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금요일 퇴근 길, 기분 좋게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면, 보통 100m앞의 사거리에서 신호가 걸린다.

이날도 여지없이 신호에 걸려서 차가 정지를 했다. 사실 정지했는지도 몰랐다.

그냥, 운전석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창 밖을 응시하면서 멍하니 서 있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운전사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차창을 열고 몸을 1/3 이상

밖으로 빼더니 뒷쪽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아니, 저 앞에 차가 있다고!  차가 있으니까 안비켜주는거지, 왜 이리 빵빵 거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되어 삿대질을 해가며 차 앞쪽 뒤쪽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내가 비켜주기 싫어서 안비켜주나? 앞차가 있으니까 못비켜 주는거지, 으휴..."

 

아마, 뒷차가 크락션을 울렸거나, 쌍라이트를 켰었나보다. 버스가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뒷차가 신호대기중에 우회전을 할 수 있는데, 못하니까 버스에게 비켜달라는 신호를 보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다음 정류장에 차가 섰다. 버스를 타려던 한 아저씨 승객이 운전사에게

묻는다. "이 버스 망포역 가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괜시리 내가 불안해진다.

운전사가 퉁명스럽게 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이건 내 몫이 아닌데, 괜히 신경이 쓰인다.

 

"망포역 가요"

 

다행히 퉁명스럽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은 그냥 감정이 없는 사무적인 대답이었다.

 

버스에서 하차할 때가 되었다. 내가 내리는 버스는 망포역 다음 정류장이다.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하려고 뒷문으로 가는데, 아까 망포역 간다는 그 승객이 운전석으로

가더니, 뭔가 운전사에게 묻는 눈치다.

운전사는 답답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힌다.

 

"아니, 아까 망포역 방송 미리 나왔잖아요. 진작에 내렸어야지, 바로 전 정거장이니까 걸어가면 돼요"

 

좌회전을 하고 난뒤 버스에서 내려서 그런지 그 승객은 이쪽 저쪽을 두리번 거렸다.

 

"이 길 건너서 저쪽으로 가시면 금방 지하철 입구가 나옵니다."

 

아저씨 모습이 안쓰러워서 길을 가르쳐 드렸다.

 

버스 기사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쌓인게 많은 듯 싶었다.

운전하면서 다른 차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승객과의 마찰로 인한 스트레스, 

장시간 장거리 운행을 하며 받는 피곤함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

 

그런데 운전 기사 아저씨만 그럴까?

우리도 집에서 직장에서 듣기 힘든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말이 나간다.

 

비폭력대화에서는 기본 전제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은 우리 느낌의 자극이 될 수는 있어도, 원인은 아니라고 한다.

김동렬의 구조론식으로 말하면, 충분히 내 힘으로 문제의 흐름을 틀어서 충분히 제어할 수다 있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기 힘든 말을 들을 때 네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첫째, 자신을 탓하기 - '아, 내가 좀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바보 같으니라고. 그거 하나 못하나...'

 

둘째, 다른 사람을 탓하기 - '당신은 뭐가 잘랐길래 남의 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합니까? 당신 일이나 잘해요!/

 

셋째,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인식하기 - '나는 인정받고 싶었는데, 저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

 

넷째, 다른 사람의 느낌과 욕구 인식하기 - ' 저 사람은 내가 일할 때 실수가 없기를 바랬구나. 그런데 자기 일을

편안하게 처리할 수 없으니까 답답하고 실망스러웠구나. 그래서 내게 화를 냈구나.

 

다시 그 버스기사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버스 기사는 상대방이 자신을 비난한다는 생각이 들자,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말을 한다. 글로 보면 좀 건조해 보이지만,

아저씨의 눈빛과 얼굴 표정, 목청, 큰 몸짓은 이미 울화통이 터지고도 남을 아저씨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만약, 버스기사가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를 인식했다면 어땠을까?

 

'뒤차가 빵빵거리니까 마치 내가 잘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억울하고 가슴이 뛰고 불안하다. 화가 나려고 한다. 저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나를 비난하려고 하는 거지? 아냐. 난 지금 뒷차 운전자가 내가 비켜줄 수 없는 이유를 알기를 바라고 있어.

나는 편안하게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야. 저 운전자는 아마 마음이 급한가봐. 빨리 가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크락션을

울리는 거지'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 발끈하는 버릇에서 벗어나, 나의 느낌과 욕구에 의식의 불을 비출 때 변화는 시작된다.

누가 나를 비난해도 그것을 나에 대한 비난으로 듣지 않고, 상대방이 내게 하는 비난을,

상대방의 채워지지 않은 욕구에 대한 왜곡된 표현이라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쉽사리 삿대질과 주먹질에 칼부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다가 은근한 냉전으로 고착화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대화 과정은 사실 몇 초의 순간에 내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데서 대화는 시작된다.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상대방을 비난할 필요가 없다는데서 시작된다. 즉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도 나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내게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이제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때다.

