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소개 해도좋다. '자기소개 하지 마라.' 구조론의 첫 번째 가르침이다. 이 말을 오해해서 진짜 자기소개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더라마는 그런 뜻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지 않는가? 과학적 판단에 사사로운 자기 경험을 개입시키지 말라는 말이다. 철학의 물음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다. 맨 앞에 있는 '내'가 문제가 된다. '나'라고 선언하고 말뚝을 딱 박아버리므로 답이 없다. 나를 제거해야 한다. 말뚝을 뽑아야 한다. 나는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단백질과 회분과 수분이 나를 구성한다고? 아니다. 몸뚱이는 내가 아니다. 육신의 하드웨어는 내가 아니고 정신의 소프트웨어가 나다. 마음이 나고 영혼이 나다. 영혼은 사실 없으므로 정확히 말하면 나의 의사결정권이 나다. 그렇다. 나는 사건이다. 그런데 사건이라는 것은 원래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은 따로 독립해 있지만 사건은 독립되어 있는게 아니고 완전해 있다. 사실은 사물도 독립해 있지 않다. 외부 관측자의 눈에 그렇게 보여질 뿐 고립계 안의 존재는 없다. 에너지로 연결된다. 사건은 독립성이 아니라 완전성을 따라가며 완전성은 개별적 존재에 없다. 에너지의 순환에 완전성이 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사물에는 에너지가 없다. 에너지는 작용반작용의 모순에 의해 작동하므로 반드시 외부에서 주어진다. 황금의 가치는 그 물체 안에 내재되어 고유한 것이 아니다. 시장 안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상대적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강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황하와 한강은 황해에서 만난다. 지구 안의 모든 것은 만유인력에 의해 에너지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나는 얼마간 너와 겹쳐 있다. 딱 분리되지 않는다. 육체는 분리되나 마음은 분리되지 않는다. 영혼은 분리되지 않는다. 사건은 분리되지 않는다. 나는 하나의 사건이며 사건은 전체와 부분으로 연결되고 본류와 지류로 널리 이어진다. 천하라는 사건 안에 내가 있고 진보라는 사건 안에 내가 있고 생명이라는 커다란 사건 안에 내가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사건은 계속 안으로 들어간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들어간다. 나는 천하라는 사건 안에서 내 몫으로 임무 부여된 의사결정권이다. 특정조건에서 나는 격발되는 것이다. 무대에 올려졌을 때 나가 있다. 찬스가 돌아왔을 때 나가 있다. 극적인 나의 존재감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천하를 대표한다. 나는 전체에서 왔으므로 전체로 돌아간다. 나는 사건을 전달받아 타인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사건 전체 개념이 대두된다. 그래서 신이다. 전체로부터 대표성이 위임되므로 기적이다. 전체와 연결되어야 임무를 위임받을 수 있다. 그래서 기도다. 사건을 부정하고 사물로 보면 인생은 허무한 것이고 의미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내 안에서 나를 찾으면 내가 없지만 천하에서 나를 찾으면 내가 있다. 먼저 천하를 찾아야 한다. 인생의 의미도 있고 목적도 있고 이유도 있다. 결정적으로 에너지가 있다. 답이 있다. 그 에너지를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 안에 없고 천하에 있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끌어오는게 인생의 정답이다. 그러려면 진보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 보수는 원래 에너지가 없다. 있어도 조금 있다. 그것은 훔쳐온 것이므로 임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관성의 법칙과 작용반작용 법칙은 에너지를 조달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관성의 법칙은 위치에너지를 조달하고 작용반작용 법칙은 운동에너지를 조달한다. 관성의 법칙은 절대성이고 작용반작용 법칙은 상대성이다. 관성의 법칙은 진보이고 작용반작용 법칙은 보수다. 관성은 공자고 작용반작용은 노자다. 관성은 긍정이요 작용반작용은 부정이다. 긍정보다 부정이 더 쉽게 에너지를 조달하지만 작용측에 권한이 있으므로 그것은 노예가 주인을 속여먹는 기쁨이라 가짜다. 권력구조 안에서 그것은 기능하는 것이며 사건은 반드시 작용측과 수용측이 있으며 에너지 작용측에 권력이 있다. 줄 때보다 받을 때 더 기분이 좋지만 그게 당하는 거다. 사장이 되어 월급을 주고 싶은가 아니면 부하가 되어 월급을 받고 싶은가? 받는데 맛들이면 노예된다. 노예가 100원을 삥땅하고 즐거워할 때 주인은 빨대 꽂아놓고 천억씩 해 먹는다. 내 몸에서 찾아지는 것은 모두 작용반작용이니 가짜다. 내 몸은 외부로부터 받는다. 내 몸은 눈으로 빛을 받고 코로 냄새를 받고 입으로 맛을 받고 귀로 소리를 받는다. 받는데 길들여지면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된다. 노예가 된다. 여러분은 주는 사람이 되어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 진짜 기쁨은 주는데 있다. 자식의 받는 재미보다 어미의 주는 재미가 낫다. 부하의 받는 재미보다 사장의 주는 재미가 더 낫다. 내 안에서 찾아지는 것은 모두 가짜다. 수행을 한다는 둥 도덕을 닦는다는 둥 하며 내 안에서 어떻게 해봤자 그림자 붙잡고 씨름하기다. 내 안의 눈코입귀몸은 모두 받는 기관이라 가짜다. 통제권을 행사할 에너지가 없다. 조금 있지만 곧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어린이는 상대성의 세계에 살고 작용반작용의 세계에 산다. 어린이는 NO를 구사할 때마다 용돈을 받지만 회사에서 그러다가는 바로 짤린다. 노자 생각은 어린이의 치기 어린 생각이며 당신은 어른이 아니므로 노자가 솔깃하겠지만 치열한 현실사회에 뛰어들면 그런 어리광은 먹히지 않는다. YES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 자기 생각을 말하면 죽는다. 중간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측근을 줄줄이 해고하고 볼턴과 폼페이어 같은 예스맨만 남겨둔 사실이 그러하다. 트럼프 생각을 대변해야 살아남는다. 진짜 세계는 YES의 세계이며 긍정의 세계이며 에너지가 있는 세계이며 관성의 세계이며 상부구조를 끼고 가는 세계이며 천하에서 답을 찾는 세계이다. 어린이 소꿉놀이 언제까지 할 텐가? 철학을 가져야 한다.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 에너지의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YES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조심해야 한다. 인생에 YES 할 기회는 많지 않다. 잘못 YES 하였다가 결혼되어 있기 십상이다. 할 때는 해야 한다. 결혼도 해야 하고 진보에도 들어야 하고 신과 한 편을 먹어야 한다. 그곳에 에너지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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