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우리는 수학을 알고 있다. 수학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우리의 문명사회가 수학적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할 수 있다. 조선왕조의 선비들도 대수학은 알았는데 기하학을 몰랐다. 그래서 불안했다. 온갖 알 수 없는 천재지변과 괴력난신들 사이에서 방황하였다. 현대인들은 대수도 알고 기하도 아는데 구조를 모른다. 대수 위에 기하 있고 기하 위에 구조 있다. 인류가 수학을 안다지만 대수와 기하를 알아도 구조를 모른다면 다 아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들 역시 무수한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 불안해 하고 있다. 기하는 사물의 형태를 해명하고 대수는 그것을 계량한다. 형태 있는 사물 앞에서 수학자는 태연하지만 사건은 형태가 없다. 형태 없는 사건 앞에서 인류는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과학의 시대에 여전히 종교가 권력의 절반을 나눠가진 현실이 그러한 학문의 한계를 반영한다. 구조는 최초 에너지에서 형태가 유도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형태를 보고 사물을 분별하지만 형태는 그냥 있는게 아니고 미시세계에서 양자역학적 절차를 거쳐 유도된다. 사건 안에서 공간의 대칭과 시간의 호응을 거쳐 유도된다. 거시세계에서는 정치의 형태나 경제의 형태나 예술의 형태나 유행의 형태가 역시 그러하다. 구조론이 수학의 마지막 빈칸을 메워 그것을 완성한다. 세상은 사건의 연결로 되어 있지만 인간의 눈에는 사물의 집합으로 보인다. 눈은 공간의 정지해 있는 것을 포착할 뿐이다. 시간의 변화를 포착하는 눈을 떠야 한다. 관계를 추적하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눈으로 이것과 저것을 보지만 진정으로 봐야 할 것은 둘 사이에서의 관계다. 이것이 이렇게 되면 저것은 저렇게 된다. 둘이 대칭과 호응의 관계로 엮여서 외력의 작용에 대해 하나로 행세할 때 보다 효율적이며 에너지는 언제라도 효율성을 따라간다. 세상은 구조의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하며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의 잉여이며 자연에서 에너지의 잉여를 도출하는 것은 구조의 효율성이며 효율성은 외부에 대해 힘의 우위에 서는 것이다. 그것이 사건이다. 사건은 일정한 조건에서 에너지 방향이 확산에서 수렴으로 바뀌어 닫힌계를 형성하며 내부에 축과 대칭의 구조를 갖추어 외력에 대해 보다 효율적인 형태로 맞서 외력의 작용을 처리하며 그 과정을 거쳐 구조는 해체된다. 큰 파장이 일정한 조건에서 내부에 대칭을 갖춘 짧은 파장으로 바뀌어 일을 진행한다. 외력을 처리하고 다시 큰 파장으로 돌아가며 에너지를 잃고 계가 해체된다. 그 에너지 순환과정이 사건이다. 특정한 구조는 일정한 조건에서 일을 마치고도 형태가 붕괴되지 않고 일을 반복한다. 지속적으로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외력을 처리하고 형태를 유지한다. 외력의 작용에 맞대응 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형태다. 우리가 어떤 형태를 봤다면 그것은 빛으로 외부에서 작용했을 때 그 대상이 이를 처리해냈다는 뜻이다. 즉 일을 한 것이다. 우리는 외부에서 빛으로 작용하여 되돌아온 정보를 통해 인식한 형태를 기하로 해명하고 대수로 계량하여 지식을 도출한다. 최초 에너지 상태에서 그러한 자연의 형태가 유도되는 과정은 구조가 해명한다. 일찍이 구조를 해명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필자가 처음으로 구조를 해명하기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는 밝혀낸 지식에 기대어 세상을 이겨내고 살아갈 수 있다. 과학은 지식에 앞서고 수학은 과학에 앞서고 그 수학 안에서도 기하는 대수에 앞서고 다시 구조는 기하에 앞선다. 