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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355 vote 0 2010.04.28 (17:03:29)


 

합리적 관점과 미학적 관점

 

바다는 열려 있어도 기함의 브릿지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 인터넷은 넓지만 구조론연구소는 하나 뿐이다.

 

구조론연구소는 뇌의 역할이다.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보지만 고요히 머무를 뿐, 부지런한 몸놀림은 손발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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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와서 사이트 주인 개인의 인격을 논하고 어쩌고 하며, 멀쩡한 앞문 놔두고 이상하게 여불때기로 엉겨붙어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근대적인 지성의 세례를 못 받은 사람이다.

 

못 배운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공사구분이 안 되는 거다. 말이 안 통한다. 그런 사람과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근데 먹물이다. 달리 먹물이 아니고 자기 아이디어가 없으니까 자기 의견은 내놓지 못하고 오직 남을 평가하려는 태도 말이다. 잘나빠진 평론가들 말이다. 선수로 뛸 능력은 없고 심판 호루라기는 샘이 나고.

 

대놓고 심판을 자처하는 자 많다. 선수가 필요하다. 이곳에 와서 엉겨보려면 뭐라도 참신한 자기 아이디어를 들고 와야 한다. 이곳은 연구소다. 아이디어 생산을 담당한다. 생산력이 있어야 한다.

 

각자 자기 재료를 들고 와서 가공하는 거다. 배추를 가지고 온 사람은 김치를 만들 것이고, 진흙을 가져온 사람은 도자기를 구울 것이다. 가져온 자기 재료로 요리 하는 거다. 구조론은 화력좋은 가마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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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유형이 있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아이디어가 없다. 아이디어가 없으니 힘으로 어찌 해보려고 한다. 무개념 좌파들 역시 아이디어가 없다. 아이디어가 없으니 서구에서 들여온 남의 아이디어로 중개상 차린다.

 

진짜배기는 자기 아이디어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디어도 족보가 있다. 서구의 아이디어는 따져보면 결국 헤브라이즘 아니면 헬레니즘이다. 70프로 거기서 나온다. 나머지는 동양에서 베껴간 거.

 

다 출처가 있고 소스가 있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도록 뇌구조가 세팅되어 있다. 그들은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지 못한다.

 

문제는 아이디어 역시 세력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그 세력이 일단 서구중심, 학계중심이다. 진보는 일단 서구와 끈이 닿아있고 또 학계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있다. 보수는 없다. 아이디어의 샘인 서구 지식집단과 끈이 떨어져 있다. 그들은 대개 산업 쪽에 붙어서 하부구조로 기능한다.

 

한국의 진보 역시 제대로 된 아이디어의 원천이 없다. 저쪽동네에 여불때기로 이상하게 한다리 걸치고 붙어설랑은 남의 호스에 빨대 꽂아서 쪽쪽 빨아먹기는 하는데 그래봤자 기갈이나 면할 뿐이다.

 

자기 샘을 가져야 한다. 자기 족보를 가져야 한다. 동양적 사고로 눈을 돌려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진보들이 뇌구조가 동양적 뇌구조로 세팅되어 있어서 서쪽 수입선과 호환성이 떨어진다는데 있다.

 

저쪽 동네 아이디어의 원천이라 할 헤브라이즘이나 헬레니즘, 2차 아이디어 집산지인 르네상스를 옳게 이해하는 한국인은 없다. 오천만 중에 한 명도 없다.

 

실정이 이러하니 남들이 빼먹을거 다 빼먹고 남은 찌거기나 고아서 궁물이나 들이킬 뿐이다. 한국인이 파리로 건너가서 패션이라도 배우면 금방 따라잡아 본토백이들보다 실력이 낫다. 서울로 돌아오면 도로 맹탕.

 

왜? 원본 소스를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파리에서는 그쪽 분위기에 녹아들어가서 집단지능을 이루므로 아이디어가 꽃피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면 집단지능이 없으므로 원점으로 퇴행해버린다.

