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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752 vote 1 2017.11.10 (00:24:51)

    에너지는 이야기다. 


    지구가 평평하다는건 참으로 당혹스러운 이야기다. 직관적으로 이건 아니잖아 하고 거부감이 든다. 속이 답답해진다. 머리가 아파온다. 우리의 뉴턴 형님이 멋지게 해결했다. 중력의 발견이다. 속이 다 시원하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우주무한문제 역시 해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 빅뱅의 발견이 단서가 된다. 그러나 우주무한 문제는 아직 해결된게 아니다.


    구조론이 답을 제시한다. 우주는 평평하게 보일 뿐 평평하지 않다. 무슨 뜻인가? 겉보기 거리는 휘어진 시공간에 의해 그렇게 보일 뿐이다. 거리가 없다. 우주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의 거리는 정확히 0이다. 안은 바깥이요 바깥은 안이다. 우주의 어느 방향이든 계속가면 원위치로 돌아온다. 이것이 저번에 말한 뒤집어진귤껍질이론과 두꺼비등껍질이론이다.


    구조론은 모든 무한을 부정한다. 무한은 확산방향인데 확산방향은 죄다 틀렸다. 확산방향이란 관측자가 안에 있다는 것이다. 관측자가 안에 있으면 자기소개다. 기차를 타고 가는 승객이 창밖의 가로수를 보고 왜 가로수가 뒤로 가는 거지 하고 헷갈려 하는 것과 같다. 기차를 벗어나야 한다. 관측자를 배제해야 한다. 지구 안에서 보고 우주 안에서 보면 곤란하다.


    무한의 문제는 하나 더 있다. 물질의 크기 문제다. 지구가 평평하면 안 되고 우주가 무한하면 안 되고 물질이 크기를 가지면 안 된다. 물질은 어떤 크기든 크기를 가질 수 없다. 이 문제는 필자가 열일곱 때 결론을 내린 것이 구조론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계기가 되었다. 과연 물리학계의 보고도 점점 크기가 없다는 쪽으로 가고 있다. 크기가 없으면 위치가 없다.


    구조론은 그냥 위치가 없다는 게 아니라 위치가 있으면 안 된다는 거다. 그거 매우 곤란한 문제를 야기한다. 내가 신이라고 치고 우주를 창조할 수 없게 되는 문제다. 위치는 주변과의 관계에 의해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관측이 위치를 도출한다. 사람이 관측해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거나 산 것이 아니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위치를 도출하게 한다.


    구조론은 밖에서 안이다. 밖이 먼저 결정되어야 안이 도출된다. 위치는 안이다. 안이 먼저 있을 수 없다. 너와 내가 씨름을 한다고 치자. 샅바를 잡으면 중심점 입자가 도출된다. 샅바를 잡기도 전에 중심점이 있으면 곤란하다. 그건 원리적으로 안 되는 거다. 공이 그라운드 가운데 놓이면 선수가 모이는 게 아니고 반대로 선수가 모이면 공을 가운데다 딱 놓어둔다.


    모든 위치라는 것은 상호작용의 중심점이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질이 먼저 세팅되고 다음 입자가 확정된다. 엄밀히 말하면 동시에 결정되지만 관측하면 시간차가 생긴다. 물질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위치가 있다는 말이고 위치는 닫힌계의 확정에 의해 2차적으로 도출된다. 위치가 있다면 물질과 공간과 시간은 원래 있는데 이걸 반죽해서 우주를 창조했다?


    이건 신이 우주를 창조하기도 전에 물질과 공간과 시간이 있었다는 셈이 된다. 하여간 창세기에는 태양도 없고 지구도 없는데 날짜가 있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은 원래 있었는데 신이 적당히 주물러서 조화롭게 배치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창조론이 아닌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재활용론이라고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우주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문제다.


    원래 있는 것은 없다. 구조론은 모든 무한을 부정한다. 근본적인 방향을 안에서 밖이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입자가 아닌 질에서 시작된다. 에너지는 질이고 질은 모두 연결되어 하나이므로 크기는 없다. 입자는 2차적으로 도출된 것이며 상대적으로 위치가 정해진다. 입자는 무게중심이고 중심은 원래 없는데 중력작용으로 생긴다.


    중력이 없으면 중심을 정할수 없다. 답은 완전성에 있다. 에너지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끝이 난다. 대칭과 호응으로 딱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라진다. 우주는 언젠가 사라진다. 이야기가 끝날 때 사라진다. 불균일이 0에 도달할 때 사라진다. 무한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세 가지 무한을 제시했다. 지구평평문제와 우주무한문제와 물질크기문제다.


