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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320 vote 1 2017.12.08 (11:18:01)

  

    어제 팟캐스트에서 나온 이야기다. 창의센터라고 이름 붙여 번듯한 건물을 하나 지어놓으면 창의가 될까? 이는 박근혜의 방법이다. 건설족만 배불린다. 진짜 창의는 남의 이목을 끌려는 괴짜행동이 아니라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에 의해 얻어진다. 괴상한 사람이 창의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한 사람이 창의한다는 말이다.


    최근에 빅데이터가 뜨면서 핀란드식 융복합 수학을 해야한다는 둥 해괴한 소리가 떠돌고 있다. 수학의 진짜 의미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상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 난문제를 푸는 사람은 한 명만 있으면 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앤드루 와일즈 한 사람의 증명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수학을 배우는가? 인내심 교육이다. 교실에서 먼지 피우며 돌아다니지 말고 제 자리에 차분하게 앉아있게 하는 게 수학이다. 차분한 사람이 창의한다. IT산업을 이끌어가는 천재들은 학창시절 조용하게 문제나 풀고 있었던 찐따들이다. 머리 염색하고 창의적으로 놀던 애들은 여전히 창의적으로 백수다.


    한국교육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주입식교육의 병폐 운운은 개소리다. 주입식 교육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진짜 병폐는 주입식 교육을 해서 창의력이 없어진 게 아니고 주입식 교육을 하니 돌대가리들이 문제를 잘 풀어 명문대 가는 것이다. 탈락해야 할 변희재들이 서울대 온 게 문제지 창의력이 없어진 건 아니다.


    변희재는 원래 창의력이 없었다. 주입식 학습을 해서 돌이 된 게 아니라 돌이 주입식 학습으로 서울대 온 것이다. 즉 주입식교육의 폐해는 변별력 상실로 시험절차를 파괴하고 부적격자를 합격시키는 것이지, 있는 창의력이 도망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일단 서울대는 대학이 아니다. 서울대와 창의력을 연결시키지 말라.


    한국교육의 병폐는 교육과소비로 인한 국가적 에너지 낭비다.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투자했으면 GDP가 올랐다. 게다가 어린이를 괴롭혀서 불행하게 만들었다. 특히 과거 성차별로 여성들을 교육시키지 않아 학력콤플렉스를 가진 엄마들이 자녀를 통해 대리보상을 추구하게 만들었으니 이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한국교육의 장점은 얌전하게 교실에 앉아있게 만든 것이다. 이런 사람이 창의한다. 외국처럼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뛰어드는 건 좋지 않다. 필자가 고아원을 잠시 들여다본 적이 있다. 원장님을 아빠라 부르고 사모님을 엄마라 부르는데 아침이면 수십 명의 학생이 일제히 엄마 아빠에게 달려든다. 눈길끌기다.


    애처롭다. 아빠에게 눈도장 찍기 경쟁률이 30 대 1이라면 비극이다. 원장님이 일제히 달려드는 수십 명의 아이를 일일이 머리 쓰다듬어 주기에는 등교시간이 임박해 버렸다. 좋지 않다. 교육이란 머리에 주입하는 게 아니라 환경을 장악해 들어가는 거다. 곽거병이나 알렉산더처럼 구김살 없이 커야 한다. 보호받아야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경쟁에 내몰려버린 것이다. 엄마와 눈 한 번 마주칠 확률이 30 대 1이다. 방어모드로 된다. 창의력 죽는다. 완전성의 체험이 중요하다. 주변환경 모두가 내 편이어야 한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형과 동생에 강아지까지 내 편이어야 창의가 된다. 창이 방패를 이긴다고 했다. 닭이 알을 이긴다.


    비트코인이 떴다. 인생을 방어모드로 살아가는 사람은 다들 튤립파동을 이야기하고 폰지사기를 이야기한다. 반면 공격모드로 살아가는 사람은 비트코인이 황금을 제칠 것인가를 논한다. 걱정뿐인 사람은 내가 피해를 입을 확률만 계산하고 해맑은 사람은 금이냐 비트코인이냐 아무 소나 이겨라 이기는 소 우리소 신났다.


    창이 방패를 이기므로 긍정적인 사람이 창의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창의하지 못하며 공격모드에 선 사람이 창의하고 방어모드에 선 사람은 창의하지 못한다. 황제의 조카 곽거병과 왕의 아들 알렉산더는 공격모드였다. 창의했다. 리스크가 누적되어 죽었다. 그러나 안전한 동굴에 숨어 있는 사람은 절대 창의하지 못한다.


