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란
read 2441 vote 0 2008.12.31 (00:34:52)

 관계망의 세계관을 깨달음

공(空)이나 무(無) 혹은 비움이나 내려놓음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비운다고 말하며 비움에 집착하고 내려놓는다고 말하며 내려놓음에 집착한다.

관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계로 보면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비우는 것이 도리어 채우는 것이고 놓는 것이 도리어 붙잡는 것이다.

석가는 인연(因緣)이라 했다. 인연이 곧 관계다. 비우고자 하는 즉 비움의 인연에 붙잡히고 내려놓고자 애쓰는 즉 내려놓음의 인연에 붙잡힌다.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세상은 알갱이들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망의 네트워크로 되어 있다. 존재는 원자(原子)가 아닌 구조로 되어 있다

관계로 보면 세상에 고유한 것은 없으며 만유는 관계를 맺는 양 당사자에 의해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다.

물질의 세계는 점과 선과 각과 입체와 공간으로 단계적인 집적상을 이룬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상과 같아서 우리는 이를 거꾸로 보고 있다.

관계로 보면 점(點)은 ●이 아니라 맞닿아 있는 두 당구공 사이다.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아무 것도 없다. 세상은 아무 것도 없는 것들의 집합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천만에! 두 당구공 사이에 만남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만남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색(色)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이고 공(空)의 세계는 관계의 세계다. 두 세계는 거울에 맺힌 상처럼 서로의 모습을 거꾸로 비춘다.  

존재는 ●들의 집합이 아니라 ‘사이’들의 집합이다. 나와 너 사이다. 나와 너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만남이 있다. 만남이 곧 인연이다.

원자 알갱이들이 모여 물질 존재를 이룬다고 보는 것은 색의 세계요 만남의 인연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이룬다고 보는 것이 공의 세계다.

색의 세계는 거울에 맺힌 상과 같은 허상의 세계요 그림자의 세계다. 진상으로 보면 세상은 만남이 있고 관계가 있고 인연이 있을 뿐이다.

만남이 모여 맞물림을 이루고 맞물림이 모여 함께서기를 이루고 함께서기가 모여 하나되기를 이루고 하나되기가 모여 소통을 이룬다.

◎ 색(色) - 세상은 ●들의 집합이다.
◎ 공(空) - 세상은 ●와 ●의 사이에 있는 만남들의 집합이다.

●와 ● 사이에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세상은 아무 것도 없는 것들의 집합이다. 아니다. ●와 ● 사이에 만남이 있다. 세상은 만남의 집합이다.

입버릇처럼 비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비우지 못한 사람이고 입버릇처럼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비움도 만남이고 내려놓음도 만남이다. 비움도 관계고 내려놓음도 관계다. 비움도 인연이고 내려놓음도 인연이다. 그렇게 인연은 쌓여만 간다.

무(無)는 무가 아니고 공(空)은 공이 아니다. 무(無)는 사이고 사이에 만남이 있고 만남은 인연을 이루고 인연은 관계맺기다. 이미 관계를 맺었다.

비운다고 말하며 비움의 인연을 쌓고 놓는다고 말하며 놓음의 인연을 쌓는다. 비움과 놓음과 공(空)과 무(無)에 집착하는 한 그 인연 끊지 못한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때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만난 사람이 비운 사람이고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비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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