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고 이병철 회장이 천주교 혹은 종교에 했던 질문지에 천주교에서 답했던 것을 이번에 공개하였고,

이 질문지가 조계종에 넘어 온 것 같은데...

이 질문지에 대해서 허정스님(조계종의 승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원 산하의 불학연구소 소장)이 다시 불교적 관점에서 답을 한 것입니다.

 

대체로 불교에서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나 형이하학적인 질문에는 상견과 단견에 빠질 우려가 있어서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부처는 답변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거의 답변을 한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특정하게 딱 찝어서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것을 경계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지가 넘어와서 현 시대에서는 굳이 안할 이유도 없고, 종교적 종단적 입장과 예의 차원에서 한 것 같다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불교는 중도적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허정스님의 답변은 중도적 관점과 초기불경에 근거를 두고 답변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여, 이러한 질문에 구조론은 어떻게 답변을 할 수 있을까? 가 궁금하여 올려 봅니다.

맨 아래는 답변하기 편하게 24가지 질문만을 붙여 놓았습니다.

고 이병철 회장이 했던 질문은 어찌보면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데, 실로 애매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가장 원초적인 호기심이자 관심이기도 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구조론에서 많은 얘기가 되어졌던 부분이기도 하지만, 정리되어진 답변을 듣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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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스님의 질문지에 대한 답변의 변>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1910~87) 회장이 타계하기 한 달 전에 천주교 신부에게 내밀었던 24개의 질문이 백성호 기자에 의해서 <중앙일보>에 공개되었다. 이 질문지는 1987년 박희봉(1924~88) 신부에게 전해졌고, 박 신부는 정의채 교수에게 전했다. 그 후 정의채 교수는 20년 넘게 질문지를 간직하고 있다 2년 전 제자인 차동엽 신부에게 전했고 드디어 차 신부가 여기에 답을 달았다. 무려 24년 만에 공개된 이 질문지와 답변을 불교계 인터넷 신문 <불교닷컴>기자가 나의 사무실로 들고 왔다.

24년 전의 질문이 이렇게 내 책상위에 놓인걸 보니 ‘이것은 무슨 인연인가’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 질문들은 천주교 신부님에게 전달된 질문이지만 내게도 생소하지 않은 질문들이다. 나도 출가하기 전에 교회에 다녔는데 그때 내가 목사님에게 했던 질문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십대의 고등학생이 물었던 질문이 이제 출가자가 된 사십대의 내가 답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창조주에 관한 불교적 관점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에게도 이 답변이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답변의 어떤 부분은 나의 생각이지만 인용한 경전은 모두 초기경전인 ‘니까야’에서 가져온 것이다. 출처 표시 D13은 디가니까야 13번째 경이라는 의미이다. 질문이 많다보니 어떤 질문은 답변을 생략하기도 했다.

 

 

 

[24가지 질문에 대한 허정 스님의 답변]

1.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 불교는, 창조신이라는 단어는 유한한 인간이 영원한 것을 추구하여 창조해 낸 개념이라고 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처님이 사셨던 2,600년 전에도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시대였다. 내 안의 영원한 것을 아트만(atman)이라 불렀고 밖의 것을 브라흐만(Brahman)이라고 불렀다. 부처님은 이것들이 사실이 아닌 개념일 뿐이라고 보고 아트만과 브라흐만을 부정하셨다. 이것을 무아(無我)사상, 연기의 법칙이라고 한다.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 이 질문에 대한 차 신부님의 대답은 불교와 비슷한 점이 있다.
“로고스(Logos)는 ‘존재 원리’를 뜻한다. 그러니 요한복음서의 첫 구절은 ‘태초에 존재 원리가 있었다’가 된다.”(차동엽 신부)

