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간단하다. 중간은 없다. 이게 전부다. 필자의 예견은 일관되게 중간을 배제하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 싶으면 그냥 중간을 배제하면 된다. 높은 적중률로 맞는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이것에서 저것으로 확 넘어간다. 계단을 오르듯 조금씩 넘어가는게 아니라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순식간에 넘어간다. 바람의 방향을 읽어야 한다. 코어가 있다. 코어를 중심으로 대체재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반면 대체재가 없으면 비실비실 하면서도 절대로 안 넘어간다. 과연 넘어가는 지는 에너지로 보고 기세로 봐야 한다. 액면으로는 큰 스코어 차로 지고 있더라도 지지자들의 결집도가 높으면 그곳에 기세가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넘어간다. 그러므로 정치에 중간은 없다. 중도파는 설자리가 없다. 그러나 중간은 있다. 중간은 50 대 50이고 천칭저울의 균형이며 이때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으로 천하를 움직일 수 있다. 구조론은 중간을 배제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중간이라야 하는 것이다. 중간세력을 조져야 한다는게 구조론이다. 동시에 중간세력을 키워야 한다는게 구조론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 하고 힐난하는 돌대가리들이 있겠지만 솔직히 이 정도는 이해할 머리가 되어줘야 한다. 정치가 급변에서 급변으로 이어가는 것은 중간에 있을 때 부족한 2퍼센트를 채워주고 다먹겠다는 김종인, 김종필 얌체들 때문이다. ‘김대중 후보님 2퍼센트 부족하지요? 내가 채워줄게요. 대가는 백퍼센트에요’. 김종필 이 흉악한 도적은 부족한 2퍼센트 채워주고 노른자위로 50퍼센트 이상 먹었다. 따따블로 남는 장사다. 김종인도 마찬가지다. 흉악한 도적이다. 이들이 중간에서 재미를 보자 흉내를 내겠다며 김한길에 박지원이 애를 먹였다. 간이나 보고 팔짱 끼고 뒷짐 지고 눈치나 본다. 자 50 대 50이 되어라. 팽팽해지면 마지막에 내가 구원투수로 나설께 하며 20년째 그러고 있다가 똥된 양반이 손학규다. 이런 쓰레기들의 방해공작을 차단하는 문제 때문에 절대 중간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중간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정치는 중도에 있으면 반드시 망한다. 중도로 가지 않아도 망한다. 그러므로 정치의 정답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치우쳐 있으면서 그곳에서 강력한 코어를 형성한 다음 중도로 나오는 것이다. 처음부터 중도로 나오면 이들 중간세력들이 옆에서 비벼대므로 망한다. 중도정치 표방해서 성공한 사람 한국에 없다. 계속 왼쪽이나 오른쪽에 치우쳐 있어도 소수파로 몰려서 망한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당선후에 중도로 나왔지만 이명박과 박근혜는 선거유세 때만 중도로 나왔고 당선되자 극우로 달려갔다. 재벌과 조중동과 비리사학과 교회세력과 기득권세력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중간세력이 발호하여 나라는 엉망이 되었다. 너무 극단에 치우치면 소수파로 몰려서 말라죽는다. 7 대 3 정도의 위치에 있다가 당선된 후에는 5 대 5까지 나와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은 당선 후에 중도로 나와서 좌파를 단속했다. 유권자는 이명박과 박근혜 역시 당선 후에 중도로 나와서 우파를 단속하기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블랙리스트나 만들었다.
자기 세력에게 아부한 것이다. 이래서는 조직의 기강에 서지 않는다. 명령계통이 죽어버린다. 정치는 에너지를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으로 교체된다. 중간세력은 기득권이 되어 시스템의 교체를 방해한다. 그들을 통제해 보여야 한다. 중간세력을 교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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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긴장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다
중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