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100 vote 0 2019.08.07 (10:35:56)

    일본과 한국의 착각


    어원으로 보면 사과apology는 앞ap+말하다logy이니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사과다. 사과는 곧 약속이다. 그런데 일본인의 사과는 다른 뜻이다. 야쿠쟈가 손가락을 자르면 과거는 없었던 걸로 된다. 일본인에게 사과는 징벌이다. 그러므로 일본인은 사과를 해도 아주 요란하게 도게자를 한다. 


    일본인에게 사과는 공개망신을 주는 행사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을 자르거나, 도게자를 하거나, 부하를 할복시키면 그것으로 끝난다. 학봉 김성일이 풍신수길을 만났을 때다. 마루에 앉아있던 김성일이 가마를 타고 마당으로 들어오는 풍신수길을 크게 꾸짖었다. 사신은 임금을 대리해서 온 사람이다.


    사신은 임금과 동급인데 관백 따위가 감히 가마를 탄 채로 마당으로 들어오다니 이는 무례한 짓이 아닌가? 풍신수길은 바로 가마꾼의 목을 베었다. 이 소식은 편지로 전해져서 며칠 사이에 조선 전역에 퍼져 나갔다. 대마도를 왕래하는 비선은 빠르면 한나절 만에 동래포구에 닿는다. 김성일은 단번에 스타가 되었다. 


    풍신수길이 가마꾼의 목을 벤 것은 풍신수길이 조선왕에 대해서 신하의 예를 갖춘 것이며 이것으로 조선과 일본의 상하관계는 확정된 것이다. 군신간의 예를 풍신수길이 배웠으므로 조선을 침략하지는 않을 것이다. '풍신수길이 무려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어. 알고보니 귀여운 녀석이잖아. 학봉 김성일 멋쟁이!'


    그리고 풍신수길은 보란듯이 조선을 침략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조선과 일본은 정확히 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학봉이 선조에게 은밀히 일본의 침략의도를 알리려고 했으나 이미 소문이 널리 퍼져서 수습불가 상태였다. 학봉은 그냥 뭉개고 말았다. 지금 일본은 여섯 번 사과했는데 또 사과를 해야하느냐고 항의한다. 


    그런데 황당하다. 사과라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사과를 약속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겠다는게 약속이다. 그들은 사과를 공개망신을 주는 징벌이라고 생각하고 그걸로 해결되었다고 여긴다. 범죄자가 징역을 살면 죄값을 치렀다는 식이다.


    여섯 번이나 사과를 해서 36년의 범죄에 대한 죄값을 치렀으니 끝났다. 위안부 문제도 10억 엔으로 끝내자. 편리한 발상이다. 일본인들은 이왕 사과를 할 바에는 요란하게 도게자를 한다. 기업의 사주가 회사의 잘못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고 공개사과를 하는 일은 흔하다. 그런데 그걸로 땡이다. 용서받았다고 여긴다.


    apology로 보면 그들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은 것이다. 즉 그들은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태연하게 2차가해를 저지른다. 일본인들은 원래 그렇게 한다. 야꾸쟈도 손가락만 자르면 없었던 일이 된다. 일본인에게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힘으로 일본을 이기거나 중국과 연결하여 일본을 견제하는 수밖에.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zuna

2019.08.07 (12:25:09)

사죄는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이어야 하나, 일본의 입장에서 여섯 번으로 모두 리셋(reset)되었으며 한국의 거듭되는 사죄요구는 서열결정작업(序列の決定作業)이라고 생각함.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8.10 (15:11:06)

"일본인에게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힘으로 일본을 이기거나 중국과 연결하여 일본을 견제하는 수밖에."

http://gujoron.com/xe/1112611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1152 슬픈 오일팔 7 김동렬 2010-05-18 19603
1151 문국현, 이명박의 경우 김동렬 2007-12-10 19601
1150 유시민 대 전여옥 1 김동렬 2010-05-06 19598
1149 간략 정국 스케치 김동렬 2007-10-17 19595
1148 대한민국은 지금 자살중 1 김동렬 2009-03-08 19589
1147 물로 일어선 자, 불로 망하네. 1 김동렬 2009-02-10 19580
1146 이기는 법 image 3 김동렬 2012-03-27 19529
1145 비관과 낙관 김동렬 2008-11-21 19515
1144 지만원이 문근영을 때리는 이유 김동렬 2008-11-22 19405
1143 나는 바보 노무현이 싫다 11 [1] 김동렬 2009-05-27 19402
1142 너나 먹어 미친소 김동렬 2008-05-02 19389
1141 새해의 단어는 image 1 김동렬 2008-12-31 19371
1140 봄의 염장질 image 김동렬 2008-03-12 19364
1139 아뿔싸! 소대장이 고문관이다 김동렬 2009-01-25 19345
1138 문국현 실험 이제는 끝낼 때 김동렬 2007-11-06 19344
1137 이명박의 쇼생크 탈출 김동렬 2008-09-03 19313
1136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얽혀 있다 김동렬 2008-04-25 19311
1135 타이거 우즈의 불행 7 김동렬 2009-12-09 19304
1134 노공이산 김동렬 2008-04-01 19304
1133 유시민 나가주니 박상천 들어오시고 김동렬 2008-01-23 19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