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 챔피언 독일팀의 몰락 원인은 젊은 선수들이 말을 너무 잘 들은데 있다. 때로는 말을 안 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독일인들 원래 말을 잘 듣는다. 과거 40여 개의 작은 나라로 쪼개져 있었는데다 게르만의 종사제도 영향으로 인간들이 고분고분하다. 그 경우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롬멜군단처럼 흥하고 나쁜 지도자를 만나면 히틀러의 최후처럼 망한다.
독일에서는 욕설만 해도 처벌한다고. 경찰에게 반말하면 벌금 90만 원. 늙은 돼지라고 하면 350만 원. 가운데 손가락 들면 520만 원. 한국도 모욕죄가 있지만 독일은 좀 심한가 보다. 이러니 사람들이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일본도 작은 다이묘의 영지로 나라가 쪼개져 있었기에 고분고분하다. 일본 국민성이 독일과 비슷한 데가 있다. 반면 중국은 그 반대다. 중국처럼 인간이 많으면 양산박의 도적들처럼 말을 안 듣게 된다. 숫자 속에 숨으면 안전하기 때문이다. 관리가 나무라면 패거리를 규합하여 대응하면 된다. 메뚜기떼가 창궐하면 흉년에 유민이 대량발생하여 지역을 휩쓸고 지나가는데 국가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 말을 안 듣는다. 정부 말을 들으면 반드시 피해를 본다는 사상이 퍼져 있다. 일본은 의사결정단위가 작아서 패거리를 모을 수 없다. 패거리를 모았다가 막부에게 토벌되어 대학살을 당한 역사의 경험이 많다. 일본과 독일처럼 지방자치가 발달하면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은 중간이다. 선비의 기개가 있다. 선비들은 절대 남의 말을 안 듣는다. 그렇게 훈련된다. 그러나 말을 들어야 할 때는 또 말을 잘 듣는 것이 선비다. 말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개겨볼 것인가? 그것을 훈련하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이다. 의사결정능력의 향상이다. 물론 역대 제왕들에 의해 충효를 강조하는 어용종교로 퇴행했지만 이는 모든 종교가 타락하는 공식일 뿐 유교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인류문명의 수준은 오로지 개개인의 의사결정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은 말을 잘 들어야만 한다. 말 듣는 훈련을 해야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말을 안 듣기 때문이다. 부족민은 절대 말 안 듣는다. 아프리카에는 물통이 필요한게 아니고 지도자가 필요하다. 마을마다 족장이나 추장이나 원로가 있는데 이들은 무조건 정부의 말을 거역하라고 속삭인다. 뭐든 지시를 틀고 조건을 내건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다. 인간은 원래 NO로만 의사결정을 한다. YES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며 그 안 되는 YES를 특별히 해낸 독일과 일본, 영국의 청교도주의와 일부 유태인이 흥한 것이며 지금 한국이 흥하는 것도 유교주의 특유의 YES를 하는 능력 때문이다. YES는 여러 가지 NO를 정밀하게 디자인하여 결과적으로 YES가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 작업은 상부구조에서만 가능하므로 닫힌계 안에서는 무리다. 따라서 미리 훈련되어야 YES가 가능하다. 영화에서는 어벤저스 히어로들이 팀플레이를 하지만 그거 원래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실미도 영화처럼 범죄자를 모아 특공대를 만드는 것은 무리다. 실전상황에서 3초 안에 상관을 쏘고 도망친다. 대학생들로 특공대를 만들면 대개 성공한다. 이집트가 욤 키푸르에서 이긴 것도 대학생을 군대에 투입한 덕분이다. 전 세계 인류를 통털어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몇 나라 안 된다. 물론 특별히 엘리트를 모아놓으면 어느 나라든 상당히 된다. 후진국이 가난한 것은 그게 원래 안 되는 것이므로 비상한 방법을 써야 하는데 되는 나라가 특별히 되니까 아프리카라고 안 될거 없잖아 하고 방치해서 그런 거다. 물론 아프리카라도 제대로 된 지도자가 있으면 흥하게 된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폴 카가메의 르완다처럼 아프리카도 될 때는 된다. 이번에 독일팀은 홍명보짓을 했다. 