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지 않는다]
한바탕 큰 싸움이 끝났다. 전투는 끝났지만 징집된 병사들은 아직 해산하지 않고 커다란 에너지의 덩어리를 형성한 채 웅크리고 있다. 자중지란의 위험도 있다. 이럴때일수록 원점으로 돌아가서 역사와 문명의 관점에서 큰 흐름을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정치는 진보와 보수라는 두 날개로 난다. 천만에!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역사라는 긴 호흡으로 볼 때 문명이라는 기관차는 오직 하나의 엔진을 가질 뿐이다.
그것은 진보라는 이름의 엔진이다. 역사는 늘 진보해 왔다. 퇴보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더 큰 진보를 위한 움츠림이거나 소소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정치에서 기본적인 원리를 두어가지 법칙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진보와 보수의 대결에서는 항상 진보가 승리한다.
2. 승자는 반드시 보수화되고 패자는 진보 쪽으로 옮겨가거나 소멸하고, 새로운 진보로 대체된다.
진보와 보수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라를 이끌어가는게 아니라 늘 진보가 승리하고, 승리한 진보는 스스로 점점 보수화 되며, 새로운 진보가 나타나 이를 대신하는 식이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기로 하자. (여기서 진보와 보수를 흔히 말하는 당파성의 개념으로 보아서 안된다. 마르크스의 헛소리는 일단 잊어버리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유의미하다.)
[민주주의의 실험장이 된 200년 미국사]
원래 미국의 진보세력은 공화당이었고 보수세력은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뒤집혀져 있다. 민주당이 진보적이고 공화당이 보수적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반대이다. 원래부터 민주당이 진보적이었는데 중간에 보수로 변했다가 다시 진보로 돌아왔다. 아니 한번 더 뒤집어야 한다. 200년전 독립 당시부터 민주당은 고립주의를 표방하여 보수노선을 걸었다.
이렇게 말하면 헛갈릴 것이다. 물론 중간에 당명이 여러번 바뀌었고 무수한 이합집산을 거쳤기 때문에 정확한 논리는 아니다. 그러나 대강의 큰 흐름으로 본다면 미국정치는 연방파와 주정부파 두 개 노선의 대결이다.
문제는 어떤 시점에서는 연방파가 진보의 편이었고, 다른 시점에는 그 반대였다는 사실이다. 즉 진보와 보수가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한 것이 아니라, 연방파가 진보일 때는 연방파가 집권하였고 연방파가 보수화되었을 때는 야당에 권력을 빼앗겼고, 결과적으로 큰 흐름에서는 늘 늘 진보가 권력을 독식했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늘 진보에게로만 간다. 이거 알아야 한다. 밑줄 쫙이다.
■독립초기
그 시대의 중심적인 이슈 - 연방중심 합중국의 건국여부?
집권 공화당(진보) - 당시 당명은 연방당
야당 민주당(보수) - 당시 당명은 공화당
■제퍼슨시대
그 시대의 중심적인 이슈 - 기본적 인권의 보장여부
집권 민주당(진보)
야당 공화당(보수)
■링컨시대
그 시대의 중심적인 이슈 - 노예해방, 연방중심주의의 부활.
집권 공화당(진보)
야당 민주당(보수)
■루즈벨트시대
그 시대의 중심적인 이슈 - 사회보장, 케인즈 경제학의 적용여부.
집권 민주당(진보)
야당 공화당(보수)
언뜻 민주당과 공화당이 교대로 집권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수십년간 민주당이 독재를 휘두르고 야당은 지리멸렬 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 반대의 시기도 있었다.
항상 그 시대의 중심적인 이슈가 있다. 그 중심적인 이슈를 선점한 정당이 수십년씩 독재를 휘둘르고 그동안 야당은 만년야당 신세였던 것이다. 그 중심적인 이슈를 선점한 정당은 늘 진보였다.
정권이 바뀌는 것은 진보와 보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는 그대로 두고 정당이 노선을 바꾸는 형태였다. 즉 패배한 정당이 진보적인 방향으로 자기당의 정책을 바꾸므로서 집권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승리한 정당은 기득권유지에 급급하다가 점점 보수화되어 패배하게 된다.
이같은 흐름은 사회주의가 확산된 20세기에 와서 불분명해져버렸다. 최근의 흐름은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이고 공화당이 더 보수적이다. 과연 그럴까? 사회주의 시각에서 보면 그러하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예컨데 클린턴의 슈퍼301조가 보수냐 진보냐는 잘못 판단하기 십상이다. 슈퍼301조는 먼로 독트린 이후 전통적인 민주당의 고립주의 노선에 입각하고 있다. 즉 진보적인 노선인 것이다. 슈퍼301조가 왠 진보냐고?
