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와,나,라,고는 실패했다.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다. 문제는 실패의 이유를 어디서 찾느냐이다. 정답을 말하자! -대중의 무지가 문제가 아니라 지식인의 편견이 문제다-

와이키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꽃섬의 실패를 예견했고 나의 예견대로 실패했다.(사실 누구나 예견할 수 있다) 반대로 나는 '나쁜 남자'의 흥행을 예견했고 예상대로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나쁜 남자는 다른 영화의 1/3에 불과한 숫자의 극장에 걸고도 주말에 전국 13만명을 동원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물경 17억을 들이고도 말아먹었고, '나쁜 남자'는 단돈 7억을 들여서 대박을 냈다.(투자대비로 따진다면 대박이다, 전국 100만 간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저예산영화로 선전되었지만 사실은 '친구'나 '두사부일체'와 비슷한 정도의 제작비를 썼다. 17억이 무슨 저예산이냐는 말이다.

대중을 믿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대중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된다. 물론 대중의 판단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드물게 진짜는 알아본다는 말이다.

그 유명한 주윤발의 '영웅본색'도 개봉관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천녀유혼'도 재개봉관에서 뜻밖에 대박이 났다. 이런 경우는 매우 많다. 서편제도 어찌어찌 입선전이 되는 바람에 뒷바람이 불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고양이를 부탁해'는 씨네21의 오은하아줌마나 조영남이 혼자서 뒷바람을 불어대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가짜는 뽀록나고 만다.

오해하기 없기다. 장선우의 모든 영화를 가짜라고 말해왔지만 반대로 그가 너무 어려운 주제에 도전했다는 역설적 의미가 있다. 주제가 본질에 앞서서 안된다는 말이지 그의 주제의식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답은 있다는 말이다. 대중이 지식인의 지당한 말씀을 외면할 경우, 대중을 타박하지 말고 지식인 자신의 편견을 먼저 교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식인이 먼저 눈높이를 낮추어야 하고 대중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김기덕의 영화는 지금까지 늘 흥행에 실패해 왔다. 또 이번에는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다. 그러나 김기덕의 실패와 장선우의 실패는 완전히 다르다.

김기덕은 실패에 아랑곳하지 않고 1층의 실패위에 그대로 2층을 올려짓는다. 장선우는 한 번 실패하면 "이 번에는 또 어떤 방법으로 사기를 쳐먹을까"하고 잔머리를 굴리다가 1편과 전혀 다른 2편을 만든다. 1편의 실패는 영원히 실패로 남는다.

유전을 탐사한다 치자. 100미터를 파서 실패하면 200미터를 파고 하는 식으로 7번 째 700미터를 파서 마침내 유전을 발견하고 대박을 낸 사람이 김기덕이고 '나쁜 남자'다.

100미터를 파다가 안되면 장소를 옮겨서 다른데를 파보는 사람이 장선우다. 고로 둘의 실패는 같은 실패라도 차원이 다르다.

진짜와 가짜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는 말이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도 실패하는 경우는 많다. 실패해도 꾸준히 밀어붙이면 김기덕처럼 답이 나오는 경우가 있고, 임순례처럼 원초적으로 답이 안나오는 경우도 있다.

김기덕은 비지식인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그 어떤 지식인의 영화보다도 더 현학적이고 더 철학적이고 더 인문적이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그렇듯이 문명의 첨단에 서 있다. 한 때 오감도의 이상이 그랬듯이, 또 서태지가 그렇듯이 그의 영화는 늘 시대의 첨단에 서 있다. 한국인들은 잘 몰라도 독일인들은 알아본다. 베를린에 초청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희망을 얻어야 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나는 지식인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면서 지식인의 편견을 비판해왔다. 나는 좌파에 희망이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면서 좌파의 오만을 비판해왔다.

작가주의다, 저예산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희망은 이쪽에 있지만 가짜도 이쪽에 많다. 원래 세상이 그렇다. 희망이 그 쪽에 있다면 그 쪽을 먼저 비판해야 한다. 하나의 진짜가 있는 그곳에 세상의 모든 가짜들이 몰려 있다. 그래서 김기덕은 늘 손해를 본다.

모든 논쟁을 잠재우고 이제 김기덕은 더 이상 한국의 김기덕이 아니다. 세계의 김기덕이다.

빌어먹을! 나의 분노는 정당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나라는 외국인이 먼저 알아줘야 대접을 받는다. 가장 지성적인 김기덕의 영화가 늘 지식인들의 텃세에 시달린다. 왜 우리가 먼저 알아주지 못하고 베를린이 먼저 알아주어야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장선우류 원초적 아님이나 임권택류 근본적 한계는 잘도 대접하고 모시면서 말이다. 왜 한국인들은 독일인 보다 먼저 김기덕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이 땅의 지식인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그 오만을 버려야 한다. 먼저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김기덕의 지나친 겸손 뒤에 숨겨진 비수를 알아채는 사람이 이나라에 과연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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