그 존재의 원리는 연기법의 원리를 떠오르게 한다. 붓다는 연기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한다. “연기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이 출현하거나 여래들이 출현하지 않거나 그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 법으로서 확립되어 있으며 법으로서 결정되어 있으며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S12:20)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 불교의 연기법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발생하므로 저것이 발생한다’는 조건발생의 법칙이다. 다양한 조건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무한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진화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불교는 진화의 시작 즉, 최초라는 시간개념은 설정하지 않는다. 최초라는 어떤 지점을 설정하는 것은 또 하나의 어리석음이라고 본다. 불교의 시간관은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불교에서는 우주를 수축과 팽창으로 설명하며 하나의 우주가 생성되었다가 파괴되는 기간을 겁(kappa)이라고 부른다.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 불교는 2,600년 전에 이미 창조신을 부정했다. 현대의 과학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불교는 생명이 합성되고 무병장수의 시대가 오더라도 인간이 평화와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감정과 생각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외부의 대상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환경이 인간의 행복에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한다면 설사 그가 천국에 있어도 그 천국은 지루한 천국이 될 것이다.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 이 질문에 대해서 ‘신이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혹은 ‘고통은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통로’라고 대답하는 것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은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주의 깊지 못하고 깨어있지 못해 한 순간 잘못된 의도를 일으켜 악업을 짓게 된다. 신이 자유의지를 준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잘못된 의도를 일으키는 것은 오로지 자신 탓이다. 불교는 이 원리를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한다.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예 ;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 차 신부님의 답변은 “신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자유의지를 주었는데 인간이 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서 악인이 되었다고 한다. 자유의지를 준 신은 잘못이 없고 오로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린아이 손에 칼을 쥐어주고 어린아이가 다치거나 남을 다치게 한 것은 오로지 어린아이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그 상처를 입은 어린아이가 죽어서도 심판을 받고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니 끔찍할 따름이다. 불교도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서 죄를 짓게 된다고 한다. 그 자유의지를 신에게 받은 적이 없으므로 신을 탓할 수는 없다. 오로지 스스로가 주의 깊지 못하고 깨어있지 못해서 탐욕에 휘둘리고 분노에 압도되고 어리석음에 빠져서 악업을 짓게 된다.

7.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 6번과 같은 질문이다. 죄를 지을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 죄를 지으면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 이것이 神이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 구약성경은 1,000년 동안 사람의 입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듯이 불경도 입으로 암송되어 오다가 불멸 후 500년이 지났을 때 문자화된 것이다. 그러나 불경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시작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직접 들은 가르침이다. 그래서 경전은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what), 어떻게(how), 왜(why)라는 육하원칙에 따라 서술되고 있다. 이것을 전통적으로는 육성취(六成就)라고 한다. 불교경전에 나타난 2,600년 전의 생활 모습과 사상이 워낙 정확하기 때문에 고대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 인도에서 초기경전은 인도의 역사를 이해하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9.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 “벼락이나 천둥이 칠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는다. 마취 직전, 수술대에 누운 이들도 기도를 한다. 무신론자도 슬픔에 직면하면 본능적으로 하느님을 원망한다.”라고 차동엽 신부가 언급한 내용들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신을 몰랐던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신을 찾는 것은 단지 그들이 ‘신’과 같은 어떤 존재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위안이 필요하기에, 도움이 필요하기에 존재하는 신은 인간이 만든 신이지 ‘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본다.

무신론자가 위급한 상황에서 ‘신’을 불렀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원시시대라면 무엇이라 부르든지 그 이름이 ‘신’의 의미가 되었을 것이고, 현대의 사회생활 속에서는 무신론자라도 신이라는 단어를 모를 수 없기에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주 옛날에 벼락이나 천둥이 칠 때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노하여 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 보다 힘이 센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며 섬기기 시작했다. 그 힘이 센 존재들을 각자의 언어로 이름 지었다. 그것이 인간이 처음으로 두려움 속에서 만들어 낸 신이라는 개념이다.”라고...

원래 종교(宗敎)라는 용어는 능가경(楞伽經)이 중국에서 번역되면서 처음으로 쓰여졌다. 동양문화권에서는 신(神)과는 무관하게 '훌륭한 가르침'이란 의미로 쓰여져 왔다. 19세기 말 서양 종교학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Religion을 번역할 때, 같은 의미의 동양문화권 용어가 없음으로 일본학자들이 불교 용어인 宗敎를 Religion으로 번역한 것이 처음이다.

현재의 백과사전에는 종교를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로 설명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종교를 이렇게 정의한다면 불교는 종교라고 말할 수가 없다.

