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지라이더에서 두 젊은이 와이어트와 빌리는 오토바이 두 대를 마련해 LA에서 뉴올리언즈까지 여행을 떠난다. 마디그라 축제를 보겠다는 소망을 안고. 중간에 주정뱅이 변호사 조지가 합류한다. 그들은 시골사람들에게 습격당한다. “우리가 그렇게 위협적인가? 겁을 먹다니.” “네가 아니라 네 겉모습에 놀란 거야.” “그래봤자 머리 좀 기른 것뿐이잖아.” “너한테서 자유를 본 거지.” “자유가 뭐 어때서?” “그래, 그건 문제없어. 하지만 자유를 말하는 것과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어. 억눌린 시골사람들 앞에서 말 잘못 꺼냈다간 죽기살기로 달려들어서 떠들고 또 떠들어댈 거야. 그들은 진짜로 자유로운 사람을 겁내거든.
주정뱅이 변호사 조지로 나온 잭 니콜슨의 대사가 귀에 꽂힌다. 그들은 진짜로 자유로운 사람을 겁내거든.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남부의 보수농민과 진정으로 자유로운 히피가 충돌하고 있다. 영화는 미국사회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자유를 떠들기 좋아할 뿐 진짜 자유를 겁낸다. 진보의 자유와 보수의 자유는 다르다. 진보는 남이야 동성애를 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는 자유를 말하고 보수는 남이야 노예를 부리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는 자유를 말한다. 보수주의는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자연스러운 본능이므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고 그게 본능이므로 당연히 극복해야 한다. 인간은 교육되어야 한다. 본능을 따르면 안 된다. 왜?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 때문이다. 자동차의 핸들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마음대로 돌릴 수 있지만, 집단의 의사결정은 마이너스로만 가능하다. 무언가 제거하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자칫 인간이 제거될 수 있다. 의사결정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그들은 타자를 제거하려 든다. 깨달아야 할 사실은 현대인의 자연스러운 삶이 극도로 교육되고 개량된 모습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원래 이렇게 살지 않는다. 인간은 원래 이런 동물이 아니었다. 부족민은 대개 하루에 4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다. 현대인은 길들여졌다. 원시의 본래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 다시 그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 시대의 소박한 삶이야말로 이상적인 삶이라는 상상은 작가들의 것이다. 전혀다. 소박한 삶은 오히려 죽음과 가깝다. 원시의 삶에 인간의 수명이 이토록 길지 않다. 정확히는 서열본능이다. 자기보다 약한 타자가 자기 말을 안 들으면 곧 죽인다. 중요한건 타자로 여긴다는 점이다. 시골사람에게는 낯선 사람이 모두 타자다. 오토바이를 타고 머리를 기른 채 나타난 외지인을 마을 사람 모두가 쳐다본다. 여자아이 몇 명이 주인공 일행과 어울리려고 한다. 그걸 지켜본 사내들이 은연중에 살기를 내비친다. 주인공들은 그 마을을 떠나지만 시골사람이 밤중에 습격하여 조지를 살해한다. 두 젊은이도 지나가던 농부에 의해 이유없이 살해된다. 자유롭다는 것은 우월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든 자유를 추구한다. 우월하려는 것이다. 자기보다 약하게 보이는 자가 자기보다 우월하게 행동하면 죽인다. 자기가 권력서열에서 위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려는 원숭이의 서열본능이다. 인간은 지배보다 복종을 원한다. 우리는 많이 길들여져 있다. 다들 신호등을 잘 지킨다. 버스 앞에서 줄을 잘 선다. 시스템에 복종하고 있는 것이다. 맨손으로 먹어도 되는데 숟가락으로 먹는다. 아무데나 싸도 되는데 화장실에 가서 싼다. 인간은 훈련되어 있다. 궤도에서 이탈했을 때 소박하고 편안한 자연인의 삶이 있는게 아니라 곧 죽음이 있다. 무엇인가? 인간은 시스템의 약점을 보려고 한다. 주인공들을 죽인 미국 촌놈들은 시스템의 어떤 약점을 보고 공격한 것이다. 도시는 시스템이다. 인간은 길들여졌다. 시스템에 복종하고 있다. 촌놈들은 미처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길들여진 도시 아이들이 약해 보인다. 약한데도 말을 안 듣는다. 죽인다. 자유가 두려운게 아니라 시스템의 힘을 두려워한다. 도시의 공기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했다. 시스템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시스템이 인간에게 힘을 준다. 도시인은 힘이 있다. 그래서 자유롭다. 그 힘을 질투하는 거다. 자기보다 약해 보일 때 공격한다. 도시인이 약점을 보인 거다. 농촌도 시스템이고 도시도 시스템이다. 히피 청년 몇이 짧은 시간에 마을 사람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시스템을 건드린 것이다. 인간은 언제든 시스템의 약점을 보고 공격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시스템을 개량해야 한다. 인간은 종종 자신이 길들여진 존재라는 사실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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