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한다는 것은 동치임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물의 동치와 사건의 동치는 다르다. 사물은 같은 것을 하나 더 가져오면 된다. 사과가 사과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사과를 하나 더 가져와서 비교하면 된다. 그런데 사건의 동치는 조금 복잡하다. 공간의 사물에서 동치를 확보하기는 쉽다. 시간의 사건에서 동치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시간이 걸린다. 존재의 근본은 사건이며 사건은 전부 연결되어 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다. 그 하나에 도달하면 증명된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계통이다. 족보다.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은 아버지를 데려와야 증명된다. 신분증 조회해보면 동치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이는 사물의 증명이고 사건의 증명은 다르다. 왕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아버지가 왕이어야 한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마지막 왕자라는 사람이 미국에 나타났다. 네가 왕자라는 증거를 대라. 형을 데려와서 형이 왕자니까 나도 왕자지. 이런 식으로 엉기면 피곤하다. 아버지를 데려오라니까? 아버지는 죽었다니깐. 증명이 안 된다. 그런데 아버지를 데려왔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아버지도 가짜일 수 있다. 할아버지까지 데려와야 한다. 보통은 괜찮다. 아버지가 왕이라는 사실을 증언할 목격자들이 있다. 그 목격자들이 할아버지다. 즉 어떤 것을 증명하려면 그 어떤 것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증언을 검증할 사람까지 포지션 3이 필요한 것이다. 삼단논법이다. A=B, B=C, 고로 A=C에서 A,B,C는 잊어버리고 =와 =의 =를 확인하려면 = 셋이 정립된다. 사과가 사과임을 증명하려면 사과나무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사과나무와 사과의 관계가 의심되므로 사과나무의 사과나무를 가져와야 한다. 계통수로 말하면 종을 증명하려면 과와 속을 들이대야 하는 것이다. 어떤 동물이 호랑이임을 증명하려면 포유강 식육목 고양이과 표범속 호랑이종에서 고양이과 표범속 호랑이종의 연속성을 보여야 한다. 개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둘을 놓고 판단하는게 아니라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놓고 판단한다. 두 사람을 놓고 판단하는게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부자냐 부부냐를 판단하는 것이므로 둘이 있으면 둘이 있는게 아니고 연결고리 1이 있다. 그 연결고리가 구조다. 구조로 보면 1이 확보된 것이다. 둘이 엮여서 대칭 1을 조직한다. 족보에 마디 한 개로 부자 1촌을 구성한다. A=B, B=C, 고로 A=C라고 하면 뭔가 3이 나왔지만 실제로 2가 나왔다. =가 둘 나온 것이다. 세번째 '고로 ='는 그 =에 대한 =이므로 층위가 다르다. 족보로 보면 부자관계를 표시하는 작대기가 둘이다. 부자는 1촌이고 할아버지까지 가야 2촌이다. 즉 증명은 어떤 둘의 동치를 확보하는 것이며 동치가 되려면 둘이 있어야 하고 둘을 이루려면 셋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방법을 쓰더라도 족보의 맨 꼭대기는 증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담의 아버지는 누구냐? 없다. 이 경우는 자손으로 증명한다. 닭이 닭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달걀을 낳는지 봐야 한다. 그런데 닭이 실수로 꿩알을 낳았을지도 모르므로 달걀의 달걀까지 3대를 수립해야 한다. 황우석이 뭔가를 만들었는데 꿩알이었다. 씨 없는 수박도 있고 노새도 있고 라이거도 있는 세상이다. 1대만 가지고는 동치를 확인할 수 없다. 현대의 수학과 논리학은 사물의 증명이지 사건의 증명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 연구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신은 사건의 출발점이므로 그 자체로 증명이 안 된다. 신의 신을 데려올 수 없다는 말이다. 신을 재판하는 법정에 신의 신을 초치할 수단이 없다. 구신장을 발부한다고 해서 순순히 인간법정에 출두해줄 신의 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신의 낳음으로 증명하는 것이며 신이 낳은 인간이 또 다른 무엇을 낳았을 때 3대가 확보되어야 동치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구조가 통제가능성 속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신이 인간을 통제하고 인간이 문명을 통제할 때 신의 존재는 증명이 된다. 통제가 안 된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신이 희미하다고 하면 되고 통제가 된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신이 명확하다고 말하면 된다. 신은 부정할 수 없으나 희미한지 명확한지는 사건에 달렸다. 큰 사건은 명확하고 작은 사건은 희미하다. 인간은 큰 사건에 가담하는 방법으로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 구석에서 틈새시장 열지 말고 큰 흐름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것을 증명한다는 것은 인간에 의해 지목되는 어떤 대상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고 계통을 증명하고 족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신의 증명은 역시 신과 피조물인 인간 그리고 인간의 피조물인 문명까지 3대가 계통을 이룬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이 AI를 만들고 AI가 또 무언가를 만들어 계속 간다. |
ㅡ데카르트
나는 사건을 일으켰다. 고로 존재한다.
ㅡ구조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