10.영혼이란 무엇인가?

= “인간은 영원을 찾다가 자꾸 벽에 부딪힌다. 부딪힐수록 무한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결국 동경하던 무한성에 ‘신’이란 이름을 붙인 거다. 그 무한성을 인격체로 여긴 사람들이 그걸 숭배하게 되고, 도움 받기를 청하는 거다. 자신이 그 벽을 넘어설 수가 없으니까. 결국 인간은 종교라는 터널을 통해 영원을 갈망하는 거다.”(차동엽 신부)

차 신부님의 이러한 설명을 들으니 앞에서 언급했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미녀의 비유’가 떠오른다. 불교에서 말하는 영혼의 문제는 현재에서 출발한다. 지금 여기에 보고 말하고 듣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볼 때, 들을 때, 맛 볼 때...작용할 때 마음은 드러난다. 지금 여기에서 과거를 떠올리면 과거가 펼쳐지고, 미래를 그려 보면 미래가 펼쳐진다. 지금 여기 이 마음을 떠나면 과거도 미래도 찾을 수 없다. 지금 여기에서 늘 깨어있지 않으면 개념과 망상 속에 마음이 숨는다. 그래서 순간순간 깨어있는 것, 이것 말고 수행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영혼’이라는 생각도 ‘神이 있다’는 생각도 사실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선가(禪家)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한 생각 일어나고 한 생각 사라지는 이것이 바로 생사(生死)’라고...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 나는 종교를 ‘자력의 종교’와 ‘타력의 종교’, ‘믿음의 종교’와 ‘이해의 종교’로 나누고 싶다. 불교는 ‘자력의 종교’이며 ‘이해의 종교’이다. 자력의 종교라는 것은 신이나 절대자를 상정하지 않고 스스로 수행하여 깨닫는다는 것, 스스로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이해의 종교’란 이해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할지언정 이해되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물론 불교에서도 믿음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때도 믿음을 2가지로 나누어 사용하는데 하나가 ‘근거 없는 믿음’(amūlikā saddhā)이고 다른 하나는 ‘근거 있는 믿음’(mūlikā saddhā)이다(M95). 근거 없는 믿음이란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에 부응해서 생기는 믿음이고, 근거 있는 믿음이란 욕망 없이 사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생기는 믿음이다.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 천주교에서는 ‘천주교 밖에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가 그 후에 입장이 바뀌었다고 한다. 입장이 바뀌는 것은 대단한 용기라 생각되면서도 의구심이 든다. 시대에 따른 인간의 해석이 진실이 되는 종교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도 욕계, 색계, 무색계의 무수히 많은 천상세계가 있다. 그 천상세계는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 그러나 불교는 그 천상세계의 樂을 설명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그곳에 가라고 권유하지는 않는다. 그 세계도 자아(自我)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존재들이 사는 윤회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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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동엽 신부가 펴낸 <잊혀진 질문>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이고 모든 종교는 행복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善)의 정의와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다르다. 아마 이것이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불교에서 최고의 선, 최고의 행복은 탐진치가 소멸된 상태 즉, 열반이라고 표현한다. 이 열반의 행복은 궁극적인 행복이라 하여 세속적인 행복과 구분된다. 궁극적인 행복은 믿음으로서는 성취하지 못하며 진리(眞理)를 본 자만이 경험하는 것이다.

최근에 종교 간의 평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불교계에서는 <종교평화 선언(초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선언은 모든 종교는 공동善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소박함에서 출발하는 평화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본다면 각 종교에서 정의하는 행복의 의미와 행복에 이르는 길이 다르다고 본다.(이 글을 쓰는 이유도 다르기 때문에 쓰고 있다) 현실적으로 종교평화를 이루려면 각 종교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종교 간의 평화는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 불교는 인과의 법칙 차원에서 윤회를 말하고 있지만 윤회를 믿어야만 불교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불교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으로 살아온 사람의 경우 ‘만약 다음 세상이 있다면 천당에 태어날 것이고 만약 다음 세상이 없다 해도 이 사람은 현생에 원한 없고 악의 없고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고 설명한다(A3:65).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지은 행위 즉,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의 원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신(神)이나 절대자가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 불교에서는 인과의 법칙이 꼭 일정한 시간 안에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단기적인 것, 중기적인 것, 장기적인 것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원리 때문에 이 세상에서 악인이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현상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도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과를 모르기에 악행을 지으면서도 두려움이 없다.

