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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171 vote 1 2017.07.31 (18:42:45)

     

    세상은 구조다. 이 한마디로 이야기를 끝낸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이 한마디를 듣고도 감이 오지 않는다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는다. 다윈의 노고에 빗대자. 종은 진화다. 이 한마디로 끝난다.


    그 진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사실 다윈도 몰랐다. 당시만 해도 DNA 유전자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관점이다. 진화론의 진짜 의미는 인류가 처음으로 그 문제에 진지하게 달려들었다는 거다. 창조론? 창조론은 이론이 아니다.


    신이라는 방패막이 뒤로 숨었다. 굳이 말하자면 창조론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모르면 닥쳐야지 왜 말이 많은가? 그들은 사실 진지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류가 거기에 과학이라는 이름의 메스를 가하여 생명의 존엄성에 도발할 것인가다.


    인류가 그 후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다. 교회가 무너지고 가족이 무너지는 사태다.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요즘 젊은이는 결혼하지 않는다. 무슬림은 열심히 출산하는 판에 말이다. 이쯤 되면 창조설의 맞대응이 정치적 기동임을 알 수 있다.


    진화와 창조의 대립은 과학의 견해차이가 아니라 인류가 문명의 큰 방향을 틀어버림에 있어서 과연 인류 전체의 합의가 선행되어 있었는가 하는 정치적 이의제기다. 권력게임이 시작된다. 과학이 인류문명을 타격하자 권력해체가 일어났다. 


    정치적 맞대응을 한다. 그것은 학계의 논쟁인데 왜 우리 종교인이 유탄을 맞아야 하지? 이거 말 된다. 그런데 말이다. 그건 정치인이 나서서 교통정리 할 문제이지 과학자의 관심사는 아니다. 과학은 진실을 말할 뿐이다. 비 온다고 기상청 패랴?


    그렇다. 인류는 태만했다. 생명의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한 사람은 없었다. 다윈이 처음으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진실을 누설했다. 그러자 피해 본 사람들이 화를 냈다. 그러기 없기로 했잖아. 뒤로 담합해 놨는데 왜 니들이 판을 깨니?


    이런 그림 충분히 가능하다. 과학적 진실과 아무 상관 없는 정치적 후폭풍에 불과하다. 기상청이 일기예보를 했다. 올해는 가뭄이 들 것이다. 우산장수가 화를 낸다. 장마철에 대비해서 우산을 잔뜩 도매해놨는데 안 팔리면 니들이 책임질겨?


    필자의 견해는 이런 태도가 진지하지 않다는 거다.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진지하지 않은 사람 꺼져! 정치적으로 구는 자들 꺼져! 우산장수 소금장수 꺼져! 종교장사 꺼져! 그들은 이 사이트의 논의에 낄 자격이 없는 거다.


    사실이지 진화론을 배운 사람 중에 자신의 판단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 과학자의 권위에 굴복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다. 설문조사 해보니 대학생 중의 다수가 귀신을 믿더라고.


    그들은 진화론을 믿는 척한다. 귀신과 진화는 양립이 불가능하다. 귀신을 믿는 사람은 진화론을 믿지 않아야 한다. 사실 그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거다. 어쨌든 시험문제를 풀 때는 진화에다 체크를 하여 답안을 작성할 것이다. 외웠으니까.


    구조론도 마찬가지. 아무 생각 없는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다. 진화를 알려주면 귀신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미 진화를 말했는데도 귀신을 해결하지 않고 혹시 모르잖아 하며 모호한 태도를 가지는 자는 과학 할 자격이 없다. 파문해야 한다.


    구조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 마침내 존재의 진실에 대하여 인류가 생각을 시작한 거다. 진화도 마찬가지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립하여 있는 게 아니라 아무 생각이 없었던 상태에서 다윈이 처음으로 생각을 툭 던진 것이다.


    구조론과 반구조론이 있는 게 아니라 다들 아무 생각이 없는데 구조론이 출현했다. 구조론에 반대되는 그 무엇은 없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그 무엇은 당연히 없다. 창조론이라는 말은 불이익당한 종교인들이 떠벌인 너스레에 불과한 것이다.


    수학에 반대되는 반수학은 없다. 주먹구구? 주먹구구가 수학의 반대는 아니다. 마찬가지다. 구조론에 반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무지와 게으름과 아무 생각 없음과 진지하지 않음이다. 그들은 비겁하다. 구조론은 필자의 초딩시절 아이디어다.


