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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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4957 vote 0 2009.01.02 (14:31:12)

영남정서, 무엇이 문제인가?

‘퇴계글과 이어집니다.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므로 일부 내용이 부자연스럽습니다.

영남의 지세는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여 서울로부터 등을 돌린 바 배역의 형세를 취하고 있다. 특히 영주-안동-상주 일대의 지형은 허파꽈리처럼 생겨 있다. 구글 어스를 들여다 본 바로 말하면 세계에 드문 독특한 지형일듯 싶다.

어느 마을이든 입구만 틀어막고 있으면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형세가 된다. 영국, 일본의 마이웨이 노선이 그렇듯이, 또 과거 미국의 먼로주의와 부시의 일방주의가 그렇듯이, 고립된 나라들만이 가지는 특유의 폐쇄성-배타성-오만함을 영주-안동-상주 일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에서 노예해방이 일찍 일어난 이유는 대륙이 넓어서 흉년이 들고 유랑민이 1백만 이상의 단위로 발생하면 누구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황건적이 휩쓸고 가는 판에 노예를 붙잡아둘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 천하에 대란이 일으나므로 대치가 필요한 거다. 대륙에는 언제나 개혁적인 사고의 바람이 분다.

그러나 허파꽈리 지형은 다르다. 농토가 부족하면 야트막한 뒷산을 개간하면 된다. 이웃간에 분쟁의 소지가 적다. 개울이 작아서 홍수가 일어날 일도 없고, 내논에 물대기식 물싸움을 벌일 일도 없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불필요하다. 대재앙이 없으니 대타협도 없다. 도무지 개혁이 불필요하다. 백범이 호남에서 보았다는, 농번기에 농기를 앞세우고 풍물잡히며 협동하는 공동체문화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수 틀리면 허파꽈리처럼 생긴 마을 입구 틀어막고 상종 안하면 그만이다. ‘잘못되면 다 같이 죽는다’는 위기감이 없고 ‘잘 되면 다 같이 이득을 본다’는 보편주의가 없다. 너는 너, 나는 나, 각자 자기 앞가림만 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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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떠든게 무엇인가? 이문열은 소위 영남 남인의 후예인데 남인은 조선왕조 내내 찬밥이었고 야당이었으며, 지금(지난 10년 간)도 야당이며 그래서 이른바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며 DJ-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필자는 소위 '영남정서'라고 포장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많은 이문열들을 비판하는 거다. 실제로 영남지역에 가서 안을 들여다 보면 알게된다. 그들은 타협하지 않으며 타협할 이유도 없고, 조선왕조 500년 동안 타협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전부 아니면 전무’의 전략을 고수할 것이라는 사실을.

소백산맥 남쪽에 똬리를 틀고 등돌리고 앉아서, 말 안하면 그만, 배짱 튕기는 거다. '싫음 말고'다. 왜 타협하지 않는가? 아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아쉬운 사람이 불을 끄는 법. 그들은 불을 지를 뿐 끄지 않는다.

신라귀족이 고려귀족으로, 조선양반으로 이어져 왔다. 그 맥이 계속 이어진다.  이천 년간 굴복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굴복하겠는가? 영남 남인 뿐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폐쇄-배타-오만한 집단은 있다.

영국이 왜 EU와 어울리지 않고 혼자 노는가? 유럽의 왕따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독불장군이다. 왜? 섬으로 고립되어 있으니 상종 안하고 등 돌리면 그만이다. 절교하면 그만이다. 남들이 유로를 쓰더라도 자기네는 악착같이 파운드화를 쓰면 그만이다. 아쉬울 거 하나 없다.

양차세계 대전만 해도 그렇다. 대륙에서 일어난 재앙의 불똥이 영국에는 옮겨붙지 않았다. 싸워도 적의 땅에서 싸울 뿐 본토가 잿더미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기들은 안전하다 이거다. 그러므로 협력할 이유가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시아가 입을 모아 일본을 욕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혁명의 바람이 중국에서 마오이즘으로 불타오르고 베트남까지 휩쓸었다지만 일본으로 불똥이 건너붙을 조짐은 콧배기도 없다.

한반도라는 안전판이 일본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 보호의 이익을 누리면 그만, 공산주의 바람을 막는 싸움은 한국인이 몸빵으로 하고 돈은 뒤에서 일본이 챙기면 그만. 수 틀리면 ‘탈아입구’ 외치면 그만. 아시아와 등돌리고 놀지 않으면 그만. 개무시하면 그만. 일본이 아쉬울게 있나?

소백산 남쪽에 똬리를 튼 영남 남인의 정서도 그렇다. 죽령 막고 새재 막고, 교통 끊으면 그만. 그놈의 서울노론이 독식한다는 빌어먹을 과거시험은 안 보면 그만이다. 아쉬울 거 하나 없다. 그 정서가 변할까?

영국, 일본이 변하던가? 영국이 EU에 고개 숙이기 전에, 일본이 아시아에 사죄하기 전에 영남정서가 변하는 일은 결단코 없다. 있을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세팅되어 있다.

우리가 바보인가? 고립된 영국이 안변하고 고립된 일본이 안변하는걸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 고립주의-배타주의-우월주의 영남정서가 하루아침에 변하길 기대할 정도로 순진한가? 우리가 어린애인가?

