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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494 vote 0 2011.07.25 (12:41:40)

 

언론의 옥주현 죽이기

 

영심사인지 어떤 점쟁인지 하는 양반이 옥주현 탈락을 하루 전에 예언했다지만 필자는 일주일 전부터 그의 탈락을 예견했다. 최근 일주일간 옥주현 언플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옥주현으로 도배를 하다가 딱 멈추면 냄새가 난다. 옥주현은 처음 등장때부터 과도한 편집배려를 받았고, 나갈 때도 거물처럼 화려하게 전송받았고, 탈락이 예정된 일주일간 조용하더니, 나가고 난 뒤에도 지나치게 언론을 탄다. 이 정도면 눈살이 찌푸려질만하다.

 

다음 포털은 아예 옥주현 포털처럼 보인다. 왜 대놓고 이러시는가? 이것이 옥주현 죽이기가 된다는 사실을 언론들은 정녕 모르는가? 지금 언론들이 생사람 하나 잡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몰라서 이러는가?

 

언론들은 옥주현 안티의 이유를 진짜로 모르는가? 아니면 뒤로 짜고 모르는 척 의뭉을 떠는가? 정면에서 이 문제를 언급한 언론사나, 기자나, 칼럼니스트는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없다. 이게 문제.

 

늘 그렇듯이 이건 정치문제다. 황우석, 심형래, 천안함, 광우병촛불, 타블로 이 모든 사태에는 ‘대중의 권력의지’라는 정치적 본질이 숨어 있다. 왜 옥주현을 살벌한 정치판에 끌어들이는가 말이다.

 

정치 아니라고? 단지 예능일 뿐이라고?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미친 거다. 타블로는 아직도 고생하고 있다. 배후에 대중의 정치적 의도가 있기 때문에 안티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타겟이 있으니까.

 

타블로가 아무리 결백하다 해도 대한민국이 지난 50년간 전혀 공정하지 않게 작동했다는 사실은 불변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노림수가 있고 반향이 나와주는 타겟이 있으면 무조건 찔러보는 사람 있다.

 

황우석, 심형래, 천안함, 광우병촛불, 타블로들은 국회에서 일어난 정치사건이 아니지만 명백히 대중의 정치적 지렛대로 작동한다. 이는 대중의 권력행사 방식이다. 누가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겠는가?

 

이 시대 정치판의 화두는 ‘진정성,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사회’다. 옥주현은 진정성 대신 마당발(측근이 붙여준 옥주발이라는 별명이 단적인 예)이며, 정의가 아니라 불의, 공정하지 않다는 정치적 상징이다.

 

김건모의 재도전 역시 불공정 때문에 말썽이 났다. 불공정이 큰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시점에 하필 진작에 불공정의 상징으로 떠올라 안티가 많았던 옥주현을 끌어들인 것이 방송사의 잘못이었다.

 

립씽크는 불공정한 것이며, 립씽크 하는 댄스가수는 전체적으로 불공정한 특권 집단이며, 댄스음악 위주의 아이돌은 그 존재 자체로 이미 불공정하게 특혜받은 귀족집단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거다.

 

아이돌 가수들이 황금시간대에 배치될 때 임재범은 예수님 같았던 긴 머리 잘리고(로커로서는 최악의 수모, 거의 인격살인) 다들 잠든 심야에 수요예술무대에 서야 했다. 이렇게 공정하지 않았다.

 

옥주현은 성형수술 하고 다이어트 해서 예뻐졌다. 방송 나와서 요가 하며 '뚱뚱한건 게으런 거다'는 식으로 말한다. 고액과외 해서 서울대 합격한 사람이 '과외공부 안 하는건 게으런 거다'하고 면박주는 것과 같다.

 

이게 공정해? 이게 정의야? 이게 진정성이야?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모아서 성형수술을 해야 하는가? 이거 굉장한 스트레스다. 옥주현은 모든 한국인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모든 학생들은 고액과외를 해야한다면, 설사 그래서 성적이 10점 올라갔다손 치더라도 그게 과연 대한민국에 플러스가 되는 일인가? 왜 이러한 본질을 아무도, 단 한명도, 그 누구도 말하지 않을까?

 

성형수술 했으면 조용히 다녀야 한다. 다이어트 자랑도 좋지 않다. 그거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방송에서 요가를 선보인 것이 가장 나빴다. 고액과외 해서 서울대 합격했으면 적어도 과외학원 홍보로 나대지는 말아야 한다.

 

서울대 수석합격자의 공통된 발언이 있다. 인터뷰에서 ‘교과서만 봤다’고 거짓말 하는 거다. 왜 그들은 한결같이 거짓말 할까? 자칫 고액과외의 진실을 말했다가는 돌 맞을 것이 뻔 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옥주현을 잊어주는 것이 돕는 것이다. 언론은 위험한 불장난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계속 이런 식이면 기어코 탈이 나고야 만다. 왜? 이건 명백히 대중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아픈 데를 찌른 것이다. 고의는 아니었을지언정 옥주현은 부지불식간에 대중에게 모욕을 준 것이다. 그게 전부 다 옥주현 잘못은 아니지만 그런걸 편집하지 못한 언론은 분명히 잘못했다.

 

대중이 원하는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숨은 천재를 발굴하는 것이다. 대중은 언론이 퍼뜨리는 성공지상주의를 싫어한다. 제발 성공타령 하지 마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치어, 운명에 치어 빛을 보지 못하는 임재범, 백청강, 최성봉, 김태원과 같은 숨은 천재를 발굴하여 기회를 주는 것이 정의다. 그럴 때 대중은 열광하고 지지를 보낸다.

 

자가발전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요가하고, 열심히 디어어트 하고, 열심히 성형하고, 열심히 화장하고, 열심히 인맥쌓고, 얼굴 두껍게도 모르는 사람에게 대뜸 ‘오빠!’ 하고 전화하고, 열심히 자기 세일즈 하는 자는 되도록 배제하는 것이 맞다. 대중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대중은 신데렐라를 좋아한다. 신데렐라는 전혀 노력하지 않고도 단번에 왕자의 옆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다. 그냥 요술공주 마법을 써서 단번에 변신하는게 대중이 원하는 거다.

 

대중이 원하는건 노력하는게 아니라 최선의 포지션 조합을 맞추어, 최고의 화음을 끌어내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여 이것저것 다 잘하는.. 타블로같은 엄친아, 만능인, 팔방미인, 범생이가 아니라 단지 한 가지 재주를 가졌을 뿐이지만 어떤 운명적인 찬스에 그 재주를 살려서 사회 전체에 플러스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소라가 그랬던 것처럼 98프로 갖춰진 팀에 부족한 2를 채워줄 히로인이 되어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100의 능력을 갖추었더라도 80만 보여주는 것이 맞다. 80을 가진 사람이 주변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열심히 노력하여 100이나 120을 해내면 대중은 그걸 공정하지 않다고 여긴다.

 

세상의 좋은 일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주고, 동기를 부여하고, 포지션의 조합을 잘 맞추고, 팀을 잘 편성하고, 만나야 할 사람을 서로 만나게 해서 증폭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공진을 일으키는 것이다.

 

북이 북채를 만나서 소리를 내듯이, 산사의 범종이 당목을 만나 제 소리를 내듯이 숨은 인재를 찾아내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대중이 원하는 거다. 그럴 때라야 대중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은 개인의 사사로운 인맥 위주로 가서 자기 사람 심고, 원래 별 것 아닌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여 겨우 흉내나 내면서,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으로 해놓고 잘났다고 으시대는 것이다.

 

◎ 능력이 있음에도 부산출마로 물러선 사람 – 노무현
◎ 열심히 노력하여 마침내 대통령 된 사람 - 이명박

 

노무현 대통령은 인맥을 쌓지 않았다. 세력을 모으지 않았다. 천정배 한 사람이 지지했을 뿐이다. 그래놓고 나중 배신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종로 지역구 놔두고 부산 내려갔다. 죽을 곳으로 간 것이다.

 

이명박은? 양지만 살살 찾아다녔다. 이명박은 딱 한 번 만나본 부하직원 얼굴과 이름도 기억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맥의 달인이었다. 소망교회, 고려대, 영남인맥 잘도 활용했다.

 

모델 장윤주가 인기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성형을 할만한데도 성형을 하지 않고 화장도 덜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센스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발 한국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 성형하고, 화장하고, 공부하고, 스펙쌓고, 인맥쌓고 노력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주지 말라.

 

사회가 너무 빡빡하게 돌아간다. 그래서 대중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액과외도 해야하고, 강남으로 이사도 가야 하고, 조기유학도 해야 하고, 외고입학도 해야하고, 부동산투기도 해야하고, 성형수술도 해야하고, 치과 보정기도 끼워야 하고, 소망교회 인맥도 쌓아야 하고, 스펙도 쌓아야 하고, 고액등록금에 알바도 뛰어야 하고, 해야할 것이 너무 많다. 남들은 다 한다는데 나만 소외된 느낌이다. 그런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언론이 할 일이다.

 

최성봉은 열심히 노력해도 부족할 판에 엉뚱하게 노가다판에서 막일이나 했다. 예고 다니면서도 밤새 옥천의 택배회사에서 일하느라 공부 못했다. 주변에서 도와주겠다는데도 자존심 때문에 거절했다. 워낙 독립적으로 자랐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서툴러 타인과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 그러고도 떴다.

 

임재범은 열심히 앨범 홍보해도 부족할 판에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김태원은 열심히 노력하기는 커녕 동료를 잃은 슬픔에 빠져, 술이나 마시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런게 진짜다. 그런 세상의 게으럼뱅이들, 엉뚱이들, 괴짜들도 최고의 리더를 만나, 최고의 팀만 꾸려지면 보석처럼 찬란한 빛을 낸다.

 

북이 소리를 내려면 최소화 되어야 한다. 가득 채워져 있어서는 소리를 낼 수 없다. 이 세상의 가치있는 것들이 제 빛을 내려면 더 비워져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너무 채우려고만 든다.

