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할 이야기가 있다. '신은 있다. 기적은 있고 그러므로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 말을 하고 싶었다. 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다만 내가 말하는 신이 당신이 생각하는 그 신이 아닐 수는 있다. 기적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일어나주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위주의 이기적인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신이라는 표현이 못마땅하다면 ‘의사결정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구조론으로 보면 세상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심이 있다. 반드시 있다. 수염난 할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는 신은 없다. 그러나 중심은 있다. 원리적으로 있다. 기적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기 싫다면 ‘기적적’이라고 하면 된다. 기적은 일어날 만한 곳에서 평소에 그 기적의 확률을 높여놓은 자에게만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학적 확률과 자연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는 말이다. 기적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게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일반의 생각과는 다른 형태로 느닷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용틀임한다. 에너지는 입자처럼 움직이는게 아니라 플라즈마처럼 움직인다. 에너지는 때로 잠복하기도 하고 때로 점프하기도 한다. 에너지는 증폭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그 안에 생명성이 있다. 호흡이 있다. 그 에너지의 호흡의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기적을 본다. 우리는 확률을 착각한다. 로또가 당첨되거나 당첨되지 않거나 확률은 둘 중의 하나이므로 50퍼센트라는 식이다. 이때 놓치는 것은 관성의 법칙이다. 이면에 숨은 힘이다. 그것은 각운동량이다. 벡터 혹은 매개변수다. 대칭된 A와 B 사이에는 반드시 중매쟁이가 있다. 공유되는 토대가 있다. 그 토대가 꿈틀거린다. 그리고 은밀히 개입한다. 연애결혼이라고 해도 그것은 다른 형태로 숨어있다. 숨어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놓친다. 관성의 법칙은 사건이 종결된 후에 포착된다. 박근혜 정권이 망하려고 하니 모든 일이 박근혜에게 악재가 된다. 문재인 정권이 흥하려고 하니 하늘이 돕는 듯하다. 이번에는 모든 일이 호재가 된다. 심지어 악재도 호재로 변한다. 그냥 운이 좋은게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의 기세다. 범선이 가만히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람의 힘을 타고 가는 것이다. 선장이 바람의 방향을 읽었기에 그것은 가능한 것이다. 바람의 방향을 놓치고 역주행을 시도하면 배는 가지 않는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읽어야 할 바람의 결을 놓치는 것이다. 평소에 바람과 사귀어 두었어야 했다. 그래야 결을 읽을 수 있다. 플라즈마처럼 움직이는 바람의 결을 탈 수 있다. 이면의 숨은 에너지를 컨트롤할 수 있다. 정상에서만 그러한 전모를 볼 수 있다. 설사 99퍼센트 정상에 근접한다 해도 사건의 전모는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 정상을 찍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프리미엄이 있다. 그러므로 99퍼센트와 백퍼센트의 차이는 큰 것이다. 정상을 차지한 자는 모든 기적이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조정할 수 있다. 완전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애들 입씨름하듯 아전인수식으로 정치를 논하는 자는 정상에 오를 수 없고 전모를 볼 수 없다. 정상에서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 펼쳐진다. 정상에 오른 자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노자에게는 그것이 없고 공자에게는 그것이 있다. 그것은 천하인의 기개다. 대표자의 마음이다. 노무현의 마음과 같다. 노무현은 대표자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내 생각은 이래.' 하며 나를 앞세운다면 소인배다. 마땅히 천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천하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인들에게는 바른 판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 에너지를 컨트롤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에너지는 외부로부터의 환경변화를 받아들일 때 얻어진다. 에너지는 다름에도 없고 같음에도 없다. 다름에서 같음으로 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나타난다. 변화가 끝나면 에너지는 사라진다. 보수는 다름을 강조하고 진보는 같음을 강조하지만 둘 다 틀렸다. 달라도 안 되고 같아도 안 되고 다름을 존중하고 같음을 추구하여 부단히 변화하면서 각운동량을 만들어내야 하는 어려운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일본문화개방부터 스크린쿼터 폐지에 FTA에 다문화에 노무현의 ‘반미면 어때’까지 우리에게 일어난 그것은 환경변화다. 그것은 천하가 원하는 것이지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개인적으로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신을 만났고 기적을 봤고 구조론은 그 기적 중에 하나다. 천하의 필요에 의해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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