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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눈내리는 마을
read 3933 vote 0 2010.05.01 (12:57:47)

(장면 하나: 동대문 헌책방)
어머니의 손목에 끌려 동대문 헌책방에 간건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헌책방 서점주인 왈, 개시라서 싸게 판다고 했다.
콩나물은 싸게 살지언정,
한국과 세계문학전집은 사주리라 맘먹고 왔던 우리 엄니는
동대문을 돌고 돌아, 그 개시집에서 24권의 전집을 사들고 오고 말았다.

(장면 둘: 개교 2년차의 어느 중학교)
난, 그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모임인줄 알았다.
개교3주년에는 교지를 낸다는 거였다.
난, 그 24권의 전집이 효과를 볼줄은 몰랐다.
기억할줄 모르겠지만, 오영수와, 김동리, 황순원까지...그리고, 이상.
좋다. 그런 고상한건 다 지난 이야기겠지만, 지금,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건,
7교시 이후의 하오의 3층 교실에서 불어오던 봄바람과,
베이지색 교복안의 그녀.
잠시 멈춰지던 시간과
공간의 대칭점.
멈춰진
점.

(장면 셋: 고시촌 천하일품)
군대 이전의 대학생활은 철지난, 맑스 엥겔스의 연속이었다.
점조직 선배들이 있었지만,
나를 흥분시키지는 못했다.
게다가, 난 20대 초반의 야생마였고.
뚜뚜뚜...'나 학회일로 네 학교에 가는데, 잠깐 볼까?'
널 만나게 된건, 유쾌 상쾌 통쾌의 연속이었다.
그 어떤 말이 네게 칭찬이 될까.
15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더이상 떠올릴수가 없다.

(장면 넷: 신촌의 여우사이)
목도리가 없던건 아니다.
차라리, 일회용 라이터를 샀으면 샀지, 목도리나 헤어젤을 살 나는 아니었다.
신촌 캠퍼스 후문을 감싸던
오후의 햇살과
인왕산의 얇은 줄기를
보고나면 달라진다.
우리가, 외로운 존재인것을,
굳이 마광수 교수의 사라와 함께 여관에 가지 않아도,
우리, 그렇게 외로운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 찰나에 스쳐지나가던, 네 향기.
목도리의 따스함.
헤어지던 날의
담배연기.
어설픈
말.

(장면 다섯: 꿈과 현실)
수줍게 깨달은게 있다면,
그 24권의 전집들이
내 생의
전반부

모두
결정했다는것. 부지 불식간에...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는것.

휘리릭~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0.05.01 (14:18:03)

신촌의 여우사이라면...
연대 동문 쪽에 있는 카페 이름으로 기억하오. 5층에 있는데, 4층엔 루체(LUCE)라는 카페가 있고, 1층은 설렁탕 집(설렁탕집 사장이 건물주)이오. 그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연대 뒷산(안산)으로 올라가면, 봉원사가 있고, 올라가는 길에 도올 김용옥을 만났던 기억이 있소.

신촌 캠퍼스 후문, 인왕산 줄기... 신촌의 여우사이... 어쩐지, 내가 기억하는 공간과 겹쳐지는 것 같소.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0.05.02 (10:22:29)

재수하던 시절에 공교롭게 신촌쪽이 더 친근감이 가더군요.
독다방앞의 창천교회와 그 옆을 지나는 껍떼기집의 간극.
지푸라기같던 검은 봉지에 담은 소주와 새우깡,
그리고 언더우드 동상.

그 모든걸 담아둔 '여우사이'에서의 캠퍼스 전경.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10.05.02 (15:28:21)

그카페 아직있지않소?   한번도 안가봤지만, 지나가 간판은 많이 본듯한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0.05.02 (16:35:13)

아직 있을 게요. 나름 꽤 장사가 잘 되는 카페로 알고 있소.
나도 안가봐서 모르겠소. 그 밑에 루체라는 카페에서 한동안 연주회를 열어서 알고있는 것일 뿐.
그런데 여우사이에서 캠퍼스가 보이던가? 한번 가보기 위해서라도 여친을 맹글어야겠소.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0.05.03 (12:54:38)

혼자가도 괜찮소.
굳이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좋지만,
피우더라도, 개의치 않을 자유로운 공간이면 좋소.

개인적으로, 여우사이 입구의 카드 고르기 섹션이 난 참 좋았소.
붙이지 못한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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