    죽더라도 용맹하게 몸을 던져야 한다. 비트코인을 가지고 폰지사기 운운하는 사람은 창의를 못하는 사람이다. 물론 무모하게 창의하다가 곽거병처럼 죽을 수도 있지만, 이순신처럼 창의하다가 죽는 게 멋지다. 이순신은 차분한 사람이었기에 거북선을 창의하고 화포전술을 창의했다. 이순신이 괴짜라서 창의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괴짜를 찾는가? 지도자의 부재 때문이다. 노무현처럼 갑자기 뜨는 지도자는 괴짜로 보인다. 노무현은 괴짜일까? 천만에. 바른 길을 갔다. 김영삼의 3당야합에 따라가는 게 괴이한가 의리를 지키는 게 괴짜인가? 정도를 가는 노무현을 괴짜라는 게 이상하다. 정도를 가야 창의하지 이명박짓은 창의가 아니다.


    지도자의 방향제시가 중요하다. 귀족문화가 있어야 한다. 발달한 프랑스요리는 왕이 단두대에 목이 잘려 죽자 왕실요리사가 직업을 잃고 민간에 풀린 거다. 한국요리도 조선왕조가 망해 대궐 숙수들이 요릿집을 연 것이 시초다. 그런데 박정희짓 보라지. 컬러TV도 못 보게 했다. 지도자가 이런 짓을 하면 창의가 죽는 거다.


    최근 한국영화가 고전 중인 게 다 박근혜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 국제시장, 군함도 따위 쓰레기 국뽕영화를 만들게 하니 충무로가 망하는 거다. 창의를 괴짜짓이라고 하는 말은 지능이 떨어지는 바보들을 위안하기 위한 서비스 멘트다. 괴짜짓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누구나 창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어린이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창의가 되는 게 아니고 완전성의 체험이 중요하다. 유년기는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어린이가 산에서 들에서 즐겁게 뛰어들면 창의가 될 리가 없다. 그런데도 어린이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창의하라고 그런 게 아니고 완전성의 체험이다. 절대적으로 유년기에 행복한 사람이 창의한다.


    다섯 살 아이에게 주입식 교육으로 시험치면 패배연습이다. 패배를 훈련하면 패배에 익숙해지고 방어모드로 변하며 창의가 죽는다. 한국의 과잉교육은 과잉패배다. 지능이 안 되는 아이가 무언가 억지로 배울 때 패배한다. 강남에 가면 패배확률이 증가한다. 강남에는 머리 좋은 애들만 모여있기 때문이다. 왕노릇을 못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촌놈이었다. 김대중이 하의도 주름잡기 쉬웠고 노무현이 봉하바닥 주름잡기 쉬웠다. 김대중이 강남에서 자랐다면 패배를 훈련하게 되고 창의할 수 없다. 노무현이 대치동에서 배웠다면 똑똑이들에게 치여서 패배전문으로 된다. 패배를 학습하므로 패배전문이 되는 거다. 어린이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시험을 치면 패배한다. 한 문제라도 틀리면 패배다. 패배를 교육시키므로 창의가 안 되는 거다. 직업이 패배로 되어 죽을 때까지 계속 패배하게 된다. 환경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뛰어논다고 창의가 되는 게 아니고 자기편인 환경을 장악해야 창의가 된다. 조선왕조 아이들은 다들 뛰어놀았지만, 누구도 창의를 못 했다.


    한국교육은 장단점이 있다. 너무 이른 나이에 패배중독에 걸리는 건 한국교육의 단점이다. 10대 후반에 너무 일찍 직업현장으로 내몰지 않는 것은 한국교육의 장점이다. 어린이는 이겨야 하고 청소년은 20대 후반까지 보호받아야 한다. 대학은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고 보호받으러 가는 것이다. 자기편을 얻는 것이 공부다.


    핀란드식 패배교육은 좋지 않다. 일찌감치 사회에 뛰어들면 일찌감치 패배한다. 다섯 살 때부터 경쟁구조 속으로 들어가 좌절하는 연습부터 하면 안 된다. 동료를 얻고 동료를 신뢰하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 말을 잘 듣고 얌전하게 자리에 앉아있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어차피 학교에서 배운 건 무효고 회사 가면 다시 배운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얌전한 사람이 창의를 잘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쪼는 사람이 있어야 창의를 잘한다. 작가들은 마감에 쫓겨야 창의한다. 일정표 분단위로 짜놓고 규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창의 못 한다. 느긋하게 게으름 부리다가 마감에 쫓길 때 에너지는 고도로 응축된다. 필자도 시간에 쫓겨야 글이 나와준다.


    하루종일 빈둥대다 퇴근시간 임박해서 30분에 후다닥 치면 창의가 되는데 대신 급하게 써서 오타가 많다. 필자의 글에 오타가 많은 건 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쓴 것이다. 급하게 써야 창의가 된다. 뇌를 업시키는 것은 마감에 쫓기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 게으름뱅이가 창의한다. 물론 모든 게으럼뱅이가 창의하는 건 아니다.


