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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084 vote 0 2013.01.15 (01:05:00)


    완전성이란 무엇인가?  


    ‘완전’은 있다. 문제는 집합론을 창시한 칸토어의 불행과 마찬가지로 ‘완전’이 일반의 상식이나 직관과 배치된다는 점이다. 칸토어가 수의 의미를 바꾸었듯이, 구조론은 완전의 개념을 다르게 쓴다. 그런데 진짜다.  


    조선시대 실학자의 글을 참고하자면 기(氣)의 의미가 지금의 전기나 바이러스 개념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실학자들은 기(氣)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었으며 과학적으로 입증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기가 현대의 전기나 자기 혹은 바이러스라면 기는 이미 과학적으로 규명된 셈이다. 그런데 이 소식에 실망하는 사람이 있다. ‘기가 전기라고? 전기로 어떻게 병을 고쳐?’ 그런데 기는 바이러스이기도 하다.


    바이러스는 살균할 수 있다. 기를 다스려 병을 고칠 수 있다. ‘기가 바이러스라고? 그걸로 어떻게 공중부양을 해? 공중부양도 못하는게 무슨 기야?’ 이런 식이다. 공중부양? 비행기로 하면 되잖아. 뭣하러 엉덩이로 공중부양을 해?


    그들은 기가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한다. 천만에! 조선시대의 실학자들은 기가 만능이라고 우기지 않았다. 기에 만능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최근의 일부 현실도피자들의 생뚱맞은 아이디어다.


     기의 실체가 과학적으로 규명되니까 오기로 만능타령을 한다. 그건 심술에 불과하다. 왜? 기를 자신이 독점할 수 없으니까. 그들은 여전히 기를 숭상한다. 아니 숭상하는 척 한다. 그들은 정답을 찾아주면 화를 낸다.


    도교나 유교에서 말하는 기는 힘과 운동의 법칙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가 수학적 원리라면 기는 과학적 메커니즘으로 보았던 것이다. 유교나 도교가 비과학적인 무언가를 숭상했다고 여기면 착각이다.


    그들의 태도는 과학적이었다. 단지 그 시대에 과학이 없었을 뿐이다. 당시 선비들은 합리적인 태도로 기에 접근했고, 그 기는 지금 과학으로 옮겨왔으며 아직도 기타령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버린 찌꺼기를 가져간 거다.


    예컨대 이런 거다. 만약 신이 인간 세계를 방문한다면? 곤란해진다. 사람들은 실망하게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은 전지전능 하다면서 이 문제 하나 해결해 주지 못하나?’ 그 경우는 신의 문제해결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제시 실패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수준을 올려주는 것이다. 수준을 올려주면 그것을 문제삼지 않게 된다. 문제삼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문제해결인 것이다. 욕구충족이 아니라.


    어쨌든 신이 인간을 방문하면 인간은 왜소해진다. 초라해진다. 인간이 다친다. 신이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은 가능하다. 문제는 전지전능의 모순이다. 전능하다면 전능을 파괴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전능은 전능이 아니게 된다.  


    ◎ 신 왈 - "신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 인간 왈 - "그렇다면 신은 신을 죽일 수도 있는가? "
    ◎ 신 왈 - "그렇다."
    ◎ 인간왈 - "누구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신이 어찌 완전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 신 왈 - "닥쳐!"


    이는 인간 언어의 불완전성을 의미할 뿐, 신의 불완전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은 에너지 순환의 완전이며, 이때 반드시 상부구조에서 하부구조로 가는 일방향성을 내포해야 한다. 되돌아오면 규칙 위반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그 규칙을 거스른다. 신은 전능하지만 먼저 당신의 그 잘못된 욕망을 바꾼다.


    생각을 끝까지 안 해보고 대충 얼버무리면 곤란하다.  


    회로는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완전하다. 생명은 호흡을 하면 완전하다. 작가는 작품을 낳으면 완전하다. 완전한 이유는 시스템 안에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불완전하나 인류는 완전하다. 개 한 마리는 불완전하나 생태계는 완전하다.  


    개인의 행동의 의미는 집단 안에서 순환된다. 예컨대 돈을 벌겠다는 욕망은 개인 안에서 순환되지 않는다. 돈은 종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집단에서 완벽하게 격리되고 고립된다면 모든 욕망이 부정된다.


    개인 안에서는 상호작용이 없으므로 의미가 순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의 의미는 신용이고 신용은 집단 안에서만 성립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단어는 문법을 칠 수 없다. 문법에 안 맞는 완전은 성립할 수 없다. 종교인의 전지전능은 단어가 문법을 친 것이다. 그러므로 무리다. 


    깨달음은 완전성을 깨닫는 것이다.  구조론은 완전을 해명한다. 회로에 불이 들어온다. 생명이 호흡을 시작한다.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제한을 싫어한다. 그들은 무한을 원한다.  


       그러나 실상은 ‘생각없음’을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른이 되기를 겁내는 어린이와 같다. 그 어떤 것도 무한하지 않다. 그것은 무리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소년의 꿈에 제한이 가해진다는 의미다. 


    반드시 제한된다. 전지전능도 합리성, 무모순성에 의해 제한된다. 신이 오더라도 반드시 상부구조를 해결한다. 당신이 원하는 하부구조가 아니라. 분명히 해결은 가능하다. 당신이 원하는 그 지점은 아니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그러므로 애초에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최고단계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고단계는 하나의 포지션에 5가 맞물리는 구조이며 그 이상은 없다.  


    그 다음부터는 복제되고 증폭된다. 진보하고 발전한다. 과학은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명백하게 제한한다. 과학은 타임머신이 불가능임을 입증한다.  


        과학은 광속을 넘을 수 없음을 밝힌다. 과학은 137억 5천만년 이전의 세계가 없다고 금을 그어버린다. 절대로 넘어갈 수 있는 벽이 존재한다. 우리 우주의 크기는 견적이 나와버렸다.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상력 부족이다. 과학 때문에 인간 사이의 대화는 단절되고 모두 TV바보가 되었지만 그것도 옛날 이야기다. 과학 때문에 모여서 각자 자기 스마트폰만 보고 있지만 그래도 소통은 이루어진다.


         실망하지 말고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라.  

    

 

    P.S. 중핵은 완전의 개념을 플러스로 볼 것인가 마이너스로 볼 것인가입니다. 플러스로 가면 사람들이 계속 쓸데없는 요구사항을 지어내기 때문에 완전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이너스로 보면 소통의 방해자가 제거되어 완전한 만남이 가능해졌을 때 이야기는 종결됩니다. 에베레스트 꼭대기에서 더 이상 발 디딜 데가 없습니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입니다. 시선을 바꾸어 완전성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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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3개의 이미지로 당신을 완전성의 세계로 안내하는 깨달음의 그림 교과서 돈오가 새로 나왔습니다. 완전한 것은 있습니다. 그 완전성이 당신의 무리한 욕망을 충족해 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당신의 욕망을 바꿉니다. 당신은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욕망의 세계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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