우리나라의 농업보호와 문화시장 개방거부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다. 슈퍼301조는 미국이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든 것이다. 즉 미국 입장에서 진보적이다. 그러나 우리 시각에서 보면 강대국의 파쇼적인 억압이다.
이렇듯 보는 관점에 따라 진보로 보이기도 하고 보수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큰 흐름에서 보면 늘 진보가 이겨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정치를 움직여온 두 개의 큰 축이 있다. 하나는 연방과 도시, 북부 상공업 중심의 공화당노선이고, 다른 하나는 남부, 농촌, 지방정부 중심의 고립주의 노선으로 민주당노선이다. 두 개의 노선 중 어느 쪽이 진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역사의 발전단계에 따라 연방중심노선이 진보가 되기도 하고 보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연방중심 노선이 진보 쪽에 섰을 때에 한하여 장기집권을 하였다.
연방반대와 고립주의로 대표되는 민주당노선의 뿌리는 토마스 제퍼슨이 만든 것이다. 제퍼슨의 이상은 기본적 인권의 강조라 할만하다. 당연히 진보적인 노선이 된다. 이후 미국은 한동안 진보적인 민주당(당시의 당명은 공화당)이 장악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제퍼슨은 흑인 노예 40여명을 거느린 악질 지주이다. 즉 당시의 역사적 흐름에서 진보적일 뿐, 오늘날의 잣대로 보면 제퍼슨은 완고한 극우주의자 시골 샌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선술집당과 교회당 그리고 학교당]
정리하면 미국은 공화당의 연방노선과 민주당의 지방노선이 있으며 이 노선들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데, 역사의 흐름에서 우연히 그 노선의 진보적 색채가 도드라졌을 때 장기적으로 권력을 독점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원리를 유럽의 정당구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미국의 정당은 한마디로 교회당이다. 교회당은 정당구조가 교회조직과 비슷한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공통적으로 유럽에 비해 보수적인 색채를 가지는 것은 교회당의 한계 때문이다.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이지만 절대로 유럽의 사민주의정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될 수는 없다. 교회당이란 원래 교회에 모인 신자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다가 분개하여 총을 들고 영국군과 싸우러 가므로서 정당의 모태가 된 것을 의미한다.
미국 민주당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교회조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제퍼슨 이래 고립주의의 한계를 벗어던질 수 없으며 유럽과 같은 진보정당은 절대로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카터와 고어의 패배도 민주당이 진보 그 자체에 투철하지 못한 때문으로 본다.
반면 유럽의 노동자정당은 대부분 선술집(pub)에서 노동자들이 맥주를 마시며 떠들던데서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선술집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당의 구조와 원리가 목사의 일방적인 설교를 듣고 움직이는 미국의 교회당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진보정당은 학교당이라 할만하다. 학교의 사제간, 선후배간의 수직구조에 기반하여 정당이 탄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좌파정당은 상대적으로 교회당에 가깝다. 즉 진보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지극히 보수적인 몸집을 가지고 있어서 시류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개혁당은 상대적으로 더 선술집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기는 개혁당이 과연 실질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선술집식 난상토론으로 운영될지는 지금으로서 장담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개혁당이 선술집당으로 가지 않고 학교당이나 교회당으로 간다면 형식적으로 진보를 표방한다 해도, 그 행보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보수화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양당정치가 교회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듯이.
정리하자!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본다면 늘 진보가 승리한다. 정확히 말하면 역사의 흐름과 맞는 진보적 이슈를 선점한 정당이 승리한다. 보수주의 그 자체를 구호로 집권한 경우는 역사에 없다. 쿠데타나 부정선거가 아니고 후진국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한나라당이 진보적 이슈를 선점할 수 없다면 집권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미국의 경우도 실제로는 늘 어느 한 정파가 수십년식 독재를 해 왔다. 지금으로서는 민주당이 수십년간 장기집권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민노당이나 개혁당이 진보적 이슈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인가? 진보적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정당구조를 선술집당으로 가져가야 한다. 이것이 정답이다. 물론 정답을 알아도 실천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덧붙이는 이야기]
이렇게 말하면 선거에서 승리한 부시정권이 진보정권인가 하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레이건-부시 시대 민주당의 쇠퇴는 민주당이 교회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유럽식 진보노선으로 옮겨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근래에 미국 민주당은 뚜렷한 진보적 이슈를 제시한 적이 없다. 지금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화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진보 그 자체에 투철하지 못한 민주당의 패배라고 본다.
