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은 대통령을 원한다]
노무현은 어제 촛불시위의 현장에 있었어야 했다. 선거전이 한창일 때는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그랬다손치더라도, 선거가 끝난 지금에 와서는 촛불시위에 대해 어떤 형태이든 구체적인 액션이 취해져야 한다.
선거전의 피로를 씻기 위해 1박 2일의 휴가를 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결코 잘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부려먹을 수 있는 한 대통령당선자를 부려먹어야 하고 대통령당선자는 할 수 있는 한, 닥치는 대로 그 일을 해야한다.
어제도 미 대사관 앞에서는 많은 소녀들의 피가 거리를 적셨다. 당선자가 현장을 지켰다면 전투경찰이 방패로 소녀의 얼굴을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불행을 막는 일에 자신의 가진 힘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촛불시위에 참여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제와 같은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구체적인 액션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는 말이다. 노무현이 현장에 잠시라도 다녀갔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양쪽의 물리적 충돌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노무현 뿐이다.
다음 주에는 100만인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인명희생이 우려된다. 예고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노무현당선자 뿐이다. 담화문 같은 것으로는 안된다. 잠시라도 현장에 와서 얼굴을 비쳐야 물리적 충돌을 막을 수 있다.
시민단체도 그렇다. 더 이상의 유혈은 안된다. 이쯤에서 어떻게든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거다. 노무현만이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다. 끝없이 시위를 계속할 수는 없다. 공을 노무현에게 넘겨버리고 효순이와 미선이의 명복을 빌자.)
권위주의다. 이래서는 안된다. 몸을 낮추어야 한다. 곧 죽어도 현장을 지켜야 한다. 촛불시위는 해야하지만 더 이상의 인명희생은 없어야 한다. 정치의 문제는 정치인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런 선례가 남겨져야 한다. 왜 못하는가?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높으신 대통령님께서 노동자의 파업현장이나 대학생의 시위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어서는 안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 않다. 젊은 대통령 좋다는게 뭔가?
늙은 김영삼이나 80 고령의 김대중대통령에게 현장을 지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노무현은 다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회창이 절대로 못하는 것을 노무현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무현을 지지한 것 아닌가?
물론 이해할 수는 있다. 아직은 취임 전이다. 작은 움직임도 큰 반향을 낳을 수 있다. 이 시점에서는 몸을 사리는 것이 현명한 정치술이 된다. 그러나 민중이 지도자의 정치술까지 사려깊게 헤아려줄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당선자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없이 막무가내로 다그쳐야 한다. 부려먹자는 거다.
우리는 요구할 수 있다. 취임한다면 노무현대통령이 맨 먼저 해야할 일은 구속된 단병호위원장을 만나는 일이다. 높으신 대통령님께서 어찌 감옥의 죄수를 만나느냐고? 바로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부셔야한다.
권위주의는 깨져야 한다. 새정치를 선보여야 한다. 제주도 민박집에 묵는 마음으로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양김씨와 본질에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회창노인이 절대로 못하는 것을 해내야한다. 케네디와 클린턴이 보여주었던 것을 노무현당선자는 보여주어야 한다.
[큰 정치와 작은 정치]
김정일의 광폭정치다. 언뜻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유치한 발상임을 알 수 있다. 봉건군주의 저급한 통치술이다. 참된 지도자라면 작은 정치를 해야한다. 밑에서부터 하나하나 바꿔가야 한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국가적 큰 위기를 현안으로 제시하고 큰 문제부터 해결하면 작은 문제까지 덩달아 해결되게 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큰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고 작은 문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하여 어느정도 신뢰가 조성된 다음, 적절한 타이밍에 도달하면 전광석화처럼 큰 문제를 해결해버리는 것이다.
역대 한국의 대통령들은 첫번째 방법을 사용했다. 큰 문제만 해결하면 작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이다. 예컨데 김영삼대통령은 인사가 만사라 해서 대통령이 인사문제만 잘하면 내각이 알아서 잘 한다는 식이다. 천만에!
