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선생님들 보라고 쓴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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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선생님들과 학부모상담 얘길 또 해야 하는데 무슨 얘길 할까?

트라우마 겪은 사람은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첫째,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의 의도를 의심한다.

한 번 개장수에게 끌려간 개가 선량한 사람의 손을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그 손이 도와주는 손이라고 믿기까지는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둘째, 상대방이 과연 자기 사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거다. 내가 겪은 고통을 저 사람은 이해

못할 거라는 불신이다.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의 위로가 위로가 아닌 상처로 남기 쉽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제일 어이 없던 분들이 '아버지가 없으니 네가 이제 아버지 대신이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버지 없으니 네가 어머니를 돌봐야' 같은 말을 한 사람들이다.

도움이 된 위로는 '아버지가 참 좋은 분이셨다'는 말씀, 말없이 두 손을 잡고 눈물을 쏟으시는 분들의 마음이었다.


셋째, 자신의 실체가 들킬까 걱정되어서다. 이게 다 자기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잘못이 아님에도) 이런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면 상대방은 실망하고 도망갈텐데 난 어떻게 할 것인가?

더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저 사람을 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선의의 상대방의 속을 긁고

겉도는 대화를 하거나 상담을 갑작스레 피해 버린다.


그러고 보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만 그렇겠는가?
인간관계의 유지와 발전은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믿음,
상대방이 자신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것이 포용될 수 있다는 믿음에 달려있다.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담임교사는 우리 아이를 도우려는 사람인가, 귀찮게 생각하는 사람인가?


담임 교사가 우리 아이를 이해하는 사람인가, 그저 교사입장에서 편견에 사로 잡혀 잘못만 말하는 사람인가?


내가 아이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포용하고 끝까지 우리애를 위해 나를 도와줄 사람인가,

아니면 애를 잘못 키웠다고 나를 비난할 사람인가?


일이관지다. 평소에는 안보이는데 어떤 문제를 다루다가 NO라는 판정을 인식하면 그제서야

당연시 여기던 생각들을 거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한다. 도대체 문제가 뭔지 분석하고 찾으면서

면밀히 검토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수립한다. NO라는 실패가 없으면 성숙의 기회를 얻기 어렵다.

운좋게 애들 잘만나서 학급운영이 잘되면, 그로 인해 몇 년 뒤 쓰디쓴 패배감을 맛보게 된다.


근게 그게 기회라는 거다. 내 눈앞에 금덩이가 떨어져 있는 거다. 때문에 교사를 당황시키는 학급,

당황시키는 아이들은 교사의 성장기회다. 당시에는 쓰디쓴 아픔을 주지만,

몇 년 뒤 질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아이가 스승이고, 인생의 중요한 기회가 그렇듯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그때를 준비하고 그 아이를 통해 성숙하는 것이, 그 부모를 만나 성숙하는 것이

교사의 운명이다.


#영화로만나는치유의심리학 '굿 윌 헌팅 편', 김동렬의 구조론, 평소생각 - 글쓸 때는 책 뒤적이지 않는다.

책보고 덮고 딴짓하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글로 옮긴다. 요즘은 달라보이는 것들이 어떻게 같은지,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되는지 관심이 많다. 달라보이는 것이 같게 보일 때 통찰을 얻는다.

한편으론 하도 시작했다가 접는 일들이 많아서. 아쉽기도 한데. 그게 누적되면 중보 포기했던 것들이 응축되어

나중에 뭔가 나오겠지.


# 글후반에 갑자기 왠 NO 판정과 금덩이 얘긴가 싶을 수 있다. 교사에게 NO는 자기는 학급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안좋을 때다. 문제행동이 심한 아이를 지도했는데, 성과는 커녕 나까지 지치고

수준이 같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자존감하락과 소진을 경험한다.

진상 학부모 만나서(사실 진상인지 아닌지도 불명확하지만, 진상을 만든게 나인지 부모인지 학교인지도 모르지만) 시달리다가

트라우마가 생긴다. 바로 그 트라우마가 내게 금덩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금덩이 주은 사람이 여기 있지 않은가? 나 이상우. 내가 금덩이를 주은 증거요, 그 증거를 선생님들께 나눠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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