    나는 이 세가지를 모두 부정했다. 모든 무한을 부정한다. 모든 확산방향을 부정한다. 별거 아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과 기독교에 잡혀 있다. 플라톤은 이상주의자다. 그는 완벽주의를 발명했다. 동양의 중도사상과 다르다. 플라톤의 이상주의가 기독교에 옮겨붙었다. 신은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신의 피조물인 우주도 이상적인 형태라야 한다.


    두 과학자가 지구의 궤도를 계산하는 문제로 다투었다. 한 사람이 뉴턴을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자 뉴턴이 대꾸했다. 어? 그거 내가 20년 전에 계산해봤는데 지구궤도는 정원이 아니라 타원이더라고. 그 말을 듣고 질문한 과학자는 충격을 받아 기절할 정도가 되었다. 평생을 걸고 다른 과학자와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는 판에 뉴턴이 20년 전에 이미 풀어버렸어.


    근데 왜 20년간 감추고 있었지? 뉴턴이 말했다. 나 삐쳤어. 20년 전에 내가 중력은 지구 중심에서 멀수록 가벼워진다고 했더니 어떤 얼간이가 나를 바보취급했어. 중력은 용수철과 같은 것이라서 팽팽하게 당겨질수록 강해지므로 당연히 지구에서 멀수록 중력이 강해진다고 우기잖아. 말이나 되는 소리야? 나 과학 안해. 연금술 할거야. 이렇게 된 사단이었다.


    뉴턴을 찾아온 과학자가 겨우 설득해서 프란키피아를 출판하게 했는데 뉴턴은 성의없이 몇자 끄적거려 던져주었을 뿐이다. 그렇다. 뉴턴은 20년간 혼자만 알고 있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지구궤도가 정원이라는건 신이 완벽주의자라는 말이다. 지구가 타원궤도를 가진다는 건 신이 술 쳐먹고 우주를 대강 만들었다는 의미다. 함부로 비밀 털어놓다 죽는다.


    신이 자신을 모욕했다고 천벌 내리면 어쩔거여? 뉴턴은 신의 치부를 공연히 들추고 싶지 않았던 거다. 시간이 휘어지고 공간이 굽어진다는 건 동양에서 흔한 이야기다. 그런데 왜 서양 과학자들은 시간과 공간이 모눈종이 눈금처럼 가지런하다고 믿었을까? 신에 대한 불경이 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이라는 게 한번 정해지면 무섭다. 플라톤이 만든 고정관념이다.


    그렇다. 우리는 근본적인 의심을 던져야 한다. 완전성의 문제다. 완벽한가? 우주는 완벽한가? 완벽하지 않다. 완벽이란 없다. 수학은 완벽하지 않다. 파이값은 아무리 계산해도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다. 무리수를 발견했을 때부터 우주의 완벽성은 깨져버렸다. 이에 피타고라스도 곤란해져서 그의 제자들이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를 암살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나는 유물론적 실재론자들이 같은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본다. 그들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는다. 플라톤이 사고쳤다. 질료와 형상의 이분법을 제시한 것이다. 구조론에 반하는 오만한 태도다. 동양의 중도나 중용은 모두 이러한 이분법을 반대한다. 주자와 퇴계는 이분법이니 반역자다. 사실이지 이분법은 완래 완전성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를 완전으로 놓고 기를 불완전으로 놓으면 된다. 이데아를 완전으로 놓는 플라톤과 같다. 신을 완전으로 놓고 세상을 불완전으로 놓으면 기독교다. 이분법은 필연 확산의 문제를 야기한다. 봉합되지 않는다. 무한의 문제다. 이 문제를 회피하려면 신으로 하여금 피조물을 창조하게 시킨 다음에 신을 제거하면 된다. 이러한 돌려치기 수법이 유물론적 실재론이다.


    이 경우 물질이 완전한 대신 관측자인 인간이 불완전해진다. 즉 물질과 관측자로 이분법이 적용되는 것이다. 딜레마다. 나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대충 헛소리나 하고 있다. 노자처럼 물에 물타고 술에 술타고 싱거워진다. 밑도 끝도 없는 소리나 해댄다. 정확하게 결론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너죽고 나죽고 까무러치고 뒤집어지기다.


    대가리가 깨질 때까지 생각을 쌓아야 한다. 노이만이 천재냐 아인슈타인이 천재냐 하는 논의가 있다. 천재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기발한 생각을 해내는 아인슈타인형 천재다. 하나는 척척박사 노이만형 천재다. 아이큐는 노이만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은 집념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단지 뉴턴이 만들어놓은 플라톤의 덫을 파훼했을 뿐이다.