과거의 정치는 그랬다. 지도자는 삼국지의 유비처럼 인자한 얼굴을 하고, 외교나 하고 자선사업이나 하고, 국가행사에 얼굴이나 내밀면 된다. 훌륭한 수상이 알아서 내각을 잘 통솔하니 국태민안이요 함포고복이다. 천만에! 봉건통치배의 말장난이다. 속지 말라!
21세기는 다르다. 정치가는 얼굴마담이 아니다. 현장의 해결사여야 한다. 준공식에 테이프나 끊으러 다니고, 기념일에 연설이나 하러 다니고, 시상식에 상장이나 주러 다니는 낡은정치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대통령은 현장을 뛰어야 한다. 파업현장에, 시위현장에, 사고현장에 항상 있어야 한다.
기차가 전복되면 시장이나 도지사보다 대통령이 먼저 달려와야 한다. 119보다 청와대가 먼저 출동해야 한다. 24시간 몸을 사리지 않고 현장을 뛰어야 한다. 이것이 진짜 정치다. 불행하게도 한국인은 역사이래 단 한번도 이런 진짜 정치를 구경해 본 일이 없다.
[부시와 김정일의 안되는 정치, 케네디와 클린턴의 되는 정치]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부시나 김정일처럼 국가적인 큰 위기를 조성해놓고 이를 우선 해결하므로서 나머지 작은 문제들까지 일괄타결하는 방법이다. 생각만큼 잘 될까? 천만에! 미안하지만 그거 잘 안된다.
물론 일괄타결도 좋다. 그러나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한 절대로 일괄타결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거래이든 상대방의 카드를 읽어버리는 순간 흥정은 절대로 성립되지 않는 원리를 깨우쳐야 한다.
인삼장사 임상옥이 인삼상자에 불을 질러버리듯, 큰 문제는 관심없다는 듯이 딴전을 피우다가 한 순간에 전광석화처럼 해치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어 상대방의 애를 태우고 작은 문제부터 해결하므로서 밑바닥에서의 신뢰를 조성해야 한다.
정치적 결단은 항상 퇴로가 보장되어야 한다. 일괄타결은 잘되면 좋지만 만의 하나 잘 안되면 원상회복이 안된다. 김정일이 도망갈 퇴로가 없다. 그 때문에 될듯될듯 하면서 절대로 안되는 것이 일괄타결이다.
경의선개통, 금강산육로관광, 이산가족 만남 등 소소한 사업들이 진척되어 어느정도 신뢰가 조성된 기반 하에서, 그것이 어떤 임계에 도달하면 비로소 일괄타결이 되는 거지, 처음부터 일괄타결을 하려고 하면 김정일과 부시의 대결처럼 절대로 진척이 없다.
한겨울 지나고 봄이 왔는데도 눈사람이 녹지 않고 버티는 수가 있다. 눈이 녹을 때는 속으로 온도가 올라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일시에 녹아버린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이미 푸석푸석해져 있는 것이다. 정치도 이같이 되어야 한다.
남북문제 뿐 아니라 모든 정치분야가 그러하다. 작은 것을 잘하면 신뢰가 축적되어 큰 것도 잘된다. 그러나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에 집중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작은 것이 방해해서 큰 것이 어긋난다. 김대중정권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김대중대통령은 큰 사업에 집중하고 작은 문제를 소홀히 했다. IMF극복, 남북정상회담, 노벨상 수상 등 대통령은 굵직굵직한 일만 가닥을 잡아주고 작은 내치는 권노갑이나 박지원에게 일임해 버렸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잘 안되는 이유는 누군가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발목을 잡히는 이유는 이회창과 한나라당이 나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편중인사, 옷로비, 언론문제 등 작은 일에 소홀히 대처하므로 그 작은 것이 쌓여서 그리 된 것이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큰 문제를 해결하므로서 작은 것도 덩달아 잘되게 하는 방법이고 하나는 작은 문제를 일일이 해결하므로서 그 것이 누적되어, 큰 문제가 저절로 해결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봉건정치요 후자는 진짜정치다.
네티즌의 소소한 요구들을 묵살해서 안된다. 큰 정치의 유혹을 버리고 낮은 곳에 머물러야 한다. 국민과 집접 상대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이기려 하지 말고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해야 한다. 져주므로서 이기는 길을 가야한다.
노무현이 해낼 수 있을까?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젊으니까.