16.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명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 이 부분에 대한 차 신부의 대답은 불교와 비슷하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100% 선인도 없고, 100% 악인도 없다. 그 선택에 따라 부자는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다.”(차동엽 신부)
다만 불교와 다른 것은 자유의지는 누가 준 것이 아니고, 자신이 선택해서 나타난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 세계와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인구가 많다고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온 나라가 불교를 믿는 국가에서도 사회혼란과 극악한 범죄가 나타난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에게 종교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불교국가인 미얀마는 현재까지 47년 간 군부 독재에 시달리고 있으며 독재자는 불교를 하나의 통치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종교와 정치의 이상적인 관계는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이라 본다.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 이해 없는 믿음은 맹목이어서 광신이 되기 싶다. 붓다는 믿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잘 믿어지더라도 그것이 공허한 것, 거짓된 것, 허망한 것이 되기도 하고, 잘 믿어지지 않더라도 그것이 실재하는 것, 사실인 것, 진실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믿음은 항상 이해를 선두에 세우고 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신이 거기에 있어서가 아니라, 신이 거기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신을 믿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예 ; 폴랜드등 동구제국, 니카라구아등.

= 생략.

20.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 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 기독교인들은 신을 믿는다. 만약 그들이 진실로 신의 전지전능함을 믿는 다면, 범죄를 저지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불교인의 입장에서는 진실로 인과를 이해하고 인정한다면, 범죄를 저지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1. 로마 교황의 결정에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 “‘타 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무오류권이 발동된 사안인데, 결국 수정했다.”는 차 신부의 답변에서 결국 무오류권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 불교의 독신 출가자 전통은 2,600년이 넘었다. 수행을 함에 있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많은 번뇌들 중에서 가장 첫 번째 로 나타나는 번뇌이다.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 생략

24.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 모든 것은 변한다. 시간은 찰라의 연속이다. 그 변화의 어느 시기를 잡으면 생성이고 소멸이라 이름 할 것이다. 이처럼 변화의 어느 순간을 지칭하여 끝 혹은 종말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나, 거부하는 것이나 모두 어리석다. 종말이라는 개념 속에 빠지면 ‘지금 여기’는 내팽겨 쳐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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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가지 질문]

1.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예 ;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7.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9.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10.영혼이란 무엇인가?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16.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명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예 ; 폴랜드등 동구제국, 니카라구아등.

.

20.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 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21. 로마 교황의 결정에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24.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레벨:4]토마스

2012.01.02 (22:02:36)

질문이 참 재미있군요.  답변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지만.

질문에 걸맞게 답변도 그럴싸하게 재미있으면 좋으련만.

종교에서 대답하기 어려운 '액기스 질문'만 쏙쏙 빼놓은 느낌이네요.

 

7번은 답변이라기 보다는 차신부에 대한 답변에 대한 재질문 같은 느낌이군요.

 

그런데 이병철 회장의 종교는 무엇이었을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2.01.02 (22:46:37)

^^...위에 설명했는데... 예의를 지켜야 하기 때문...질문이 요상하게 진지하니 진지하게 무난하게 답변한 것 같다고...그런데 어찌보면 천주교 안티인 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고, 하지만 이런 질문들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도 하겠지요...종교는 모르겠습니다.
[레벨:4]토마스

2012.01.03 (17:55:52)

천주교 안티라고 할 수는 없겠죠.  비종교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품어볼만한 질문이지요.

그리고 제대로 답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답은 '믿음'만이 답이니까요.

 

종교는 '증명과 논리'로 설명되는게 아니라 '맹목적인 믿음'으로 설명되니까요.

증명이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제대로 답을 할까요?

제대로 된 답은 사실 간단합니다.  '당신이 신앙을 가져보고 교리를 배우면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라고 하면 되죠.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분야를 '문답식 답변'으로 할 수 없는 것이고

설령 한다고 해도 그건 종교에 대한 거부감만 높이는 결과가 되겠지요.

