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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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172 vote 1 2011.10.19 (17:32:51)


징기스칸의 제로 리스크 시스템

 

징기스칸 이야기 나오면.. 두 부류의 대화가 통하지 않는 또라이 집단이 말을 자르며 나서곤 하는데.. 하나는 몽골이 고려를 침략한 점에서 우리 민족의 원수이며, 따라서 징기스칸에 대한 미화는 곤란하다는 거다.

 

또 하나는 몽골족이나 여진족이나 알고보면 다 같은 우리 민족이라고 우기는 요상한 사대주의자들이다. 멍청한 사람들 많다. 역사학자들이 제대로 된 판단기준을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혼란이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간 대결을 두고 현대 기준을 적용하여 쓸데없는 주장을 늘어놓는 무리도 있다. 이런 자들은 대개 세계사에 무지하다. 유럽사를 보면 우리보다 더 끔찍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고대사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민족간 대결보다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의 대결이 더 본질적인 모순이다. 그런걸 감안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현대의 기준을 함부로 들이대지 말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바보같은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약동하는 역사의 에너지를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의 원천을 알고 그 에너지의 결을 따라 판단해야 한다. 징기스칸은 세계의 영웅이다. 세계 단위로 논해야 한다.

 

징기스칸은 잠든 유럽을 깨운 위대한 아시아인이다. 그 관점에서 보는게 맞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의 사생활을 조사해서 그의 치졸한 면을 폭로하고는 아인슈타인 알고보니 저질이네 하는 식이라면 한심한 것이다.

 

격이 있는 법이며 격에 맞게 논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다. 털면 먼지 나온다. 잡스가 워즈니악을 사기쳐서 삥땅을 했다니 어쨌다니 하는 식의 유치한 폄훼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중동의 공격같다.

 

앞으로 한국사 100년은 노무현 대통령의 세팅대로 가므로 그 단위에 맞추어 평가해야 한다. 단위가 있고 가치판단은 단위 중심으로 일어나야 한다. 카이사르가 로마의 공화정을 파괴했다는 식이면 협량한 것이다.

 

물론 그런 점도 분명 있지만, 따지자면 노무현 대통령도 비판할 부분이 있지만 단위에 대한 인식이 앞서야 한다. 세계용 인물은 세계사 기준으로 판단함이 맞고, 국내용 자원은 한국사적 기준으로 판단함이 맞다.

 

스티브 잡스는 최악의 워스트 드레서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학적인 안목이 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보통사람이 그런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면 욕먹을 만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라면 경우가 다르다.

 

그는 눈치보지 않았다. 남들이 어떻게 뒷담화를 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애초에 눈치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안하무인이었던 것이다. 원래 연장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된다. 핵심을 쥔 자는 그렇게 한다.

 

그게 없는 껍데기들이 남 눈치보느라 옷은 멀쩡하게 잘 입는다. 진짜라면 그딴거 초월한다. 주된 요소냐 종속적 요소냐다. 잡스는 세계적 인물이므로 결점들은 오히려 구색을 맞추는 드라마적 요소가 되어 빛난다.

 

어떤 인물이 무슨 짓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을 대표할 간판이 뭐냐다. 나경원의 친일행각은 큰 문제고 박원순의 큰 잘못은 작은 문제다. 나경원은 이렇다 할 프로필이 없고 박원순의 프로필은 매우 길기 때문이다.

 

외국을 여행할 때는 그 나라의 가장 좋은 것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구태여 단점에 흥미가 간다면 콤플렉스다. 남의 장점을 취하는게 자신에게 이득이다.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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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의 다음 웹툰 ‘말무사'에는 징기스칸과 자무카가 대등한 인물로 나오지만 이는 만화의 설정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의 전투력은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건 만화나 드라마의 설정이다.

 

덕이 높은 군주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천하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대사를 도모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젤메와 수부테이는 형제인데 선대에 팔려온 집안의 종이고, 보오르추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동네 애고, 활의 명수 카사르는 한때 형을 능가할뻔 하다가 혼난 아우고, 도끼의 달인 벨구테이는 배다른 아우고, 다 비슷비슷한 집안 식구요, 동네 애들이었다.

 

◎ 징기스칸은 천하의 인재를 고루 등용했다. ( X )
◎ 징기스칸의 부하들은 그냥 집안 식구였다. ( O )

 

당시 몽고 인구는 적었고 초기에는 전투규모가 작았으므로 인재를 발탁할 기회도 없었다. 왕이 되어서 널리 인재를 모집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던 거다. 우연히 모인 동네 애들이 모두 영웅이 되었다.