지나친 세대교체로 팀의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말만 잘 들으면 돌발상황에 순발력있는 대응을 못해 집단으로 바보된다. 매뉴얼대로 하다가 매뉴얼에 없는 상황을 만나면 우왕좌왕 한다. 그럴 때 노련한 고참이 순간적 대응으로 팀을 살려내야 한다. 질에서는 균일해야 한다. 자유로워야 균일하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10만 년 전부터 진보주의 자유방임교육을 했지만 한 번도 뭐가 된 적이 없다. 흔히 말하는 정의당식 진보교육은 10만 년 동안 성공사례가 한 건도 없는 실패한 시스템이다. 반면 스파르타식은 성공사례가 많다. 그런데 왜 아테네가 이겼는가? 아니다. 아테네는 졌다. 닫힌계 안에서는 필패다. 아테네의 승리는 동맹의 승리다. 일대일로 붙으면 스파르타가 백전백승으로 이기지만 아테네는 대규모 동맹으로 즉 외교로 타개한 것이며 내륙국가인 스파르타는 전투력만 믿고 외교를 못해서 망한 것이다. 즉 자유방임 교육은 망하고 스파르타식 교육은 흥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유방임이 이긴다. 그러나 싸워서 정면으로 이기는게 아니고 외교해서 이긴다. 무엇인가? 자유방임 교육은 천재 한 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99명이 희생하는 천재독점 교육이다. 억압적인 나라에는 천재가 없다. 왜? 지도자 수준에 맞추어 하향평준화되기 때문이다. 박정희보다 똑똑하면 죽는다. 김일성보다 똑똑하면 죽는다.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흥하려면 교사 연봉을 1억씩 주고 최고의 교사진으로 교육해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잖아. 자질이 떨어지는 교사가 스파르타식으로 하면 당연히 망한다. 학생 실력이 교사수준에 고정되기 때문이다. 자유방임으로 가면 학생그룹 안에서 질서가 생긴다. 우월한 학생과 열등한 학생이 구분되며 우월한 학생이 열등한 학생들 위에 군림하게 되고 이때 우월한 학생과 개성있는 학생이 적절히 궁합이 맞으면 대단한 기적이 일어난다. 구조론은 말한다. 신은 있고 기적도 있고 그러므로 기도를 해야한다고. 그런데 자유방임에는 기적이 있지만 스파르타에는 절대 기적이 없다. 기적은 언제나 외부에서 에너지의 형태로 들어오는 것이며 억압하면 계를 닫아걸어 닫힌계를 만들게 되고 닫아걸면 외부의 에너지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국경을 닫아걸고 있는 북한에 외부에서 에너지가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자유방임이 이기게 되어 있다. 그러나 자유방임만 하면 백 퍼센트 망한다. 아프리카는 10만 년간 자유방임을 했으나 교육에 성공한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아테네도 스파르타와 경쟁한 덕분에 강제로 스파르타식으로 내몰려 운좋게 성공한 경우다. 스파르타가 옆에서 계속 때려서 아테네를 키웠다. 보통 자유방임으로 가다가 백퍼센트 망한다. 그러나 강한 이웃나라와 다투다 보면 위기에 몰려 궁하면 통한다고 자유를 반납하고 질서를 받아들인다. 왜? 죽을 판이니까. 도편추방제로 지도자라는 지도자는 모조리 목을 날리며 자유롭게 개판치다가 스파르타의 칼날에 목이 달아날 처지가 되면 국민이 자유를 반납하고 천재 지도자를 따르게 된다. 민주주의란 도편추방이라는 이름의 지도자 학살제도다. 노무현 죽이듯 지도자를 죽이는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지도자를 교체하다보면 천재 지도자가 등장할 확률이 있다. 자유방임은 기적의 확률을 담보한다. 그러나 자유방임만 해서는 절대 기적이 없다. 그렇다면 정답은? 게임의 법칙이다. 게임의 법칙은 내부적인 틀을 고정시키는게 아니라 외부적인 환경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변화에 대응하기다. 한국도 옆에 있는 일본이 스파르타 역할을 한다. 위에 있는 북한과 뒤에 있는 중국도 만만치 않다. 전후좌우에서 스파르타처럼 괴롭혀대면 이미 자유를 반납하고 질서 속으로 들어가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자유는 없다. 유럽은 늘 전쟁이었다. 그들에게는 늘 자유가 없었다. 독일의 강성은 30년전쟁으로 30년간 줄기차게 얻어맞으면서 자유를 잃은 탓이다. 일본도 전국시대와 2차대전을 거치며 경쟁과 전쟁으로 강해졌다. 미국은 식민지의 낯선 환경이 자유를 빼앗았다. 유럽 농부가 놀고 있을 때 미국 농부는 인디언과 흑곰과 늑대와 황무지와 싸워야 했다. 스파르타식 억압은 망하지만 가혹한 환경의 억압은 흥하게 한다. 