한바탕 큰 싸움이 끝났다. 전투는 끝났지만 징집된 병사들은 아직 해산하지 않고 커다란 에너지의 덩어리를 형성한 채 웅크리고 있다. 자중지란의 위험도 있다. 이럴때일수록 원점으로 돌아가서 역사와 문명의 관점에서 큰 흐름을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정치는 진보와 보수라는 두 날개로 난다. 천만에!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역사라는 긴 호흡으로 볼 때 문명이라는 기관차는 오직 하나의 엔진을 가질 뿐이다.
그것은 진보라는 이름의 엔진이다. 역사는 늘 진보해 왔다. 퇴보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더 큰 진보를 위한 움츠림이거나 소소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정치에서 기본적인 원리를 두어가지 법칙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진보와 보수의 대결에서는 항상 진보가 승리한다.
2. 승자는 반드시 보수화되고 패자는 진보 쪽으로 옮겨가거나 소멸하고, 새로운 진보로 대체된다.
진보와 보수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라를 이끌어가는게 아니라 늘 진보가 승리하고, 승리한 진보는 스스로 점점 보수화 되며, 새로운 진보가 나타나 이를 대신하는 식이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기로 하자. (여기서 진보와 보수를 흔히 말하는 당파성의 개념으로 보아서 안된다. 마르크스의 헛소리는 일단 잊어버리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유의미하다.)
[민주주의의 실험장이 된 200년 미국사]
원래 미국의 진보세력은 공화당이었고 보수세력은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뒤집혀져 있다. 민주당이 진보적이고 공화당이 보수적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반대이다. 원래부터 민주당이 진보적이었는데 중간에 보수로 변했다가 다시 진보로 돌아왔다. 아니 한번 더 뒤집어야 한다. 200년전 독립 당시부터 민주당은 고립주의를 표방하여 보수노선을 걸었다.
이렇게 말하면 헛갈릴 것이다. 물론 중간에 당명이 여러번 바뀌었고 무수한 이합집산을 거쳤기 때문에 정확한 논리는 아니다. 그러나 대강의 큰 흐름으로 본다면 미국정치는 연방파와 주정부파 두 개 노선의 대결이다.
문제는 어떤 시점에서는 연방파가 진보의 편이었고, 다른 시점에는 그 반대였다는 사실이다. 즉 진보와 보수가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한 것이 아니라, 연방파가 진보일 때는 연방파가 집권하였고 연방파가 보수화되었을 때는 야당에 권력을 빼앗겼고, 결과적으로 큰 흐름에서는 늘 늘 진보가 권력을 독식했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늘 진보에게로만 간다. 이거 알아야 한다. 밑줄 쫙이다.
■독립초기
그 시대의 중심적인 이슈 - 연방중심 합중국의 건국여부?
집권 공화당(진보) - 당시 당명은 연방당
야당 민주당(보수) - 당시 당명은 공화당
■제퍼슨시대
그 시대의 중심적인 이슈 - 기본적 인권의 보장여부
집권 민주당(진보)
야당 공화당(보수)
■링컨시대
그 시대의 중심적인 이슈 - 노예해방, 연방중심주의의 부활.
집권 공화당(진보)
야당 민주당(보수)
■루즈벨트시대
그 시대의 중심적인 이슈 - 사회보장, 케인즈 경제학의 적용여부.
집권 민주당(진보)
야당 공화당(보수)
언뜻 민주당과 공화당이 교대로 집권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수십년간 민주당이 독재를 휘두르고 야당은 지리멸렬 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 반대의 시기도 있었다.
항상 그 시대의 중심적인 이슈가 있다. 그 중심적인 이슈를 선점한 정당이 수십년씩 독재를 휘둘르고 그동안 야당은 만년야당 신세였던 것이다. 그 중심적인 이슈를 선점한 정당은 늘 진보였다.
정권이 바뀌는 것은 진보와 보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는 그대로 두고 정당이 노선을 바꾸는 형태였다. 즉 패배한 정당이 진보적인 방향으로 자기당의 정책을 바꾸므로서 집권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승리한 정당은 기득권유지에 급급하다가 점점 보수화되어 패배하게 된다.
이같은 흐름은 사회주의가 확산된 20세기에 와서 불분명해져버렸다. 최근의 흐름은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이고 공화당이 더 보수적이다. 과연 그럴까? 사회주의 시각에서 보면 그러하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예컨데 클린턴의 슈퍼301조가 보수냐 진보냐는 잘못 판단하기 십상이다. 슈퍼301조는 먼로 독트린 이후 전통적인 민주당의 고립주의 노선에 입각하고 있다. 즉 진보적인 노선인 것이다. 슈퍼301조가 왠 진보냐고?