    수학적으로 낱낱이 증명하는 것은 정말이지 피똥싸는 업적이지만, 그걸 떠나서 전복적 상상력이 중요하다. 완전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치면 된다. 공간과 시간이 원래 있다는 개념을 깨면 된다. 관측자의 개입을 찾아내면 된다. 물질운동과 관측자와의 상관관계가 공간 혹은 시간으로 표현되는 것이며 실재하는 건 어디까지나 물질운동이지 공간과 시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실재는 질이지 입자가 아니며 에너지이지 물질이 아니다. 에너지는 수학이므로 크기가 없다. 즉 위치가 없는 것이다. 위치는 사건 안에서 정해진다. 관측자가 들여다본다는 것은 표현이고 사실은 외력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위치가 확률적으로 도출되는 것이다. 문제는 역시 완전성이다. 게임이 작동하므로 확률방법이 그 어떤 방법보다도 완전하다.


    무엇인가? 무리수가 등장했을 때 피타고라스 학파가 머리칼을 쥐어뜯었듯이 무한은 인간을 곤란하게 한다. 지구가 타원궤도를 가진다는 사실이 선한 기독교도들을 곤란하게 한다. 확률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이 플라톤적 사고에 빠진 이분법 환자들을 곤란하게 한다. 그들은 불완전을 깎아서 완전을 세운다. 흑인을 차별해서 백인을 빛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일본을 비난해서 한민족이 위대해진다는 식이다. 여자를 깎으면 남자가 위대해지는가? 장애인을 깎으면 비장애인이 완전해지는가? 조선족을 비난하면 한국인들이 잘난 사람이 되는가? 누군가를 눌러 위로 올라가서 완전해진다는 얼빠진 플라톤주의자들을 때려죽여야 한다. 그런 차별 자체가 불완전의 증거다. 물질적인 완전, 확산방향 완전은 우주안에 절대 없다.


    게임의 완전, 수렴방향의 완전, 대칭의 열기와 호응의 닫기에 의한 일치의 완전, 에너지 순환에 의한 완전이 진짜다. 완전은 이기는 것이다. 확률이라는 애매한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도 세상이 탈없이 돌아가는 것은 블록체인이 이겨버리는 방법으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블록체인을 파훼할 수 있지만, 비용문제가 걸려 절대 깨지 못하는 구조다.


    즉 우주가 확률이라는 톱니없는 바퀴에 의해 작동하지만 톱니바퀴가 엄정한 스위스제 기계시계보다 잘 작동하는 이유는 게임의 법칙에 의해 작동하며 게임에 이기려면 비용조달에 걸리는데 엔트로피로 비용조달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비용을 저축해 놓았다면 일시적으로 이길 수 있다.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는 충분히 교란이 된다. 우주는 교란될 수도 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우리는 자신에게 확고한 자아가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사실은 인간 안에 여러 개의 자아가 있으며 여러분의 어떤 일관성은 그 자아가 지속적으로 이겨온 것이다. 술 먹으면 개가 되는 이유는 다른 자아가 이겨버리기 때문이다. 뇌에 전기자극을 가한다든가 등으로 다른 자아가 이기게 만들면 당신의 성격이 갑자기 바뀔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나를 나라고 인식하고 규정하는 틀이 깨질 수 있다. 당신이 어떤 마음을 먹은 것은 당신의 뇌 안에서 그쪽 팀이 이긴 것이다. 이겼다는 말은 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약을 먹거나, 술을 먹거나, 햇볕이 좋거나, 분위기를 타거나 하면 다른 자아가 이겨버릴 수 있다. 그 경우 당신은 변한다. 깨달음은 당신 안의 다른 자아가 승리하게 하여 당신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구조론은 상당부분 환경결정론을 주장한다. 환경에 따라 어떤 자아가 즉 어떤 당신 안의 일관성이 이길지 정해지는 것이며 환경의 영향을 받아 아베를 만나면 악동 자아가 나오고 문재인을 만나면 점잖은 자아가 나오는 것이다. 대부분 인간은 무의식 중에 환경의 영향을 받아 의사결정하는 것이며 나라는 입자가 없고 나라는 정체성이 없이 즉석에서 도출된다.


    나는 내 안의 중심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라 나와 타자의 경계선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며 타자의 위치에 따라 나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며 그러므로 나와 타자의 경계선을 정하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게임체인지에 따라 다른 자아가 도출되는 것이며 그것이 깨달음이다. 관측자 바깥의 유물론적 물질적 실재론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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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8]아제

2017.11.10 (09:45:35)

엄청난 일갈이오. 무한을 쳐내버리다니.

존재는 시작과 끝이 있다. 왜냐하면 존재는 스토리니깐..

이야기에 시작과 끝이 있듯이..사건에 기승전결이 있듯이..

요즘 동렬옹의 글에 정신이 꽉 끼이는 느낌..좋소..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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