단, 이겨야 흥한다. 환경에 패배하면 메뚜기떼에 망한 유랑민들처럼 인간이 피폐해진다. 미국인은 계속 이겨왔다. 인디언을 이기고, 멕시코를 이기고, 영국군을 이기고, 흑곰을 이기고, 늑대를 이기고, 들소를 이겼다. 상대가 약했기 때문이다. 이겨야 흥한다. 인간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환경은 혹독해야 한다. 아프리카는 덥고 유럽은 춥다. 추워서 흥했다. 어떻든 혹독한 환경을 만나야 흥하지만 환경에 지면 망한다. 구조론으로는 환경이 나빠진다. 질에서 입자로 힘으로 운동으로 량으로 갈수록 점점 무언가를 잃는다. 진보한다는 것은 더 많은 간섭을 당하고 제약을 당한다는 의미다. 정의당 가면 페미니즘도 해야하고, 환경보호도 해야하고, 동물학대도 금지 되고 하여간 제약이 많다. 하지마라 하지마라 하지마라 하지마라 하지마라 이것이 진보다. 진보는 인간억압이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이 싫어한다. 구조론으로 보면 최고의 조직은 외교를 하는 상층부, 실무를 하는 중간층, 그리고 에너지를 동원하는 하층부의 몸빵부대가 있는데 세 그룹은 서로간에 평등해야 하며 그 그룹들 사이에 질서가 있어야 한다. 동기들 간에는 평등해야 하지만 선배는 존중해야 한다. 회의 때는 자유롭고 평등해야 하지만 실무작업에는 엄격해야 한다. 평화시는 자유로워야 한다. 전쟁 때 자유놀이 하는 자는 죽는다. 총알이 머리 위를 스치고 날아다니는 판에 무슨 자유가 있겠는가? 진보한다는 것은 질에서 입자로 힘으로 운동으로 량으로 범위를 좁혀간다는 것이며 갈수록 자유를 잃는다. 진보할수록 쓰레기도 함부로 못 버리고, 담배도 함부로 못 피우고, 욕설도 함부로 못하고, 성매매도 못하고, 개고기도못 먹는다. 점차 어려워진다. 억압하면 어떤 의사결정은 할 수 있지만 환경변화에 맞는 새로운 결정은 못한다. 자유로우면 아무런 결정도 못한다. 확산은 자유고 수렴은 질서다. 에너지는 자유에서 질서로 곧 확산에서 수렴으로 방향을 트는 중에만 성립한다. 계속 확산하면 흩어져서 개판되고 계속 수렴하면 더 이상 수렴할 공간이 없으니 한곳에 몰려서 죽는다. 일단은 자유로워야 한다. 리더가 신호를 주면 재빨리 편제로 들어와야 한다. 각자 자기 위치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면 리더를 바꾸어야 한다. 억압적인 나라는 리더를 바꾸지 못해서 망하고 자유로운 나라는 리더가 없어서 망하는데 내부적으로 자유롭지만 외부의 괴롭힘에 맞서는 나라는 자유롭게 실험하다가 순간적으로 리더를 만들어내서 결국 흥한다. 임무가 주어지면 자유를 반납하고 질서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전에는 충분히 자유를 즐기며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확률을 높여야 한다. 환경은 언제나 변하며 또 변해야 한다. 환경이 고정되면 조선왕조 5백 년처럼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망한다. 일부러 난리를 쳐서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 적군의 침략이 없으면 내부에서 당쟁을 해야한다. 인위적인 내부질서는 망한다. 외부환경에의 대응에 의한 질서가 진짜다. 외부문제가 해결되면 즉시 자유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의 질서는 내부에서 강제된 억지 질서이므로 망한다. 우리가 흥하려면 내부의 고참을 섬기지 말고 외부의 백인과 맞서야 한다. 외부에 적이 없으면 미국처럼 가상적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 안 되면 외계인이라도 불러와야 한다. 본질은 외부의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일단은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환경이 변하므로 매뉴얼이 안 맞다. 자유로운 나라가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어낸다. 한 번 우승하면 그 방법을 반복하므로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가 생긴다. 박정희 시절 흥했다고 그 짓을 반복하니 망한다. 정답을 찾기는 원리적으로 쉽지가 않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갈림길에서 A와 B가 있는데 A로 가면 흥하고 B로 가면 망한다고 할 때 처음부터 곧장 A로 가면 망한다. A로 가려면 일단 B로 가다가 이 산이 아닌게벼 하고 방향을 틀어야 속도를 낼 수 있다. 쇄국은 필망이고 개방이 정답이다. 