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492 vote 0 2023.05.29 (19:18:35)

    석가의 연기는 관계다. 깨달음은 관계의 깨달음이다. 존재는 관계다. 관계는 공유된다. 존재는 공유다. 깨달을 일이다. 우리가 어떤 존재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가 그 자체로 존재다.


    건물 옆에 건물을 하나 더 지으면 빌딩풍이 발생한다. 그것은 무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다. 이전에 없던 것이다. 그것은 관계다. 빌딩풍은 실제로 존재한다. 태풍이든 회오리바람이든 빌딩풍과 같다. 관계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는 실재다. 


    관계는 공유된다. 담장은 옆집과 공유된다. 대문은 행인과 공유된다. 도로는 타인과 공유된다. 하드웨어는 공유된다. 몸은 공유된다. 마음은 개인에게 독점되지만, 몸은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 다른 사람도 내 몸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마음은 볼 수 없는데 말이다. 


    하드웨어 안에 소프트웨어가 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안에도 하드웨어가 있다. 하드웨어는 그릇이다. 육체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런데 정보 안에도 정보를 담는 그릇이 있다. 마음 안에도 마음을 담는 그릇이 있다. 관계의 깨달음은 그릇과 내용물의 구분을 지우는 것이다.


    OS는 프로그램의 하드웨어다. 프로그램 안에도 경로를 지정하는 하드웨어가 있다. 폴더가 있고 디렉토리가 있다. 정보가 드나드는 도로가 있다. 담장도 있고 대문도 있다. 있을 것은 다 있다.


    머리가 나쁜 것은 정보를 저장하는 경로의 지정이 잘못된 것이다. 하드웨어에 문제가 있다. 정보가 소프트웨어라면 경로는 하드웨어다. 머리가 좋은 것은 목록을 잘 만들어 놓은 것이다. 머리가 좋은 것은 하드웨어가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 하드웨어가 바로 소프트웨어다. 


    책은 하드웨어고 그 책에 든 지식은 소프트웨어다. 지식 역시 문법이라는 하드웨어에 갇혀 있다. 하드웨어는 공유하고 공유는 약속이다. 지식이 잘못되는 것은 약속이 잘못된 것이다. 공유가 잘못된 것이다. 대문과 도로가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몸은 도로의 집합이다. 피가 드나드는 도로, 림프액이 지나가는 도로, 호흡이 지나가는 도로, 신경망이라는 이름 도로가 있다. 소화기관은 입에서 항문까지 하나의 길게 뻗어 있는 도로다. 힘이 전달되는 도로가 힘줄이라면, 체중이 전달되는 도로는 뼈대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다. 하나로 합치면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는 관계다.

관계는 만질 수 없고 볼 수도 없으므로 소프트웨어다. 그런데 사실은 만질 수 있다. 볼 수도 있다. 


    인간이 눈으로 본다는 것은 뇌가 연출한 환영을 보는 것이다.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엄밀하게 따지면 인간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실제로 보는 것은 가시광선의 파장에 뇌가 색을 입힌 것이다. 파장의 간격이 넓고 좁은 정도를 뇌가 읽어내는 것이다. 뇌가 관계를 보는 것이다.


    까마귀의 색은 화려하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까마귀 눈에는 화려한 칼라가 보인다. 인간은 까마귀를 구분하지 못하지만, 까마귀는 다른 까마귀를 알아본다. 백인은 동양인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동양인은 다 똑같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표정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영사기 속에 필름이 있고, 필름 속에 이미지가 있고, 이미지 속에 정보가 있다. 주머니 속에 주머니가 있고, 그 주머니 속에 또 다른 주머니가 있다. 양파껍질을 계속 까면 무엇이 나올까? 영사기가 하드웨어면 필름은 소프트웨어다. 필름이 하드웨어면 이미지가 소프트웨어다. 이미지 역시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로 영화가 전달하는 것은 생각이다.


    궁극적으로 우주 안에는 공유가 있을 뿐이다. 약속이 있을 뿐이다. 양파껍질들의 간격이 존재할 뿐이다. 공유가 존재다. 약속이 존재다. 그러므로 홀로 있는 것은 우주 안에 없다. 공유되지 않는 어떤 하나는 존재가 아니라 부재다. 관계가 아닌 것은 존재가 아니다.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공유의 해제다. 공유를 전제로 해제되는 절차가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질은 코어를 성립시킨다. 입자는 코어가 대칭을 붙잡고 있다. 힘은 코어를 이동시킨다. 이때 대칭이 깨지는 과정이 운동이다. 떨어져 나간 것은 량이다.


    공유가 만들어지는 것은? 상부구조의 공유가 깨지면서 하부구조의 공유가 만들어진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합쳐서 전체를 보면 역시 공유가 해제되는 것이다. 최초의 공유는? 그것은 빅뱅이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6807 구조론 동영상 1 김동렬 2010-03-22 196646
6806 LK99 과학 사기단 image 김동렬 2023-08-07 71181
6805 진보와 보수 2 김동렬 2013-07-18 58345
6804 진화에서 진보로 3 김동렬 2013-12-03 58247
6803 '돈오'와 구조론 image 2 김동렬 2013-01-17 56164
6802 소통의 이유 image 4 김동렬 2012-01-19 55522
6801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image 13 김동렬 2013-08-15 55101
6800 관계를 창의하라 image 1 김동렬 2012-10-29 48742
6799 답 - 이태리가구와 북유럽가구 image 8 김동렬 2013-01-04 45588
6798 독자 제위께 - 사람이 다르다. image 17 김동렬 2012-03-28 44765
6797 청포도가 길쭉한 이유 image 3 김동렬 2012-02-21 42204
6796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image 3 김동렬 2012-11-27 42132
6795 구조론교과서를 펴내며 image 3 김동렬 2017-01-08 41990
6794 아줌마패션의 문제 image 12 김동렬 2009-06-10 41794
6793 포지션의 겹침 image 김동렬 2011-07-08 41252
6792 정의와 평등 image 김동렬 2013-08-22 40924
6791 비대칭의 제어 김동렬 2013-07-17 38962
6790 구조론의 이해 image 6 김동렬 2012-05-03 38886
6789 비판적 긍정주의 image 6 김동렬 2013-05-16 38020
6788 세상은 철학과 비철학의 투쟁이다. 7 김동렬 2014-03-18 37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