 

성형하고, 보정하고, 과외받고, 언플하고, 인맥쓰고, 노력하고, 스펙쌓고, 그게 너무 심하여, 챙긴 것이 너무 많아서 다들 갑옷입은 무사처럼 뒤뚱거리고 있다. 우리는 더 비우고 가벼워져야 한다. 음악 외에 아는 것이라곤 없는 무식가 김태원처럼 머리 속도 텅텅 비워두어야 한다.

 

다이아몬드가 빛이 나는 이유는 주변의 불순물들을 최대한 잘라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최고의 조합, 최고의 포지션, 최고의 팀, 최고의 화음, 최적의 밸런스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진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워야 한다. 왜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가?

 


PS..

한국이 축구를 잘 해서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고 치자.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물었다. '한국 선수들은 얼마나 열심히 축구를 하길래 그렇게 잘 하지?' 이때 한국인의 대답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1) 열심히 하긴 뭘. 한국 선수들은 원래 잘해. 대충 했는데도 어쩌다보니 결승까지 왔더라구. 슬금슬금 하다보니 우승이더라고. 이 정도 가지고 뭘 낯간지럽게 칭찬을 다 하고 그래. 이 정도야 보통이지. 사실은 실력의 반도 못보여준 것임. 대수로운 거 아녀.


2) 한국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선배들에게 구타당하며, 수업 빼먹고 밤늦게까지 연습하지. 학부모들은 감독에게 거액을 바쳤기 때문에 본전 뽑으려고 죽도록 연습시키지. 축구에 인생을 바친 거지. 외국에서 최고의 감독 모셔왔지. 협회에서 거액을 투자했지. 심판들 다 구워삶았지. 정말 한국은 최선을 다했다구. 할 수 있는건 다 했어.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1.07.25 (13:22:59)

옥가수로 퉁치려는 수작이오. 엠사장은 끌고와야 평론이오.

 

명박이를 잡아와야 언론이오. 건희까지 달려와야 정치오만,

 

그냥 열씸인걸 걸어두고 때우려는 개자녀들 수작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27]오리

2011.07.25 (15:06:06)

사회가 너무 빡빡해. 땅떵어리가 좁아서 그러나.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7.25 (15:22:49)

언론 이기주의... 장사만 되면 ...누가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것.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 그동안 학습효과로 대중심리의 흐름을 어느정도 파악하고나서 대중을 엿먹이고 있음.

그러다 언론 니네들도 크게 한방 먹는 수가 있다. 그래도 장사만 잘되면 좋다고 생각하겠지... 희생양 하나 갖다주고 그 부산물의 이익을 챙겨가는 하이에나들...

 

솔직히 대중은 원곡을 뛰어넘을 것이 필요하고, 원곡자는 딱히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30~50년이나 100년정도 흐르면 원곡의 위상은 더 커지기도 한다. 단지 그 시대에 원곡(시작부분)을 뛰어 넘으려고 하는 것은 그 시대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

[레벨:7]꼬레아

2011.07.25 (18:26:03)

옥주현은 공범

[레벨:1]이리

2011.07.27 (15:57:51)

전송됨 : 페이스북

대중은 치열한 노력보다는 천부적인 재능에 열광한다.. 


노력에는 꼼수가 있고.. 재능에는 진정성이 있기 때문..


그러한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노력을 했음에도.. 타고난 재능인 듯 연기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 듯 합니다.


건필하십시오~!



(게으런  --> 게으른)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7.27 (18:18:02)

 

 

'그러한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노력을 했음에도.. 타고난 재능인 듯 연기해야 한다?'

...여기서의 치열함은 자기 격을 지키기 위한 치열함이고, 격을 잘 사용하기 위한 치열함이라고 생각해보네요.

 

사람은 그것이 부모든,돈이든, 환경이든, 학벌이든, 권력이든....주어진 것에서 시작하게 된다고 보지만, 물론 학벌은 돈과 비례되는 경우들이 요즘은 흔하고, 권력은 왕조시대에는 혈통으로 주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후천성을 더 갖고 있다고 보이지만....

어쨌든 사람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의 덕을 많이 본다고 생각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써 먹으면서(재능을 개발하므로 인해서...) 뭔가를 실현해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의 경로, 혹은 운명을 보자면, 사람은 자기 격대로 살다가 격대로 마감한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의 바운더리가 점 점 커지면은 국가를(국민을) 보듬어 안고, 인류를 보듬어 안고, 우주를 아우르기도 한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그것은 그 사람의 격의 크기라고 생각되기도 하구요.

 

그러므로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격(한 사람의 바운더리 확장 범위)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격을 어떻게 잘 써 먹느냐, 풀어내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잘 써 먹을려면 방해물들(격을 풀어내는데 용이한 환경 조성)이 제거되어야 하고,  잘 써 먹는다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격을 풀어서 써 먹는 것이기 때문에, 있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있는 것을 쓴다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하구요.

 

그러다보면 환경과의 교감능력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구요. 좋은 포지션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인류의 모든 성인, 위인들이 대체로 그러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우리와는 뭔가 다르다. 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상대적 관점이 개입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타고난 격의 크기가 달라서 일 수도 있겠지만은요.

 

치열한 노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격대로 살고 , 그것에 맞게 풀어내기 위해서 치열했지만, 대중에게는 그러한 것이 드러날 때 즉 격이 드러날 때 천재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자기 격을 스스로 조절하게 될 때 어느 정도는 마음대로 풀어내거나 감추거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비춰지는 것이 천재로 비춰진다고 생각됩니다.

 

대중에게는  치열함이 존재했던 시기는 잘 안보이므로... 또한 천재의 치열함을 당연하게 비범하게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보이므로...., 그러나 천재도 자기 격을 잘 다루는 시간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즉 타고난 재능은 맞지만,  재능을 잘 쓰기 위해서 어느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세상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구요.

 

사람은 어느 순간에 격(그릇,틀)을 확장해야 될 때 확장을 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확장이 안되는 (한계) 사람이 있기도 하다고 봅니다. 확장을 하는 사람은 더 큰 틀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더 키울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타고난 격(그릇)의 차이가 있다라고 생각되기도 하구요. 그러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노력이라는 것은 어느 선에 가면 한계가 있다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고의 틀을 바꾸면 일말의 가능성은 있다고 보이지만, 사고의 틀을 바꾸기가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세상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또한 반면에 인간들이 가지는 격을 다 제대로 써 먹지 못하고 마감하는 경우들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것의 가장 큰 요인이 방해물(환경이 용이하지 않음, 제약) 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됩니다.

 

 

 

^^ 길어졌네요. 그래서 따로 쓸까 하다가 그냥 여기에 씁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7.27 (20:03:56)

인품이라는 것은 자신의 바운더리가 커져감에 따라서, 혹은 정신을 확장시킴으로서 어떠한 것들과 굳이 대립할 이유나, 이해되지 못할 것이 없을 때 저절로 포용해 버리게 되는 것, 인품이 좋아지겠다고 마음 먹어도 어는 순간이나 혹은 상황이나 환경의 제약을 받으면 한계를 드러낸다.

 

포용과 관용은 자신의 정신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러나 포용하거나 수용하거나 받아 들이지 않을 때도 있다. 이해를 못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것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정신은 자신의 격을 까먹고 성장한다. 즉 격은 가지고 있는 것이고 정신은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격이 많이 소모될수록 정신은 확장되어 간다. 그리고 어느순간 더 격을 소모할 것이 없을 때 자신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격과 정신의 크기는 같아진다.

 

인품이란 어떤 고매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확장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포용해버리는 그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타자들이 볼 때는 고매한 그 무엇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정신이 커져서 이해되어 버린 것이라서 굳이 부딪힐 필요가 없는 것일 뿐이다. 아주 간단한 거다. 그러므로 화를 내지 않고도 상대와 논쟁 할 수도 있다. 감정을 실지 않고도 대화 할 수 있다. 단지 대화가 필요하기에 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후천적으로 습득된 교양이 첨가되면 아주 세련된 매너도 겸비할 수 있다. 그러면 인품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격은 자신이 타고난 그릇의 크기....

정신은 격을 키울 때(써 먹거나 소모 시킬 때) 사용된다. 즉 바운더리를 확장시킬 때...

정신은 외부와 교감하여 환경을 읽는다.

정신을 확장 시킨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격의 크기를 떼어 쓴다는 것이다.

정신을 확장 시키면 시킬수록 자신의 격의 크기는 줄어든다.

그 이유는 이미 있는 것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다.

자신의 본래 가지고 있는 격의 크기와 자신이 확장한 정신의 크기가 같아질 때.. 더 써 먹을 격은 없다.

그래서 격의 크기가 사람의 인격의 크기를 결정한다.

정신이 계속 성장하는 사람은 격이 아직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정신의 성장이 멈춘 사람은 자기의 격을 다 써 버렸거나, 자신의 격을 사용할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 이런 생각이 더 들어서..추가로 써 봅니다.

사람들이 보통 인품이라는 것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오히려 자신이 뭔가에 대해서, 혹은 정신의 확장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겸손을 가장하기도 한다고 봅니다.

물론 알아도 모른척, 몰라도 아는 척 하기도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굳이 겸손할 필요없이 제대로 가르쳐 주면 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세련된 매너도 있다면이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27 (22:44:10)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명료하게 이해되지는 않고 있으나

 

대략 인품은,

아니 그 이전에 하나의 존재는

 

대칭구조 안에서의 상호작용입니다.

어떤 상호작용을 하느냐가 인품을 결정하지요.

 

퍼스낼리티란 연극에서 쓰는 탈바가지인데

어떤 탈을 쓰느냐 곧 집단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느냐,

 

말뚝이가 되느냐 양반탈을 쓰느냐 초랭이탈을 쓰느냐 부네탈을 쓰느냐

세상과, 신과, 타자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느냐입니다.