아프리카는 1만 년 전부터 개방했는데 개방하다 망했다. 때로는 쇄국이 답이다. 왜인가? 에너지를 가두는 절차 때문이다. 개방이 정답이지만 개방하면 에너지가 도망가버려서 망한다. 중국이 개방하면 달러를 외국으로 빼돌리니 김영삼 되어 망한다. IMF는 무리한 개방으로 망한 경우다. 내부질서를 갖춘 다음에 외부개방을 해야 하는데 기술적으로 복잡하다. 일본은 지정학적 구조가 절묘해서 개방해도 에너지가 새나가지 않았던 경우다. 결정적인 문제는 내부에서 발목잡는 정의당짓으로 아예 외부를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언제라도 외부를 바라보고 외부적인 환경변화에 대응하며 거기서 질서를 만들어 에너지를 수렴해야 한다. 외부를 보려면 자유로워야 한다. 정의당처럼 하지마라 마라 마라 마라 마라 그러면 자유가 없다. 외부를 못 본다. 다들 내부만을 바라보고 발목잡기짓이나 한다. 탁현민은 이래서 안돼. 김어준은 저래서 안돼. 매양 이런 식으로 발목잡기 하니 흥할 수가 없다. 정의당은 내부적으로도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평등해야 하지만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허무하다. 내부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집단이 외부적인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이겨가는 과정에서 불평등한 질서를 만들어서 흥하는 것이다. 수직적 질서만 존재하는 집단은 하던 일을 잘할 뿐 외부로부터의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망한다. 자유로워도 망하고 억압해도 망하지만 자유롭다가 전쟁을 만나 부대를 소집하고 리더를 선출하고 리더의 명령을 따르되 내부적으로 긴밀하고 끈끈한 부대가 최후에는 이긴다. 이기는 구조는 복잡한 것이며 시행착오 끝에 되지 그냥 절대 안 된다. 결론은 인간은 졸라리 깨져봐야 된다는 거다. 순조롭게 크면 안철수 나약해서 망하고 잡초처럼 크면 김기덕 개판쳐서 망한다. 그런데 망해야 한다. 망하고 망하고 또 망하면 그중에 최후까지 살아남은 군대가 흥한다. 전쟁 나면 이길 전술을 세운 나라는 망하고 전쟁에 패배하면서도 줄기차게 저항한 나라가 흥한다. 백 번 싸우면 그래도 한 번쯤은 이기게 된다.
그 하나의 부대가 상승부대가 되어 다른 부대를 흡수한다. 그때부터 막강해진다. 금나라에 백 번 패배한 몽골의 징기스칸 부대가 세계를 먹었다. 광해군과 인조처럼 이길 수 없다고 포기하면 망한다. 고려는 40년간 줄기차게 저항해서 유일하게 몽골에 흡수되지 않고 국체를 이었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니 진다니 말로 떠드는 입방정 새끼들은 목을 쳐야 한다. 축구라면 유소년이 어떻고, 축협이 어떻고, 인맥이 어떻고 이런 맞는 소리 하는 자들이 개새끼다. 말은 맞는데 번지수가 안 맞다. 이들은 모두 전장 바깥의 조건이다. 장수는 곧 죽어도 전장 안에서 답을 내야 한다. 전장 안에 무엇이 있나? 스쿼드 있고 포메이션 있다. 체력 있고 정신력 있다. 이걸로 논하는 자가 진짜다. 시스템 타령 신태용 변명 졸렬하다. 전장 밖의 요소를 말하지 말라. 기성용이냐 손흥민이냐. 지역방어냐 대인방어냐. 높이로 갈 것인가 빠르기로 갈 것인가? 공격으로 이길 것인가 수비로 이길 것인가? 이런 것을 말하는 자가 진짜다. 이기는 길은 그라운드 안에 있는데 그라운드 밖의 요소를 왜 거론하는가 말이다. 고수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이긴다. 혹은 어떻든 납득할만한 결과를 만들어온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납득이 되어야 한다. 납득이 되면 방향이 정해지므로 다음 시합에서 이길 수 있다. 일본은 16강에 갔지만 납득되지 않는 경기를 했다. 그 후과는 나중에 돌려받는다. 광해군의 비겁한 범죄와 명나라의 붕괴 사이에는 커다란 시간차가 있다. 역으로 광해군의 퇴행행동이 나비효과로 되어 결국 명나라를 붕괴시킨 거다. 일단 말을 들어먹어야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말을 듣는 군대를 만들고 그 다음에 자유를 찾고 평등을 찾으며 전쟁에 임해서는 다시 질서로 복귀한다. 왜 말을 들어야 하는가? 이곳은 초등학교 교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NO다. 철학은 원래 부정하고 회의한다. 철학은 NO다. 당연히 말을 안 들는다. 그러나 NO를 계속하면 최후에 YES가 남는다. 천재는 특별하므로 말을 안 들어도 되지만 둔재는 말을 들어야 한다. 베테랑은 말을 안 들어도 되지만 신참은 말을 들어야 한다. 초등학생은 말을 안들어도 되지만 문재인 내각은 대통령 말을 들어야 한다. 인류를 대표하여 우주로 간 우주인은 말을 들어야 한다. 우주인이 우주정거장에서 패싸움 하면 망한다. 인류의 대표자가 말을 안 들으면 당연히 망한다. ### 자유방임 하면 애초부터 망하고 스파르타식으로 가면 환경변화에 망한다. 자유롭게 퍼져서 외부로부터 정보와 에너지를 얻고, 싸움과 게임에 임하여는 질서있게 맞서되 그 외부를 이겨야만 흥한다. 이는 시행착오를 수반하며 처음부터 잘 될 수는 없고 만약 잘 되고 있으면 망할 조짐이다. 인간은 원래 죽어보자고 말을 안들으므로 말을 듣는 훈련이 먼저다. |
