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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750 vote 0 2018.05.27 (18:28:05)

 

    약자가 잘해야 한다


     '여자가 잘해야 한다.'는 건 조회수용 제목이고 '약자가 잘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거다. 초반에는 리더가 잘해야 하지만 마지막 승부에서 화룡점정에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하는 것은 팀원 중에서 가장 약한 사람의 몫이다. 우리나라의 발달단계가 그 단계에 와 있다. 마지막 문턱을 넘으려 한다. 이제는 장애인도 잘하고 성소수자도 잘해야 한다.


    물방울 두 방울을 가까이 두면 붙어버린다. 이때 약한 쪽이 강한 쪽에 흡수된다. 조심해야 한다. 세상을 에너지로 이해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에너지는 합쳐져서 계를 이루는 성질이 있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닫힌계다. 약자와 강자가 어우러지면 문득 합쳐져 버린다. 둘을 가르는 경계가 무너져 버린다. 특히 권력이 작동하는 현장에서 그러하다.


    너무 좋은 부모를 만나면 마마보이가 된다. 너무 좋은 남자를 만나면 집에서 살림만 하게 된다. 너무 좋은 여자를 만나면 셔터맨이 된다. 좋은 것은 때때로 좋지 않다. 자생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서울은 좋은 도시다. 서울 출신 대통령은 없다. 서울대는 좋은 대학이다. 의원 중에 서울대 많고 청와대 참모 중에 서울대 많은데 대통령은 경희대다.


    에너지와 입자는 성질이 다르다. 우리는 입자로 보는 관점을 가졌다. 에너지로 봐야 한다. 모든 것이 에너지의 법칙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좋은 남자를 만나면 좋고 좋은 여자를 만나도 좋고 좋은 부모를 만나도 좋다. 그런데 특히 권력의 문제에 있어서는 미묘해진다. 좋기는 좋은데 마냥 좋지만은 않은 거다.


    잘했다 잘못했다 하는 말은 오해되기 쉽다. 특히 권력의 문제에 있어서 그러하다. 권력은 잘한 것이 잘못한 것이 되고 잘못한 것이 잘한 것이 된다. 남자가 잘하면 남자에게 유리한 사회가 된다. 여자가 잘해야 여자에게 유리한 사회가 된다. 여자가 잘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럼 여자가 잘못했다는 말이냐?' '여자 책임이라고?' 이렇게 오해될 거다.


    옳고 그름을 말하는게 아니라 권력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권력 메커니즘의 작동은 구조적으로 복잡하다. 이기면 지고 지면 이기는게 권력이다. 항상 그런건 아니다. 이겨야 할 때는 이겨야 한다. 그래서 골때린다. 초반에 져주다가 막판에 이겨야 한다. 먼저 미끼를 주고 다음 낚는다. 미끼를 준 만큼 손해지만 대물을 낚는다. 못 낚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률로 보면 낚을 확률이 높다. 투자와 같다. 먼저 손해 보고 나중 이익 본다. 물론 계속 손해 볼 수도 있는데 분산투자하면 전체적으로는 나중의 이익이 크다. 내막은 복잡하다. 여자가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이익이지만 본인에게만 이익이고 다른 여성들에게는 손해가 된다. 어떤 여자의 이익이 모든 여자의 이익으로 되지 않는다는 거다. 


    이 법칙이 남자 혹은 강자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육아권력과 가사권력을 얻는 대신 정치권력을 뺏기고 있는 여자의 현실이 그러하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반드시 약자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강자가 먼저 움직이면 약자는 강자에게 잡아먹힌다. 그러므로 강자가 제안하면 약자는 도망친다. 약자의 제안을 강자가 받아들이는 형태가 좋다.


    약자가 제안할 때까지 강자는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관계가 성사되었을 때 강자는 약자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놓으면 도로 물에 들어가 있다. 염전노예를 구해놓으면 다시 염전에 가 있다. 염전노예를 구하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한다. 이는 물리적 현실이므로 어쩔 수 없는 거다. 


    어떤 경우에도 강자가 약자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면 안 된다. 불신은 대등한 관계거나 아니면 약자가 강자를 불신하는 것이지 강자가 약자를 불신한다는 말은 언어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를 해칠 수 없는게 약자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아기를 불신한다거나 혹은 신체가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을 불신한다는 식은 언어가 불성립이다.


    교사가 학생을 불신한다면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니 교사자격이 없다. 부모가 자녀를 불신한다면 역시 부모자격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윗사람 입장에서는 아랫사람이 못 미덥겠지만 그것을 해결하는게 본인의 능력이다. 상사가 부하직원을 불신한다면 자신의 통솔력이 부족하다는 고백이 된다. 그게 하지마라는 자기소개가 된다. 


    물론 강자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관계는 상하관계가 된다. 그러나 남녀가 데이트를 한다면 상하관계가 아니라 평등관계다. 북한과 미국의 회담도 상하관계가 아니어야 한다. 여야의 대결도 상하관계가 아니다. 민주당이 먼저 평화당에게 협력을 제안한다면? 그 경우 평화당이 친민주파와 반민주파로 갈라져 자멸한다. 