 

중요한 점은 징기스칸만 싸움을 잘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동생들과 부하들 역시 싸움을 잘했다는 거다. 병력이 많지도 않았다.

 

부하들 중의 하나인 무칼리에게 불과 수 만의 병사를 맡겨놓고 최대 50만 대군을 거느렸던 금나라를 정복하라고 시키고, 자기는 배후에 있는 산림족의 반란을 진압하겠다며 초원으로 돌아가버리는 식이다. 무칼리가 적은 병력으로 금나라를 토벌했음은 물론이다. 무칼리 역시 뛰어났던 것이다.

 

코라즘을 정복할 때는 코라즘이 40만 대군을 일으켜 수 십여개의 성채에 분산시켜 방어하게 했는데 이는 숫자가 적은 몽고군을 분산시켜 힘을 뺄 목적이었다. 징기스칸은 적은 군대를 다시 잘게 쪼개서 적군의 성채간에 서로 연결하지 못하게 길을 끊어놓고 일일이 다 정복했다. 여러 부대로 나누었으므로 장수들은 적은 숫자를 지휘하게 되었지만 뛰어난 능력으로 모두 제압했다. 어른이 애들 손목비틀기 식이었다.

 

그렇다. 징기스칸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의 부하들 모두 기량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왜 그게 가능했을까? 여기서 우리가 깨어야 하는 신화는? 구태여 천하의 인재를 모을 필요가 없었다는 거다. 동네 애들도 그 정도는 했다.

 

김성근 감독만 해도 그렇다. 주워모은 퇴물로 막강한 팀을 만들었다. 양키즈나 요미우리처럼 많은 돈을 들여서 천하의 영웅호걸을 끌어모아 벤치에 앉혀놓는 것이 아니다. 다른 팀에 갔다면 주전에 들지도 못할 애들을 데려와서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 놓는다. 그게 가능하다.

 

정복은 징기스칸의 사후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징기스칸의 부하들은 모두 불패의 장수였으며 그들은 전부 징기스칸이 직접 키운 동네 애들이었다. 고정관념을 깨라. 드라마의 공식을 깨라. 이런 일은 말도 안 되는, 신화적인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일당백은 가능하다.

 

전에도 여러번 한 이야기다. 인물은 특정 시점, 특정 장소, 특정 환경에서 우르르 쏟아진다. 선조임금 때 이순신과 권율과, 원균과, 유성룡 등은 모두 한 동네 애들이었다. 천하의 인재가 아니고 그냥 옆동네에서 구슬치기 하며 놀던 애들이 모두 뛰어난 인재가 되었다. 화담, 퇴계, 율곡이 나오자 그 영향으로 일제히 쏟아진 것이며 그들은 모두 조광조와 조식의 영향을 받았다.

 

역사의 그런 시점이 있다.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지사들도 변방에서 신분에 불만을 품고 배회하던 한량들이었다. 그들은 선대 조상이 도꾸가와 막부에게 저항했기 때문에 몰락한 무사집단의 후예로 막부를 엎어버려야 한다며 떠들고 다니던 거리의 불평분자들이었다. 명치 이후 한 명의 스승에게 배운, 한 패거리 애들이 일제히 일어나 내각을 독식하고, 전국을 장악하고, 전쟁을 벌이고 별 짓을 다 했다.

 

삼국지의 영웅호걸들도 일제히 나타났다가 관우가 죽으면서 일제히 몰락하여 더는 인물이 나오지 않고 재미가 없어진다. 인물은 특정 시점에 갑자기 등장하였다가 완전히 대가 끊어져서 나오지 않게 된다. 이는 한국 프로권투가 한 순간에 망해버린 이치와 같다. 여러 체급에 챔피언을 배출하던 시절은 과거의 신화다.

 

625 때 국군에도 절대로 안 지는 상승부대가 있었고, 인민군이나 중국군도 마찬가지였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중령이 이끄는 이지중대처럼 평범한 병사도 제대로 된 지휘관을 만나 베테랑이 되면 불패의 영웅이 된다.

 

만화는 보통 영웅이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신분차별을 일삼는 경쟁자를 이기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독자들의 열망을 반영한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실은 독자들 자신이 그렇게 등용되고 싶은 거다.

 

진실을 말하면 징기스칸 본인의 역량이 뛰어났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단 한명의 5툴 플레이어가 자신을 무수히 복제한 것이다. 구조론의 복제원리에 따라 인재를 대량복제하여 김성근 감독 한명이 수십 명의 작은 김성근들을 길러낸 셈이다.