 

어떤 대칭구조 안에 올라서 있느냐지요.

쉽게 말하면 뭐가 되려고 하느냐 아니면 뭐를 하려고 하느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사회 안에서 상대적인 어떤 목표를 가지느냐

아니면 사회를 떠나 개인적으로 절대적인 어떤 목표를 가지느냐지요.

 

사회안에서 남보다 잘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면

구태여 자신이 잘할 필요가 없지요.

 

남이 못하면 자동으로 자기가 잘 하게 되니까. 이게 문제.

그 경우 저격을 당하지요.

 

그러므로 사회 밖에서 독립적인 자기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인품이 나쁜 예

1) 좋은 남편, 아내가 되겠다.(타인에게 인정받겠다는 뜻)

2) 일등 하겠다.(누군가를 2등 밑으로 끌어내리겠다는 뜻)

3) 출세하겠다.(대다수 사람들을 실패자로 만들겠다는 뜻.)

4) 대통령이 되겠다.(사람들을 졸로 만들겠다는 뜻.)

5) 착한 사람이 되겠다.(대다수를 바보 만들겠다는 뜻.)

 

이런 사람은 인품이 나쁜 사람입니다.

 

인품이 좋은 예

1)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다른 사람을 관객으로 참여시킨다.)

2)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겠다.(역시 제 3자에게 기회를 준다)

3) 세상을 바꾸겠다.(사람은 건들지 않겠다는 거.)

4) 진리를 파악하겠다.(사람이 아닌 룰과 시스템을 건드린다는 거.)

5) 멋진 사람이 되겠다.(친구 하자는 뜻.)

 

고수들은 사람과 비교하고 험담하고 꾸짖고 격려하고 그럴 것이 아니라

룰을 건드리고 시스템을 손 보지요.

 

결론은

주관의 언어를 쓰면 아웃

객관의 언어를 쓰면 OK

 

객관의 언어를 쓰면 인품이 높은 것입니다.

단지 사용하는 단어만 바꾸면 됩니다.

 

세련된 매너, 교양, 도덕 다 필요없어요.

매너니 에티켓이니 교양이니 도덕이니 겸손이니 하는 언어쓰레기들은

좀 아닌 인간들이 자꾸 엉기고 달라붙으니까

쫑코 줘서 떨구어버리겠다고 지어낸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혀 불필요.

 

욕먹는 사람은 공통점이 있어요.

룰을 고치고 시스템을 바꾸고 외부환경을 고치고 이렇게 하는게 맞는데

사람을 건드립니다.

사람덕을 보려고 기를 쓰고.

사람 안에서 어떻든 답을 만들려고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곧 타인을 그 좋은 사람인지 평가하는 심판관으로 모시겠다는 거고 그 심판들은 당연히 심판 역할을 해야하므로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사람들에게 나쁜 역할을 주는 겁니다.

 

(한없이 베풀어주는 좋은 엄마 밑에 꼭 한없이 사고치는 나쁜 아들 있는 경우 많이 봤음. 둘은 궁합이 잘 맞는다는 느낌.) 

 

철저하게 객관화 되어야 합니다. 내가 좋은 차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 차 맛을 보겠다고 방문할 테고 그러면 가만 있어도 인품이 높은 사람이 됩니다. 매너고 교양이고 체면이고 도덕이고 윤리고 에티켓이고 다 필요없어요.

 

차가 좋은 거지 내가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내가 좋다고 주장하면 다 떨어져 나갑니다. 사람은 어벙한데 그 사람이 닳인 차는 괜찮더라 이래야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7.28 (07:41:35)

 

 

저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표현이 조금 다르니 다른 것 같기도 하네요...^^;

 

같은 방식으로 역으로 예를 들자면...

아무리 그 차가 좋다고 그 사람이 말을해도, 혹은 자신은 어떤 사람이다.라고 강조를 해도,  차 맛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사람의 말을 듣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차 맛을 보면 강조하는 말과 차 맛이 서로 일치 하는지, 아닌지 알게되지요.

그러므로 그 차 맛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이 드러나 버리게 되므로...,  차가 차에 대해서 알려주지 사람이 강조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더라...이런 의미인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러니 사람은 애초에 그 판단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기에, 또한 그러하므로 차 맛을 판별하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하여 차가 좋으면 되는 거지, 사실 그 외의 것들은 불필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실제로도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다고 생각되기도 하네요. 차 외에도 많은 것들을 대입해 보아도 다 똑 같은 결론이 나오게 되므로...  등식의 성립입니다. ^^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28 (09:12:50)

인품, 인격, 매너, 에티켓, 교양, 품격.. 이런거 다 후진국형 언어입니다.

서구에서는 18세기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이런게 생겨났습니다.


왜? 스페인의 금을 영국 해적들이 약탈해 오면서 또 영국이 식민지에서 금은보화를 가져오면서

졸부들이 많이 탄생했고 이들 졸부들이 하는 짓이 눈꼴시어서 그런 겁니다.


그때부터 부르조아 가문의 젊은 여성들은 교양 매너 에티켓 된장녀 이런걸로 무장하고

해적 장군 귀족 총독 졸부 <- 이들은 대개 노총각임. 외국에서 개고생 하느라 장가도 못가


들의 금은을 털었는데 어지간한 부호 귀족 장군 해적 총독들도 3년 안에 거지가 되곤 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발자크의 소설에 잘 묘사되곤 하지요.


한국이 지금 딱 이런 시점에 와 있으니 된장녀 이런 것이 생겨난 겁니다.

근데 선진국이 되면 다 필요가 없어요.


아이돌은 기획사에서 키우기 때문에 자기 재주가 아닌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 로봇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말을 잘 들어야 하지만 즉 자기것이 아닌 남의 것


혹은 국가 공공재를 사유화 시켜서 해쳐먹기 때문에 겸손해야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자기 재주로 먹고 살기 때문에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찢어진 청바지 잠옷바람 구멍난 스웨터로도 칭찬을 듣는 거지요.

그 찢어진 옷 잠옷바람 이거 굉장히 교만한 복장입니다.


아이돌이 그랬다간 맞아죽습니다.

잡스가 교만한 이유는? 자기걸로 돈 버니까.


선진국이 되면 된장녀 교양 에티켓 매너 인품 품격 이런게 걍 사라집니다.

그거 있다면 후진국입니다.


정당하지 않은 부, 눈먼 돈, 졸부들이 돌아다니므로 나타난 사회현상이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7.28 (12:37:03)

 

^^ 말씀 하신 김에 ...

 

인품이나 매너 이런 것이 사실은 불필요한 것인데....이러한 것을 엄밀하게 말한다면 이성의 영역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이타성(사랑)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어떻게 발현되어져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부분은 굳이 나눈다면 감성의 영역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러나 감성 역시 이성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나누는 것이 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둘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것일까요?

 

질문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더 진도를 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2011.07.28 (12:31:12)

인품이 좋은 예

1)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다른 사람을 관객으로 참여시킨다.)

2)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겠다.(역시 제 3자에게 기회를 준다)

3) 세상을 바꾸겠다.(사람은 건들지 않겠다는 거.)

4) 진리를 파악하겠다.(사람이 아닌 룰과 시스템을 건드린다는 거.)

5) 멋진 사람이 되겠다.(친구 하자는 뜻.)

 
-인생의 방향, 교육의 목표를 제시해 주시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28 (13:40:11)

하나의 존재는 곧 상호작용입니다.

상호작용이 없는 것은 존재가 아닌 거지요.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가인데 주관적 객관적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주관적 상호작용은 인품이 없는거고 객관적 상호작용은 인품이 있는 겁니다.

주관적 상호작용은 예컨대 누가 일등을 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2등으로 내려간 덕분이므로 사람들이 그 공적을 순수하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객관적 상호작용은 예컨대 누가 발명을 했다면

다른 사람과 상관없는 독립적인 영역이므로 인정을 합니다.

이건 무조건 인품이 있는 겁니다.

즉 인품은 그 사람들의 행동(매너 겸손 도덕 윤리 에티켓)에 의해 결정되는게 아니라

오직 상호작용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어떤 대칭구조 안에 있느냐죠.

콜롬부스가 신대륙에서 금을 가져온건 객관적 상호작용입니다.

누굴 이등으로 끌어내리고 밟고 올라선게 아니죠.

그래서 콜롬부스가 아무리 교만한 행동을 해도 다 칭찬만 하는 겁니다.

근데 알고보니 인디언의 것을 뺏어온 것이에요.

들켜버린 거지요.

이건 주관적 상호작용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콜롬부스를 약탈자 살인마로 부르지요.

어쨌든 스페인 관점, 15세기 관점에서는 객관적 행위고

전 지구적 관점, 초시대적 관점에서는 주관적 행위입니다.

주관적 상대적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좋지 않습니다.

객관적 절대적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옳습니다.

 

감정적 행위는 그 상호작용의 대칭축이 자기 내부에 있는 겁니다.

상호작용이란 '니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대항논리, 대응행위인데

이성적 행위는 타자와의 교감 즉 바깥에 있는 것을 두고

니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대응논리를 만드는 겁니다.

감정적 행위는 자기 내부에서 그 대응논리를 가지는 겁니다.

 

마을 공동우물을 어떻게 했다하면 그것은 주관적 상호작용입니다.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우물을 파서 물을 끌어왔다면 객관적 상호작용입니다.

닫힌계 안에서의 상호작용은 주관적인 것이며

닫힌계 밖에서의 상호작용은 객관적인 거지요.

 

이 주관적 객관적 상호작용은 외부를 바라보는 것이고

감정적 행위는 자기 내부에서의 상호작용입니다.

예컨대 사랑의 경우 몸이 반응합니다.

마음(혹은 머리)이 이렇게 하면 몸이 이렇게 합니다.

그 마음과 몸의 관계, 혹은 머리와 마음의 관계가

주관적인 상호작용 관계가 되면 망가집니다.