    영화 대부 2편에서 마이클이 이탈리아 고향마을을 찾아가니 사람이 없다. 마을이 텅 비었다. 사람들 다 어디 갔지? 서로 복수해서 다 죽었다고. 이건 창의가 망하는 거다. 마이클이 두 형을 제끼고 대부가 된 것은 마이클에게 유독 환경이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형들과 달리 마피아 일을 하지 않고 대학을 다녔기 때문이다.


    한국이 주입식 교육으로 창의가 안 된다는 건 넌센스다. 창의할 산업이 없고 수요가 없다. 시장이 없다. 귀족문화가 있어야 한다. 명품시장이 있어야 명품옷을 창의한다. 너도나도 획일적으로 롱패딩을 입고, 떡볶이 더플코트 입고, 노스페이스 입고, 등산복 입으면 창의가 망한다. 귀족들은 절대 남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 청소년들이 노스페이스든 롱패딩이든 획일적으로 가는 것은 귀족문화가 없고 대신 거지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게 거지행동이다. 유럽은 왕실문화가 있고 일본은 봉건영주가 있는데 한국은 없다. 일본만화 맛의 달인에 미각삼대라는 말이 있더라. 3대에 걸쳐서 부잣집 자제라야 겨우 미각을 안다는 말이다. 


    아버지에 할아버지까지 부자 미식가라면 귀족출신인 거다. 한국은 식민지에 625로 털려서 양반문화도 망하고 고상하고 세련된 문화가 없어졌다. 창의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 지도자가 방향제시를 해야 한다. 흑백TV 없애고 컬러TV로 갈아타야 한다. 박정희는 반대로 갔다. 실용주의 하면 망하고 합리주의로 가야 한다.


    성소수자 기죽이면 망하고 다문화 기죽이면 망한다. 그게 창의력의 자산이다. 억지로 다름을 만들면 안 되고 애초부터 달라야 한다. 비트코인을 폰지사기로 보는 관점은 망하는 관점이고 어차피 가짜이기는 황금도 마찬가지인데 비트코인 사기가 황금 사기의 반은 가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태도라면 창의적 관점이다. 


    기승전결의 기로 보느냐 결로 보느냐다. 필자는 일관되게 인터넷을 기승전결의 기로 보아왔다. 다음 단계가 있다는 말이다. 결로 보면 창의가 닫히고 기로 보면 창의가 열린다. 어디에 설지는 포지션이다. 이는 기괴한 괴짜가 아니라 수학적 사유다. 올바른 수학적 관점과 합리적인 관점, 확률로 보는 관점이 창의를 키운다. 


    확률로 본다는 것은 스케일 크게 가고 장기전으로 본다는 것이다. 한탕에 백억 벌기보다 10원씩 백억 사람에게 뜯는 것이 이익이다. 그러나 대개 그물로 10원짜리 쓸어 담기보다 낚시로 큰 거 한 마리 낚기를 원한다. 쓸모를 추구하므로 관점이 닫힌다. 당장 쓸모없는 것이 언젠가 일을 낸다. 한글도 500년간 쓸모없었다.


    세종은 500년을 앞서간 것이다. 왜? 왕이니까. 왕은 구김살이 없으니까. 그 정도 해야 한다. 세종은 셋째라 형들과 달리 왕위계승 눈치싸움 스트레스가 없었다. 보호받았던 것이다. 어린이를 자유롭게 놀게 하는 건 보호받아야 창의가 되기 때문이지 논다고 창의되는 건 아니다. 백 년 놀아봐라 창의가 되는가? 계속 놀게 된다.


    이쪽에서 잃은 것을 저쪽에서 복구하는 합리적인 구조를 만들어가는 관점이 창의다. 당장 뭔가 보상받으려 하고 얻으려고 하면 창의 망한다. 플러스는 결에 서기 때문이다. 마이너스에 서야 한다.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잃을수록 창의가 된다. 일을 저지르고 튀겠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뒤샹은 불을 붙여놓고 도망갔다.


    전시회에 화장실 변기를 투척해놓고 체스 선수가 되겠다며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한탕 해 먹고 튀자는 생각이 앤디 워홀의 팝 아트다. 사실은 허영에 찌들은 미술시장을 타격하려고 한 거다. 싸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교만한 자가 창의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석가라야 한다. 공격모드라야 한다. 이겨야 창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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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이산

2017.12.08 (14:53:42)

좋은글 감사합니다^^

[레벨:5]김미욱

2017.12.08 (23:22:35)

아이들의 타고난 완전성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알고 보면 바로 부모. ' 인생은 아름다워' 의 조슈아 아빠( 로베르토 베니니) 만큼은 못 돼도 흉내는 내어 보기. 교육은 아름다워~!
[레벨:3]귤알갱이

2017.12.11 (00:30:39)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한 미국의 마이클 버리도

어렸을 때 라크로스를 하다가 눈을 다친 이후로 실내에서 혼자 보낸 시간이 많아졌고 그 결과 남다른 관점을 가지게 됐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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