 

그렇다. 평범한 인물도 김성근 감독이 손을 대면 훌륭해진다. 징기스칸의 뛰어난 사준사구(네 명의 유능한 심복과 네 명의 뛰어난 맹장)는 그의 하인이거나 친구거나 동료였다. 특이한 점은 한솥밥을 먹었다는 점이다. 이는 무상급식의 힘이다.

 

왕은 높고 신하는 낮다. 서로 간에 소통할 기회는 없다. 그러므로 왕에게 능력이 있어도 신하들은 능력이 없다. 그러나 징기스칸은 불과 스물 몇살의 어린 나이에 일찍부터 칸이 된 데다, 곧바로 몰락하여 이리저리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왕과 신하의 구분이 의미가 없었다.

 

그냥 동네 청년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한 것이다. 자유로운 소통에 의해 집단지능이 형성된 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소통지능이 작동한 바다. 그동안 한국바둑이 강했던 이유는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며 서로 기술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한 동네 애들이어야 강하다.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냥 동네 애들 모아놓으면 뛰어난 팀이 되지만, 천하의 인재를 모아놓으면 프랑스 외인부대처럼 16강도 못 가고 깨져버린다는 사실을. 2006년에 준우승했던 프랑스가 실력이 없어 탈락한 것은 아니다.

 

축구 이야기 나오면 항상 나오는 말이 연고주의 타파하고 실력위주로 선발하자는 주장인데 일부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또 유소년 축구부터 양성해야 한다고 거품 무는 원칙주의자도 많은데 그것도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니다. 전혀다. 그딴거 굳이 필요없다.

 

야구 인기가 높아서 애들이 다 야구로 가버린다거나 하는 문제는 분명 있지만, 꼭 인구가 많고 축구자원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소국들은 인구가 적어도 축구만 잘한다. 그러므로 유소년 축구 안해도 충분히 승산있다. 물론 유소년 축구도 하는게 좋긴 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지 월드컵을 위해서는 아니다. 제대로 아는 사람 하나만 있으면 그냥 이긴다.

 

연고주의 철폐하고 실력위주로 선발하고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충분히 승산있다. 징기스칸의 집단에는 이질적인 인물이 없었다. 외부에서 뛰어난 인재를 스카웃 하지 않고 그냥 집안의 종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한국이 강한 것은 내부적으로 소통이 잘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외국이나 혹은 먼 곳에서 이질적인 인물을 단지 실력만 있다고 데려오면 더 막히는 수가 있다. 소통의 속도가 늦어져서 발전이 없다. 물론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다.

 

데려올 인재는 데려와야 한다. 그러나 LG야구가 붕괴된 것은 내부적으로 소통이 안 되어서 그러한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이 정도는 필자가 봐도 보인다. LG에는 팀을 완전히 장악할 인물이 필요하다. 그 인물이 반드시 내부인물일 필요는 없다. 소통을 하려면 오히려 뒷구멍 소통을 막아서 공식경로 소통이 잘 안되는 사정을 드러내야 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구조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구조론이 주장하는 것은 완전성이다. 애초에 핵이 될 뛰어난 인물 하나가 있어야 이야기가 된다. 그 인물은 징기스칸 본인이었다. 징기스칸이 덕이 있어서 널리 인재를 구한게 아니고 자신이 인재였다.

 

징기스칸은 집안의 종들만 데리고 싸워도 이겼다. 동생들과 친구들도 도움이 되었다. 몇 십년을 그렇게 떼로 몰려다니며 싸움만 일삼다보니 집안의 종들과 친구들이 다 천하의 명장이 되어버렸다.

 

징기스칸의 위대함은 그의 부하들 중에 배신자가 하나도 없었다는데 있다. 왜? 인재를 외부에서 영입하지 않고 직접 키웠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면 반드시 트러블이 생기고 내부갈등이 생긴다. 영입된 인물이 그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비선을 만들어놓고 두목에게 보고를 하지 않는 거다. 팀은 깨지고 만다.

 

물론 나중에 아랍을 쳐들어갈 때는 징기스칸도 외부에서 인재를 데려왔지만 그들은 행정가거나 기술자들이고 순수하게 전투 측면만 보자면, 또 초원을 통일한 40대 중반까지 보면 원래부터 데리고 있던 애들 데리고 전쟁을 했다.