 

종교를 '교리'라고 하듯이 그것 역시 꽤 고난이도의 학문입니다.  그걸 학문과 이론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믿음까지 함께 갖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2.01.03 (18:28:49)

천주교 신부에게 질문지를 건넸다고 하기에 하는 소리였습니다.

신부님이 조금은 난처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하구요.

죽음을 한달 앞둔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도 했겠지요.

그러나 천주교적 관점을 솔직하게 답변 해주는 것을 선택 했겠지요.

그러나 거기에 모순이 나타날 수 있다라는 것을 몰랐을 리도 없을 것이라고 보이구요.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모순을 갖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그 모순이 오히려 종교를 키우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왜? 인간의 마음이 그러하니까요.

 

종교가 맹목적인 믿음으로 설명된다라는 것에는 동의가 어렵습니다.

종교도 바른 이끌음이 필요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럴 때 인간은 절대로 맹목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자신을 스스로 검열하려는 것이 강해진다고 보입니다.

자유를 얻으려 하다가 다시 속박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이구요.

이 속박에서 다시 벗어나려 하는 것이 종교적 깨달음이라고 보입니다.

종교 역시 하나의 체계와 틀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구속하는 형태가 되기 쉽다고 보입니다.

스스로가 교리를 공부하다보면 그 체계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사유체계도 거기에 맞추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별천지를 만난듯 자유스럽지만, 이내 갑갑증이 생긴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갑갑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서 맹목적 믿음이 가장 우선시 되는 경우라고 보입니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 제대로 된 종교적 이끌음 이라고 한다면 자유와 구속됨 갑갑함 다시 열어 져치고 나오는 것 이러한 경험들이 필요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처음에는 종교라는 타자에 의해 자유를 얻었지만, 타자에 의해 다시 구속되고, 타자를 버거워 하다가, 그 타자를 자신과 같은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것... 곧 분별이 사라지는 것이겠지요. 스스로 자유를 갖게 된 것이니 진짜 자유로워 진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자면 종교라는 테두리에 있기 때문에 그 또한 구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껍데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타인의 시선을 그때는 굳이 의식할 필요는 없겠지요.

 

결국 제대로 된 종교인이라면 구속되지 않는 것을 가장 큰 이상으로 여길 것이라고 보입니다.

 

[레벨:4]토마스

2012.01.03 (19:09:29)

 

답글을 보니까 종교에 대해서 꽤 나름 알고 계시네요.  비종교인이시라면 굉장히 종교를

나름 상세히 꿰뚫으셨다고 할까요?

 

'맹목적'이란 표현이 부적절했다고 생각됩니다.  딱히 표현하고자 하는 마땅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맹목적' = 무대포 이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믿음'을 '증명'을 발판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란 의미고 그것에 적절한 단어가 '맹목적'이라고 생각났던 것입니다.

 

일반 과학이나 학문은 '논리와 증명'이 바탕이 되어 (법률도 마찬가지지만) 결과에 대한 '입증'이

따라야 하지요.  하지만 종교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증명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믿음'이기 때문에 그걸 '맹목적'이라고 표현했지요.  '의지적'이라고 했다면 좀 더 적절했을까요?

그걸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지금도 안떠오르는군요.  즉 신앙심이나 믿음이 강한 사람은

'많은 사실을 알거나 체험해서가 아니라'  우러나오는 마음이 강해서라는 것.   종교적 논리에서

강한 믿음과 약한 믿음은 얼마나 실제로 신을 접하고 기적을 체험하고 종교에서 주장하는

논리를 체험했느냐가 아니라 (체험은 못했지만) 얼마나 스스로 믿음을 굳건히 강하게

하느냐의 차이이기 때문에 딱히 '맹목적'이란 단어가 떠오른 것이죠.

 

똑같이 교리를 배우고 종교를 접했는데 그걸 '이론과 종교적 논리'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그걸 '믿음과 신앙'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도 있죠.  두 사람이 '교리적 지식'의 차이는 같더라도.