우리나라의 농업보호와 문화시장 개방거부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다. 슈퍼301조는 미국이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든 것이다. 즉 미국 입장에서 진보적이다. 그러나 우리 시각에서 보면 강대국의 파쇼적인 억압이다.
이렇듯 보는 관점에 따라 진보로 보이기도 하고 보수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큰 흐름에서 보면 늘 진보가 이겨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정치를 움직여온 두 개의 큰 축이 있다. 하나는 연방과 도시, 북부 상공업 중심의 공화당노선이고, 다른 하나는 남부, 농촌, 지방정부 중심의 고립주의 노선으로 민주당노선이다. 두 개의 노선 중 어느 쪽이 진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역사의 발전단계에 따라 연방중심노선이 진보가 되기도 하고 보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연방중심 노선이 진보 쪽에 섰을 때에 한하여 장기집권을 하였다.
연방반대와 고립주의로 대표되는 민주당노선의 뿌리는 토마스 제퍼슨이 만든 것이다. 제퍼슨의 이상은 기본적 인권의 강조라 할만하다. 당연히 진보적인 노선이 된다. 이후 미국은 한동안 진보적인 민주당(당시의 당명은 공화당)이 장악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제퍼슨은 흑인 노예 40여명을 거느린 악질 지주이다. 즉 당시의 역사적 흐름에서 진보적일 뿐, 오늘날의 잣대로 보면 제퍼슨은 완고한 극우주의자 시골 샌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선술집당과 교회당 그리고 학교당]
정리하면 미국은 공화당의 연방노선과 민주당의 지방노선이 있으며 이 노선들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데, 역사의 흐름에서 우연히 그 노선의 진보적 색채가 도드라졌을 때 장기적으로 권력을 독점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원리를 유럽의 정당구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미국의 정당은 한마디로 교회당이다. 교회당은 정당구조가 교회조직과 비슷한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공통적으로 유럽에 비해 보수적인 색채를 가지는 것은 교회당의 한계 때문이다.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더 진보적이지만 절대로 유럽의 사민주의정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될 수는 없다. 교회당이란 원래 교회에 모인 신자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다가 분개하여 총을 들고 영국군과 싸우러 가므로서 정당의 모태가 된 것을 의미한다.
미국 민주당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교회조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제퍼슨 이래 고립주의의 한계를 벗어던질 수 없으며 유럽과 같은 진보정당은 절대로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카터와 고어의 패배도 민주당이 진보 그 자체에 투철하지 못한 때문으로 본다.
반면 유럽의 노동자정당은 대부분 선술집(pub)에서 노동자들이 맥주를 마시며 떠들던데서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선술집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당의 구조와 원리가 목사의 일방적인 설교를 듣고 움직이는 미국의 교회당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진보정당은 학교당이라 할만하다. 학교의 사제간, 선후배간의 수직구조에 기반하여 정당이 탄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좌파정당은 상대적으로 교회당에 가깝다. 즉 진보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지극히 보수적인 몸집을 가지고 있어서 시류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개혁당은 상대적으로 더 선술집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기는 개혁당이 과연 실질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선술집식 난상토론으로 운영될지는 지금으로서 장담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개혁당이 선술집당으로 가지 않고 학교당이나 교회당으로 간다면 형식적으로 진보를 표방한다 해도, 그 행보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보수화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양당정치가 교회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듯이.
정리하자!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본다면 늘 진보가 승리한다. 정확히 말하면 역사의 흐름과 맞는 진보적 이슈를 선점한 정당이 승리한다. 보수주의 그 자체를 구호로 집권한 경우는 역사에 없다. 쿠데타나 부정선거가 아니고 후진국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한나라당이 진보적 이슈를 선점할 수 없다면 집권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미국의 경우도 실제로는 늘 어느 한 정파가 수십년식 독재를 해 왔다. 지금으로서는 민주당이 수십년간 장기집권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민노당이나 개혁당이 진보적 이슈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인가? 진보적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정당구조를 선술집당으로 가져가야 한다. 이것이 정답이다. 물론 정답을 알아도 실천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덧붙이는 이야기]
이렇게 말하면 선거에서 승리한 부시정권이 진보정권인가 하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레이건-부시 시대 민주당의 쇠퇴는 민주당이 교회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유럽식 진보노선으로 옮겨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근래에 미국 민주당은 뚜렷한 진보적 이슈를 제시한 적이 없다. 지금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화당의 승리라기보다는 진보 그 자체에 투철하지 못한 민주당의 패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