    나는 사람들이 뚫린 입으로 단어들을 막 내뱉어 대는데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앞단어 뒤에 뒷단어를 마구잡이로 가져다 붙여버리는 거지? 인간의 언어는 구석기인들이 발명한 것이다. 과학의 검증을 거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인간들이 함부로 내뱉어대는 언어를 신뢰할 수 있나? 그 어떤 선생님도 내가 입으로 말은 하지만 사실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일단 신뢰할 수 있는 게 아닌데 하고 진실을 고백하지 않았다. 그들은 함부로 단어와 문장에 권위를 부여해 버렸다.


    그리고는 눈알을 부라려 겁을 줬다. 반대 질문은 원천봉쇄 되었다. 1+1=2가 맞나요? 하고 질문할 수 있을지언정 과연 인간의 언어라는 게 막 내뱉어도 되는 도구인지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비슷한 것도 나는 본 적이 없다. 


    인류문명의 근본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래 사회를 떠나 있었다. 도무지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너희 인간들과 상종하지 못하겠다. 진화와 창조가 있는 게 아니라 진지한 사람과 개념 없는 사람이 있는 거다.


    구조론이 요구하는 것은 각 잡고 진지해져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과연 당신은 진지한가? 뇌의 CPU를 최대한 돌려먹고는 있는가? 구조론의 반대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원자론적 관점이나 기계론, 결정론적 태도라 하겠다. 


    그런데 원자론은 창조론과 비슷하다. 원자는 쪼갤 수 없다. 신을 깨뜨릴 수 없다. 진지하지 않은 자의 방패막이다. 그들은 포기한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설정해 버렸다. 요 금 넘어 건드리기 없기. 그냥 모르겠다고 하면 될 건데 말이다.


    무지의 지를 깨달아야 한다. 인류는 진지하지 않았다. 포기했다.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가 창피하니까 원자론이라는 방패막이를 내세웠다. 정치적인 곤란함을 노정하는 문제에 금을 그어놓고 서로 건드리지 말기로 묵시적인 담합을 한 거다.


    우주 안에 쪼개지지 않는 것은 절대 없다. 우주가 작은 알갱이들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는 전제부터 틀려먹었다. 이 전제가 성립하려면 크기가 존재해야 한다. 크기라는 것은 수학적 접근이다. 즉 관념이다. 그러므로 관념으로의 도피가 된다. 


    우주가 수학으로 되어 있다는 식의 허무다. 역시 모르겠다는 말과 같다. 우주는 작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원형이 널리 복제된 것이다. 이 대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하나는 물레방아를 닮았으니 확산방향을 수렴방향으로 바꾼다.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꾼다. 사건에 방향성을 부여한다. 구조론은 음악도 미술도 패션도 건축도 정치도 자본도 생명도 이 하나의 논리로 설명한다. 방향성이다. 너 음악을 알아? 이렇게 물었을 때 당신이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음악의 나아가는 방향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음악을 아는 사람이며 방향을 모르면 모르는 거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안다고 음악을 안다고 하면 안 된다. 너 미술을 알아? 미술이 진화하는 미래의 방향성을 아는 사람이 미술을 안다고 하겠다. 


    마찬가지다. 정치가 진보하는 방향을 모르는 사람은 정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미래를 예견할 줄 모르는 안철수는 정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생명의 진화는 우연이 아니라 방향이 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어 있다.


    그 방향은 계 내부의 상호작용을 증대하여 환경을 장악해 가는 정도를 높이는 방향이다. 방향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다. 자동차를 안다면 도로도 알아야 한다. 차는 잘 아는데 그 차가 나아가는 도로를 모른다면 차도 모르는 것이다.


    기차역을 모르는 사람은 기차를 모르는 사람이고 버스정류장을 모르는 사람은 버스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그 어떤 것이 전진하여 나아가는 사건의 다음 단계를 안다는 것이다. 기에 선 사람이 승전결을 아는 것이다.