그 역시 객관적 상호작용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상호작용은 욕구와 그 욕구의 충족이기 마련인데

객관적 상호작용이란 계속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기존의 패턴이 반복되면 어떤 경우에도 망가집니다.

외부로의 출구가 없는 계 내부에서의 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실패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발전이 없으면 감정의 상호작용은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습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불안 초조 강박 분노 불면증 스트레스 홧병 등으로 몸이 반응을 하는 거지요.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서 새로운 목표를 주는 방법으로

외부로의 출구를 열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7.28 (18:46:44)

주관적 상호작용은 인품이 없는거고 객관적 상호작용은 인품이 있는 겁니다.

주관적 상대적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좋지 않습니다.

객관적 절대적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옳습니다.

감정적 행위는 그 상호작용의 대칭축이 자기 내부에 있는 겁니다.

감정적 행위는 자기 내부에서 그 대응논리를 가지는 겁니다.

이성적 행위는 타자와의 교감 즉 바깥에 있는 것을 두고

니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대응논리를 만드는 겁니다.

닫힌계 안에서의 상호작용은 주관적인 것이며

닫힌계 밖에서의 상호작용은 객관적인 거지요.

이 주관적 객관적 상호작용은 외부를 바라보는 것이고

감정적 행위는 자기 내부에서의 상호작용입니다.

마음(혹은 머리)이 이렇게 하면 몸이 이렇게 합니다.

그 마음과 몸의 관계, 혹은 머리와 마음의 관계가

주관적인 상호작용 관계가 되면 망가집니다.

그 역시 객관적 상호작용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상호작용은 욕구와 그 욕구의 충족이기 마련인데

객관적 상호작용이란 계속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기존의 패턴이 반복되면 어떤 경우에도 망가집니다.

외부로의 출구가 없는 계 내부에서의 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실패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발전이 없으면 감정의 상호작용은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습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불안 초조 강박 분노 불면증 스트레스 홧병 등으로 몸이 반응을 하는 거지요.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서 새로운 목표를 주는 방법으로

외부로의 출구를 열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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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작용은 욕구와 그 욕구의 충족이기 마련인데

객관적 상호작용이란 계속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 이러한 생각이 들 때, 혹은 행위가 일어날 때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러므로 자기발전이 없으면 감정의 상호작용은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습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불안 초조 강박 분노 불면증 스트레스 홧병 등으로 몸이 반응을 하는 거지요.' ..... 이러한 상황이 될 때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조를 보려면 닫힌계를 형성하여 건조한 뼈대를 보아야 하지만, 주관적 객관적 상호작용에서는

'닫힌계 안에서의 상호작용은 주관적인 것이며

닫힌계 밖에서의 상호작용은 객관적인 거지요.'... 이렇게 되므로, 객관적 상호작용이 되려면 닫힌계를 해제하거나, 닫힌계 바깥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씀이시겠지요? 그러므로 객관적 상호작용이 될려면, 내부에 갇히지 말고 계속 외부로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이시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28 (19:09:20)

상호작용은 토대의 공유입니다.

싫은 사람과 한 집에서 사는 거지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처럼.

객관화 한다는 것은 제 3자의 관개입니다.

 

공무원과의 관계나 가게 점원과의 관계는 객관적 관계입니다.

한 사람이 득을 보면 상대적으로 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의 토대공유가 없지요.

 

주관적 관계는 '내가 이렇게 하면 네가 이렇게 하는' 토대공유의 시소가 작동하는 거고

내가 안방으로 가면 상대방은 거실로 가야한다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반응관계입니다.

 

그러나 이외수와 이외수 며느리와의 관계는 문학을 고리로 한 제 3자적 관계입니다.

사이버지와 며느리의 관계가 아니라 문학원로와 문학신참의 관계죠.

 

자녀가 있다면 며느리는 자녀의 양육자가 되고 시어머니는 자녀의 놀이상대가 되겠죠.

이런 식의 제 3자적 관계를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 객관화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간에도 취미, 기호, 이념, 종교, 스포츠, 오락 등을 매개로 한

제 3자적 관계가 끊임없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 상해서 깨집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7.28 (19:39:53)

 

 

많은 것들이 주관과 객관으로 단방에 정리가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따지고보면 복잡할 것이 없는데..복잡하다고 여겨지는 것도 단힌계를 형성하여 간섭을 배제하는 구조를 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28 (21:07:48)

주관과 객관에 대해서 과학적인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주에 갑과 을 두 별만 있을 경우

갑이 을쪽으로 가거나 을이 갑쪽으로 가거나 완전히 같습니다.

 

두 사람이 시소를 타고 있는데

갑이 올라간 것이나 을이 내려간 것이나 완전히 같습니다.

 

갑-내가 발을 굴러서 위로 올랐어.

을-내가 체중으로 밑으로 내렸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게 착각이 아니고 실제로 같다는 거에요.

이건 뭐 아인슈타인 아저씨한테 물어볼 것 까지 없고.

 

이렇듯 토대를 공유했을 때

A가 이렇게 했든 B가 저렇게 했든 완전히 같습니다.

 

객관은 제 3자가 보는 관점인데

이 때는 갑이 움직였는지 을이 움직였는지 판정이 되지요.

 

욕먹는 사람의 공통점은 이런 식의 주관적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거지요.

 

관객의 제 3자적 객관시점 - 임재범 중심에 놓았을 때 거기에 걸맞는 좌청룡 우백호는?

옥주현의 당사자적 주관적 시점 - 내가 노래를 잘 불렀을 때 다른 사람의 점수는?

 

양자 사이에 대화가 될 가능성은 없지요.

대부분 연인 사이의 갈등이나 고부간의 갈등이나

사회의 모든 갈등은 이런 구조로 일어납니다.

 

 

 인품이고 교양이고 에디켓이고 다 필요없고 객관게임을 하면 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28 (21:40:51)

forest-seesaw.jpg

 

토대를 공유한 상황에서 누구 때문에 시소가 움직였는지 알 수 없다.

 

여 - 니가 밥을 쳐먹어서 시소가 움직인 거야.

남 - 니가 다이어트를 해서 시소가 움직인 거야.

 

이러한 구조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태원 어록을 보면 이러한 구조를 알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원래부터 될 사람을 미리 알아내고는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세상을 다 가르쳐준 척 한게 아닌가 하는 혐의가 있다. 

그는 상대성의 시소에 올라타기를 거부했다.

 

첨부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7.29 (17:56:00)

 

두 사람이 앞에 그림 한 점이라는 공통의 토대를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면,

 

*두 사람 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있다고 할 경우?

  주관적인 경우 : 상대를 의식하며 서로 잘났다라는 레이스를 펼치며 자랑질.

  객관적인 경우 : 그림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가능.

                               알아야 할 것에 대해 어느정도 서로 알고 대화하는 경우. 소통이 원활해짐.

 

*한 사람은 어느 정도 안목이 있고, 한 사람은 안목이 떨어진다고 할 경우?

  주관적인 경우 : - 안목 있다고 하는 사람 : 저 잘 났다 자랑질.

                                 상대를 의도하지 않아도 무시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음.

                            - 안목 떨어진다고 하는 사람 : 놀고 있네, 짜증냄. 상대를 인정하지 않음.

 

  객관적인 경우 : - 안목 있다고 하는 사람 : 그림에 대해 얘기 함.

                               - 안목 떨어진다고 하는 사람 : 얘기를 들어주고 그림에 대해 호흥해줌.

                                 알아야 할 것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흘러감. 같이 아는 수준으로 상승.

 

*두 사람 다 안목이 떨어진다고 할 경우?

주관적인 경우 : 서로 아는 척 하기 바쁨. 상대를 인정하지 않음.

객관적인 경우 : 서로 겸손, 그림에 대해 나름 고민하는 제스쳐를 보임.

                             나름대로 어느정도 두 사람이 합의점을 찾아냄.

 

 

주관적인 경우는 서로가 어떤 말을 해도 그 만큼 서로 튕겨져 나감. 말을 할 수록 멀어짐, 그림에 대해 얘기할 수록 그림과는 거리가 멀어짐, 자칫하면 싸움이 되기도 함.

객관적인 경우는 모든 대화가 그림에 집중되어 있음, 계속하여 둘이 토대를 공유하고 있음, 말을 할 수록 그림과의 거리는 가까워짐, 만남의 관계도 원만함.

 

그저 이름붙여 얘기하자면...첫번째 객관적인 경우 고수와 고수의 만남, 두번째 객관적인 경우 고수와 하수의 만남, 세번째 객관적인 경우 하수와 하수의 만남....

어쨌든 객관적인 경우는 상태를 균일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고, 균형을 유지하는 시선이 있다라고 생각되네요. 이럴 경우 질이 균일해져서 소통이 원활해진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상황설정을 함 해 보았네요.

 

객관적인 관계와 객관적인 제 3의 시선이란 것에 대해서, 서로가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일 때, 한 쪽은 객관적이어도 한 쪽이 계속 주관적일 때... 만남의 성립.관계의 성립은 조금 불능이 될 확률이 높아서 만남의 기회. 관계의 지속성이 제로에 가까워 지겠다.라는 생각도 들구요.

 

객관화 되어야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안되어 주관적인 관계에 계속 매몰되어 간다면, 잘 안된다면, 사람에게 매몰되지 말고, 그 사람이 내어 놓은 가치나 사상, 사유, 열정, 등에 주관적인 것이 차라리 그나마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 자체에 매몰되어 사람 자체에 집착하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어서 사람을 재단하게 되어서 비난이나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이라는 생각.. 역시 듭니다.

 

그리고 계속 주관적으로만 간다면 일단은 스스로 힘에 겨워 힘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되고, 스스로 자멸한다고 생각되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29 (23:51:20)

옛날 시조는 초중장에서 산천풍경 타령을 하다가 종장에 이르러 갑자기 정치 이야기로 방향을 틉니다.