 

제대로 된 종교가 뭘까요? 제대로 된 종교의 역할이 뭘까요? 이건 상당히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제대로 된 종교를 행하기 위해서 종교가 '생존'해야 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복신앙'을 해서

맹목적으로 선동이 잘 되는 다수의 사람들을 이용해야 하고.... 쉬운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종교가 '상업화'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지만 일단 생존하고 봐야 하니 마냥 비판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2.01.03 (19:35:50)

믿음이란 각 종교마다 상정하는 의미가 다르다고 보입니다.

카톨릭이나 기독교는 신을 있는 것으로 믿어야 하지만,

불교의 믿음은 신심이라 하여 ...믿음의 기준을 이것으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즉 불교에서 신심이 강하다는 것은 불교의 경전을 많이 알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신심이 약한 사람은 절집에서 일하기 어렵습니다.

 

보통은 산사가 고적하고 한적하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지만,

절에서는 일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놀러 가는 것이 아니고 절집에 살러 가는 것이라며면 신심이 있어야 한다고 보입니다.

즉 신심이란 스스로를 붙들어 매는 힘과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믿음이 자기 아닌 다른 대상을 자기 안으로 끌어 온 것이라면 신심은 자기 안에서 그런 힘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여기에도 부처라는 타자를 대상으로 하는 믿음도 포함은 되겠지요.

반드시 절집에서 사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경우에도 이 신심으로 절집들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보이니까요.

다른 종교들이 믿음으로 유지되는 것처럼요.

 

물론 요즘은 믿음도 신심도 돈에 따라 죄우되는 경우들이 많기도 하지만...^^;

 

그리고 믿음이나 신심..이러한 것들을 각 종교인들은 증명해 내고 알아본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외부의 사람들 눈에는 맹목적으로 비춰지는 것이고, 실상 그러한 점이 없지는 않다고 보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나 신심은 학식이나 증명이나 논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 자체적으로는 증명과 논리가 성립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구요.

자기들끼리 알아본다는 것이지요.

믿음이 강한 사람인지...

신심이 강한 사람인지...

그런면에서 보자면 저는 신심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ㅋㅋ^^;

 

반면에 종교는 종교인은...이론과 믿음, 혹은 이론과 신심이 겸비되어져야 가장 좋다고 생각됩니다.

즉 이것은 이성과 감성의 비율이 맞아야 한다는 것일 수도 있고,

불교적으로 보면 지혜와 자비가 같이 잘 어울어 져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대체로 둘 중의 하나가 더 겉으로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지혜가 앞선 사람은 조금은 차가워 보이고,

자비가 앞서는 사람은 따뜻하나 조금은 지혜가 부족한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이 둘이 적정하게 공존한다면 무엇이 더 앞으로 표면화 되어 있던 큰 문제는 없겠지요.

 

천주교나 기독교는 오랬동안 선교활동을 통해서 나름 나눔을 실천하려고 한 것이라고 보이지만 과한 선교가 문제가 되는 것도 같고..., 돈과 만나니 권력이 따라오고 그 왜곡됨이 너무 극대화 되어서 욕을 먹는 것이라고 보이고,

불교는 은둔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것을 쉽사리 벗기가 어려운 것처럼 보이고,

또한 기복불교, 믿음의 불교 이미지를 벗기 위해 나름 애를 쓰고 있다고 보이지만, 아직은 조금 부족한 듯 하고...

불교 자체가 사회와 함께 하기보다는 출가자들이 깨닫고자 하는 것이 강하기에 사회참여가 부족했다고 보이지만, 그래서 서로 뜻이 다른 종파들로 분화되었다고 보이나, 사회참여를 할려고 하는데...정치적인 것과 만나니 문제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각 종교들이 그동안 벌려온 것들, 그동안 축척된 것들..등등을 유지하려 하다보니 어려운 것이라고 보입니다.

막 키워 갈 때는 좋으나 더 이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지체되면 키워놓은 것들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고 보입니다. 유지를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돈이들고 그러자니 왜곡을 시키거나 기복신앙쪽으로 흘러간다고 보이지만...