 

기업에서 인재를 스카웃 하더라도 아예 인수합병을 해서 두뇌그룹 전체를 끌어와야지 한 두명의 출중한 능력자만 빼와서는 프로젝트가 진행이 안 되는 이치와 같다. 뒤로 빼온 한두명의 인재는 지가 잘나서 그동안 실적이 좋았던줄 알지만 실제로는 집단지능의 효과를 본 것이다. 그래서 옮기면 먹튀소리 듣는다.

 

어느 세계든 한다리 건너면 1/5로 가치가 절하된다는 이론이 구조론이다. 심지어 가까운 중국 것도 한국으로 넘어오면 맹탕이 되고 만다.

 

천자문 첫구절부터 번역이 엉터리다. 하늘천 따지하고 시작하지만 검을현이 검다는 뜻만은 아니고 누르황이 누르다는 뜻만은 아니다. 김용옥이 노자를 번역해봤자 제대로 될 가능성은 없다.

 

뇌구조가 다르다. 중국인들은 의미를 중요시 하므로 어떤 문제든 전체적인 컨셉을 압축하는 습관이 있다. 글자 한 자에 압축한다. 한국인은 풀어내는 습관이 있어서 애초에 관점이 다르다.

 

현묘(玄妙)나 현빈(玄牝)의 현(玄)은 가물가물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 나타난다는 느낌이 있다. surprise의 뉘앙스가 있다. 탄생의 의미가 있다. 생명의 탄생과 같은 놀랍고 신통한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것은 이게 전체의 컨셉이라는 거다. 현(玄)은 현(現)과 가깝고 황(黃)은 황(荒)과 가깝다. 우리가 검을 현(玄)을 ‘검다’고 풀이할 때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이다. 표면의 색깔이 검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은 본질을 이야기한다. 표면의 하늘색깔이 검은 것이 아니라 신비한 하늘의 속성이 검다는 거다. 애초에 다른 지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대화가 안 된다. 


하여간 옆동네 천자문도 모르고, 공자 맹자도 모르면서 멀리있는 서양사람의 생각만 베끼려 하니 그게 아무리 베껴도 끝이 없다.

 

원본 소스를 들여오지 못하고 2차, 3차 가공품만 들여오기 때문이다. 결론 나왔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우리 것으로 원본 소스를 구성해야 한다. 아이디어 원천, 아이디어의 샘을 파야 한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구조론은 아이디어 공장이다. 포드시스템으로 대량생산한다. 누구든 자기 재료만 가져오면 가공할 수 있다. 생산할 수 있다. 창의할 수 있다. 낳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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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방문하면 신통한 아이디어라도 들고 왔는가 하고 잠시 관심을 가져준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도 배우는 것은 있다. 그러나 대화가 3분이 넘어가기 전에 아이디어 빈곤이 들통나고 만다.

 

대부분 자신이 소속한 진영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중계방송할 뿐이다. 또는 엉겨붙을 빌미를 잡으려고 기도 안 차는 심사관 흉내를 낸다. 그래도 얻는 것은 있다. 진작 내 가슴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낼 찬스가 된다.

 

개에게도 배울 것은 있고 소에게도 배울 것은 있다. 그러나 개나 소가 무슨 신통한 지식이 있어서 무려 가르침을 베풀겠는가? 다만 잠시 내 안의 것을 끌어낼 계기로 삼을 뿐이다.

 

 

합리적 가치와 미학적 가치

 

합리적 태도만 고집한다면 어리석다. 남성 위주 마초적 발상일 수도 있다. 합리적 태도란 원인과 결과, 동기와 목적을 일치시키려는 태도이다. 그런데 이건 목적지향적인 남성 위주의 사고다.

 

데이트를 한다고 치자. 여자가 질문을 던진다면 실은 거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자 함이 아닌 경우가 많다. 여자가 거미에 대해 묻는다. 유식한 남자가 거미의 학명부터 시작해서 독이 있는 거미와 없는 거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을 다 동원하여 장관설을 푼다면 어떨까?

 

이거 영화에 많이 나오는 장면 아닌가. 목석같이 고지식한 남자. 여자 마음을 읽지 못하고 결국 데이트에 실패하는 흔한 장면.

