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란
read 3908 vote 0 2003.02.23 (19:40:51)

【 언어의 지킴이 】

붓 가는 대로 갈겨 놓은게 수필이 아닌가? 천만의 말씀이다. 붓이 아무데로나 가나? 또한 붓이 가는 길이 있는 법이다.

문장에는 형식이 있다. 소설은 한 명의 작가가 익명의 다중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방식이요, 시란 작가 자기자신 내지 단 한명의 독자를 위하여 나지막이 들려주는 감흥이요, 수필은 좋은 날 정자에 모인 친구 서넛이 이런 저런 세상사를 논하는 유쾌함이겠다.

그래서 소설은 독자가 많을수록 돈이요, 시는 그 참뜻을 아는 독자가 적을수록 맛이요. 수필은 수필인대로 깊은 뜻을 알아들을 만한 친구 서넛이면 족하다.

수필을 두고 청담(淸談)이다 한담(閑談)이다 하는 것은 그런 뜻이겠다.

정형시는 구와 절에 운이 있고, 자유시는 그 운에 파격을 더함에 운문시는 대개 운이 느리고 산문시는 대개 운이 빠르다. 시는 운이며 운은 리듬이고 리듬은 호흡이다. 어떠한 형태이든 시에는 반드시 리듬과 호흡이 있다. 그것이 시가 단 한명의 독자를 위해 들려주는 이야기 방식인 이유이다.

1천명이나 1만명이 동시에 호흡을 맞추기는 불능이다. 문장이 시에서 시작하여 수필로 발전하고 다시 소설로 발전하여 가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최초에 말이 운을 얻어서 문장이 되고 거기에 향을 실어서 수필이 되고 거기에 색을 더하여 소설이 된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시가 먼저고 수필이 다음이고 소설은 나중에 엮어지는 법이다. 그러한 즉 시는 1인이 감탄하는 바 되고, 수필은 2인이 담소하는 바 되고, 소설은 군중이 합세하는 바 된다. 곧 개인의 주관에서 다수의 객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사유의 진행되는 정도를 따라 글이 문체를 얻어가는 이치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에세이다. 미셀러니가 아닌 에세이 말이다. 미셀러니는 어떤 면에서 소설에 가까워진 변종이다. 한 두 사람의 친한 벗을 상대로 함이 아니라, 익명의 다중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다. 그것은 요즘 라디오에나 가끔 나오는 주부생활수기 비슷한 것이다.

서점에 '월간 에세이'라는 잡지가 있다. 이름이 에세이라 하니 마땅히 에세이여야 하리라. 그러나 그 문장은 오래된 벗들이 여름날 정자여 모여 나누는 한담도 아니요, 심경에 부딪혀 툭툭 튀어나오는 청담도 아니요 생활수기집이다.

바야흐로 에세이가 죽은 것이다. 신문과 잡지가 문장을 이끌면서 칼럼이 익명의 다중을 상대로 하다보니 기어이 문장을 죽인 것이다. 본래 에세이는 출판문화가 없던 시절 서생들이 지우와 나눈 한담을 모아 문집을 남김으로서 이룩된 것이다. 기백만의 독자를 가진 언론의 칼럼과는 토대가 달랐다.

사문난적이라는 말도 있다. 문장은 수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시절이 바뀌니 문장도 변해야 하지만 또한 되돌아봄이 없다면 그 변화가 어찌 올곧을 수 있겠는가? 에세이가 죽었다. 청담도 한담도 사라지고 잡담이 기승한다. 예스러운 문장은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라도 지극한 것과 통하는 법이었는데 그러한 멋이 사라진지 오래다. 어찌 일갈이 없으랴.

김성탄(金聖嘆)은 말한다.

『거리를 지나다 보니 두 놈이 시비를 벌이고 있는데, 서로 눈꼬리를 치켜 뜨고 목덜미까지 시뻘개져서 같은 하늘 아래 절대로 못 살 듯이 싸우더니만 금새 서로 높다랗게 공수하거나, 손을 낮추고 허리를 굽히며, 말하는 모양새도 고어를 쓰는 등 하여간 그들의 수작은 1년이 가도록 끝날 줄 모르게 너저분 했다. 이때 갑자기 장사 하나가 팔을 걷어 붙이고 위엄을 부리면서 큰 소릴 치자 그 싸움이 당장에 풀리거늘 이 또한 불역쾌재(不亦快哉)라.』

소소한 것이 지극한 것과 통한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또한 인격의 도야가 없이는 결코 장면을 포착하지 못하는 법이다. 싸우는 두 놈은 여당 과 야당이 되겠고, 이에 득달같은 장사란 바로 민의의 심판으로서 12,18의 대선이 아니겠는가?

발톱 밑의 작은 가시를 빼지 않고 먼길을 나선다면 어리석은 짓이다. 얼마 가지 않아 털썩 주저앉게 되고 말지.

청담이어야 할 수필을 『귀족들의 고급한 사교』로 바꿔놓은 배후에 야실야실하게 말을 까는 임어당(林語堂)이 있고 한담이어야 할 수필을 생활수기로 타락시킨 배후에 『인연』의 피천득이 있다. 이문열의 실패가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진 것은 아니겠다.

이상(李箱) 김해경의 소설 나부랭이는 되지도 않았지만 상의 행적은 그대로 수필이다. 다방 69가 한담이었다면 작소(鵲巢)는 청담이다. 상이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에세이스트의 전범을 남겼을 것이다. 득달같이 달려든 장사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글자 한자한자에 참다운 기분과 깊은 정으로부터 유로된 무한한 힘이 있다. 그에 비하면 임어당과 피천득은 재담가일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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