종교가 하루이틀 이어져 온 것도 아니고, 종교는 언제나 외부의 변화에 의해서 타격을 입거나 번성을 하거나 하지만, 정화는 외부의 변화를 받아 들이지 못하면 어렵다고 보이며, 외부의 변화에 맞춰 내부의 정화가 이루어지고 지속적이 되어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말 그대로 - 의미 그대로 맹목적 믿음이나 신심이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 그나마 유지되는 것이겠지요. 결국 정화란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를 줄이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시스템 개혁을 한다고 해도 받아 들이거나 이끌어 주는 것에서 부터 잘못되면 별 성과과 없으므로...,

하여 수행자나 성직자들의 정화가 필요하고, 그들이 먼저 깨어남이 필요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어쨌든 종교집단은 그들이 리드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는 외부에서 오지만 그 변화를 내부에서 제대로 대응을 못하면 망하는 것이겠지요.

종교만이 아니라 그 무엇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레벨:4]토마스

2012.01.03 (21:47:44)

 

공감하는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2.01.07 (12:39:55)

삼성가의 종교는 원불교라고 하네요.

[레벨:4]카르마

2012.01.04 (05:31:29)

동렬님의 글에서 종교마다 고유한 모델이 있다는 걸 본 기억이 나는데..

기독교, 불교 , 유교 , 도교  각종교마다 핵심적인 모델이 있는거 같더군요.. 

유교의 64괘 처럼.. 

어떤 종교이든  고유한 모델에 신화적 내용들이 덭붙여 지는데..

중요한건 핵심이 무언인가를 파악하는거 같아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2.01.07 (12:50:00)

아마도....

고유한 모델이란...

말하는 틀의 사용이 달라서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기독교는 기독교의 틀이 있고, 불교는 불교의 틀이 있고, 유교는 유교의 틀이 있고...

그런데 이 틀에서 종교적 시스템이 점차로 만들어져 온 것이겠지요. 필요에 의해서...

그러므로 고유한 모델과 신화적 요소란 필요에 의해 덧붙여진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유교는 신화적 요소가 붙여진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 공동체를 통제할 목적을 확실하게 제도화 했던 것이라고 보여지네요. 제사나 사원이나 등등..., 한편으로 유교적 시스템은 조선 후대로 올수록 철저하게 집안의 여자들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형태였다고 보여집니다. 제사 준비나 종가의 종부 형태로...그런 생각이 드네요. 유교적 가부장적 권위적 공동체는 여성의 노동력 혹은 희생이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운 형태였다고 보여집니다.)

 

다만..요즘은 현실과 잘 맞지 않는 측면들이 있어서, 그 신화적 요소나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다시 떼어 내려고 하니... 충돌이 생기는 것이겠지요. 그것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은 떼어내는 것을 원치 않겠지요.

문화적 요소로는 상관 없지만, 삶의 요소로서 삶의 영향을 주는 것들, 혹은 인간을 쓸데없이 희생시키는 것들에 대해서는 떼어낼 것은 떼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보여지네요.

 

하여 이것은 각각의 것들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과는 별도로, 현재에 맞는 시스템 개혁 차원이라고 보여서...

그동안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들로 의존하여 유지해 왔다면, 이제는 그러한 것을 떼어내고서도 의존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아마도 각각의 것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원래의 것을 잘 살리는 방식이 적절하니 않을까? 생각되네요.

그렇게 되면 종교 자체도 건강해지고, 그 종교를 갖는 사람도 건강해지고, 그 종교들의 공동체도 건강해지기 때문에...사회에도 더 나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하여 그 종교를 통해서 그 종교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과 그동안 쌓이고 흘러온 시스템을 손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 종교의 핵심을 잘 파악 하였다 하여도 한 공동체의 시스템 개혁을 무조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무작정 손을 댈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파악만 하고 시스템 개혁에는 관심 없을 수도 있는 것이어서..., 시스템 개혁은 아무래도 행동이 같이 따라야 한다고 보이며, 실천이 필요하고, 참여가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개혁에 필요한 힘을 만들어야 하고 그 개혁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이나 대세적인 것도 필요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하여 개인 차원과 공동체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것이 일치가 되면 더욱 좋겠지만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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