 

그는 전쟁을 끝내고 돌아올 때마다 적국의 고아 한 명씩을 입양했는데 다들 명장이 되었다. 그냥 길에서 주워온 애도 징기스칸 밑에서 크면 천하의 인재가 된다. 구조론의 완전성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첫째 본인의 역량이 완전했고, 둘째 보편성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본인의 복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포드 시스템으로 인재를 찍어냈다. 그의 게르는 학교와 같아서 옆에서 심부름만 해도 어깨너머로 배워서 천하의 명장이 되었다.

 

징기스칸은 평생 40여 회의 전투를 치르면서 한 번도 같은 전술을 두 번 써먹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징기스칸은 누구나 배우면 써먹을 수 있는 보편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그 시스템은 무수한 변용이 가능한 열린 시스템이었으며 거기서 무궁무진한 수가 나온 것이다. 머리가 좋아서 기가 막힌 꾀를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이든 적응이 가능한 열린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가 막힌 꾀는 대개 적을 속이는 거다. 징기스칸은 구태여 적을 속이지 않았다. 다만 적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단을 만들어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물론 보급에 쫓기거나, 도망병을 걱정하거나, 부하의 배신을 염려하거나 하는 리스크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징기스칸의 시스템은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 것이었다. 뒷걱정 없이 싸움에만 전념하게 했다.

 

징기스칸의 전술은 무궁한 변화가 가능했지만 대개는 그게 불가능하다. 보급문제, 배신문제, 날씨문제, 도망문제, 연락문제 때문이다. 이런 리스크를 줄이려면 엄벌위주의 융통성없는 경직된 전술을 써야 한다. 군기 잡느라고 부하들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가 없다. 영화 고지전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징기스칸 군대도 강력한 저항에 막힐 때가 있었는데, 그 때는 몇 년씩 포위해놓고 그동안 기술자를 아랍에 보내서 신기술을 들여왔다. 무작정 대가리 들이밀며 박터지도록 싸우는건 없고, 전술적으로 다 이겨놓고 싸우는 거다. 자원을 소모시키는 인해전술 안 썼다. 초반에는 워낙 병력이 적어서 그럴 수도 없었고.

 

제갈량의 뛰어난 능력은 제갈량 혼자만의 것이다. 그러나 징기스칸 부하들은 그냥 동네 애들이지만 모두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다. 징기스칸이 만든 '제로 리스크 시스템'에 합리성과 보편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량과 다른 점이 그거다.

 

(징기스칸 시스템의 핵심은 배후의 불안요소를 0으로 만드는 것, 대표적인 예는 타타르족 몰살로 배후위협 차단. 이는 축구가 선수비 후공격인 것이나 야구가 투수놀음인 것과 같다. 배후위협 제거가 구조론의 질이다. 질은 밀도를 높이며 배후의 불안요소는 균열을 일으켜 그 밀도를 낮춘다. 뒷문 불안을 없애야 끈끈한 응집력이 발휘된다.)

 

누구라도 징기스칸에게 직접 전술을 배우고 징기스칸의 군대를 지휘하게 되면 패배를 모르는 사나이가 된다. 이는 인품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위력이다. 본질에서의 차이가 있다. 징기스칸의 군대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보통은 목축을 하며 겨울에 양식이 부족해지면, 곳간을 채울 목적으로 약탈을 자행하는데 그러한 약탈의 목적으로 짬짬이 전쟁을 하는게 아니라, 징기스칸은 오직 전쟁밖에 모르는 직업 전사집단을 양성한 것이다.

 

허영만 화백의 말무사에도 묘사되고 있지만 쉴새없이 계속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질적으로 우수한 군대가 만들어졌다. 이런 특징은 알렉산더군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데 원래 전쟁에서의 가장 큰 딜렘마는 병사들의 도망이다.

 

고대전투에서 사각형 방진을 치는 이유는 병사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징기스칸 부대는 애초에 그런 고민이 없었다. 원래 몽골족들은 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면 일제히 약탈을 시작하는데, 그 틈을 타서 적들은 모두 도망쳐 버린다. 징기스칸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병사들이 약탈하러 흩어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약탈이 아닌 승리가 목적인 부대가 만들어졌다.

 

알렉산더도 이 문제를 해결했다. 페르시아 군대는 병사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대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개인행동을 한다는 것은 곧 전쟁하다가 도망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징기스칸은 기병 중심으로 부대를 운용했고, 기병들은 원래 말을 타고 있어서 도주하는게 본능이었다.

