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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id: 15門15門
read 4971 vote 0 2015.06.02 (23:19:59)

샘.jpg



울산바위가 울산바위로 불리는 이유는 

울산을 떠났기 때문이다.


만약 울산바위가 울산에 있었다면 그 바위는 

결코 울산바위로 불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삶의 근간이 되기에 우리가 흔히 무시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틀이란 역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희미하게 만드는

여파를 낳는다.


예를 들어 울산에서 한 바위가 나는 울산바위라고 말해보자.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다른 바위가 발끈하며 말한다.

"나도 울산바위인데?"


그러자 울산에 사는 바위들이 너도 나도 울산바위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한바탕 시끄러워졌다는 야그는 믿거나 말거나.


이렇게 우리가 속해있다고 믿는 틀을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대다수 실패로 끝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규정하지 못하는

개인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혼란이 표면적으로 드러남과 동시에 타자에 의해 

기존의 기준과의 낙차로써 개인이 정의(?)되고 이렇게 성립된 

개인의 정의는 다시 수동적 정체성으로 변환되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보자.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에 컴퓨터라고 이름 붙인 이가 있었을까?


컴퓨터는 이전에 없던 것이었고 이전에 없던 것은 새롭게

이름 붙이게 된다.


그 이름은 기존에도 없었고 이 후에도 없을 이름이 된다.


이렇듯 이전의 것과 다른 존재 혹은 사건이 등장하게 되면

그것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발상을 전환해 보자.


과연 남들보다 못하거나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은 정말 남들보다

못하거나 분별될 수 없는 희석된 정체성을 가진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물론 기존의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이미 이름붙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세상과 차별화되는 천재는 아니더라도 미묘하게 세상의 기준과

다른 개개인들을 기존의 틀 혹은 언어를 빌려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이 나라에 유독 원조 국밥집 같은 '원조'가 많은 것은 서로를

구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구분할 수 없는 것을 이렇듯 억지로 구분하려고 하면

다양성이 아닌 분열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또다른 기준이 강화되고 그 기준 속에서 자기 정의가

아닌 규제가 강화될 뿐이다.


결국 '원조'란 수식어는 자기 정의가 아닌 자기 규제로써 부르기 

쉽게 만들어진 죄수번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 차이를 격하시킨다.

조롱한다. 새로운 이름을 만들기 보단 다른 개인이 이미 성립된 

이름 속으로 들어오라고 압력을 넣는다.


타자와 사회는 개인의 차이에 결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결코 정의내리지 않는다. 단지 규제할 뿐이다.

사회에 있어 통제가능성의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보다는 

일원화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들과 구분되지 못한 평범함 혹은 남들보다 못하다는 고민이라는 것은

개인을 정의해주리라 믿었던 응답없는 세상에 대한 혼란이다.

즉 그 개인을 정의하는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어떠한 응답도 얻지 못한 개인이라면

이제는 새로운 질문보다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개인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자기선포를 해야한다.


헌데 여기서 처음으로 돌아갈 문제가 생긴다.


만약 그 개인의 자기정의가 개인과 타인의 미묘한 혹은 희석된 

차이만큼이나 기존의 틀과 구분되지 않거나 그만큼  애매하다면

그 자기선포는 무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도 울산바위다"와 같은 케이스처럼 말이다.


구분되지 않는 색의 삼원색은 검정색으로 수렴되듯이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울산바위처럼 떠나야 한다.

그리고 강원도 설악산에서 혹은 금강산, 아니면

함경북도 백두산에서 그것도 아니면 네팔의 에베레스트 산에서

울산바위라고 외치면 된다.


기존의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에서 개인의 미묘한

자기정의를 선포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개인의 다름은 더욱 부각되고 존중된다.

그와 더불어 자기정의는 뚜렷해진다.


서울사람이 서울사람으로 불리지 않는 건 서울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고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으로 불리지 않는 건 한국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으로 불리지 않는 건 당신으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떠나야한다. 

당신을 떠나 당신 밖에 있을 때 당신은 당신이 된다.


왜냐하면 존재란 양각이 아닌 음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당신의 진정한 이름.


   양각 음각.jpg



나는 울산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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