    평화당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평화당이 스스로 무장해제할 때까지 민주당은 기다려야 한다. 남녀문제도 같다. 많은 경우 여자가 먼저 프로포즈를 해야 한다. 상대가 좋은 남자일수록 그러하다. 시위를 하든 뭐를 하든 여자가 움직여야 양성평등이 된다. 여자가 가만있고 남자가 알아서 배려하면 여자 기분은 좋겠지만 문제는 더 악화된다.


    남자가 배려한다는건 오히려 남성우월주의다.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다가 철이 들어서 훌륭해지고 여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더 많은 역할을 가지고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쪽이 이긴다. 남자에게 책임을 돌리면 남자가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되고 이게 반복되면 남자가 강해진다. 요즘 한국남자들이 찌질해지고 있다면 여자들에게 기회다.


    한국남자를 더 찌질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남충이니 하며 비판하여 남자들을 각성시키면 여자에게 불리하다. 남자 페미니스트는 여자에게 해로운 존재일 수 있다.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인에게 친절하다면 좋지 않다. 일본인들은 당연히 악질이어야 한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다. 여자에게 좋은 페미니스트 남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위태롭다.


    세상은 옳은가 그른가보다 누가 더 많이 움직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어떻게든 남자를 많이 움직이게 하면 여자에게 불리하다. 강자와 약자가 대립할 때 제 3자는 강자를 비판하는게 맞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 남자를 비판하는게 맞다. 그러나 이 구도가 고착화되면 강자는 계속 강자 위치에 머무르고 약자는 계속 약자의 위치에 머무른다.


    남자를 비판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하고 그걸로 끝내게 된다. 남자를 욕하다가 분이 풀려버려서 에너지가 다운된다. 다음 미즈넷에 올라오는 사연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고 그냥 신세한탄을 하고 풀어버리려는게 아닌가 싶다. 불행해질 것을 각오하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 무조건 공간적인 활동폭이 넓어야 한다는 말이다.


    외부와 연결되는 촉수를 많이 가져야 한다. 아니 그래도 제대로 된 해결은 안 된다. 개인이 어떻게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여자가 변해도 안 되고 남자가 변해도 안 된다. 사회가 변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일류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로 밥 먹는 경제가 되고 문화로 밥 먹는 경제가 되어야 여자에게 보다 유리한 사회가 된다.


    남자를 계몽해서 여자가 이득 볼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사회가 변했는데 남자가 모르고 있다면 그것을 깨우쳐 줄 수는 있다. 이미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었고 문화로 밥먹는 사회가 되었는데 남자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알려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후진국이고 굴뚝산업으로 밥먹는데 남자를 계몽한다고 여자에게 좋을 일은 없다.


    물론 그래도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제한적인 성과에 그친다. 깨달아야 한다. 재벌을 비판하면 재벌이 각성하고 착해져서 계속 재벌위치에 머물러 있게 된다. 재벌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재벌의 각성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중견기업이 치고 올라와서 재벌 위치를 빼앗아야 진정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착한 재벌은 없어야 한다.


    재벌이 기부도 많이 하고 자선도 많이 하고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는 좋은 그림은 환상이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쳐들어가서 전복을 일으켜야지 중심이 스스로 겸손을 발휘하여 변방을 배려하면 구조가 고착화되어 총체적으로 망한다. 그 경우 재벌도 망하고 중소기업도 망하고 다 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자를 자극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약자가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잘못은 아닌데 잘못된 상황 속에 빠져 있다. 수렁에 빠진게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 수렁이 잘못된 것이다. 약자는 대부분 악순환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며 외부에서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한계가 있고 최후의 순간에는 제힘으로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남의 힘으로 함정을 탈출한 사람은 또 함정에 빠진다. 약자가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곳이 수렁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말이다. 약자가 먼저 프로포즈해야 한다. 강자가 프로포즈하면 얼마 후에 강자가 싫증 내고 떠난다. 약자가 프로포즈를 하면 약자가 싫증 내고 떠날 수 없다. 싫증 내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약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의 속성 문제다. 남자가 잘했거나 혹은 잘못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주도권이 어느 일방에 속해 있으며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듯이 부부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딜레마다. 이 글을 읽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게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임을 안다면 사람탓 대신 권력탓을 한다면 스트레스 덜 받는다는 말이다.
    

    계몽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라 계몽이 젊은이에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젊은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지금부터 20년 후가 되고 그때는 우리나라가 더 선진국이 되어있을 테고 선진국이 되면 중국에 일자리를 다 뺏기고 문화로 밥 먹어야 하는데 문화로 밥 먹는 사회는 약자가 힘을 쓰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까다로워지면 공간의 활동폭이 넓은 사람보다 시간의 조정이 섬세한 차분한 사람이 유리하다. 초반에는 공간을 넓히는 사람이 먹지만 막판에는 시간을 재는 사람이 먹는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공간은 입자와 힘의 단계이고 시간은 운동과 량의 단계다. 사건이 무르익어야 하고 사회가 진보해야 하고 경제가 더 발달해야 약자에게 기회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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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고향은

2018.05.28 (12:22:24)

보편적으로 권력을 가지게 되면
말. 들으려 않는다 하던대로 한다
순진한 낭만주의가 아닌 현장의 법칙은 말한다

권리를 나눠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약자의 치명적인 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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