이게 객관화 하는 거죠.


주관- 산은 높다

객관- 산이 높으면 강은 깊다.


갹관은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논리칙을 반드시 드러냅니다.


그냥 이게 좋다 저게 싫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아는 사람들은 이게 이러면 저건 저렇다고 말하지요.


그림을 잘 그렸다니 못그렸다니

그림이 좋다니 싫다니 말하면 이미 하수입니다.

그게 주관적인 판정이죠.


저 그림은 재벌회장집에 어울리고

저 그림은 가난한 문학가 서재에 어울리고 이런 식으로 말하지요.


주관적 판정- 자넨 도둑질을 했어. 도둑질은 나빠.

객관적 판정- 그런 좋은 솜씨로 왜 이런 데서 썩나? 명동 무슨 백화점이나 압구정동 무슨 백화점으로 진출해야지.

                   

                    

주관적 판정 - 난 쇠고기가 좋아.

객관적 판정 - 쇠고기엔 뭐가 어울리지.


주관은 자기를 개입시키고

객관은 그 자체의 결을 따라갑니다.

그림은 그림의 결을, 음악은 음악의 결을, ... 이런 식으로 결을 따르다보면 결국 정치와 역사와 세계로 나아가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7.30 (04:21:06)

 

 

결을 따라가지 않는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발생된다고 생각되네요.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제 3의 시선을 갖어야 겠지요.

객관적이라는 것은 보편성을 따른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제 3의 시선은 보편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이구요. 그러니 진리는 보편성을 따르므로, 객관적으로 보아야 진리가 드러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됩니다.

 

전에 김태원이 방송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본다.

자신은 여기 있지만 또 하나의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늘 가지려고 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네요.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갖거나, 제 3의 시선을 가지려고 한다고 생각되지만,

물론 아닌 경우들도 많겠지만, 사람이 완전히 주관적이지만은 않고, 완전히 객관적이지 만도 않다.라는 것이고 보면, 그렇기에 객관적 시선이 더 필요해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절로 객관성을 늘 유지하게 되는 것은 아니므로, 의식적으로 객관적 시선을 가지려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도 되구요.

다만 사람들은 어느정도는 그래도 객관성을 유지하려한다.라고  보입니다. 그래서 토대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도 되구요. 뭔가 아닌 것 같으면 정신을 차리는 것을 목격하게 될 때, 그러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근대화의 3대 요소가 객관성, 자율성, 보편성이라고 하던데, 주관성, 타율성을 강조하면 근대화가 안된 사람이겠지요?^^;

이타성이란 진리의 결을 따라가는 것에서 자연스레 발현된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30 (09:46:39)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 치고 동조하던지(허무한 동조, 더 이상 할말없음)

 아니면 그게 아닌데 하고 반박하든지(무조건 상대방 말 반박하는 사람도 있음)

 둘 중의 하나 밖에 선택할 수 없는 쪽으로

 대화를 몰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주관게임을 벌이는 건데 대화를 안 하는게 맞죠.

 

방송 나와서 찍힌 사람들도 다 그런 식의 어법을 구사해서 그런 것입니다.

밉상 짓을 한 거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의 말문을 막아버리는데

그 게임 안에서는 나름대로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하고 동조하거나

 '우끼고 자빠졌네' 하고 치고받는 재미가 있겠지요.

 

객관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동의하거나 반박하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하지 않습니다.

끝말잇기처럼 계속 상황을 이어가는 거지요. 결 따라 가는 건데 결을 알아야 가능하지만.

 

 

 

[레벨:3]스타더스트

2011.07.30 (12:30:03)

옥주현 집착. 동렬님의 이유가 있을테지만.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을 보느냐고 하시겠지만

휘황찬란한 달을 띄워도 손가락만 보이는구려.


인터넷 언론(연예가찌라시들) 네티즌을 상대로 조회수장사하는 목적밖에. 옥주현 재료도 인터넷언론의

생태 공식에 따라 충실하게 연예가 찌라시들이 상품진열대에 올리기도 내리기도 한 것.

안티세력은 인터넷의 가장 큰 열독자들이라는 공식 속에서...

옥주현이 나가수로 논란의 가운데 있기 전, 나가수 논란과 함께 첫경연1위한 후, 그리고 끝무렵까지

찌라시들이 상품의 포장을 바꿔가며 장사하는 전형적 패턴. 언플도 아니고 죽이기도 아니고.

물론 자본에 점령당한 모든 인터넷언론은 언플과 안티언플을 하고 있지만 옥주현의 경운 다른 것.

노무현 정부가 저 저질 짓거리하라고 인터넷 언론 힘써주지는 않았을텐데.


백청강 거 금테액자는 순도 99.9% 순금. made in 시청자. 제작 후 시장에서 잘 안팔린다.

임재범 김태원 꺼는 금 도금. 가짜. made in 방송국예능. 잘 팔린다.

물론, 셋 다 액자 안 그림은 진짜.

백청강 꺼는 원래 방송국이 만들었으나 중간에 시청자로 제작자가 바뀐 경우. 방송이 한방먹은 경우.

이런 관점이 있소.


쳐들어갔는데 내가 우리가 그들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결과. 그들의 성을 더 공공히 해주는 결과.

임재범 김태원 현상에 열광하며 어떤 곳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부처님 손바닥. 방송(광고)자본의 손바닥.


" 요즘 정말 힘들지?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소득은 줄고 장사는 안되고 전세금은 달마다 오르고

집값은 안 오르고 은행빚은 언제나 갚나 까마득하고. 고소영, 세상이 공정한 거 하나 없는 거 같고 정의롭지

못하고 ....정말 죽을 지경이지? 그래서 우리가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보여주께.

소외된자가 사랑받는 세상. 부당함을 넘어 실력만큼 보상받는 사회. 당신같은 개인들의 성공신화가 펼쳐져.

*같은 세상은 잊고 얼른 TV앞에 모여 앉으라구. 소중한 주말 오후 어디 가지 말고 당신이 원했던 세상을

느껴봐. 대신 광고 시간이 좀 많아. 그쯤이야 좀 기다려줄수 있지? "  


이게 결이라면 결이오. 자본주의의 단점이 우리 깊숙이 더 파고들어오는.

이 결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자세는 나이브함이 아니라 냉소요. 그들에 대한 냉소.

그게 사람 사는 세상 으로 가는 길. 

난 그리 믿소.

티비는 되도록 안보고 신문은 적게 보며 인터넷은 무시한다는 자세로 그들을 대하는 게 필요.

[레벨:15]르페

2011.07.30 (14:47:08)

방송권력? 기획사 자본력? ..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한류시장이라는 거대한 강물 위에 떠있는 뗏목이기는 마찬가지죠. 돛단배, 호화요트 할 것없이 쓰나미앞에서 휴지조각이기는 마찬가지이고요..

시청자들의 시청권이 유독 부상하게 된 이유는 안목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안목이 올라간 것은 한류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전세계의 모든 대중문화소스를 뒤지고 있기 때문이고요.

가장 큰 것이 한류라는 거대시장이고, 그 다음이 선수들이고, 그 다음이 기획사고, 그 다음이 매체-유통사이고, 맨 나중이 시청자들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시청자들은 그 자체로 시장이라는거죠. 주는대로 받아먹다가도 갑자기 시장의 보이지않는 손이되어 감내놔라 배내놔라합니다.


시장 다음으로 중요한 선수들을 그 아랫것들(기획사와 매체)이 쥐었다폈다하는건 정말 보기가 안좋죠. 선수들이 시장(또는 관객)만 보고 달려가도 힘들판국에 잡것들의 눈치까지 본다면 견뎌나겠습니까? 연예인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나라는 세계에 드물죠. 일본도 놀라 자빠질정도니까요..

관객은 편안하게 즐기다가도 개입할 틈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어서 룰을 바꿔버립니다. 관객과 시장의 역할중첩을 알지못하면 이 게임에서 소외되어 뒷북이나 치다가 냉소에 빠지게되지요. 티브이 인터넷 열심히 끊다보면 어느새 냉소하는 노친네가 되어갑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7.30 (17:42:37)

저도 냉소주의는 조금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사람이 비참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거나 발산할 곳이 없을 때, 풀어내 버리지 못할 때...

극단적 냉소주의에 빠진다고 생각되어져서, 극단적 냉소주의는 반드시 허무주의로 흐른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실존의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실존을 검색해서 그 뜻을 보자면....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 라고 되어 있네요. 여기에 더 추가하자면 실존은 자기의 존재를 자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세상과 내가 개별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 역시 자각하게 된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여기서 객관적인 시각을 갖는다면 제 3의 시선은 신의 시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즉  객관적인 시선이 확장되어 세상의 시선과 만난다는 의미 일 수도 있고,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 지구안의 것들을 위에서 전체적으로 내려다 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선은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에서 보편적인 시선이 가는 길이 보인다고 생각되며, 그 길이 가는 길은 사랑 혹은 애정어린 시선, 에너지의 흐름... ..등등 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30 (20:44:04)

냉소주의나 허무주의는 질문일 뿐 답이 아니오.

10대소년이라면 모든 것에 냉소하고 모든 것의 허무를 꿰뚫어보는 훈련을 해야 하오.

그러나 그것은 10대의 동기부여 갈구에 불과하오.

 

인생의 화살은 이미 쏘아져 있고

99.99999퍼센트 당신의 타겟은 아니지만 아직 하나의 타겟은 남아있소.

물론 그 타겟이 당신을 위하여 준비된 타겟은 아니지만

화살은 이미 허공에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오.

 

어쨌든 누군가 활을 쏘았다는 것.

그리고 타겟이 있다는 것.

지금 허공에 있다는 것.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30 (23:43:24)

무조건 부정적으로 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주관게임을 벌이는 것이며 격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왜 부정적으로 말하는가 하면 부정적으로만이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으로 말하는 능력이 없는 거지요.

김태원은 부정적인 말을 안 합니다.

