도 그렇다. 분자든 원자든 소립자든 어떤 둘의 만남으로 되어 있다. 혼자서는 존재를 성립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는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이 있어야 만날 수 있으며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사건이 시작되고 존재가 시작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기는 것이며 이긴다는 것은 만나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나지 않으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승전결로 가는 사건에서 기의 포지션에 서는 것이다. 


    그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다. 노무현처럼 세상을 한 번 타격하여 흔들어놓고 갈 수 있다. 그것이 전부다. 나를 앞세우면 안 된다. 내가 어떻게 해서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다. 내가 존재하기 전에 그것이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미라는 커다란 악기가 있고 인간은 소리를 끌어내는 것이다.


    의미는 악기에 있지 소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리는 그냥 사라진다. 그 악기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보상받으려 하지 말고 그 의미라는 악기를 연주하여 다른 사람의 가슴에 소리를 전해야 한다. 세상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소식을. 그러므로 완전하다는 소식을.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4.19 (16:16:54)

"하나의 근원에 회로를 연결하여 의미를 빼내니 그것은 신의 완전성이다."

http://gujoron.com/xe/1081931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651 존재는 도구다 김동렬 2024-02-01 1305
6650 조절이냐 선택이냐 김동렬 2024-01-31 1528
6649 주체의 사상 김동렬 2024-01-30 1629
6648 예뻐지고 싶다는 거짓말 김동렬 2024-01-30 2276
6647 조절장치 김동렬 2024-01-29 1514
6646 간섭 김동렬 2024-01-28 1795
6645 천공의 전쟁지령 김동렬 2024-01-27 2771
6644 이것과 저것 1 김동렬 2024-01-26 1818
6643 권력자의 심리 김동렬 2024-01-25 2507
6642 석가의 깨달음 김동렬 2024-01-25 2224
6641 이언주의 귀환 김동렬 2024-01-23 2873
6640 시정잡배 윤한 1 김동렬 2024-01-23 2563
6639 윤영조와 한사도 김동렬 2024-01-22 2486
6638 클린스만은 손절하자 김동렬 2024-01-21 3325
6637 입력과 출력 김동렬 2024-01-20 1803
6636 마리 앙투아네트 김건희 김동렬 2024-01-20 2222
6635 한동훈의 까불이 정치 1 김동렬 2024-01-19 2847
6634 긍정적 사고 김동렬 2024-01-17 2204
6633 한동훈의 본질 김동렬 2024-01-15 3932
6632 존재의 핸들 김동렬 2024-01-14 2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