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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207 vote 0 2012.02.27 (15:56:28)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20227014902649

 

 

무슨 위치를 비정한다고 떠드는 사람 중에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특히 환또라이 중에 다수.)

 

신라 왕릉의 위치가 상당수 잘못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왕조가 망하고 천년 세월이 흘렀으므로 누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양반의 여러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불쾌한 것은 명색이 학자에 교수에 대학원장이라는 자가 확실하지 않으면 의문부호를 붙이는게 상식인데도, 이 양반은 제멋대로 소설을 썼다는 거다. 원초적으로 지식인의 자격이 없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유신 장군을 흥무대왕으로 추봉하였는데, 그 능은 서산(西山) 모지사(毛只寺) 동향(東向)한 산봉에 있다.”고 하였으니 곧 태대각간(太大角干) 김유신묘를 이름이다.

 

삼국유사를 참고하면 이근직의 추측이 일단 엉터리임을 알 수 있다. 김유신묘가 평야에 있다는 이근직의 주장은 삼국유사의 동향한 산봉우리에 있다는 주장과 정면충돌한다.

 

이근직이 대타로 내세우는 김인문묘도 사실 평야가 아닌 산기슭에 있다. 김유신묘는 서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나온 줄기에 있으므로 오히려 삼국유사의 기록과 맞다. 김유신은 가야계고 가야계는 무덤이 거의 산에 있다. 산봉우리 아니면 산기슭이다. 평지무덤은 아주 없다시피 하다.

 

화려한 김유신의 무덤을 보고 의문을 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사후 흥덕왕때 흥무대왕으로 추존하였는데 그냥 추존한다고 선언만 하고 끝나는게 아니고 그 사실을 세간에 널리 알릴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김유신 무덤에는 납석으로 만든 작은 12지신상과 화강암으로 만든 12지신상이 이중으로 존재하는데 이는 이중으로 묘역작업을 했음을 의미한다. 나중에 무덤을 옮겼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당시 김유신 일족의 위상은 신라 왕가를 넘었다. 이는 삼국사기만 봐도 알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신라왕가의 묘제가 특이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묘제는 석실분(돌방무덤)인데 신라 왕실 무덤은 적성총이다.

 

10여년전 도굴범이 신라후대 왕의 릉을 도굴한 적이 있는데 이는 후대에 다시 석실분으 묘제가 바뀌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적석총은 도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도 금관이 출토된다. 아니면 옛날에 다 도굴해갔지.

 

적석총은 흉노-시베리아-고구려로 이어지는 북방식 묘제이며 강돌을 태산같이 쌓는 것인데 고구려도 그렇지만, 무덤들이 강에서 가까운 평야에 있다.

 

산기슭에 있는 왕릉들은 강돌을 운반하기 어렵고 석곽묘가 많으므로 후대의 왕릉이며 이 중에는 도굴된 것이 많다. 경주 주변의 산야에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무덤들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가야식 돌방무덤이다.

 

공동묘지와 비슷하게 발디딜틈 없이 무덤들이 들어차 있다. 심지어는 무덤 위에 무덤을 덧씌운 형편도 있다. 당시 경주 인구가 많았던데다가 천년동안 무덤을 써댔으니 남아날 무덤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적석총이 아니다.

 

여기서 규칙.. 왕가의 무덤은 적석총이고 평지에 있으며 일반인의 무덤은 적석총이 아니고 산에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규칙은 후대에 와서 깨진다. 후대에는 왕릉도 산밑으로 옮겨가고 적석총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산기슭에 있는 신라 초기의 왕릉들은 과연 왕릉이 맞는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신라는 박씨, 석씨, 김씨가 돌아가면서 왕을 했고 이 중에 일부는 흉노계 도래인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래서 왕들간에 묘제가 달랐을 수 있다.

 

(신라 왕실이 흉노계라는 기록은 금석문에 나오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흉노인이 바로 건너온 것이 아니라 중국을 거쳐 왔을 수도 있다. 4~6세기에 적석총이 나타나므로 이 시대의 왕들만 혈통이 다를수도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같은 무덤떼에 속하는 무덤들은 같은 씨족집단에 속해야 한다는 거다. 가야계 김유신과 김씨 무열왕의 능이 같은 자리에 있다면 이상하다.

 

신라 초중기에는 왕릉은 평지에 있고 일반인은 산에 무덤이 있으므로 김유신묘가 왕릉밑에 있다면 그것도 이상하다.

 

결론적으로 이근직의 주장은 일단 근거가 없고 여러 부분에서 상식과 맞지 않고 기록과도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냥 추측에 불과하다.

 

1) 적성총은 왕실, 돌방무덤은 일반, 적석총은 평지, 돌방무덤은 산지에 있다.

2) 신라 하대에 와서는 왕릉도 석실분으로 바뀌며 산기슭으로 옮겨간다.

3) 김유신묘는 산지에 있고 왕족이 아니므로 적석총은 아닐 것이다.

4) 삼국유사의 기록으로는 김유신묘가 맞을 가능성이 높다.

5) 씨족이 다른 김유신묘가 무열왕릉 밑에 있다면 이상하다.

 

  77777.JPG

적석총은 신라 중기 왕족의 무덤이며 평지에 있고 같은 무덤떼는 같은 씨족에 속하며 그 이유는 땅주인이 같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왕족도 아닌 일반인이 평지에 무덤을 쓴다는건 넌센스다.

 

가야계인 김유신은 가야식으로 산기슭 혹은 산봉우리에 무덤을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77776.JPG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2.03.01 (15:13:28)

김유신은 신라의 신하가 되었지만 가야세력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지던데...

오히려 군소나라로 흩어져 있던 가야들이 나라들이 망하자 하나의 가야가 되어 신라와 합쳐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가야세력과 신라왕실 세력과 손을 잡은 김유신..그리고 삼한일통의 선봉장이었던 김유신...

가야인들을 신라인들과 융합한데 어느정도 성공하였던 듯도 하고... 김유신의 누이동생과 김춘추의 결혼은 그런 상징성도 있는 듯 하고... 다문화의 성공이었을까?...^^

가야방식의 무덤을 썼다하여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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