 

기병은 귀족 중심으로 편제되었으며 귀족들은 명예를 중시하므로 도망치지 않는다는 구실이지만, 실제로는 기병들은 양 날개에 붙어서 병사들을 몰이하기만 하고 직접 대가리터지게 싸우지는 않는다.

 

적군의 배후를 돌아 늑대가 양떼를 몰이하듯 하다가 불리해지면 제일 먼저 튀는 것이 귀족 기병이었다. 알렉산더는 최초로 전시용이 아닌 실전용 기병을 만들었다. 기병을 몰고 그대로 적진의 중앙으로 뛰어들어 적장부터 제압해버리는 것이다. 고대의 전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혁신이었지만 중세 아시아식 전투는 이게 기본이다. 관우가 원소군의 안량을 베서 단숨에 승기를 잡았듯이 말이다.

 

외곽에 양 날개로 붙어서 아군의 도주를 감시하고 적군을 몰이하던 기병이 곧바로 중앙으로 뛰어들자 적군들은 대응할 바를 모르고 흩어져 버렸다. 이는 알렉산더가 워낙 뛰어난 부대를 양성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말의 등자가 없었기 때문에 승마술이 부족해서 불가능한 전술이었다.

 

이 정도 부대를 만들려면 병사들과 동고동락을 해야 한다. 왕은 높고 병사는 낮으며 서로간의 거리가 멀다면 이런 부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징기스칸은 병사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었다.

 

심지어는 빨래도 못하게 해서 자신도 고린내 나는 썩은 옷을 벗지 않았다. 거지군대 비슷했는데 그걸 자랑스럽게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난 평생 더러운 옷을 안 빨아입지. ㅎㅎ.’ 한 마디로 타고난 전쟁귀신이었다.

 

필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짐작할 것이다. 영웅전의 공식은 잘못된 것이다. 덕이 높은 임금이 널리 인재를 구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있다면, 무식한 농부도 명장이 될 수 있고, 김성근 감독을 만나면 평범한 선수도 스타가 될 수 있고, 한글을 배우면 무지한 농민도 편지를 쓸 수 있다. 보편성이 중요하다. 개방성이 중요하다. 소통이 중요하다. 일대일 직접대화가 중요하다.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세종대왕의 한글도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 그러나 그동안 역사학자들은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해왔다. 성삼문, 하위지가 한글을 만들었나? 천만에. 그들은 세종대왕 부탁으로 심부름이나 다닌 것이다. 한글은 혼자 고민해서 혼자 만들었다. 필자의 구조론도 그렇고.

 

천하의 인재들을 상하귀천없이 고루 영입하여 선정을 펼친다는 만화의 공식과 안 맞기 때문에 학자들이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한글은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고, 징기스칸과 알렉산더와 광개토대왕은 본인이 워낙 실력이 뛰어나서 이겼다.

 

역사는 위대한 한 명에 의해서 바꿔진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자기자신을 무수히 복제한다. 그럴 때 집단 전체의 수준이 올라간다. 누구라도 그 한 명에게 배우면, 혹은 그 한명이 있는 집단에 소속이 되면 갑자기 능력을 발휘한다.

 

그 한 명은 5툴 플레이어여야 한다. 이것이 완전성의 의미다. 그러므로 역사의 인물은 한꺼번에 무더기로 나온다. 그리고 환경이 바뀌면 갑자기 사라진다. 한때 영국이 두각을 나타냈고, 근래에 미국, 일본이 제법 떴지만 계절 변하듯이 한 순간에 변할 수 있다. 갑자기 떴으므로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갑자기 우리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다.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제로 리스크 개념의 의미는 집단이 이심전심에 의해 한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함으로써 조직의 효율을 높이는데 있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개념과 같다. 이쪽으로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저쪽을 틀어막아 버린다.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완전성 개념을 적용하여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두 확보해놓고 하나씩 오답을 지워나가는 것이다. 점차 확률이 올라가서 마침내 대사를 이루게 된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10.19 (18:48:16)

인물이 나올때 무더기로 쏟아지는 이유는 핵이 형성되었기 때문이고, 즉 센터 구실을 할 곳이 있기 때문에 정전기 현상처럼처럼 인물이 핵을 중심으로 모여들 수 밖에 없다. 이는 핵이 없으면 세포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아서 핵이 없으면 복제를 하지 않아서 인물이 생겨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4]달근

2011.10.19 (21:54:55)

아하, 그렇군요!!!