가는 말이 고와도 오는 말이 곱지 않을 수 있다.

오는 말이 곱지 않아도 가는 말을 곱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비폭력 대화의 핵심이고, 비폭력 대화는 대화 이전에 나의 듣는 방식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비폭력 대화는 형태는 단순하지만 삶에 근복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효과가 있다.

한 번 시도해보시길 바란다.

 

* 참고도서

 김동렬의 마음의 구조

 마샬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

제 5장 욕구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지기89~90쪽


[레벨:8]상동

2013.07.06 (10:45:20)

소승은 개인적 해결일뿐 인류는 한걸음도 못 나갑니다.

인류와 연결없는 소승은 부러진 가지입니다.


앞차에게 길 비키라는 문화를 조져야 하는거 아닐까요?


눈은 앞에 달렸는데 

왜 뒤에 오는 문제까지 앞차보고 해결하라고 압력을 가합니까

눈이 앞에 있는 뒷차가 알아서 가야지..

이런 놈들이 약자보고 거르적거린다고 말하고 다니는 놈들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2013.07.09 (17:04:37)

소승의 차원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문제해결 접근입니다.

뒤에서 자꾸 빵빵된다고 열받으면, 이상하게 꼭 다음에

나도 과속을 하거나 운전리듬이 흐트러집니다.

 

상부구조인 교통문화부터, 아니 인간 존중 문화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현실에서 해결못하면서

상부구조만 말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상동님께서는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를 그 자리에서 조져 버리실 것인가요?

 

내 자신이 상부구조고 뒤에서 빵빵거리는 저 차주가 하부구조입니다.

내자신의 느낌과 욕구,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를 보는 것이 상부구조고,

나를 탓하거나 상대방을 탓하는 것이 하부구조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7.06 (10:54:54)

자기 감정에 대해 상황을 대하는 것에 대해 뻔뻔해질 필요가 있을것 같다는...
모든 관계의 문제는 세련되지 못해서 생기는 듯. 웃음이 없어지고 감정에만 충실해지고, 뻔뻔해지면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는듯.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2013.07.09 (17:06:04)

상대방의 심리적 물리적 공격을 필요시에는 방어하되,

굳이 엮이지 않고 건조하게 찻잔의 회오리처럼 여길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인간 마음의 경지라 생각합니다.  

어쩔 땐 공감이니 하는 것이 지나친 감정 과잉이나 오지랖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노랑고구마

2013.07.06 (14:31:47)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2013.07.09 (17:07:06)

피싱 도둑돔들도 공감을 하는데,

아이 마음 한 번 타이밍있게 공감을 못해서 함께 싸우는

이시대의 어머님들이 수두룩, 공감의 타이밍에 윽박지르거나 무관심한 아버지들이 99%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3.07.07 (00:31:26)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기힘든(or 싫은)말"을 듣는 순간을 '압박의 순간'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나에대한 괜한 압박이 오네' 라고 생각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이런 상황은 내가 크던 작던 어떤 일에 관여하는 동안에는 계속 발생된다고 보이며,

다만 그  압박의 세기가 얼마나 큰가는 관여하는 일의 중요도가 결정한다 생각합니다.


여기서 "비폭력 대화"는 듣기힘든 얘기, 압박감을 느끼는 얘기를 듣는 순간 욕설이나 화냄으로 폭발적 반응을 하지 않고 '부드럽게 수용(소화)할 수 있는 능력' 정도로 봐고 되겠지요.


이런 압박들이 통상 운전중에 제일 많이 받는다고 봅니다. 특히 제가 사는 곳에서 운전하는데 있어서 항상 마음준비하는 것이: 언제 어떤 상대방의 (운전을 그렇게밖에 못하냐는제스쳐 또는 표정 또는...)압박이 들어와도 나는 '미소와 손흔들어주기로 반작용하자'입니다.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겠죠...^^


사회발전의 대표적인 지표중 하나가 운전문화인 것 같습니다. 

운전석에 앉아서 스트레스를 주거나 받는 량이 최소인 나라가 초 일류국가라고 하고 싶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7]호야

2013.07.07 (03:36:40)

도로에서는 도로교통법을 기준으로 위반이 아니면 쫄 필요 없겠죠.^^ 물론 타운전자를 배려해서 운전한다면 말이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7]호야

2013.07.07 (03:45:44)

아..그리고 내가 잘못했을때는 상대방 운전자를 안쳐다보는게 상책. 욕듣거나 입모양만 봐도 기분이 나쁘니까...
상대방이 양보를 해줬다면 고맙다는 표시를 해주는게 예의. 그러면 서로 기분이 좋아짐.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2013.07.09 (17:09:02)

의도적인 훈련이 되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요즘은 욕먹어도 좀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 사람의 화나는 것은

그사람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이지, 나 때문에 그런게 아니니까. 

질낮은 교통문화에 조종당한 피해자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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