노무현은 어제 촛불시위의 현장에 있었어야 했다. 선거전이 한창일 때는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그랬다손치더라도, 선거가 끝난 지금에 와서는 촛불시위에 대해 어떤 형태이든 구체적인 액션이 취해져야 한다.
선거전의 피로를 씻기 위해 1박 2일의 휴가를 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결코 잘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부려먹을 수 있는 한 대통령당선자를 부려먹어야 하고 대통령당선자는 할 수 있는 한, 닥치는 대로 그 일을 해야한다.
어제도 미 대사관 앞에서는 많은 소녀들의 피가 거리를 적셨다. 당선자가 현장을 지켰다면 전투경찰이 방패로 소녀의 얼굴을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불행을 막는 일에 자신의 가진 힘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촛불시위에 참여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제와 같은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구체적인 액션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는 말이다. 노무현이 현장에 잠시라도 다녀갔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양쪽의 물리적 충돌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노무현 뿐이다.
다음 주에는 100만인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인명희생이 우려된다. 예고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노무현당선자 뿐이다. 담화문 같은 것으로는 안된다. 잠시라도 현장에 와서 얼굴을 비쳐야 물리적 충돌을 막을 수 있다.
시민단체도 그렇다. 더 이상의 유혈은 안된다. 이쯤에서 어떻게든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거다. 노무현만이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다. 끝없이 시위를 계속할 수는 없다. 공을 노무현에게 넘겨버리고 효순이와 미선이의 명복을 빌자.)
권위주의다. 이래서는 안된다. 몸을 낮추어야 한다. 곧 죽어도 현장을 지켜야 한다. 촛불시위는 해야하지만 더 이상의 인명희생은 없어야 한다. 정치의 문제는 정치인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런 선례가 남겨져야 한다. 왜 못하는가?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높으신 대통령님께서 노동자의 파업현장이나 대학생의 시위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어서는 안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 않다. 젊은 대통령 좋다는게 뭔가?
늙은 김영삼이나 80 고령의 김대중대통령에게 현장을 지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노무현은 다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회창이 절대로 못하는 것을 노무현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무현을 지지한 것 아닌가?
물론 이해할 수는 있다. 아직은 취임 전이다. 작은 움직임도 큰 반향을 낳을 수 있다. 이 시점에서는 몸을 사리는 것이 현명한 정치술이 된다. 그러나 민중이 지도자의 정치술까지 사려깊게 헤아려줄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당선자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없이 막무가내로 다그쳐야 한다. 부려먹자는 거다.
우리는 요구할 수 있다. 취임한다면 노무현대통령이 맨 먼저 해야할 일은 구속된 단병호위원장을 만나는 일이다. 높으신 대통령님께서 어찌 감옥의 죄수를 만나느냐고? 바로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부셔야한다.
권위주의는 깨져야 한다. 새정치를 선보여야 한다. 제주도 민박집에 묵는 마음으로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양김씨와 본질에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회창노인이 절대로 못하는 것을 해내야한다. 케네디와 클린턴이 보여주었던 것을 노무현당선자는 보여주어야 한다.
[큰 정치와 작은 정치]
김정일의 광폭정치다. 언뜻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유치한 발상임을 알 수 있다. 봉건군주의 저급한 통치술이다. 참된 지도자라면 작은 정치를 해야한다. 밑에서부터 하나하나 바꿔가야 한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국가적 큰 위기를 현안으로 제시하고 큰 문제부터 해결하면 작은 문제까지 덩달아 해결되게 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큰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고 작은 문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하여 어느정도 신뢰가 조성된 다음, 적절한 타이밍에 도달하면 전광석화처럼 큰 문제를 해결해버리는 것이다.
역대 한국의 대통령들은 첫번째 방법을 사용했다. 큰 문제만 해결하면 작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이다. 예컨데 김영삼대통령은 인사가 만사라 해서 대통령이 인사문제만 잘하면 내각이 알아서 잘 한다는 식이다. 천만에!