    두 가지 바보가 있다. 하나는 어떤 고착된 틀에 맞추려고만 하는 사람이다. 진보든 보수든 고착된 틀에 맞추려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다. 진보는 친북이라든가 보수는 반공이다 하는 식으로 틀에 맞춰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방향을 모른다. 방향을 모르면 다 모르는 것이다. 방향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 고착된 틀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바보는 노자바보다. 상대주의를 적용하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 다르네 한다.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될 것을 둘러댄다. 난 정치를 모르지만, 정치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정치를 아는 거라네 하는 식의 말장난이다. 패 죽여야 한다. 두 바보의 공통점은 역시 진지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언어를 늘여 답에 맞춘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다. 1+2=3이라고 정답을 제출하는 게 아니라 2를 고무줄처럼 늘려서 3까지 커버하게 만들면 된다는 식이다. 3이나 2나 불과 한 끗 차이인데 봐주면 되잖아 하는 식이다. 사실을 추구하지 않고 언어를 희생시킨다.


    언어는 인류의 약속인데 그 약속을 희생시켜 피해가 인류 모두에 이르게 하니 오판의 고통을 만인에게 분산하여 표나지 않게 하는 속임수다. 인류가 다친다. 두 종류의 바보가 있다. 틀에 맞추는 바보는 강박증 바보이니 곧 권력을 탐하는 자다. 


    상대주의로 도망치는 바보는 콤플렉스 바보이니 권력에 쓴맛을 보고 쫄아있는 거다. 공통점은 모두 권력의 법칙을 따른다는 거다. 그들은 권력에 집착하거나 혹은 권력에 반항한다. 권력에 대들다가 진리에 대들게 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둘 다 권력에 매인 점은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사회 안에서 명성을 탐하거나 돈을 탐하거나 정치권력을 탐하거나 본질은 권력이다. 인간의 사회성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 머리를 써야 한다. 본능의 지시를 따라 무의식의 덫에 갇힌다.


    진정 자유로운 정신에 도달하여 있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다. 권력과 거리를 둔다고 말하나 권력의 눈치를 보고 쫄아있는 것이며 권력 대신 돈과 명성을 탐하지만 그게 권력의 변종이니 결국 권력이다. 진리 그 자체에 천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지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말장난하는 자는 혀를 뽑아버려야 한다. 언어를 의심하지 않는 자는 애초에 논의에 낄 자격이 없다. 교언영색 하는 자라 할 것이다. 세상은 구조다. 이 안에 다 있다. 구조는 복제구조다. 복제는 방향을 복제한다.


    금속을 비중대로 백금, 금, 은, 납, 구리로 분별하여 줄 세울 수 있지만, 에너지의 진행방향이 꺾이는 정도에 불과하다. 우주는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로 되어 있다. 물질은 인간의 관측편의를 따른 것이니 관측의 용이성이라는 색안경을 씌웠다.


    물질은 인간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의 촉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구분한 것이며 존재 그 자체의 본성과 무관하다. 인간 중심의 접근인 것이며 자연 중심의 접근이 아니다. 그렇다. 인류는 1만 년 동안 인간의 관측위주로 언어를 조직했다.


    그게 먹혔다. 왜냐하면, 인간이 벌여놓은 일들이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로 진출하려면 변변치 않은 도구를 버려야 한다. 자연의 도구를 써야 한다. 그것이 구조다. 구조는 자연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관점이다.


    사회에 여러 대립된 견해가 병존하여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진리에 정면으로 달려들어 목숨 걸고 진지한 자와 번지수를 잘못 짚어서 엉뚱한 곳에 여불때기로 끼어들어 어색해진 자가 있을 뿐이며 진지하지 않은 자는 일단 발언권이 없으니 닥쳐!


    남의 벌여놓은 판에 잘못 끼어들어 어색한 자는 이 게임에서 빠져줘야 한다. 진화론은 진지하고 창조론은 걸치적대는 방해자들이다. 그들의 언어가 어색하고 연출이 어설프다. 구조론은 진지한 것이니 목숨 걸고 베팅한 자만 발언권이 있다.


    정리하자. 진화냐 창조냐의 대립구도 세팅은 정치적 맞대응일 뿐 진지한 논의가 될 수 없으니 애초에 대화상대가 안 된다. 그러므로 진화냐 창조냐가 아니라 진화라면 [뭐뭐]다가 되어야 하며 그 미지수 [뭐뭐]에는 유전자 개념이 들어온다.

   

   마찬가지 구조론과 반구조론의 대립구도는 없으며 진화라면 유전자가 있듯이 구조라면 방향성이 있다. 구조면 복제고 복제면 원본과 복제본 사이에 서열이 있어서방향성을 이루니 그 방향성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구조론의 알파요 오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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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2017.08.01 (12:13:28)

'복제'라는 키워드로 창조론(태초에 신의 완전성이 있다)과 진화론(그 완전성이 복제되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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