그러나 다른 멘토들은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왜 그들은 부정적으로 말할까요?


부정적으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으로 말하기는 쉽습니다.

위험요소는 세상에 많으니까.


긍정적으로 말하기도 쉽습니다.

걍 아부하면 되는 거죠.

긍정적으로만 혹은 부정적으로만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개 내용이 없습니다.


긍정모드.. 좋아. 잘했어. 가는 거야. 그래 그거야, 굿, OK, 브라보, 원더풀.. 파이팅, 힘내라. 짱이야, 울트라캡숑.. 두 단어를 말하기 조차 힘들죠.


부정모드 '잘 될 턱이 있나. 그래봤자지. 어차피 안되는뎅, 조까. ㅋㅋㅋ, 그게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지. 웃겼어. 미친 넘. 등신 육갑허네. .. 부정모드가 긍정모드보다 약간 더 길죠. 보통 세 단어까지는 가줍니다.


그게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말하는 진짜 이유.

한 마디만 하고 뻘쭘하게 앉아있는 것보다 그래도 두 단어 정도 더 붙여주는게 모양이 나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대개 어떤 사실을 알고 그 사실의 결을 따르는게 아니라

상황에 자신을 대입시키고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감정반응을 배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그 상황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하는게 아니라

그 상황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노출시키는 거죠.


'난 저게 싫어' 라고 말하지만 '저것'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그 '저것'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를 말하는 거죠.

 

난 호빵 싫어 <- 호빵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호빵 기준으로 자기 위치를 표시함.

자기는 호빵 같은거 안 먹는 사람이라 이거죠.


자기를 배제하고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난 콜라 좋아/싫어' 가 아니라 '콜라에는 햄버거지' 이런 거죠. 


대화가 되는지 안 되는지는 대략 3초 안에 판단이 섭니다.

경우에 따라 5분 정도 대화해봐야 하는 수도 있지만.


저는 '진보가 옳다 보수가 틀렸다' <- 이렇게 말 안 합니다.

이건 격이 낮은 것이기 때문이죠.


대신 '보수는 진보에 포함된다.' <- 이렇게 말하지요.

진보는 앞에서 길을 열고 보수는 뒤에서 이삭을 줍는 거죠.


둘은 하나의 사건에서 보여지는 두 시점입니다.

보수는 사건의 원인측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플러스는 없다' 법칙에 의해 존재가 없는 거죠.


바른 진보와 틀린진보, 그리고 틀린진보의 부작용에 의한 보수가 있는 거죠.

보수는 진보가 틀렸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 독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이 결을 따르는 시점입니다.

진보는 독립적인 존재이므로 사건의 원인측이 될 수있으며


잘 되면 진보하고 잘못되면 보수반동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거죠.

대부분 진보가 멍청해서 보수를 부르는 거죠.


*진보-잘한다 혹은 잘못한다.

*보수-진보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혹은 아무 것도 안 한다.


보수는 일시적으로 기세를 올리지만 다음 카드가 없기 때문에

진보의 오류를 수정한 다음에는 더 이상 진도를 안 나가고 가만이 있습니다.


보수가 어느 순간에 딱 멈춰버리고 어떤 아이디어도 내지 않기 때문에

(보수의 모든 아이디어는 진보를 바로잡는 아이디어임, 이명박 하는 짓은 참여정부 반대로 밖에 없음)


결국 정권은 다시 진보에게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진보는 있어도 영원한 보수는 없는 거죠.


이렇게 말하면 보수도 잘 한거 있는뎅 이렇게 반박하는 사람 있겠지만

잘 살펴보면 그건 보수주의자의 진보적 행동입니다.


표를 얻기에는 보수가 쉽죠.

보수주의자가 좋은 일을 했다면 실제로는 대부분 진보적인 결단을 한 겁니다.


아웃사이더 출신 자수성가한 정치인 중에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으면서도 보수주의자 행세를 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진보주의자에 대해 혐오증을 갖고 있죠.

그들은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합니다.


[레벨:3]스타더스트

2011.07.31 (12:46:31)

난 냉소주의를 말하지 않았소. 인터넷 티비를 끊으라는 얘기가 아니잖소.

먹는 밥에 돌이 많으니 조심하게 골라내며 먹으라는 거죠.

알아서들 잘 하고 있다구요?


시청자가 방송국의 의사결정권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요?

아주아주 미미할걸요. 왜냐면 기본적으로 공짜 시청자는 (지속적)의사결정행위자가 될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공중파 티비는 후행적입니다 트렌드적으로. 이미 시장에 형성된 거

증폭시키고 끝물을 보는 게 티비라고 봐야겠지요. 물론 간혹 시작점을 만드는 경우도 있죠.


저는

옥주현 죽이기를 말했고(인터넷언론의 행위가 아닌)

나만 가수다를 반대했고

(대중)음악은 이래야 한다에 억압을 느꼈소.

말이 안되는 거죠.


예술론, 고수론, B급론, 액자론 등 이것들이 다 무엇이오.


주관이 객관으로 변환되는 지점에서

사람이 온전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 안하는 곳에서

그래서 객관(객관적이라고 믿는)이 주관을 억압할 때 그림은 갇혀버리지 않겠소.


지금의 걸그룹을 비롯 아이돌 그룹은 이해찬 교육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많아요.

그들을 비판하는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정말 뛰어난 재능과 끊길 줄 모르는 에너지에 감탄합니다 저는.

선진강국도 아니면서 현지 프로모팅도 안하면서 해외에 어필되는데엔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겠죠.

전통적 이해로는 불가하겠지만....

그들을 인정안하는 이유엔 세대적 컴플렉스도 있다고 보구요. 상당한 이유를 차지하지 않을까...

이쁘고 춤잘추고 날씬한 아이돌 혹은 출신이 노래까지 잘하면 그렇지 못한 가수들은 어쩌라고?안티코드중

하나.  기성세대가 그들에게 묻어가야 하는 고뇌. 그 고뇌로부터의 해방욕구 등등..

그래서 옥주현은 절대 노래를 못하는 가수 혹은 가수가 아니어야 한다는 믿음도 생기고...

옥주현 죽이기는 완성되어야 하는 거. 뭐 이런 것들...


KBS에서 하는 TOP밴드 인가 하는 프로그램 정말 좋더군요.

나가수는 아니고 TOP밴드다 입니다 저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31 (13:14:14)

어쨌든 나는 어떻다 하고 자기소개를 계속하는게 그게 대화가 안 통하는 주관게임입니다.

그런 게임엔 참여하지 않죠.

고수들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하여간 주관게임에 갇힌 사람들은

나가수가 임재범 이소라 김연우 김동욱 등등 구색을 맞춤으로써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간다는

전체적인 방향성이라든가 이런걸 절대 이야기 안 합니다.

왜?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할 이야기가 없죠.

그러니 옥주현에 계속 잡혀있는 거죠.

 

어쨌든 계속 옥주현놀이 하시고

진도를 나갈 사람은 계속 진도를 나가주는 거죠.

 

큰 틀에서 보는 시야를 얻은 사람만이 어른들 사이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겁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인상주의는 계속 진도를 나갑니다.

처음 쿠르베, 밀레가 사실주의를 주장했을 때만 해도 걍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지만

계속 진도를 나갔습니다.

계속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역동성 유동성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냥 고정시켜 놓고 보면 사실 사실주의는 암것도 아닙니다.

쿠르베 세상의 근원은 아직도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게 언제적 이야긴데.

계속 진도를 나간다는 거죠.

그 진도는 세상이 만들지 가수가 만들지 않습니다.

가수에 매몰되어 있는 관점으로는 전모를 보지 못합니다.

기승전결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그냥 기에서 끝났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전모를 못보고

그러니 어리석은 과거에 매몰되어 있는 거죠.

 

쿠르베가 그거 그리는 시점에

백오십년 후 지구반대편에서 어떤 바보들이 그거 보고 입에 거품물고 지럴할거 예견했을 거.

그의 입가에 미소가 있었던 이유.

 

TOP밴드도 신대철이 나오니까 이야기가 되는거.

80년대 잠시 반짝했던 기가

30년 지나 2011년 승으로 이어받고

또 몇 십년 후에 전으로 전개해 가는 그런 기승전결의 과정을 관객은 본능으로 느끼죠.

반응한다는 거.

시대의 부름에 몸으로.

그런거 모르는 사람과 대화는 무망.

그때 그시절도 암흑시대, 지금 명박암흑도 마찬가지.

 

왜 우리는 대화를 하는가?

30년 전에 있었던 김태원 신대철 임재범 김종서 등의 전성시대가

그냥 무의미한 몸부림으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고

또 앞으로도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인 것.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하는 것.

 

그런게 없이 그냥 누가 노래를 잘 불렀고 어떻고 이런 밥통같은 소리 할 바에야

침묵이 나음.

 

 

[레벨:3]스타더스트

2011.07.31 (13:30:01)

저의 눈에 동렬님의 손가락만 보인다는 겁니다. 아무리 달을 가리켜도 말이죠.

동렬님의 손가락이 더 커 보여서지요. 달은 장치고.


스티브 잡스가 지 능력이 있어 돈벌고 성공하는 거 아닌 거 같소. 다 일반 사람들이 돈 벌어주는 거죠.

지 능력자랑할 땐 이건희 앞이나 빌 게이츠하고 하는 게 맞는 거고. 부를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업신여기는 건 지가 어디서 왔는 지를 전혀 모르는 하수.

마찬가지로 고수는 다른 고수하고나 내가 더 고수니 아니니 하는 거고. 하수들 앞에서 따지는 건

자기가 고수는 아니다라는 걸 말하는 것 뿐.


좋다 싫다에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다 있는 거고

옳다 그르다에 다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거 아니겠소?

다 설명을 안해도 말이죠.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네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동렬님에게 많은 것을 얻지만

그렇다고 다는 아니잖소. 누구든 어디서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31 (13:34:47)

손가락을 보든 발가락을 보든

나의 이야기는 님과 상관없이 계속됩니다.