 

‘나 예뻐?’ 라고 질문했다면, 예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가 궁금해서 질문한 것이겠는가? ‘이 여자 저번에 내가 예쁘다고 정답을 알려줬는데 왜 또 묻지? 그새 까먹었나?’ 이건 아닌 거다. 질문이 아니다.

 

‘이 옷 나하고 어울려?’하고 질문했다면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보고자 한 질문이겠는가?

 

시골사람이 ‘밥 먹었는가?’ 하고 인사하는데 고지식한 도시청년이 ‘안 먹었습니다’ 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가 망신당했다는 내용의 소설 한 꼭지가 기억난다.

 

여성이 원하는 것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공감과 호응이다. 대화 자체를 즐기는 것이며, 단지 남자의 밝고 유쾌한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며, 호응하는  분위기 속에서 머무르고 싶은 것이다.

 

물론 나의 이러한 치밀한 분석도 여성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다. 여기까지 읽고 짜증난 여성 독자들 많으리라.

 

합리주의 좋다. 그러나 지식인의 안전한 동굴일 수 있다. 도피로일 수 있다. 세상의 한쪽 절반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편벽되어 있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더 높은 세계로 진도 나가줘야 한다.

 

모든 일에 분명한 원인과 그에 따른 결과 그리고 분명한 동기와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의 대화는 질문과 답변이 단선적인 대칭구조를 가지지만 여자의 대화는 동심원 구조다. 더 복잡하다. 더 높은 경지다.

 

여자의 질문은 때로 답변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여자의 동기는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쪽을 바라보고 저쪽을 이야기 한다. 철이 들면 알게 된다. 여러 번 채이고 난 다음에.

 

여자는 남자의 답변이 맞는 소리인지 허튼 소리인지를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그 목소리가 어떤 톤의 굵기이며, 그 얼굴빛이 얼만큼 상기되어 있는지를 살필 뿐이다.

 

여자는 오히려 더 어긋난 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남자가 호응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비틀어서 남자가 따라오는지를 본다.

 

그런거 모르고 탄식하며 다음 아고라 상담 사이트에 ‘도대체 여자는.. ’ 하는 제목으로 글 올리는 남자 많다. 정 모르겠다면 남녀탐구생활이라도 보시라.

 

결론적으로 여자의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컨셉이자 화두이다. 그걸 포착하는 것이 개념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대개 개념이 없다. 단지 문제의 해결이 있을 뿐.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15]aprilsnow

2010.04.29 (12:06:56)

ㅎㅎㅎ 맞소!
항상 왕통쾌하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10.04.29 (16:10:04)

ㅎㅎㅎ 그런거 다 아는 남자 만날까 두렵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15]aprilsnow

2010.04.30 (00:17:14)

ㅋㅋㅋ 몰라도 속터지고 알아도 부담스러워?
알고 모르기 이전에 통하면 그만~  끼리끼리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0.04.29 (16:42:15)

남이나 여나 나를 아는 것이 숙제.

사랑에 빠질 때, 다른 세상으로 나가 볼 창이 잠시 열리지만,

대부분은 내가 왜 이럴까, 뭐지, 잠간 멈추었다 가던 길 가고.

삶도 훅 가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15]aprilsnow

2010.04.30 (00:18:30)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나자신과 온우주를 사랑하는 것과 같아.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0.04.30 (11:16:15)

女님의 사랑은 그러한 듯 합니다. 男과는 결이 다르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5.03 (14:26:17)


구조론을 꿰는 남자는 연애를 잘할 확률이 높아지는 건가요.?..ㅋㅋ
아니면 너무 알아서 잘 안되는 것일까요...?

언젠가부터 남녀의 관계보다 인간과 인간이 대화하는 그런 개념으로 흘러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네요.

하지만 남녀의 사고 방식이 조금은 차이가 나는데 그래도 남녀는 만나야 하는 것이고 보면
여자와 남자를 이해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것도 되겠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5.03 (16:52:45)


일단 말이 많아지는데 그건 나쁘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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