구조가 모든 것에 앞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은 사건의 최초 원인에 대응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자연의 사물을 관측하여 지식을 획득하지만 관측되는 것은 대개 형태가 있는 것이고 그것은 이미 사건이 상당히 진행한 뒤다. 뭔가 봤다면 사건이 이미 끝났다는 의미다. 태어난 아기를 봤다면 둘 사이에 연애가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연애사건은 이미 끝난 뒤다.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는데 뒷북을 치게 된다. 입소문에 의한 영화의 흥행이나 시장원리에 의한 가격의 변동이나 정치판에서 민심의 변화는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이며 그 진행과정은 좀처럼 알 수 없다. 대부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내막을 알 수 없다. 끝나봐야 안다. 트럼프의 당선은 돌발적이고 평론가들은 뒷북을 친다. 구소련의 붕괴 때도 전문가들은 뒷북을 쳤고 동서독의 통일 때도 전문가들은 뒷북을 쳤고 김정은의 변화에도 전문가들은 뒷북을 쳤다. 그들은 늘 뒷북을 친다. 현재 진행중인 사건을 해명하는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고 가격이 결정되고 흥행이 판가름 난 후에 우리는 기하와 대수로 해명을 시도하지만 이미 늦었다. 대응할 수 없다. 시장의 가격이 변하기 전에, 정치판 민심이 이반하기 전에, 극장의 흥행세가 꺾이기 전에 선제대응하려면 구조를 알아야 한다. 구조를 안다는 것은 사건의 다음 단계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은 닫힌계를 형성하여 다섯 번에 걸쳐 대칭과 호응을 조직하고 붕괴시킨다. 따라서 개입하여 조절할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은 다섯 개의 매개변수를 가지며 그 매개변수들을 조정하여 사건을 통제할 수 있다. 사건을 지연시킬 수도 있고, 사건을 확대시킬 수도 있고, 사건에 맞불을 지를 수도 있고, 사건을 처리할 수도 있다. 우리는 기하와 대수로 대응하지만 이는 농부가 가을에 수확하는 것과 같아서 다 끝난 일의 결과를 수집할 뿐이다. 현재 진행중이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는 대응할 수 없다. 하나의 사건은 원인에서 결과까지 진행하면서 다섯 단계를 거치며 각 단계에서 각운동량 보존에 따라 큰 파장과 짧은 파장을 교환한다. 김연아 선수의 도약과 회전 사이에 일정한 비례의 규칙이 있다. 교환조건에 더하거나 빼서 다음 단계의 진행을 결정할 수 있다. 수학자도 힘과 운동의 관계나 운동과 량의 관계를 알고 있지만 질에서 출발하여 입자와 힘과 운동을 거쳐 량까지 가는 사건의 전모를 알지는 못한다. 최초 에너지 유도단계에서 최후 에너지 이탈단계까지 통째로 알려면 구조론을 배워야 한다. 구조는 현재 진행중인 사건의 모든 국면에서의 대응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이 각별하다. 구조를 안다는 것은 사건의 보다 앞선단계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사건의 하부구조가 아닌 상부구조에 대응한다는 것이며 사건의 결과가 아닌 원인에 대응한다는 것이며 드러난 사물의 형태가 아닌 감추어진 이면의 에너지를 제어한다는 거다. 이는 근본적인 사유의 혁신이 된다. 그렇다면 다 바꿔야 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다. 지금껏 인류는 사건의 겉을 보았을 뿐 속을 보지 못했다. 사물은 속을 쪼개볼 수 있지만 사건은 닫힌계를 형성하므로 쪼개지 못한다. 사건의 보다 높은 세계에 대응하며 보다 깊숙히 개입하고 보다 장기전을 하는 것이 구조론이다. 상대가 한 수를 내다볼 때 두 수, 세 수, 네 수, 다섯 수를 내다 본다. 그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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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 없는 사건' 앞에서 인류는 무너지고 만다. => 형태 없는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