달리는 기차는 예전부터 달렸고 앞으로도 달릴 것이며

그 이유는 말한 대로

화살은 이미 쏘아졌기 때문입니다.

잡음 넣는다고 기차가 안 가겠어유?

받아줄거 받아주고 무시할거 무시하고 계속 가는 거죠.

 

[레벨:3]스타더스트

2011.07.31 (13:42:13)

네..좋소..계속 가시오. 궤적은 기록될 것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31 (13:38:58)

주관게임은 그걸로 끝나는 이야기가 되고

객관게임은 끝말잇기 처럼 상황을 계속 이어갑니다.

그리고 대중들은 본능적으로 그걸 압니다.

아는 척 하는 전문가들만 모르지요.

 

80년대~90년대 사이에 잠시 반짝했던 전설들이

왜 이 시대에 다시 뜨는가?

이런건 네티즌 리플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거 짚어주는 전문가 아직 못봐습니다.

김어준처럼 옥주현놀이에나 빠져 있는 거.

왜 잘난척 하는 전문가들이 네티즌들보다 수준이 떨어지는가?

 

김어준 대화수준 보세요.

초딩수준.

 

하긴 방송에서는 초딩수준이 먹히겠지만.

 

[레벨:3]스타더스트

2011.07.31 (13:48:15)

몰라서 못짚기도 하겠고 알아도 못짚죠.

명박이 하에 있는데 정확하게는 자본 아래 깊이 종속되었는데..

명박이가 여의도 정치와 거리는 두는 건 그냥 상징만이 아니오

명박은 정치가 아니고 자본이라고 봐야죠.

한나라당 위에 명박이 있고 명박이 위에 자본이 있는 시간속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31 (13:45:58)

정치도 그렇습니다.

유시민이 막히니까 문재인이 뜨는데

흐름을 계속 이어간다는 거죠.

이걸 보고 판단해야지

그냥 유시민 한 명 인격 가지고 잘했니 못했니 씹으면

방향성은?

 

유시민 지지자의 권력의지를 보지 않고

유시민 개인이 어쩌구 하는 초딩들.. 그게 주관게임에 빠진 거죠.

 

유시민 개인은 나도 관심없어요.

중요한건 시대가 유시민을 필요로 한다는 거.

유시민을 밟으면 문재인이 일어나고

문재인을 밟으면 이정희가 일어나고

잡초처럼 계속 일어납니다.

 

기승전결로 계속 이어가는 거.

우리나라에 유시민 개인보다 뛰어난 인물 백만명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방향성에 우연히 서 있었던 사람은 유시민 한 명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그냥 노래실력 어쩌구 하면 노무현 대통령보다 뛰어난 실력자 많습니다.

정치가 가는 방향에 서 있지 않았을 뿐.

노무현 대통령이 그때 그 장소에 있었을 때

그 장소에 있지도 않았던 어스레기들이

'인물로는 내가 더 잘났는뎅?' <- 누가 쳐주남요?

잘난거 따지면 미남대회로 뽑든지 시험봐서 뽑든지 그게 아니잖아요.

 

시대의 신호등은 우연히 될 수도 있습니다.

우연히 그 지점에 서 있었기 때문에 역사의 증언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걸 보는 눈이 있어야 어른들간의 대화가 되는 겁니다.

 

다음 타자가 나와주기 때문이지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거.

노무현 대통령은 기승전결의 기에 섰기 때문에 계속 갑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7.31 (13:59:11)

 

박근혜 지지자 10명과

유시민 지지자 3명이 있다면 어떻게 판단할 겁니까?

 

10 대 3 박근혜 승

 

이건 보통사람 생각이고

그 안에 고여있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의 방향성을 봐야 합니다.

 

정상에 있는 눈 한 덩이는 기슭까지 굴러내려오면서 100배가 됩니다.

그냥 눈덩이 한 뭉치 대 한 뭉치로 보면 안 되고

포지션을 봐야 해요.

 

권력의지가 있는 젊은 표 하나와 노인네 표 셋 ..

대략 젊은표는 3배의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이런걸 판단해야 진짜죠.

 

미래를 생각하고 사건이 전개되는 방향성을 생각하고

미리 알박기를 해놓아야 하는 거죠.

대중들은 본능적으로 이걸 아는데 전문가들은 모르지요.

 

나가수가 망하든 말든 상관없는 거고

임재범 지지한 시청자는 TOP밴드에 가서 신대철 어록에 귀를 기울일테고

이게 징검다리가 연결된다는게 중요한 거고

뭔가 아귀가 맞아떨어진다는 느낌

거기에 자부심을 갖는 거고

이런 견지에서 봐야 하는 거죠.

 

[레벨:3]스타더스트

2011.07.31 (14:12:02)

장거리 기차에 중간 에너지 넣을 때 참고하시라고..


옥주현 3라운드 씩이나 뛰었고

아이돌에 열광하는 그 10대가 광우병 촛불 원래 주인공이었던 것.

나중에 어른들이 숟가락 들고 들어온 거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8.01 (00:12:53)

 

 

저는 이런 생각이 드네요.

 

옥주현이 3라운드를 뛰었다는 것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옥주현은 자신의 스타일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라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대체로 나가수에 출현한 가수들은 모두 자신의 스타일이 거의 완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옥주현은 자신의 스타일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나가수에 들어와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간 것이라고 보입니다.

자신의 스타일이 완성된 사람들과 자신의 스타일을 이제 만들어 가는 사람의 차이..그 차이라고 생각됩니다.

옥주현이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시킨다면 그것은 시간과 세상이 또 판단해 주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10대가 광우병 촛불의 주인공이듯이, 아이돌에 열광하는 10대가 월드컵세대, 미순이 효순이, 탄핵저지세대이기도 하지요. 아이돌에 열광한 서태지세대가 이이돌 문화를 소비하고 그 문화를 만들어낸 최초의 장본인들인 10대이기도 하지요.

 

부활, 시나위, 백두산을 열광하던 세대가 민주화 운동 세대를 끌었던 10대이기도 하지요.

박정희 독재시대를 겪어야 했던 10대들도 있었구요.

4.19 혁명을 이끌어낸 10대들도 있었지요. 물론 여기서 10대가 20대로 곧바로 넘어가는 것이므로 그냥 10대라고 표현합니다.

 

각 시대별로 보통 가장 약하다고 생각하고, 바람앞의 등불같은 존재들..10대들이 모두 그 시작이 됩니다. 어떤 공통된 패턴이 있다라는 것이지요. 가장 약하다고 생각되는 그들이 가장 큰 열정을 갖고 있고, 다른 세대들은 그들의 행동과 열정에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동참하게 되는 것이구요.

 

그런데 민주화 운동 세대와 서태지 세대는 시기별로 가장 가까운 세대이지만, 사실 가장 멀기도 하다고 보입니다. 어떤 문화를 가르는 경계지점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현재 대중문화에도 나타난다고 보입니다. 정치적인 성향에서도 나타나구요. 그러므로 광우병 촛불세대, 월드컵 세대, 서태지세대는 모두 문화의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소통의 기제로 작동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돌 문화가 나타난 그 숨은 배경이 되겠지요. 억압과 어떤 제약, 불평등함에 대한 반동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돌 문화는 그런 억압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되었으나, 아이돌을 키우는 방식은 다시 어떤 억압과 어떤 불평등 계약이라는 것에 모순이 있는 것이지요.

 

사회에 어떤 모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것을 보아야만 그것에 대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상태로 보자면 80년대 문화와 단절이 있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것을 이어야 할 필요성이 이 시대에 생겼다. 왜? 라는 그것을 보아야 하겠지요.  이것은 소통의 구실이 필요해진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은. 더 넓게는 70년대 60년대도 마찬가지이겠지요. 70년대, 60년대 문화를 이으려면 80년대 문화가 필요하기도 하구요.

 

이미 있는 것에서 필요한 것들을 빼오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서로 소통이 되어야 이해도 되는 것이고, 그렇게 균일해져야 질이 진짜 힘이되어 가는 길을 열 그 뭔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것은 누군가 특정한 개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가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길이고 방향성이라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즉 소비할 대상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에너지가 먼저 차오르고 나서 길을 만들고 나면 나머지 것들이 따라오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방송국 언론도 마찬가지라고 보입니다. 그들이 먼저 그런 공급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요구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단지 그 요구를 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가 성패를 결정한다고 보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8.01 (18:39:51)

 

 

조금 더 생각해보니....

 

각 세대들이 지니온 시기이자 각 세대들에게 있었던 시기 -  모든 10대에서 20대 초반들은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있고, 나머지 세대들은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되네요.

그런데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에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난다고 생각되네요.

 

세대들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10대에서 20대 초반이라고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세상에 대한 탐구와 열정이 있기에, 세상에 대한 질문이 가능한 시기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이들은 요구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고 보입니다. 시회의 가장 약한 고리들의 요구가 관철되는 사회, 어쩌면 그런 사회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끝없이 질문이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모든 세대들이 지나오면서 세상에 했던 질문은 그 시대의 양상에 따라서 드러나는 표현과 직접적인 요구의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억압과 제약, 불평등, 모순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계속 진행되어온 질문에 답을 해야 하고, 그 답이 이제는 어느정도 나와줘야 할텐데..., 질문에 답을 하려면 크게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러한 답을 하자면, 큰 힘, 큰 결집, 크게 바꾸는 것, 그래서 문화적다양성 확보와 사회적 정서로는 통합, 소통, 조율이 요구된다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각 세대들이 10대에서 20대 초반에 던진 질문들은 어찌보면 우리가 질문하고 우리가 답해야 하는 구조이기도 하다고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질문과 답은 질문속에 이미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답을 실행하는 것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갖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8.02 (19:42:35)

ㅋㅋㅋ...댓글 40개 채울 목적으로...

 

마저 생각해보니....