저는 김선생의 글을 보며 매번 감탄을 하지만

정작 스스로 알아내는게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정말 이해를 하고 있는 지 의심을 하게 됩니다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1.10.20 (08:20:44)

서구 유럽에서도, Euler같은 수학자들은 가족사나 친척사에 천재적인 수학자들이 몰려있죠.

 

1,2 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의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은 수난을 당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유태계의 물리, 수학자들이 대거(?) 미국동부로 몰려갔고,

 

서부의, UC계열로가서, 제자들을 양산한 시스템.

 

그게, 미국의 '과학시스템'을 만든 배경.

 

유럽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때문에 인정안하는 것뿐.

 

그보다는, 몰려오는 아프리카 이민자들때문에 골머리를 겪고 있어서 바쁠뿐.

[레벨:7]iness

2011.10.20 (09:00:40)

리스크를 제로로 만든다고 해도, 

인간이 실질적으로 질의 포지션을 차지할 수 없는거 아닌가요?

다만 기존에 있는것을 긁어 모아서. 
2차적으로 일시적으로 잠시 동안 '질'의 포지션을 잡을 수 있을 뿐이고,

발생한 이익도, '질'의 포지션 유지비용에 대부분 투자되거나,
기존에 '질'이 붕괴되면, 다음 '질'로 이동하는데 거의 전재산을 쏟아부어야 할텐데..
(쏟아 붙는다기보다는 한푼도 못가지고 간다고 말해야될듯)

재주는 곰?이 부리고, 콩고물은 신과 역사가 줏어먹는다면
궁극적으로 사람이 뭔가 상승하고 나아지는건 없잖아요.

세상이 진보하면, 진보하는 과정에 적절히 동참해서 그 찌끄레기나 줏어먹는거 밖에 않되는데..
인간이 스스로의 1차적인 원인축이 되거나 모순이 해결되는게 아닌거 같고.

눈높이를 신의 수준에 맞춘다고 해도, 
신은 신자신의 길을 가는거지, 굳이 신이 거기에 뭔가 대답할 이유도 없구요.
어디까지나 결정 주도권은 신에게 있지, 인간은 그냥 신을 유도할 환경을 만들 수 있는것에 불과하고,
(어떻게 보면 신의 승리를 나의 승리로 삼는다는것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기기만에 불과한거 아닌지..)

'근본적인 질의 포지션' 자체를 인간이 획득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애초에 이게 불가능하다면, 선택지가 없는 반강제적인 자원봉사에 불과한것 아닌가요?
생존위협에 협박당해서 억지로 하던가,긍정적으로 포기하고 즐겁게 봉사하던가 하는 -_-;;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10.20 (09:58:11)

 

인간은 프로그래밍 되어있는데로 작동하는 모르모트에 불과하오.

자신이 어떻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지를 살피시오.

그런 질문은 안 하도록 되어 있소.

 

놀이개를 흔들면 고양이가 달려들듯이 표적을 향해 달려가도록 되어 있소.

님의 이의는 내가 열일곱살 때 스스로에게 한 질문과 같은 것이고

내가 내린 정답은 로봇의 3원칙과 같은 것이오.

 

인간은 마이너스로 가므로 위쪽은 쳐다보지 않게 되어 있소.

인간이 질의 포지션으로 올라서는게 아니라

인간 밑으로 입자 힘 운동 량이 생겨나오.

 

인간은 낳음에 의해서만 질이 되는 것이오.

인간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할 때 목표가 선명해지는 것이오.

자기 내부의 것을 완전히 불태워 없애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소.

 

쿨하게 승복하고 그 사실을 유쾌하게받아들여야 하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5]기준님하

2011.10.20 (12:42:46)

이번 글은 좀 낫다.

나는 자신을 복제하는게 뭔지 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난너부리

2011.10.21 (11:10:58)

 오늘자 말무사에 달린 댓글들 중 장재석님의 댓글입니다. 징기즈칸은 병사들의 도망과 전투중 약탈행위를 이렇게 방지했고, 이들을 직업전투집단으로 발전시켰네요.


<< 칭기스칸은 지휘부들을 모아놓고, 항상 강조하던 이야기가 있다. 

"사랑받는 병사는 죽음을 잊고 싸운다. 수시로 승진해주고, 분배를 확충하라."

"전리품은 싸우면서 챙기지 마라. 일단 최선을 다해 싸운 후 한번에 모아서 공평하게 분배하라."

기존에는 싸우면서 전리품 챙기다가 지휘전달이 무색해지는등 도덕적 해이 현상이 극심했었다.

이런 새로운 정책으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게 되니 자연스럽게 승리의 연속이 반복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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