과거의 정치는 그랬다. 지도자는 삼국지의 유비처럼 인자한 얼굴을 하고, 외교나 하고 자선사업이나 하고, 국가행사에 얼굴이나 내밀면 된다. 훌륭한 수상이 알아서 내각을 잘 통솔하니 국태민안이요 함포고복이다. 천만에! 봉건통치배의 말장난이다. 속지 말라!
21세기는 다르다. 정치가는 얼굴마담이 아니다. 현장의 해결사여야 한다. 준공식에 테이프나 끊으러 다니고, 기념일에 연설이나 하러 다니고, 시상식에 상장이나 주러 다니는 낡은정치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대통령은 현장을 뛰어야 한다. 파업현장에, 시위현장에, 사고현장에 항상 있어야 한다.
기차가 전복되면 시장이나 도지사보다 대통령이 먼저 달려와야 한다. 119보다 청와대가 먼저 출동해야 한다. 24시간 몸을 사리지 않고 현장을 뛰어야 한다. 이것이 진짜 정치다. 불행하게도 한국인은 역사이래 단 한번도 이런 진짜 정치를 구경해 본 일이 없다.
[부시와 김정일의 안되는 정치, 케네디와 클린턴의 되는 정치]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부시나 김정일처럼 국가적인 큰 위기를 조성해놓고 이를 우선 해결하므로서 나머지 작은 문제들까지 일괄타결하는 방법이다. 생각만큼 잘 될까? 천만에! 미안하지만 그거 잘 안된다.
물론 일괄타결도 좋다. 그러나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한 절대로 일괄타결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거래이든 상대방의 카드를 읽어버리는 순간 흥정은 절대로 성립되지 않는 원리를 깨우쳐야 한다.
인삼장사 임상옥이 인삼상자에 불을 질러버리듯, 큰 문제는 관심없다는 듯이 딴전을 피우다가 한 순간에 전광석화처럼 해치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어 상대방의 애를 태우고 작은 문제부터 해결하므로서 밑바닥에서의 신뢰를 조성해야 한다.
정치적 결단은 항상 퇴로가 보장되어야 한다. 일괄타결은 잘되면 좋지만 만의 하나 잘 안되면 원상회복이 안된다. 김정일이 도망갈 퇴로가 없다. 그 때문에 될듯될듯 하면서 절대로 안되는 것이 일괄타결이다.
경의선개통, 금강산육로관광, 이산가족 만남 등 소소한 사업들이 진척되어 어느정도 신뢰가 조성된 기반 하에서, 그것이 어떤 임계에 도달하면 비로소 일괄타결이 되는 거지, 처음부터 일괄타결을 하려고 하면 김정일과 부시의 대결처럼 절대로 진척이 없다.
한겨울 지나고 봄이 왔는데도 눈사람이 녹지 않고 버티는 수가 있다. 눈이 녹을 때는 속으로 온도가 올라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일시에 녹아버린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이미 푸석푸석해져 있는 것이다. 정치도 이같이 되어야 한다.
남북문제 뿐 아니라 모든 정치분야가 그러하다. 작은 것을 잘하면 신뢰가 축적되어 큰 것도 잘된다. 그러나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에 집중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작은 것이 방해해서 큰 것이 어긋난다. 김대중정권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김대중대통령은 큰 사업에 집중하고 작은 문제를 소홀히 했다. IMF극복, 남북정상회담, 노벨상 수상 등 대통령은 굵직굵직한 일만 가닥을 잡아주고 작은 내치는 권노갑이나 박지원에게 일임해 버렸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잘 안되는 이유는 누군가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발목을 잡히는 이유는 이회창과 한나라당이 나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편중인사, 옷로비, 언론문제 등 작은 일에 소홀히 대처하므로 그 작은 것이 쌓여서 그리 된 것이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큰 문제를 해결하므로서 작은 것도 덩달아 잘되게 하는 방법이고 하나는 작은 문제를 일일이 해결하므로서 그 것이 누적되어, 큰 문제가 저절로 해결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봉건정치요 후자는 진짜정치다.
네티즌의 소소한 요구들을 묵살해서 안된다. 큰 정치의 유혹을 버리고 낮은 곳에 머물러야 한다. 국민과 집접 상대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이기려 하지 말고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해야 한다. 져주므로서 이기는 길을 가야한다.
노무현이 해낼 수 있을까?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