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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461 vote 0 2003.01.05 (16:56:07)

[다양한 목소리를 겁내지 말자!]
앙마는 개인이고 범대위는 조직이다. 개인에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조직에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앙마를 포용하지 못한 범대위에겐 분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범대위에 큰 잘못이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굳이 지적한다면 앙마를 이기려고 한 그 자체가 잘못이다. 굳이 따지자면 범대위의 잘못이 아니라 앙마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잘못이다.

조직 내부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경우 조직은 조직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선 까지 뒤로 물러서야 한다. 좋은 조직과 나쁜 조직이 있다.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조직의 활력소로 이용하는 조직은 좋은 조직이고 다양한 의견을 억누르려고 하다가 분열을 일으키는 조직은 나쁜 조직이다. 무슨 일이건 최후의 보루여야 할 조직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좋지 않다.

[네티즌은 노무현의 왼쪽에 서자!]
토요일 집회가 실패한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노무현의 발언에도 원인이 있고, 영하 10도를 넘는 날씨에도 원인이 있고, 범대위의 잘못된 행사 진행방법에도 원인이 있다. 노무현이 부시와 회담할 5월까지 날자는 많이 남았는데 비해 그간 촛불시위를 충분히 했기 때문에 그때 가서 다시 하기로 하고 일단은 이 정도면 되었다는 인식이 퍼진데도 원인이 있다.

노무현이 중도적 입장에서 촛불시위에 한 마디 하는건 당연하다. 그는 현실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이 시위를 하지마라고 했다고 해서 네티즌이 시위를 안한다는건 웃기는 일이다.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촛불시위가 한풀 꺾였다 싶은 시점에서 노무현이 한마디 한 것이다. 그것이 정치가의 기술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무현이 발언해서 촛불시위 열기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거꾸로 촛불시위의 열기가 한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노무현이 한마디 찔러주는 센스를 발휘한 것이다. 네티즌과 노무현의 관계는 역할분담으로 가야한다. 네티즌은 열심히 촛불시위를 하고 노무현은 열심히 촛불시위를 말리는 척 하는 것이 옳다. 이게 정치다.

미국이 뭐라고 지랄하면 노무현은 넷티즌들이 시위를 하므로 어쩔 수 없다고 네티즌 탓을 하면 되고, 노무현이 미국과의 협상에 밀리면 네티즌은 노무현이 말려도 듣지 않고 강경하게 시위를 해서 노무현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식으로 되어야 한다. 운영의 묘다.

어떤 경우에도 노무현과 네티즌의 의견과 노선이 딱 일치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네티즌은 의도적으로 한걸음 노무현의 왼쪽에 서줄 필요가 있다. 노무현이 중도적인 입장에서 강경한 네티즌을 말리는 입장에 서야, 일부 네티즌은 노무현을 욕하더라도 국가 전체적으로는 노무현의 위상이 올라간다. 또한 이게 정치다.

[촛불시위의 본질은 반미다]
반전, 평화냐 아니면 반미, 주한미군철수냐를 두고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촛불시위의 본질은 반미다. 반미의 본질은 주한미군 철수다.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 주한미군이 철수할 때 까지 형태를 바꾸어가며 이 싸움은 계속된다.

시위현장에서 주한미군철수를 굳이 외칠 필요는 없다. 말 안해도 그 시위현장에 있는 사람은 다 눈치를 챈다. 이 부분은 전술적 유연성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범대위가 유연하게 사고할 필요가 있다. 촛불시위는 이제 막 문제를 제기하는 단계이지 최종적으로 성과를 얻어내는 단계가 아니다. 이 운동이 성과를 내려면 10년이 걸릴수도 있고 30년이 걸릴수도 있다.

초기 단계에서 성급하게 반미를 기준으로 행동통일을 요구해서 안된다. 초기 단계에서는 시민적 상식을 기초로 해서 저변을 넓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적 목표는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 다음에 북미간의 평화협정이 있고 남북간의 군비축소가 있고 남북통일이 있고 그 뒤에 미군철수가 있는 것이다.

미군철수가 주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미군의 주둔이 궁극적으로는 대만을 공격할 위험이 있는 중국을 타겟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포위작전의 일환으로 미국의 필요에 의해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본질이 폭로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미군이 주둔하는 이유의 100퍼센트는 아니다.

미군이 철수하면 중국이 대만을 때리고 동북아의 질서가 깨지는 것이다. 이걸 소설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원래 전쟁위험은 전부 소설이다. 북한이 미국의 선제핵공격을 겁내는 것도 소설이고 금강산댐이 터진다는 전두환의 주장도 소설이고 북한이 핵개발을 한다는 미국언론의 헛소문도 소설이다. 모두가 소설을 써대고 있고 그 소설이 힘을 발휘하는게 전쟁위협이다.

[범대위는 네티즌을 믿어야 한다]
범대위의 행사 진행방법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무대를 만들고 연예인을 불러서 쇼를 하는건 촛불시위의 본질과 맞지 않다. 범대위는 초상집에 가서도 풍물 잡히고 농악 울리고 가수가 노래하는가? 사람이 죽었는데, 그래서 촛불을 들고 추모를 하자는데, 그 경건한 분위기에 찬물 끼얹을 일 있나? 이건 분위기파악을 못한 것이다.

고함지르고, 화를 내고, 구호를 외치는 것은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 손에 손에 촛불을 든 이유는 고함지르지 말고, 화내지 말고, 구호 외치지 말고, 깃발 흔들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이다. 두 손에 촛불을 들었기 때문에 깃발을 들고자 해도 들 수 없는 것이다. 두 손에 촛불을 들었기 때문에 북을 칠 수도 없고 꽹까리를 칠 수도 없는 것이다. 두 손에 촛불을 들었기 때문에 행여나 촛불이 꺼질세라 구호를 외칠 수도 없는 것이다.

촛불은 약하디 약한 존재이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그 촛불은 꺼지고 마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도 꺼지고, 소리를 질러도 꺼지고, 깃발을 흔들어도 꺼지고, 가수가 노래해도 꺼진다. 움직이지 말라. 촛불을 꺼뜨리고 싶지 않거든 깃발 흔들지 말라. 범대위의 맹성이 있기 바란다.

[날 풀리면 네티즌은 다시 폭발한다]
오늘은 춥다. 이 추운 날씨에 광화문을 지켜준 범대위와 앙마의 노고에 감사를 전한다. 날씨가 풀리고 부시와 노무현의 회담일이 가까와지면 다시 촛불은 광화문을 메울 것이다. 이 열기 오래간다. 네티즌은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지는 냄비가 아니다. 네티즌을 그렇게도 믿지 못하겠는가? 부디 네티즌을 믿어달라. 네티즌은 아주 질기다. 숫자는 적어도 좋다. 흐름만 이어가고 맥만 이어가면 언젠가 다시 폭발한다. 그러니 네티즌을 믿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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