본능과 무의식에 복종하지 말고 이성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말을 안 듣게 되어 있으므로 본능의 충동을 거역하고
극기복례로 돌아가는 것이 말을 듣는 것의 시작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새로운 경험되지 않은 사건을 판단하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본능과 무의식의 명령을 따른
잘못된 행동이므로 왜냐하면 상황을 맞닥뜨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일단 에너지 동원절차에 따라 곧 환경과의 관계에 따라
반드시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므로 자기행동을 부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것이며 예외는 없으며 첫 번째 행동은 무조건 틀렸으며
첫 번째 카드는 무조건 버려야 하며 첫 번째 잔은 고시레를 해야 하고
산대를 놓을 때도 첫 번째 산가지는 빼놓고 점을 치는데
천일은 버리고 지이로부터 판단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을 듣는다 하는 것은 자기 행동을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며
에너지원이 외부에 있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깨고
자체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관성의 법칙으로 올라서는 것입니다.
에너지 동원절차를 거치지 않은 모든 행동은 일단 틀린 행동입니다.
물론 우리는 학교에서 배워서 알기 때문에 이런 것을 몰라도 밥 먹고 살지만
경험한 적이 없는 낯선 상황에 혼자 내던져지면 판판이 다 깨집니다.
말을 듣는다 하는 것은 환경과 긴밀해진다는 것이며
일단은 모든 사람 말을 다 들어야 하는 것이며
이 사람 말과 저 사람 말이 충돌할 때는 또 매뉴얼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말을 듣고 다수의 공론을 따르고 민주주의 방법을 따르고
그것은 의사결정능력을 발달시켜 상황에 따라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근데 인간의 원래상태는 누구 말도 안 듣고 무조건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엄마 말을 들으면 공부기계가 되고 아빠 말을 들으면 가업을 세습하게 되고
친구 말을 들으면 범죄단에 가입하게 되고 무조건 나빠지는 거지요.
군대를 가보면 알게 되는데 말을 잘 들으면 그걸 계속 시킵니다.
일을 잘 하면 모든 일을 혼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단 말을 들어야 하며 시키는대로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나와야 합니다.
처음부터 말을 안 들으면 전면적인 사회의 붕괴로 가는 거지요.
에너지원이 외부에 있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깨고
자체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관성의 법칙으로 올라서는 것입니다.
에너지 동원절차를 거치지 않은 모든 행동은 일단 틀린 행동입니다."
이게 핵심이군요~
범죄자는 안되고 대학생은 된다.
범죄자는 미래가 없고 대학생은 미래가 있다.
범죄자는 안보면 그만이지만 대학생은 이후에도 계속 봐야 한다.
이렇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범죄자는 단순히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의 적으로 포지셔닝했기 때문에 범죄자인 것입니다.
물론 교통사고, 음주운전, 경제사범이나 간통범은 다르지만
상습적인 강도 절도 조폭은 굳은 결심을 하고 범죄의 길로 간 것입니다.
감사히 이해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