 

각 세대의 질문은 하나였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답도 하나...

질문의 본질은 억압과 제약, 불평등, 모순에 대한 것...

이러한 질문이 생겨나는 이유는 사람사는 세상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질문은 사람 사는 세상...그 자체가 질문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 강하게 스치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사람사는 세상 그 자체가 모든 세대의 10대들의 질문을 관통하고 있다고 여겨져서...

사람사는 세상이 질문이고?...그 화답은....'존엄' 이라는 생각이 들구요.

사람사는 세상이 될려면,  존엄한 사회, 존엄이 대접받는 사회, 존엄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사회라는 생각도 역시 들구요. 존엄이 있는 사회, 사람과 = 존엄....

우리의 모든 세대들의 질문은 존엄한 사회, 사람이 존엄하다.라는 것에 대해서 망각되는 것들을 바로 잡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사는 세상 그 질문 자체에 답도 이미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마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소통 할려면, 기억해내어야 할 것이...자신들이 10대나 20대 초반에 세상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분기를 품었던 그런 기억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면 요즘의 10대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고, 지금의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렇다면 그런 시절을 지나온 이들의 잘못도 아니게 됩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런 핑계나 책임을 위로 계속해서 올려 보내게 되기 때문에...그러다보면 인류의 탄생이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런 반복의 악순환을 바로 지금 이 시대에서 끊어줘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모두 각 세대들에서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고, 그렇게 그 세대에서 그 반복을 끊고 싶었했던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되었었던 것이고,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의 질문이 계속 몇 십년 혹은 몇 백년, 몇 천년, 인류 탄생이래 계속해서 하나의 질문이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언제나 그래서 그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라고 보입니다. '존엄' 

 

존엄이 유지되려면....자유.평등.사랑. 민주주의, 자본, 개인의 가치실현, 사회.문화.예술 등의 다양성, 삶의 필요한 양식, 국가, 이러한 것들을 적절히 조율하고 통제할 사회주의, ... ..또 뭐가 있을까요? 이렇게 많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것이 세상이 변화되어 감에 따라 적절하게 유지되어 가야 하는데..이렇게 변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존엄이 무시되거나 균형을 잃어서 존엄이 약해져 버리게 된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세상과의 개인관계에서 상대적으로 개인의 존엄이 작아져 버려서 많은 병폐들이 생겨난다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질문은 청년들만이 할 수 있다. 마음이 죽지 않은 청년들만이...., 그 답도 마음이 죽지 않는 청년들만이 화답할 수 있다. 라는 생각....., 존엄에서 시작해야 한다. 라는 그것만이 모든 것에의 시작.... 

 

 

[레벨:3]스타더스트

2011.08.03 (13:47:37)

존엄은 도달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기준. 모든 것의 시작인 것이 원래 인간에게 존엄은 내재적 본능이기 때문.

거지도 노예도 다 원래 존엄의 본능을 갖고 태어나지만 포기하거나 잃어버리거나 해서 잘 안보일 뿐.

거지도 노예도 뒤에선 나름 다 욕도 하고 모욕감도 있음.

사람 사는 세상은 잃어버린 세계를 되찾는 것. 사람 = 존엄.


내게 그 기준에서 '옥주현 죽이기'는 그 어떤 명분이나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폭력.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8.03 (14:10:55)

얼른 내리시죠. 그 기차에 탔다면.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8.03 (14:23:47)

개나 돼지에게는 존엄이 없습니다.

거지한테도 당연히 존엄은 전혀 없습니다.

 

같잖은 왜넘이 인간같이 보여서 존중하는게 아닙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거죠.

존중이라는 방패로 막아버리는 거죠.

 

마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넙죽 절을 한다면?

 

1) 저 자가 나를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는구나.

2) 저 썩을 정치꾼 놈이 나를 표로 보고 표에게 절을 하는구나.

 

어느게 정답이죠?

 

똥도 거름공장에서는 존중을 받지만 식탁에서는 분리수거가 정답이죠.

 

부자나라의 여배우가 아프리카 가서

굶주린 빈민 어린이를 쓰다듬고 있다면 존중이 아니라 모욕입니다.

 

자신의 부를 더 돋보이게 할 장식품으로 여기는 거죠.

막연히 존중, 존엄 한다면 그것은 존엄이라는 언어를 죽이는 겁니다.

 

개나 소나 다 존엄하다면 존엄이라는 단어가 지구상에 필요가 없겠지요.

개는 개 대접을, 소는 소 대접을 하는게 존중하는 것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8.03 (14:50:03)

 

아무거나 존엄하다면서

존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죽인다면 참으로 잘못된 겁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는

오직 짝짓기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고

 

짝을 지을 때는 우뚝하게 별도로 독립시켜서

그 주변의 잡스러운 것들로부터 분리해내는 것이 존이고

 

-옥을 가는 장인이 다이아몬드 원석에서 아닌 것을 분리하듯이-

 

그 짝짓기의 진행 중에 주변의 방해자를 제거하는 것이 엄입니다.

패거리 무리 속에 뒤섞여 있으면

 

분리독립이 안 되므로 존이 없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손학새 짓은

 

주변의 방해자가 많아서 엄이 없습니다.

무리에 뒤섞여 있어서 차별화가 안 되는

 

개나 돼지나 거지는 존이 없는 것이며

주변에서 밀어주고, 당겨주고, 언플해주고

 

지역에 학연에 재벌에 연고에

껌붙고 찐따붙고 빈대붙고 빌붙어서는 엄이 없는 것입니다.

 

존엄의 짝짓기는 레벨이 맞아야 성립이 됩니다.

임재범-옥주현?

 

이건 레벨이 안 맞아서 실패죠.

가진건 돈 밖에 없는 서태지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고 장기하 노래를 부른다면

이건 레벨이 안 맞는 거죠.

 

가식이란건 이런 겁니다.

아이돌 가수가 맨발이 방바닥에 쩍~하고 달라붙는다

 

노래를 부른다면 이건 아니죠.

싸구려 커피를 마셔본 사람이, 맨발이 방바닥에 붙어본 사람만이

 

그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습니다.

아이돌은 기획사에서 관리되므로 독립적인 인격이 아니라서 존이 없고

 

주변에 윤리, 도덕, 모범, 겸손, 처신, 따위 방해자가 따라붙으므로 엄이 없죠.

인간의 적나라한 본모습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관리된 즉 돼지우리에 갇힌 돼지입니다.

나도 관리되었다면 아이돌처럼 복근 자랑 하고 다니겠죠.

 

아이돌이 자랑하는 식스팩은 돼지우리의 돼지비계 같은 겁니다.

존이 없고 엄이 없는 쓰레기들은 똥통으로 가는게 맞지

 

감히 예술을 참칭한다는건 있을 수 없죠.

하기사 나가수가 본디 예술로 시작한건 아니지만

 

어쩌다가 예술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많은 쓰레기들이 치였다면 불상사죠.

 

장기하는 존과 엄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똥구멍으로 노래해도 최고의 예술이고

아이돌은 지상최고의 노래를 불러도 똥입니다.

 

[레벨:3]스타더스트

2011.08.03 (16:25:33)

이 곳 주인께서 글을 내리라 하시면 내리겠지만 내려야 하는 이유라도 알고 싶군요.

통렬님의 추가된 아래 글에서는 그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구요.

내꺼만 예술이고 존엄이다 라는 거 밖에..


예술도 지식도 인간의 존엄 아래에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8.03 (16:29:43)

그건 기차 이야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8.03 (16:34:24)

 

내꺼만 예술이고 존엄이요.

맹박이껀 맹박이꺼고 왜넘껀 왜넘꺼고.

 

맹박이를 찬양하려면 맹박이나라로 가는게 맞고.

아이돌을 찬양하려면 아이돌월드로 가는게 맞소.

 

한옥은 나무로 짓는게 맞고

양옥은 돌로 짓는게 맞고

흙집은 흙으로 짓는게 맞고

스틸하우스는 스틸로 짓는게 맞소.

 

한국의 국보가 프랑스인에게는 그냥 외국의 낡은 종이책일 뿐이오.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세상 무엇이든 있을 자리에 있어야 빛이 나는 것이고

만날 사람을 만나야 존엄이 빛나는 것이오.

 

예술은 양식이 있고 법제가 있고 격식이 있소.

한옥에서는 나무만 예술이고, 양옥에서는 돌만 존엄이오.

 

물론 화장실에서는 똥만 예술이오.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소통은 불능이오.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은 대화를 안하는게 맞소.

 

개에게는 존엄이 없소.

아마 '개의 존엄'은 있을 것이오.

개의 존엄은 개나라에서만 먹어주는 것이오.

 

똥길이나 여옼이도 왜나라당에서는 존엄을 인정받잖소.

그러므로 사람은 번짓수를 잘 찾아야 하는 것이오.

 

번짓수를 잘못 찾으면 공연히 욕먹고, 안티 생기고, 밉상되고, 대중들에게 찍히게 되오. 

서태지가 장기하 노래를 부르고 다니면 바로 남자 옥주현이 될 것이오.

 

[레벨:3]스타더스트

2011.08.03 (16:46:37)

인터넷의 군중과 대중은 다르오. 옥주현은 대중에게 찍힌 적이 없소.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뿐....

[레벨:3]스타더스트

2011.08.03 (16:40:39)

아 그런 말씀이셨군요. 아직 탈 생각이 없는 건데 타야 하거나 지금 타고 있는 거니 내려야 한다면

내리겠습니다.

임재범의 나치 퍼포먼스가 예술행위였다면 계속했어야죠. 첫 서울공연 말곤 안했다는군요.

임재범이 예술이고 존엄이기 위해 옥주현이 개여야 하는군요.

이건 너무 ....그냥 할말을 잃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8.03 (16:52:38)

그렇소.

전혀 대화가 안 되는 것이오.

이제 좀 이해하겠소?

전혀 대화가 안 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벽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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