영국이 EU와 손잡고, 일본이 아시아와 손잡는 날에 필자의 말이 틀렸다고 인정하겠다. 물론 영국에도 생각있는 사람이 있고, 일본에도 양심적인 사람이 있다. 영남에도 생각있는 사람은 제법 있다. 그러나 영국의 주류, 일본의 주류, 영남주류는 변하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다. 방법은? 깨는 수 밖에 없다. 갈라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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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이 '안동김씨' 이런 말도 있으니까 조선왕조를 영남이 좀 해먹은 걸로 아는데 그렇지 않다. 조선왕조는 서울이 독식했다. 역대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을 보라. 서울이 다 먹은 와중에 서북이나 함경도, 강원도는 입맛도 못다시고 가만 있었고, 호남도 마찬가지였으며, 유일하게 영남이 간헐적으로 숟가락 디밀은 거다. 경기, 충청은 그나마 서울 양반들의 처가집 노릇 정도는 했고.

조선왕조 500년을 서울이 독식했다. 권율, 이순신, 원균, 유성룡, 김성일 등은 이웃에 살았다. 한 동네 출신이 다해먹었다. 노론이 서울에 있다보니까 노론탓을 하는데 이건 무리다. 신라는 백프로 왕족이 먹고, 고려는 백프로 귀족이 먹고, 조선은 서울중심 훈구귀족이 뼈다귀까지 발라 먹었다. 이것이 봉건국가다.

세계 어느나라에 귀족 아닌 사람이 먹은 일 있나? 당시 관료는 거의 서울에 살았는데 서울정권을 당연히 서울이 먹지 지방이 먹겠는가? 성균관이 서울에 있고 왕자가 성균관에서 공부하는데 자기 급우 아닌 애를 끼워줄까?

영남이 간헐적으로 숟가락 디밀은 것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봉건왕조의 근본적 한계를 노론의 이념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이념과 노선은 노론이 옳고 남인이 틀렸다. 다만 노론의 장기집권으로 인한 타락, 숙종대 줄기차게 전개된 당쟁의 폐해를 들어 노론을 비판할 수는 있다.

하물며 세도정치의 등장이후 사색당쟁은 의미가 없어졌다. 순조 이후 과거제도는 이름 뿐이었고 외척이 사사로운 연고 중심으로 독식한 거다. 그 지점에서 노론의 이념은 명백하게 파산했다. 조선왕조의 혼은 사실상 끝장난 거다. 이후 나타난 친일파 문제를 노론의 이념과 연계시켜 거론함은 타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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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만 해도 관료는 개국공신 후예들만 될 수 있었다. 과거제도는 그냥 흉내였을 뿐이다. 연이은 정난으로 훈구공신이 태산처럼 쏟아져서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거기에 사림이 밥숟가락 들고 끼어든다는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이유는 중종반정 때문이다. 정통성 없는 중종이 연산군 쫓아내고 자리를 차지하려니 세력이 약해서 사림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는 기만술에 불과하다. 사림을 이용해 권력을 다지고 다시 축출하는건 공식이다.

절대왕정 시대에 세계사에 없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기묘한 선비국가의 이상을 농담으로 잠시 꺼냈다가 조광조 등이 사뭇 진지하게 나오자 '아니 이것들이 농담을 진짜로 믿고 기어오르네. 야 애들에게 주제파악 좀 시켜줘라.' 이렇게 된 거다. 사도세자의 아들로 외척의 등쌀에 권력기반을 다지지 못해서 남인을 끌어들여 퇴행적 수구개혁을 자행한 정조 역시 마찬가지다.

정조 대에 홍국영의 세도정치 등장 이후 조선의 선비정치-공론 시스템은 끝났다. 그 이후의 문제를 노론의 이념 탓으로 돌린다면 허무한 거다. 정조의 수구개혁이 조선의 선비-공론 시스템을 사실상 박살낸 거다.

무엇보다 역사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자의 이원론에 따른 차별주의 이념은 중원의 옥토를 오랑캐에게 뺏기고 남송으로 찌그러진 주류한족의 비애를 반영한 즉 보편성 없는 특수 이데올로기다. 몰가치하다.

퇴계의 차별주의 역시 서울의 거듭된 정난에 넌더리를 내며, 개나 소나 다 끼었다는 훈구귀족에 편입되지 못하고, 소백산맥 남쪽으로 쫓겨내려와 고려귀족의 설움의 달랜 구엘리트 집단의 비애가 스며 있는 특수 이데올로기다. 가치없다.

조선 사림의 주류가 화담-율곡을 중심으로 하여 차별을 반대하는 일원론으로 발달해 간 것은 서울이 그나마 개방된 곳이며, 명대의 양명학과 청대의 훈고학 등 대륙의 새바람이 바로 미치는 곳이어서, 다양한 세력이 이합집산하며 끊임없이 오류시정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시행착오에 따른 오류시정이라는 합리주의 시스템 안에서 기능해왔던 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거다. 그나마 역사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었다는 거다. 일정부분 시대정신과 호흡했다는 거다. 세도정치 이후 끝장났지만.

반면 퇴계-남인-영남정서는 퇴계에 의해 한번 천장이 만들어지고 난 후 그 천장을 뚫지 못하고 고답과 정체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에게는 대륙의 신선한 바람이 공급되지 않았고 그것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인조의 반정-효종의 북벌로 이어지는 격변의 소용돌이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그들은 역사의 현장에 발을 담그기를 거부하는 소극성을 보였다. 시대정신과 교감하지 못하고 구석에 짱박혀 세월을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정신과의 교감을 거부하는 그 배부른 이문열들이 지금에 와서는 ‘인터넷이고 개혁이고 민주화고 뭐고 다 귀찮어. 난 등따습고 배부르니 불만없어. 나 건들지마.’ 이러고 긴 잠을 계속 자고 있다. 그 잠은 백년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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